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동굴
이헌 조미경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광명 동굴
KTX역인 광명역 근처에 있으며, 서울에서도 가까워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는데
여름 성수기에는 하루 1만 명 이상이 다녀간고 한다. 그래서 오늘도 동굴 입구에서부터 차량 통행이 느렸다.
예전부터 꼭 한번 찾아보고 싶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어 찾지 못하다 오늘 큰 마음먹고 다녀왔다.
동굴에 들어서자, 마치 서늘한 가을에 와 있는 듯 서늘한 기운에 폭염은 사라지고
산뜻한 기분으로 동굴을 체험했다.
또한 광명동굴은 단양 고수동굴이나 제주의 동굴과 달리 인간이 직접 작업을 하기 위해 만든 동굴로
길이도 깊었지만 높이 또한 높았으며, 하루 500명을 수용할 만큼 동굴이 넓고 길었다.
광명 동굴의 역사를 차근차근 읽으며, 그 시절 광부들의 땀방울이 느껴지는 것을 느꼈다.
또한 광명 동굴은 관광자원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흔적이 보였다.
테마 파크로 이용이 되는 만큼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많아서, 여름이면, 시원한 에어컨을 대신해서 한 번쯤 다녀가면
좋은 곳이었다. 이곳을 체험하면서, 그때의 역사 공부와 함께, 금과 은 그리고 구리 아연을 캐던 광부들의 고달픈 삶을 살짝
엿보는 계기가 되었다.
광명동굴(光明洞窟)은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으며 2011년 개장한 동굴 테마파크이다. 폐광산인 가학광산(駕鶴鑛山)을 이용했으며, 가학광산은 1912년 일제강점기의 조선총독부에 의해 개발된 광산으로 1972년에 폐광되었다. 서울특별시에서 가장 가까운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광명동굴은 현재 웜홀 광장, 동굴 예술의 전당, 동굴 아쿠아 월드, 황금 폭포, 동굴 식물원, 황금 궁전, 근대 역사관, 동굴 지하세계, 동굴 지하 호수, 판타지 웨타 갤러리, 와인동굴 등의 시설로 구성되어 있다. 2011년 무료로 개장했으며 2015년 와인 동굴과 함께 유료로 재개장하였다.
우리의 자연을 보존하면서, 또한 사람들에게 역사의 교훈의 현장으로 남게 되어 후세에 후손들에게
좋은 역사 인식을 심어 주게 되었다는 사실이 큰 공부가 되었는데, 광명 동굴은 아직 개방 하지 않은 곳도 많다 하니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다음에 또 방문해서 그곳을 조금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다.
광명동굴이 최초의 기록은 1903년 5월 2일 가학리에 <시흥광산>이 설립되었다는 기록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서 광업권침탈차원에서 그당시 조선총동부는 대한제국 고종황제를 압박하며 '광산조사기관'을 설치하고 금.은 광산을 발견하여서 이것을 독점하려고 안간힘을 쏟았다. 광명동굴 역시 1912년 고바야시 토우에몬 일본인의 이름으로 광산이 설립되었다. 그 당시 광산엔 대부분 농민 출신으로 징용과 생계를 위해 온 광부들이 많았었다. 전성기 때에서 500여명의 광부가 근무하였다고 알려졌다.[출처 필요]
황금광산으로 개발되었던 광명동굴은 1950년을 기준하여 동굴 안 광물의 총 매장량은 1만 9천톤으로 추정되며 당시 석탄 공사 자료에 따르면 1955년부터 폐광된 1972년까지 총 52kg의 황금을 캤다고 알려졌다. 광산채광을 시작한 1912년부터 1954년까지는 수백kg의 황금이 채굴되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1972년 폐광된 이유는 홍수에 의한 환경오염과 보상문제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황금광산, 황금동굴에는 많은 양의 황금을 아직도 많이 남아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1]
현재는 동굴과 문화예술 콘텐츠를 결합하여 창조 문화를 위한 공간이 되었다. 동굴 예술의 전당을 시작으로 동굴 곳곳은 많은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통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산업현장으로만 여겨지던 갱도는 와인동굴로 탈바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