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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화 정승진 전 사장의 집무실 테이블 위엔 항상 '눈물녀'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그는 팀 성적 향상엔 실패했지만, 성적 외적인 다양한 가치를 생산하는 덴 늘 성공을 거뒀다(사진=도현석 작가) |
“성공 확률이요? 아마 10%도 안 될 겁니다. 결국 돈 낭비, 시간 낭비밖엔 되지 않을 겁니다.”
2004년이었다. 칼바람이 부는 겨울이었다. 대덕테크노밸리 대표이사로 선임된 정승진은 막차를 놓친 어린아이처럼 앞이 깜깜했다. 그룹에서 성실성과 업무능력을 인정받은 그였지만, 이번 업무는 능력 밖의 일인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게 누구 하나 성공을 장담하지 못했다. 되레 암울한 전망만을 내놓을 뿐이었다.
따지고 보면 한화그룹이 대덕테크노밸리 사업에 뛰어든 것도 수익 창출보단 지역경제 활성화 기여차원이 컸다. 1991년 정부로부터 대전과학산업단지로 지정받은 대덕테크노밸리는 10년 넘게 사업 주체가 나타나지 않아 그야말로 표류 상태였다. 급기야는 산업단지 지정마저 취소될 위기에 놓였다.
그때 구원투수로 나타난 게 한화그룹이었다. 사연은 이랬다.
1999년 한화가 한국시리즈 우승했을 때였다. 한화가 우승하자 대전은 축제 분위기였다. 당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대전에서 열린 우승 기념 파티에 참석했다. 그때 함께 자리한 홍선기 전 대전시장으로부터 “대전 인근 425만㎡(약 130만 평)를 산업단지로 조성하려는데,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힘들 것 같습니다. 한화가 좀 도와줬으면 합니다”하는 간곡한 부탁을 받았다.
한화 임원들은 한사코 “사업성이 낮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김 회장은 “대전을 위해 우리가 뭔가를 해야하지 않겠느냐”며 대덕테크노밸리 사업을 분석하도록 지시했고, 우여곡절 끝에 사업 진행이 확정됐다.
2001년 한화그룹은 대전시, 한국산업은행과 (주)대덕테크노밸리를 공동 설립한 뒤 427만㎡부지에 국내 최초로 첨단 벤처클러스터와 주거, 교육, 문화ㆍ레저가 함께 어우러지는 첨단복합산업단지 조성에 나섰다.
하지만, 여전히 낮은 성공 가능성과 개발에 부정적인 인근 주민들의 반대로 대덕테크노밸리는 자칫 ‘천덕꾸러기’가 될 위기에 놓였다. 그때 두 번째 구원투수로 등장한 이가 정승진 대덕테크노밸리 대표이사였다.
2004년 대표이사에 선임되자마자 정승진이 가장 먼저 한 건 주민들과의 소통이었다. 정승진은 대덕테크노밸리 대표이사로 선임되자마자 하루가 멀다 하고 주민들과 만났다. 만남을 통해 주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게 됐다.
그다음 정승진이 한 건 비전 제시였다. 정승진은 대덕테크노밸리가 조성되면 얼마나 많은 부(富)를 창출할 수 있는지 역설하지 않았다. 그건 이후 문제였다. 정승진은 지역사회와 주민들의 우려를 덜고자 대덕테크노밸리를 ‘환경 친화적’, ‘문화 친화적’ 도시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정승진이 한 건 ‘실행’이었다. 정승진은 5년간 80억 원을 들여 지하수를 끌어 올리는 노력 끝에 건천(乾川, 많은 양의 폭우가 내린 후에만 흐르는 하천)이었던 관평천을 자연 생태하천으로 만들었다.
“무슨 하천 따위에 80억 원을 쏟아붓느냐”는 비판이 있었지만, 정승진은 “모든 문화는 자연을 기반으로 한다”는 논리로 관평천 조성사업을 강행했고, 현재 관평천은 기후지표종인 맹꽁이를 비롯해 270여 종의 동·식물이 서식하는 충청지역의 대표적 생태공원이 됐다.
