




9월 27일(목) 오후 순천에 계시는 이금주 회장(93세)님을 찾아 뵀습니다.
지난 5월 그동안 정들었던 광주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손녀딸이 있는 순천으로 거처를 옮기신 후 식구는 많아졌지만 적적한 생활을 보내고 계시더군요.
양금덕할머니, 김선호 광주시교육의원(공동대표), 김희용 대표, 서진영사무차장, 이국언 사무국장이 동행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라 무척 반가워 하시더군요. 얼마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생각보다 많이 아위었다는 생각을 지울수 없었습니다.
비교적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고, 좋은 남편을 만나 행복한 가정 생활을 시작했지만 일제는 신혼의 단꿈을 허락하지 않았죠. 결혼후 불과 2년 만에 남편이 징병으로 끌려가 남태평양 다라와군도에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불과 8개월된 아들을 남겨둔채로.
뒤늦게 1988년 일제피해자들이 전국유족회를 결성하자 본격적인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운동에 뛰어들어 지금껏 한 평생 흐트러짐 없이 달려오셨습니다.
어쩌면 한국에서보다 일본 지식인들 사이에서 더 존경받고 유명한 분이신데, 세월의 무게는 어쩔수 없는가 봅니다. 특히 지난해에는 유일한 혈육이었던 아들, 그리고 며느리까지 먼저 세상을 보내고 더욱 힘겨운 생을 보내고 계십니다.
가까운 데 나가 저녁식사를 같이 하고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첫댓글 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이금주 회장님보다 20년 늦게 출발한 저희들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뒤를 이어 못다하신 일을 이어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