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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무전기 시장의 대표적 회사인 Collins와 Heathkit가 상품을 진공관 리그로 부터 트랜지스터 리그로
바꾼 것은 일본회사에 비해 늦습니다.
미국이 트랜지스터의 장점을 살려 새로운 기술로 혁신적 제품을 준비 하는 동안 일본 회사들은 진공관 설계를
그대로 트랜지스터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HL2IR은 진공관 리그 KWM-2A로 개국하여 사용하다가 트랜지스터 리그 TRIO TS-520을 잠시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진공관 리그에 비하면 감도와 선택도가 좋은 것도 아니고 수신 내부 잡음이 많고 음질도 못하여 장점을 발견
하지 못 했습니다.
이후 트랜지스터 리그는 처다 보지도 않고 콜린스의 진공관 리그만 계속 사용 했습니다.
중간 중간 새로나온 ICOM이나 KENWOOD 트랜지스터 리그가 집에 머물러 만져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것은 HL9 친구가 위탁 판매를 부탁하여 사용해 보았지 역시 매력을 발견 하지 못 했습니다
.
개국 당시 미국이나 유럽의 무선국을 만나면 예외없이 일본 야에스 FT-101이나 켄우드 TS-520리그를 많이
사용하여 놀란 적이 있습니다.
이때 이미 미국시장을 장악해서 미국 무전기 회사를 망하게 한거 같습니다.
초기의 일본 트랜지스터 리그가 별로 였던 것은 진공관 설계를 바꾸지 않고 진공관만 트랜지스터로 바꾸어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HL2IR은 개국전 TRIO TS-510 진공관 리그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미국 Heathkit의 SB-100을 Copy하여
만든 것입니다.
아래에 상세히 설명 드리는 스토리를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Heathkit는 진공관 리그 SB-100을 트랜지스터로
만들기 위해 SB-103을 개발하지만 설계를 바꾸지 않고 트랜지스터화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여
개발을 포기하고 오랜 개발기간 연구하여 전혀 새로운 설계로 첨단 제품을 시장에 내보냅니다.
TRIO의 TS-520은 Heathkit가 개발을 폐기처분 한 SB-103의 일본 Copy 이므로 성능이 진공관 리그에
못 미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미완성의 리그들 TS-520 과 FT-101이 미국이 신 개발품을 준비 하느라 주춤하는 사이에 미국에 들어가서 일본의 값싼 노동력이 만들어낸 저렴한 가격으로 성공 하였습니다.
트랜지스터는 1947년 12월에 미국 뉴저지에 있는 BELL Lab에서 William Shockley, John Bardeen
그리고 Water Brattain 3 사람이 공동 발명하였습니다.(1956년에 노벨 물리학상 공동 수상)
세계 최초의 상업용 트랜지스터 라디오 TR-1은 미국회사에서 1954년에
판매하였고 일본 소니는 1955년에 TR-55를 판매 하였습니다.
아마추어 무선에서 처음 트랜지스터 송신기를 사용한 스토리는 1953년 QST 2월호에 나옵니다.
1956년 9월에는 W1OGU Gus Fallgren 이 2개의 Raytheon 게르마니움 트랜지스터로 만든 CW 송신기로
송신하여 OZ7BO Bo Brondum-Nielsen 과 교신하였습니다.
1개의 2N113 트랜지스터로 수정발진자를 사용하여 7Mhz를 발진하고 두 번째 트랜지스터로
채배/출력 하여 78mW를 입력한 송신기 였습니다.
처음으로 대서양을 건너 3600 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아마추어 무선국이
수신 한 것입니다.
또한 영국 Brimingham에 있는 G3AMM과도 14Mhz 에서교신 하였습니다.
아마추어 무선용 수신기를 트랜지스터로 세계최초로 만든 회사는 Heathkit 입니다.
1960년 10월에 광고를 시작하여 1961년에 10 트랜지스터 6 다이오드 Heathkit GC-1A Mohican Receiver를
판매 하였습니다.
1963년에 나온 아마추어 무선 전용 수신기 Heathkit SB-300은 진공관으로 만들었고 트랜지스터로 만든
SB-303은 1970년에 나왔습니다.