‘문화 친화적 도시’라는 비전 구현에도 온 힘을 다했다. 정승진은 ‘뿌리와 새싹’이라는 이름의 경로당과 유치원을 지었다. 그것도 한 곳에 지었다. 효과는 좋았다. 경로당 노인들은 유치원 아이들을 보살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보호 속에서 건강하게 자랐다. 시너지 효과도 이런 시너지 효과가 없었다.
덕분에 대덕테크노밸리는 대전환경운동연합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고, 주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성공 확률이 10%도 안 된다’던 대덕테크노밸리는 2009년 연 매출 10조 원, 5만 명의 고용효과를 창출했다. 이 성공으로 정 사장은 충남 당진, 경남 김해, 경기 화성에서도 도시개발 사업을 책임지며 ‘도시개발 사업의 최고 전문가’로 우뚝 섰다.
정승진 한화 구단 사장이 재임 기간 4년 동안 한 일들
![]() 한화 유망주들이 꿈을 키우는 서산 2군 훈련장(사진=한화) |
‘도시개발 사업 전문가’로 원체 이름이 알려졌던 그였기에 2011년 5월 ‘정승진 대덕테크노밸리 대표이사가 한화 이글스 사장으로 온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지역사회와 구단 내 기대감은 매우 컸다. 기자가 잘 아는 한화그룹의 모 인사는 정승진을 “기업 회생 전문 마무리 투수”라고 칭하며 “성적과 흥행 가운데 최소 한 마리 토끼는 잡을 사람”이라고 평했다.
정승진은 대덕테크노밸리 대표이사 때처럼 차근차근 한화를 바꾸기 시작했다. 먼저 구단이 현재 어느 위치에 있는지,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강점인지 냉철하게 따져나갔다. 그리고 구단 구성원들과 소통에 나섰다. 2007년 이후 팀이 하위권에 머물려 잔뜩 움츠려 있는 선수단, 직원들과의 소통 속에서 그는 이번엔 비전 제시에 나섰다.
그가 내세운 비전은 3가지였다. ‘도전, 헌신, 정도’였다. 정승진은 도전의 구호로 ‘챔피언은 육성에서부터 시작한다’를 내세웠다. 그리고 헌신의 구호는 ‘아낌없이 주는 한화 이글스가 되자’로 정했다. 마지막 정도는 ‘꿈의 공간을 팬들에게 제공한다’로 설정했다.
그는 여느 때처럼 곧바로 실행에 나섰다. 먼저 ‘챔피언은 육성에서 시작한다’는 구호의 현실화였다. 정승진은 “경기력을 향상하려면 체계적인 선수 육성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2012년 충남 서산에 2군 전용훈련장을 짓겠다고 공표했다. 당시 야구계는 “한화한테 한 두번 속느냐. 실제 삽을 뜨고 나서 이야기하라”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정승진은 삽을 떴다. 공사 현장을 진두지휘했다. 그리고 마침내 천연잔디 구장, 최신식 클럽하우스, 국내 최대 규모의 실내연습장이 구비된 멋진 2군 전용훈련장을 짓는 데 성공했다. 어느 전임자도 하지 못한 일을 정승진은 사장 취임 3년 만에 끝내 버렸다.
![]() 과거 대전구장은 낡고 오래되며 불편한 야구장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러나 2011년부터 2014년까지 3차에 걸친 리모델링을 진행하며 웬만한 구장보다 좋은 구장으로 변모했다. 사진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카페석' '외야 탁자석' '외야 캠핑존' '내야 연인 벤치석' '수유실이 있는 놀이방' '외야 잔디석'(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아낌없이 주는 한화 이글스가 되자’는 구호도 착실히 진행했다. 정승진은 ‘야구단은 팬과 지역사회, 한화그룹 임직원의 자랑’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특히나 지역밀착 마케팅에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정승진은 “프로야구단은 본연의 임무인 좋은 성적과 많은 관중을 유치하는 게 중요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건 ‘프로야구단이 그 지역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기여할 수 있느냐’”라고 주장한 바 있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데 주저하는 이가 아니었다. 단순히 어린이들을 야구장으로 초대하고, 지역사회에 장학금을 전달하는 '생색내기식 이벤트'에서 벗어나 한화 유소년 야구클럽 창단을 창단해 취약 계층이나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이 유소년 야구클럽을 통해 '방과 후 활동'을 하도록 배려했다.
