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안>
시가 있는 금요 카페
시가 있는 금요 카페 입니다 ···
매주 두 분 시인의 시를 감상해 보는 시간,
오늘도 커피 향과 함께 문을 열겠습니다.
오늘 소개할 시인은 김현승, 마종기 두 분입니다
먼저 김현승 시인의 시 ‘푸라타나스’입니다
푸라타나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푸라타나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 모르나,
푸라타나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올 제,
홀로 되어 외로울 제,
푸라타나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넣고 가도 좋으련만,
푸라타나스,
나는 너와 함께 神이 아니다!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푸라타나스,
너를 맞아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 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민음사에서 펴낸 ‘김현승 시 전집’에 실린 시
‘푸라타나스’였습니다. (시집 표지 사진)
이 시에 대한 평론가 감상평 중 일부입니다.
이 시는 주제의 심각성을 구어체의 평이한 언어로 전달한다.
게다가 청자를 독자가 아닌 푸라타나스라고 하는 식물로
설정한 점도 흥미롭다.
독자는 화자가 푸라타나스에게 하는 말을 엿듣는 형식을 취하면서
존재에 관한 통찰을 듣는 일종의 쾌감마저 느끼도록 한다.
“홀로 되어 외로울 제”처럼 인간은 근본적으로
외로운 존재지만 이 시는 그러한 고독한 인생에서 함께할 반려자를
희망하고 있다.
이 반려자는 비록 "나는 너와 함께 神이 아니다"라는
구절이 있지만--기독교의 신일 수도 있고 아니면 각자 읽는
독자에 따라 다양한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어 소개할 시편은 마종기 시인의 ‘우화의 강‘입니다.
우화의 강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결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문학과지성사’가 펴낸 ‘마종기 시 전집’에 실린 ‘우화의 강’이었습니다(시집 표지 사진)
이 시집 서문, 시인이 쓴 ‘책 머리글’입니다
이 시집은 가장 시인답지 못하게 살아온, 그래서 시 앞에서는 항상 주눅 들고 부끄러워지는
사람이 쓴 시들을 모은 것이다.
그러나 30년 이상의 오랜 세월을, 시인에게는 피와 살과 같은 모국어권을 떠나, 또 의사라는 조금은 엉뚱한 직업인으로 살면서, 자식들조차 읽지 못하는 시를 몸에 동여매고 살아온 것을 생각하면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보이게 안 보이게 상처받거나 주위가 낯설 때 시를 써보겠다고 조용한 구석을 찾았다. 그때마다 안간힘 쓰며 씌여진 시는 내게 따뜻한 위로와 힘을 주었다.
그래서 누가 내 시를 읽으면서 작은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나는 더없이 행복할 것이다. 세상에 비슷한 누군가가 있어 서로를 위로할 수 있다면 그보다 값진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김현승 마종기 두 시인의 작품과 함께한 시가 있는 금요 카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연출 : 박명원
낭독 : 김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