트랜지스터 송신기 SB-403은 설계도는 완성 하였지만 송신기 전용이 아니고 트랜시버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팽배해서 설합 속으로 집어 넣었습니다.
대신 SB-104 트랜지스터 트랜시버 개발을 시작합니다.
세계 최초의 아마추어 무선용 트랜시버는 1957년에 진공관으로 만든 Collins KWM-1입니다.
Collins 회사의 최초의 트랜지스터 트랜시버 KWM-380은 1979년에 나왔습니다.
Collins회사가 트랜지스터 트랜시버를 일찌감치 개발 못한 것은 진공관에서
트랜지스터로 넘어가던 1970년 초에 벌어진 Rockwell과 합병 작업 때문 이라 합니다.
Heathkit는 1970년 초에 SB-104 트랜지스터 트랜시버를 개발하다 실패 하여 인력이 회사를 떠납니다.
그때 Collins 엔지니어들은 Rockwell과 합병 때문에 매우 속상하여 이직 하였는데 그중 Mike Elliot가
Heathkit로 와서 중단한 SB-103개발 건을 검토후 SB-103을 완성 시킬 것이 아니고 폐기 합니다.
이유는 트랜지스터 화로 얻는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프리 셀렉터, 방대한 동조회로, 복잡한 밴드 전환 기구, 전통적인 파이형 종단 회로등 진공관식 설계를 그대로 트랜지스터로 옮겨 왔기 때문입니다.
Mike는 SB-103의 설계가 매우 낮은 다이나믹 레인지, 높은 전력 소비, 저 효율, 부족한 안정도등
트랜지스터 리그로 만드는 장점이 단 한 개도 없다고 보았습니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거대한 기술 도약을 위한 새로운 프로잭트 SB-104를 시작 합니다.
단순히 솔리드 스테이트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리그는 디지털 기술, 광대역 동조기구,
솔리드 스테이트 파이널등 Heathkit로는 보지 못한 새론운 개념이며 도전 이었습니다.
SB-104는 많은 량의 부품을 필요로 했는데 0.1%의 불량 부품이 들어가도 고객은 지식부족과 측정기 부재로
문제해결이 어렵게 됩니다.
설령 100% 완벽한 부품이라 해도 부품이 작아지고 집적도가 높아 조립과 땜질이 어려운 난제를 만나게 됩니다.
Heath의 엔지니어들이 개발 과정에서 모두 이러한 문제를 알았는지 불분명 한 체로 회사는 디지털 전자화를
계속 진행 합니다.
SB-104는 31개의 IC를 포함한 275개의 솔리드 스테이트 부품과 수백개의 저항, 컨덴서, 코일, 크리스탈 등 등
으로 구성되었으며 부품의 정밀 허용도 가 생각 했던것 보다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품질관리비가 상승하고 기계값도 인상 되었습니다.
1974년 크리스마스 때 SB-104는 QST광고에 등장 했습니다.
Heathkit가 1960년대부터 1970년대 까지 황금시대를 보내고 내리막 길을 가게 된 원인 가운데
1971년에 일본 야에스가 만든 FT-101트랜시버가 있습니다.
FT-101은 완성품으로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미국 시장에 들어 왔습니다.
FT-101은 Heathkit의 Mike가 폐기한 SB-103과 같은 설계로 만든 리그 입니다.
그런데도 미국시장에서 히트를 친 것 은 아이러니라 하겠습니다.
이것이 미국과 일본의 기술 격차입니다.
미국은 미래의 신기술을 향해 어려움을 무릅쓰고 개척하는데 일본은 못 합니다.
오늘날 일본의 전자 공업이 한국에도 뒤쳐진 이유이기 도합니다.
예상 했던 데로 SB-104 트랜시버 키트는 시장에 나오자 많은 고객 불만이 접수 됩니다.
한 가지 해결책은 RF보드 몇 개와 아주 복잡한 보드는 미리 공장에서 조립, 테스트하여 내보내자 였 는데
이것으로 문제는 해결 하였으나 실질적으로 회사의 이익을 까 먹 엇습니다.
Collins는 방대한 군수산업 시장에서 성공하여 비대해진 회사업무를 컴퓨터에 많이 의존 하였습니다.