매주 1회 유성구, 서산시와 협력해 아이들을 야구 강습회에 초대하고, 무상으로 야구용품을 지원한 건 지역사회에선 유명한 일화다. 무엇보다 정승진은 유소년 야구팀을 하나가 아닌 몇 개를 만들었고, 지역 사회 아이들이 야구를 통해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화 유소년 야구클럽의 한 학부모는 “정 사장님이 아이들과 함께 식사하는 걸 몇 번이나 봤다. 하루는 정 사장님께 ‘바쁘지 않습니까’ 여쭤봤더니 ‘우리 지역 아이들이 건강하게 커 나가는 게 향후 우리 지역 사회가 더 발전하는데 밑거름이 될 텐데, 이보다 중요한 일이 또 어딨겠습니까’하고 말씀하셨다”며 “‘아, 이분은 진짜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꿈의 공간을 팬들에게 제공한다’는 계획도 멋지게 실천했다. 그가 한화 사장으로 부임하던 2011년 5월. 대전구장은 대구구장, 광주구장과 함께 ‘최악의 구장 빅 3’였다. 특히나 어린이, 여성 관중이 관전하기엔 제약이 많았다.
정승진은 ‘야구장을 잘 지어 이곳을 꿈의 공간으로 만들고, 그 공간을 팬들께 제공하겠다’는 결심 아래 대대적인 구장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대전구장의 물리적, 지리적 한계가 컸지만, 정승진은 “부수고 허무는 게 제일은 아니다”라며 “한계에 도전하고, ‘노후’를 ‘전통’으로 탈바꿈시키자”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결국 대전구장은 ‘팬 친화적 구장’으로 변신했고, 올 시즌 연고지 팬들로부터 예상을 뛰어넘는 좋은 호응을 얻었다.
이뿐이 아니었다. 지역 사회 기여, 2군 훈련장 건설, 대전구장 리모델링, 다양한 팬서비스를 제외하고도 정승진은 류현진의 국외 진출 허락, 외국인 선수 실제 연봉 공개 등 한국야구사에 획을 긋는 굵직굵직한 결단을 내렸다. 놀라운 건 이 모든 결과와 결단이 그의 재임 기간 4년 동안 벌어진 일들이라는 것이었다.
대기업 구단 사장 가운데 최고의 CEO로 불렸던 정승진 전 한화 사장
![]() 한화 정승진 전 사장은 야구계에 많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의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팀은 팬이 없인 존재할 수 없다'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었다. 한화는 내년 시즌 팬들이 가장 원하는 성적 도약에 승부를 걸려 한다. 만약 팀 성적 향상까지 거두게 된다면 한화는 성적과 흥행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사진=도현석 작가) |
그러나 이 모든 결과와 결단에도 그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팀 성적 때문이었다. 2011년 부임 해(7위)를 제외하고 정승진은 팀의 3년 연속 최하위를 막지 못했다. 그는 시즌 중에도 누구를 탓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는 대신 “성적 부진의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며 고갤 숙였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야구인들은 “정 사장은 할 만큼 했다”며 “성적 부진은 현장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책임”이라고 정승진을 옹호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정승진은 현장이 원한 정근우, 이용규 등 거물 FA들을 영입했고, 외국인 선수도 현장이 선택한 이들을 데려왔다. 그렇다고 다른 극소수 구단처럼 구단 사장이 나서 선수 기용과 작전에 개입하는 간섭과 전횡을 일삼은 것도 아니었다.
정승진은 현장 코칭스태프에게 부담을 줄까 염려해 그라운드 근처엔 가지도 않았다. 오죽하면 김응용 한화 전 감독이 “사장님한테 미안해서라도 성적을 내야겠다”고 다짐할 정도였다.
