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무원(孤立無援)
세상살이가 지치고 힘들지만, 완전히 외톨이가 되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런 상태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이며 이웃이다. 가엾고 절실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베풀고 나누는 삶을 실천하는 사람이 좋은 삶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사랑의 계명은 두 가지이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사랑이다. 그 사랑은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또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 12, 30-31)
한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이웃이 누구냐고 물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에 비유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리코로 가는 길에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다 뺏기고 초주검 당하여 길에 쓰러져 있었다. 마침 그 길을 가던 바리사이와 레위인 사제는 그 광경을 보고 다른 길로 돌아가 버렸다. 그러나 여행을 하던 한 사마리아인은 그것을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도와 목숨을 구해주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누가 이웃이냐고 되물었다. 율법 교사는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이라고 대답했다. 예수님은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이르셨다.
사마리아인은 어떤 사람인가? 아시리아는 북이스라엘을 침공하여 패망시키면서 그들 민족을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로 이주시켰으며 이스라엘인과 혼인시켜 혼혈족을 만들었다. 유다인들은 그들을 멸시하고 업신여겼다. 이스라엘 그들은 티로나 시돈, 아시리아에서 이주한 사람을 이방인이라고 부르며 상종은 물론 혼인도 맺지 않으려고 했다.
진정한 이웃은 같은 민족이나 혈족이 아니라 ‘고립무원’의 사람에게 다가가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가엾은 마음으로 도와주는 사람이다. 지구촌의 어느 한 쪽에는 굶주림과 질병에 허덕이며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보고 레위인이나 바리사이(이스라엘의 지도층)처럼 지나칠 것이 아니라 가엾은 마음으로 아픔을 함께하고 도와주는 일이다.
지구촌(지구 공동체)이라는 말은 세계가 하나라는 뜻이다. 공동체는 모든 것을 함께한다는 것이다. 지구촌은 민족이나 언어는 달라도 공동선을 향해 함께하면서 평화를 이루고 있다. 세계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전쟁으로 점철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20세기에 와서는 강대국의 속박에서 독립하여 서로 협정이나 협약을 통해 공존의 길로 가고 있다. 하지만 강대국과 약소국,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는 있지만, 고립무원의 약한 자와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의 아픔을 겪고 있는 그들에게 지나치지 않고 온정과 도움의 손길을 펼치고 있다.
오늘날 ‘착한 사마리아법’(도움이 필요한데 돕지 않는 죄)이 있는가 하면 ‘나쁜 사마리아인들’(장하준 지음)도 있다. 불의나 어려운 이웃을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드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이다. 그 마음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공동체가 친교와 나눔, 봉사를 실천하는 삶이 가엾은 마음을 드러내며 이웃에게 사랑을 행하는 일이다.
*고립무원(孤立無援): 고립되어 구원을 받을 데가 없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