최첨단 기술의 선구자로 생각하는 자만심은 독자적인 상업용 컴퓨터 개발을 진행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엄청난 개발비로 회사 재정을 파탄 시키고 Rockwell과 합병의 길로 갔습니다.
Heathkit는 HW-104개발로 잠시 행운을 잡았습니다.
HW-104는 SB-104의 염가판으로 대부분의 복잡한 디지털 회로를 아날로그로 바꾸어 원가를 절감 하였습니다.
SB-102와 같은 다이얼로 된 전통적인 동조 방식을 채택하고 고장 없이 잘 동작하여 시장에서 잘 팔렸으나
격화된 시장 경쟁으로 매출이 줄어 단지 2년 만에 단종 됩니다.
시장은 컴퓨터 시대로 들어가서 Heathkit는 Zenith회사와 합병하여 새로운 상품인 퍼스널 컴퓨터 키트도
개발하여 판매하면서 매출을 늘렸습니다.
$300 짜리 H8 8비트 컴퓨터에 이어 16비트 컴퓨터 H11은 키트로 $1,200 완성품으로 $2,000에 판매 하였는데 이 두 컴퓨터가 인기가 좋아 회사에 많은 현금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년간 총 매출이 1억 달라에 달한 적도 있었는데 주로 텔레비전, 스테레오 오디오, 테스트 장비 컴퓨터 등에 의한 것 이었고 아마추어 무선 재품은 25% 였습니다.
10년 전에 40%에서 25%로 쭈 그러 든 것입니다.
1977년 7월에 SB-104를 개량한 SB-104A 내 놓았고 모든 문제점들은 깨끗이 살아 졌습니다.
고객에 충실한 Heathkit는 부지런히 고객의 요구에 맞추어 개선하여 고객을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매출은 서서히 줄어가자 Heathkit도 가만히 있지 않고 104를 대체할 새로운 트랜시버 SS-8000 을
향해 갑니다.
Heathkit는 컴퓨터가 콘트롤 하는 새로운 트랜시버를 야심차게 개발 합니다.
1980년 봄에 발간한 카탈로그에 SS-8000의 등장을 알리는 광고가 H-19 컴퓨터 스마트 터미널과 함께 나와
SS-8000이 컴퓨터로 조종됨을 알림니다.
그러나 SS-8000의 복잡함과 높은 부품 집적도가 대부분의 키트 조립자들의 성공적인 조립과 조정을 아마도
불가능하게 할지도 모르다는 생각을 개발과정에서 하게 됩니다.
완전한 조립품으로 고객에게 제공하면 문제가 없을 것 이지만 원가를 두배로 증가시켜 밑지는 장사를 하게 됩니다.
Heathkit는 큰 혼란에 빠지지만 SB-104의 실책을 경험 삼아 손해를 무릅쓰고 완성품으로 시장에 내놓기로
결정 합니다.
여기 까지 5년이 걸렸는데 완성품으로 재 설계하는데 3년이 더걸려 제품 개발에 8년이 걸렸고 개발비는
3백만 달라 이상이 들어가 Heathkit가 단일제품 개발비 최고액을 기록 했습니다.
1982년 SS-8000/9000의 시장 판매 가격은 $2,800에 달 했는데 경쟁사 제품가격의 두 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컴퓨터가 콘트롤하는 첨단 트랜시버라 해도 너무 비싸서 단지 2000대 정도만 시장에 팔렸고 이 프로잭트는 회사에 너무 많은 손해를 주어 회사가 회복 불능의 길로 가게 만들었습니다.
Heathkit의 마지막 희망 성공작 키트 HW-5400을 $750에 시장에 내놓아 Kenwood나 Yaesu등과 경쟁하려
하였으나 1년 반밖에 견디지 못하였습니다.
더 이상 수입품과 경쟁 할 수 없음을 깨달은 엔지니어들은 HW-5400과 SS-9000을 해외에 외주 생산하려
한국을 방문 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1982년 중반경 Icom, Kenwood 그리고 Yaesu등 일본 회사들은 매달 1개 꼴로 신제품을 내놓고 있었습니다.
Heathkit는 SS-9000과 HW-5400을 마지막 상품으로 1982년 아마추어 구릅 감원에 이어
1985년 모든 아마추어 제품 개발 중지가 결정 됩니다.