야구계가 모그룹의 지원을 받는 대기업 구단 사장 가운데 정승진을 최고의 CEO로 꼽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프로야구단 CEO로서 구체적 비전과 확실한 실행력을 보여주면서도 현장엔 철저하리만치 불간섭·불개입을 원칙으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김성근 감독이 한화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됐을 때 야구계가 한화의 내년 시즌을 ‘성적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기회’라고 평한 것도 ‘김성근+정승진 조합’에 거는 기대감이 그만큼 컸기 때문인지 모른다.
하지만, 11월 10일 아쉬운 소식이 들렸다. 한화그룹이 새로운 야구단 사장 선임을 발표한 것이다. 이날 한화그룹은 “새롭게 팀이 변화하길 바란다”며 정승진 사장 대신 김충범 현 회장 비서실장을 야구단 신임 사장으로 선임한다고 발표했다.
3년 연속 꼴찌 성적표를 받았으니 사장이 교체돼도 할 말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쉬움은 남는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통용되는 ‘책임론’은 모순이 많다. 많은 코칭스태프(현장)는 프런트의 조언이나 개입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 일쑤다. 그들은 “현장 일에 프런트가 개입하면 안 된다. 성적은 우리 몫, 프런트는 선수단 지원과 흥행에만 신경 써야 한다”며 이른바 ‘역할론’을 주장한다.
하지만, 성적 부진의 책임은 현장만의 몫이 아니었다. 팀 성적이 나쁘면 구단 사장, 단장이 부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일이 다반사다. 정작 성적 부진을 책임져야 할 감독은 살아남고, 능력을 발휘한 구단 수뇌부가 물러나는 일이 심심찮게 발생한다.
지난해 KIA가 그랬다. 당시 KIA는 선동열 감독을 재신임하는 대신 구단의 숙원이던 한국시리즈 우승과 2군 훈련장 건설 그리고 광주 챔피언스 파크 건설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김조호 전 단장을 물러나게 했다. 누가 봐도 성적 책임을 단장에게 전가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KIA 성적이 나아졌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많은 야구인은 “현장과 프런트의 권한과 역할이 철저히 분리되는 게 현대 야구라면 현장은 성적을 통해 평가받고, 프런트는 선수단 지원과 흥행에 따라 평가받는 게 당연하다”며 “능력 있는 구단 단장, 사장이 팀 성적 부진 때문에 좌초하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고 목소릴 높이고 있다.
기자가 2014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를 현장 취재하며 느낀 게 있다면 그들은 현장의 전문성만큼이나 프런트 수장의 전문성과 능력에 큰 비중을 둔다는 것이었다. 이번 월드시리즈 우승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브라이언 사빈 단장만 해도 18년째 같은 팀에서 단장을 역임하고 있었다.
사빈 단장은 롱런의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우리(프런트)는 비오는 날의 자동차 와이퍼와 같은 존재다. 그들(현장 코칭스태프와 선수)이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시야를 확보해주는 게 우리 임무다. 실제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가도록 운전하는 건 그들”이라며 “자동차 와이퍼로서 최선을 다하고, 좋은 파트너를 만난 게 롱런의 비결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빈 단장의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면 정승진은 뛰어난 와이퍼였다. 물론 팀 성적까지 좋았다면 더 좋은 와이퍼가 됐을 것이다. 정승진은 말했다.
“제가 못다 이룬 꿈을 김충범 신임 사장이 이뤄주실 것”이라고. “한화 이글스가 더 높게 비상하는 날이 찾아온다면 제 못다 이룬 꿈도 그제야 이뤄질 것”이라고.
![]() 한화 정승진 전 사장이 구단을 떠나면서 야구관계자들에게 보낸 메시지. 그는 이제 한화팬으로 돌아갔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최고의 야구단 CEO로 불렸던 정승진의 능력이 야구단을 끝으로 사장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가 모그룹이나 사회 어디서든 다시 ‘마무리 투수’로 뛰었으면 한다. 반가운 소식이 있다면 그의 능력과 비전을 모그룹과 지역사회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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