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33] 차상순 (車相淳) - 이 생명 다하도록 6. 남한으로 피난 - 2
10 또 한 번은 서울에서 수원으로 남하를 하는데, 기찻길로 가지 않고 시흥(始興)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시흥에서 장교 5~6명이 피난 행렬 속에 청년들을 골라내 가지고 심문을 하는 것이었다.
11 나도 걸려서 조사를 받게 되었다. 나는 내려올 때에 배낭 하나를 지고 나왔다. 그 속에 갈아입을 옷을 한 벌 넣어가지고 왔다. 장교들이 나더러 배낭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꺼내 보라고 하였다.
12 그런데 내 양복 주머니 속에 이북에서 쓰는 공민증(公民證)이 나왔다. 공민증을 보고 나보고 간첩(間諜)이라고 하면서, 남한을 정탐(偵探)하고 다시 이북으로 가려고 이것을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어떻게 회피할 도리가 없었다.
13 이 장교들은 몽둥이를 들더니 우선 무릎을 꿇고 앉아 있으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이북에서 인민군에게 잡혔을 때는 속으로 기도했지만 오늘은 큰 소리로 기도하고 죽겠다고 생각했다.
14 갑자기 기도하려니 기도가 나오지 않아 주 기도문을 큰 소리로 외웠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아멘” 하고 눈을 떴다. 몽둥이로 때리려고 하다가 예수 믿느냐고 물었다.
15 그래서 나는 3대째 예수꾼이라 했더니, 미안하다고 하면서 돌려보내 주었다. 그래서 기도의 힘으로 또 한번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났었다. 그리고 ‘기도는 만능이다.’라고 외쳤다. 이렇게 두 번씩이나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으로 살아났다.
16 서울에서 다시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부산에 도착했는데, 거처할 곳이 없어 제일 싼 방에 돈을 주고 들어가니까 남자들만 모여 자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참한 생활이었다. 17 다음 날부터는 당장 먹고살아야 되기 때문에 부두에 나가 노동을 했다. 나는 제3부두에서 제일 힘 안 드는 레이스 박스를 운반하는 일이었다. 하루 일해야 그저 하루 입에 풀칠할 것 밖에는 되지 않았다.
18 그다음에 알고 보니까 선생님도 부두에서 드럼통 굴리는 일을 하셨다는데, 그 부두에 갔으면 만날 수 있었겠지만 거기는 너무 힘이 드는 일이기 때문에 갈 수 없었다. 사실 그때는 선생님이 어디 계신지도 모를뿐더러 알 생각도 않고 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