참고로 Heathkit 이외의 회사가 아마추어 트랜지스터 트랜시버를 처음 시장에 판매한 기록은
Drake가 1978년에 TR-7을, Hallicrafters가 마지막 작품 FPM-300을 1972년에 출시 하였습니다.
TR-7은 100% 트랜지스터 리그이고 FPM-300은 파이널에 6KD6진공관을 사용 하였습니다.
오늘날 미국은 아마추어 무선사 N6KR Wayne Burdick와 WA6HHQ Eric Swarz가 1998년에 세운
무전기 회사 Elecraft가 세계 최고 성능의 k4 트랜시버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생산하고
FlexRadio는 PowerSDR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아마추어 무선용 SDR 트랜시버 SDR-1000을
2003년에 처음 판매 하였습니다.
W8WFF Mike가 사장으로 있는 미국의 무전기 회사 TenTec은 몇 번 주인이 바뀌었지만 계속해서
상업용 무전기와 아마추어용 무전기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첫댓글 다시 한번 아마추어 무선기기의 변천사를 읽습니다. 특히 Heathkit사의 아마추어 기기의 중단에 이르는 과정까지... 무엇보다도 자료 수집에서 시작하여 각 기계들의 수신 음질까지 섬세하게 비교할 수 있도록 애써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VFO(바리콘)를 돌릴 때 주파수가 맞춰지기 전의 묘한 소리 ...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네요... 그 옛날에 얼마나 갖고 싶어했던 기계들을 한 곳에 모으니 더욱 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전리층도 그 옛날처럼 좋아져서 스윗치만 키면 온 지구촌을 손아귀에 쥔듯한 느낌을 다시 한번 느껴 보았으면 하는 망상에 젖어 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에 건강 하시고 복 많이 받으 십 시요.
개국한지 48년이나 된 저도 잘 몰랐던 Ham 장비 스토리들을 잘 정리하여 올려주셨군요?
제가 개국 전 SWL시절 일본HAM들은 주로 TS-510, 511을 많이 사용하고 있었는데 개국 초에는
일본 뿐 아니라 호주, 심지어 유럽 STN 까지 FT-101, TS-520이 쫙 깔려서 도배가 되더군요?
그래서 저도 그 FT-101을 한번 소유해 보고 싶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가 14년전이었던가
우연히 고장난 것을 하나 구해다가 살려서 작동시켜 보고 예전의 꿈이 환상이었음을 곧 알게
되었습니다. 전원부가 내장되어 있고 당시의 일반적인 무전기에 비해 작고 예쁘장하다는 것
외에는 성능상 혼변조도 많고 기계적으로 약한(특히 셀렉터 )부분이 많아서 그냥 전시용으로
거치했다가 소장을 원하는 후배 HAM에게 적당한 가격에 양도하고 말았습니다. ㅎㅎ
Heathkit 에 대한 추억이라면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주한미군이 귀국하며 불하한 SB-101을 운좋게
구입하여 운용하다가 어느날 HM1BX/서정욱 om님과 on air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om님이
SB-104를 조립하여 시험중이라며 All반도체로 Tuning 할 필요도 없고 참 좋다고 하셔서 그후 미국의
처남에게 부탁하여 Kit를 수입 어렵게 통관하여 조립하는 손맛도 보고 수년간 사용했었습니다.
회사에서 조정되어 온 Front end 부분은 손을 대지 말아야 하는데 겁도 없이 트리머나 코어를 돌렸더니
밤이 되면 혼변조가 장난이 아니었는데 지금 같으면 좋은 계측기가 있으니 다시 조정하면 되겠지만
그 때 그 장비는 지금 어느 om의 손에 가있는지 그새 40년이나 흘렀네요? ㅎㅎ
김om님의 Collins, Heathkit 사 Story를 듣고 보니 Drake에 대한 내력도 궁금해 지는군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저도 같은 심정으로 W에서 상태 좋은 FT-101B를 사와서 소장 하고 있는데 주파수 안정도가 나빠 사용 불능 입니다.
더 오래된 KWM-2A는 아무 문제 없이 잘 사용 중 입니다.
새해에 건강 하시고 복 많이 받으 십 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