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여행] 이게 런던탑, Tower of London이라고?
이제 모어지역을 떠나 다리를 건너면 보이는 런던탑으로 가는 일정이다. 이미 하루 걸어야 할 분량을 모두 채운 근육과 혈관의 에너지들은 막연히 생각했던 런던탑의 공포를 떠올리면서 더욱 두렵게 꿈틀대기 시작했다.
높은 교각위에 위태롭게 올려진 보행자 다리를 보면서 타워브리지를 건너갔다. 과연 도개교가 열렸을때 저꼭대기까지 뛰어올라가 공중에 매달린 보행다리를 건너는게 효율적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운영방식에 따라 다르겠지만 때론 기다리는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품게 한다.
다리 중간에서 강의 서쪽 줄기를 바라보면 각도 상 시티오브런던 방향과 겹치는 런던탑을 보게 된다. 왼쪽 런던브릿지 방향으로는 놀랍게도 군함이 정박해 있는 것이 보인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HMS 벨페스트 해군함정박물관이라고 한다. 2차세계대전때 운용되던 해군함정인데 9개의 갑판과 함포를 갖추고 있다.
차도와 함께 있는 타워브리지는 보행자 도로에도 많은 보행자들이 보였다. 인도 펜스 가까이에 체코 출신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인 Miroslav Sasek의 "This is London" 전시 홍보 포스터가 보인다.
런던탑으로 들어가려면 우선 타워브리지층에서 한 층 내려와 방문객 서비스공간을 지나야 한다.
방문객 서비스공간을 지나면 볼 수 있는 입장게이트가 있지만 운영을 하지 않아 성벽을 따라 좀 더 걸어가다 오른쪽으로 꺾어진 후 나오는 입장문을 이용했다.
입장통로로 이용되는 Middle Tower.
미들타워는 13세기경 세워졌는데 서쪽 런던 시내로부터 공격해 들어오는 반란군과 민중 폭동에 대배하기 위해 외부 다리, 미들타워, 해자 위 통로, 미들타워를 통과하면 나오는 바이워드 타워, 내부 성벽으로 이어지는 다중 방어 구조를 만들게 된다.
한편 이 문은 또한 왕비가 처음으로 런던탑에 들어올 때 통과하는 문이면서 대관식 전날의 행렬과 국가 의전 행사 때 지나는 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 좁은 이곳 통로를 통해 붐비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런던탑 안으로 들어갔다.
바이워드타워를 지나 웨이크필드타워에 이르면 보이는 오래된 성벽 모습이다. 오래전에 쌓은 벽돌들의 윤관이 튀어나와 우둘투둘하게 되어 있는 모습에서 거의 천년이나 견뎌온 세월이 보이는 듯 하다.
런던탑으로 들어와서 평지보다 탐방로가 있는 성벽 위로 북적거리는 행렬을 따라 걸어 다녔다. 성벽은 여러개의 타워나 군사시설들로 연결되어 있었고 왕실보물창고도 이곳을 통해 계단을 이용해서 들어갈 수 있었다.
런던탑 주변에는 Bauchamp Tower, Broad Arrow Tower, Salt Tower, Cradle Tower, Wakefield Tower, Bloody Tower, Byward Tower, Middle Tower 등등 수없이 많은 탑이 세워져 있다. 모두 이곳 런던탑의 중심 화이트홀까지 적들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Kill Zone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라고 하니 당시 왕들의 적에 대한 공포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화이트타워 앞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대기로 소란스럽고 시간도 많이 소요된다. 밖에서 보면 서대문형무소를 떠올리게 하는 이 건물을 Tower of London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다지 쬬족하거나 높지도 않으면서 탑처럼 생기지도 않았다.
