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인 줄 자각하면 어디든 불국토
‘남명천화상~’ 에 실린 오도송
중생은 번뇌망상이 항상 걸림돌
평등한 마음에 평등한 불성 있어
영주 비로사 적광전 / 글씨 함산 정제도(咸山 鄭濟道 1947~ )
五蘊山頭古佛堂 毘盧晝夜放毫光
오온산두고불당 비로주야방호광
若知此處非同異 卽時華嚴遍十方
약지차처비동이 즉시화엄변시방
(오온산 산마루의 옛 불당에/ 비로자나 부처님이 주야로 백호 광명을 발하시네./ 만약 여기에서 같고 다름이 없는 것을 안다면/ 즉시 화장장엄이 시방세계에 두루 하리라.)
이 주련은 ‘남명천화상송증도가사실(南明泉和尙頌證道歌事實)’ 권 제1에 실려 있다. 더러는 말산요연(末山了然) 비구니 스님의 오도송으로 알려져 있으나 근거는 미약하다. 다만 당나라 고안대우(高安大愚) 화상 문하에 요연 스님이 있었다. 스님은 선기가 충만하여 비구니로 ‘전등록(傳燈錄)’ 제11권 끝부분 균주말산니료연(筠州末山尼了然)이라는 이름을 올린 수행자다.
그렇다면 위 게송이 왜 요연 스님의 게송으로 알려졌을까? 이는 고려 중기 보조지눌(普照知訥) 스님이 간화선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저술한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에 요연 스님의 게송으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어록에서는 이러한 말이 전혀 없다. 참고로 요연 스님과 법거량을 한 당나라 관계지한(灌溪志閑?~895) 선사의 게송이 다음과 같다.
“五陰山中古佛堂 毘盧晝夜放圓光
箇中若了非同異 卽是華嚴遍十方
(오음산중고불당 비로주야방원광
개중약료비동이 즉시화엄변시방),
오음 산중의 옛 불당에서는/ 비로자나가 밤낮으로 원만한 빛을 낸다./ 이 속을 훤히 알면 같음과 다름도 아니어서/ 화엄의 변시방이니라.”
오온산은 오온으로 이루어진 산이므로 몸을 구성하는 물질적 요소인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이다. 색은 육신, 수는 육신으로 인해 느끼는 감정과 감각, 상은 심상을 취하는 작용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개념, 행은 수, 상, 식 이외에 일어나는 모든 마음 작용, 식은 인식의 판단으로 일어나는 주체적인 마음 작용이다. 명나라 오승은(吳承恩 1500~1582)이 지은 ‘서유기(西遊記)’에서 손오공이 천상에서 죄를 짓고 인간 세상에 내려와 500년 동안 갇혀있던 산도 오온산이다. 오온산은 바로 사람의 몸을 비유한 것이다.
산두(山頭)는 산꼭대기다. 여기에 오온을 합쳐서 오온산 꼭대기라고 했다. 고불당은 고불(古佛)로 보아도 무방하다. 이를 연결하면 이 몸이 예로부터 부처인 줄을 알아차리라는 가르침이다. 비로는 비로자나(毘盧遮那)다. 태양처럼 일체 법을 비춰 관조하는 광대무변한 지혜를 표현한다. 비로자나는 법신(法身)을 나타내며 여기에 부처 불(佛)을 더하여 비로자나불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딘가 비로자나 부처님이 주재하는 것처럼 여긴다. 이는 비로자나에 대해 확실한 이해를 하지 못한 것이다. 스스로 깨달아 얻으면 비로는 살아서 구물대며 춤출 것이고 형상으로 나타내 또 하나의 믿음의 대상으로 전락한다면 화석처럼 굳어지는 것이다. 주야(晝夜)는 밤낮을 말하므로 언제나 변함없이, 늘 이러한 뜻이다.
방호광(放毫光)은 백호로부터 무수한 광명을 발한다는 표현이다. 게송에서는 ‘이 몸이 무시이래(無始以來)로 부처라는 진리를 알아차린다면 바로 이 몸이 부처’라고 말한다. 우리가 이 몸 받기 전 먼 옛날부터 부처라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바로 부처의 경지에 이른다는 말씀이다. 어떻게 하면 그리되는가? 중생은 집착으로 인한 번뇌 망상이 항상 걸림돌이다.
약지(若知)는 ‘이 몸이 부처라는 진리를 확철하게 깨우친다면’ 하고 앞선 표현을 받아들인다. 비동이(非同異)는 같지도 다르지도 않다는 뜻이다. ‘부처와 내가 전혀 다르지 않고 평등한 마음에 평등한 불성이 있음을 진실로 안다면’이라고 가정하여 예시한다. ‘즉시 화장장엄이 시방세계에 두루 하리라’라고 했으니 이는 게송의 결론이다. 화엄은 만행(萬行)·만덕(萬德)을 닦아서 덕과(德果)를 장엄하게 한다. 이는 부처님 세상이다. 이 몸이 부처인 줄 자각한다면 어디를 가도 불국토 아님이 없고 만나는 사람마다 부처 아님이 없음을 알게 된다.
법상 스님 김해 정암사 주지 bbs46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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