11세기 노르만 왕조가 시작되면서 세워진 이 건물은 사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러개의 방어용 탑을 지나야 도달할 수 있는 것처럼 당시 왕궁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 해당되므로 'Keep'이라는 주성 또는 본성의 개념으로 불렀는데 노르만인들은 이것을 'great tower'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러한 명칭이 그대로 굳어져서 화이트홀은 런던탑으로 불리게 되었다.
지금이야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지만 1066년 정복왕 윌리엄이 잉글랜드를 통치하기 시작할 무렵 영국 대부분의 건물은 목조였는데 당시로서는 대형인 하안색 석조건물의 등장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는 왕의 힘을 과시하는 상징 역할을 하게 되었고 오래도록 영권 왕권을 표현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화이트홀을 지날 때쯤이면 이제 걷기에도 매우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변덕스러운 런던 날씨는 구름이 가득 덮혀있었는데 어느새 따가운 햇살이 내리 쬐는 날씨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런던탑 곳곳에는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그늘에 잘 마련되어 있었다.
이후에 주변 시설이 증축되고 여러가지 용도가 추가 또는 변화하면서 런던의 가장 핵심적인 군사시설, 방어시설, 감옥, 무기창고, 사형장 등의 역할로 이용되었고 이를 총칭하는 표현으로 Tower of London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천년 전 쯤 영국에서는 일종의 '본부'같은 개념의 시설을 Tower라고 불렀던 것 같다. 덕분에 조금 큰 저택같은 화이트 홀을 런던탑이라고 부르고 이런 저런 탑들과 방어시설이 오랜 시간동안 추가되면서 현재의 런던탑 모습이 갖춰지게 되었다.
덕분에 19세기 말 런던탑 옆에 세원진 다리의 이름은 이 런던탑의 이름을 가져와서 Tower Bridge가 되었다. 때때로 우리가 London Bridge랑 혼동했던 그 다리의 이름이 사실은 타워브리지였던 것도 꼭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12-13세기에는 성벽과 해자가 확장되었고 이중 성벽구조가 완성된다. 런던탑은 이때 왕의 거처였으며 보물창고였고 군사 요새 역할 및 왕족이나 귀족을 가두는 감옥이기도 했다. 앤볼린, 토마스모어 등이 런던탑에 갇혔다가 사형당했다.
16세기 이후에는 왕실이 별도의 왕궁에서 거주했지만 런던탑은 여전히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고이기도 했고 조폐국에 병영이기도 했다. 감옥 역할도 여전히 계속되었다.
특이한 것은 우리의 경우 일제하 창경궁에 동물원을 들여서 모욕적이었다고 비판했었는데 런던탑은 사자, 곰, 코끼리 등을 사육하는 왕실동물원이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런던탑을 방문해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찾는 곳은 영국 왕실의 "Crown Jewels"보관 장소이다. 여기에는 국왕이 대관식때 쓰는 왕관, 홀, 보주, 의식용 검 등을 보관되어 있다. 즉 왕실 보물창고인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인 런던탑은 현재 역사박물관이자 왕실 의례공간으로서 런던의 대표적 관광지로 손꼽힌다. 여기에 더해 영국인 특육의 역사 자료 저장공간으로서의 기능도 매우 중요하게 수행되고 있다. 정복의 상징, 왕권의 상징으로서의 런던탑은 여전히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며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매력을 지니고 있는 곳이다.
런던탑을 나와서 서쪽은 넓은 광장이다.
막상 런던탑을 방문하면서 알게된 영국의 지난 천년간의 역사가 새삼 역동적으로 느껴진다. 이민족들에게 반복해서 정복당한 시민들은 런던브릿지를 건너기 전 사형된 사람들의 머리가 효수된 것을 보면서 공포에 떨고, 다시 다리를 건너 런던탑을 보면서 복종할 수 밖에 없는 상태를 강요당했을 것이다. 왕실 위주의 영국은 참혹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민주주의를 발전시켰고 조금 약해졌다고 해도 '대영제국'의 현재를 이룩하게 된 것을 다시 되새기면서 타워힐 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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