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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5:9-11 맥추감사절
제목 : 은혜받은 성도의 삶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는 모두는 주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은혜를 받지 않았다면, 우리 는 크리스천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은혜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주신 은혜를 갈무리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은혜를 받아야 하지만 받은 은혜를 갚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도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난 주일에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는 제목의 말씀을 마치면서 시편116:12절 말씀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를 생각하며 한 주간을 살도록 말씀드렸습니다. 지금까지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늘 은혜 받을 생각만하고 받은 은혜를 망각하거나 알더라도 갚을 줄 모르는 이기적인 모습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작품 <리어왕>을 통해
“은혜를 모르는 자식은 부모가 독사에게 물린 것보다 마음을 아프게 한다.”고 절규하였습니다. 데일 카네기는 “은혜를 모르는 것은 마치 잡초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은혜를 깨닫는 것은 마치 잡초 속에서 장미를 키우는 것과 같다.”고 은혜를 알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과 은혜의 그 아름다움을 지적합니다. 인간이 깊이 깨달아야 할 영적 가치 중에 가장 값진 영혼의 보화는 역시 은혜입니다. 은혜를 아는 이가 진정 거듭나고 깨달은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마냥 우리가 은혜 받은 것에 도취되어만 있어서 안됩니다. 받은 은혜를 어떻게 갚을 것인가? 그리고 은혜받은 자로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알아서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자신이 받은 은혜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었던 것이 아님을 9절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교회를 핍박한 것을 생각하면 사도라 칭함받는 것 자체가 거북하고 송구스럽다는 것입니다. 사도라 칭함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도 사도라 칭함을 받게 하셨으니 가장 작은 사도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된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요, 그 은혜가 너무 크다고 10절에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래서 자신이 사도로 하는 모든 일, 심지어 핍박을 받아 고난을 당하는 것까지도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이기게 하심으로 그것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바울이 무엇을 합니까? 11절 말씀에 보면 복음을 전파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적어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음이 확실하게 고백되어 진다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 복음전파입니다. 시편116편12절 말씀,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라고 한 그 물음 뒤에 이어서 하는 내용이 이렇습니다. “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13절).
‘구원의 잔을 들었다’는 구원의 은혜를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증거 했다는 것이요, 이름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시편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장 우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구원의 은혜를 받았음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복음을 전하십시오. 그것이 마땅한 도리입니다.
다음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적어도 은혜를 받았으면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기념해야 합니다. 왜 기념해야 합니까?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시편145:7절 말씀, “그들이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며 주의 의를 노래하리이다”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주의 의를 노래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후 안식일을 정해놓고 창조하셨음을 늘 기억하게 만들었습니다.
신명기5장 15절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을 허락하실 때 애굽땅에 내린 마지막 장자의 죽음의 재앙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 재앙이 임하지 않도록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던 것과 출애굽하여 나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유월절을 만들어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먹는 음식까지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출애굽기12:13-14절 말씀, “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
예수님도 보면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만찬석을 베풀면서 이것을 ‘기념하여 지키라’고 해서 우리는 성찬예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가 구원받은 확신의 날이나 세례 받은 날은 기념하여 지키면 좋습니다. 육신의 생일을 축하하며 기념하는데 영적으로 구원받은 확신의 날이나 아니면 교회에 처음등록하신 날 등을 잘 챙겨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런 은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수련회 때에 성경학교 때에나 아니면 부흥회 때에 특별한 은혜, 즉 치유와 문제해결이나 기도의 응답을 받았을 때 기념하여 지킴도 좋습니다.
시143:5,6절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읊조리며 주의 손이 행하는 일을 생각하고 /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셀라)”
셋째, 은혜 받았으면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시116: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은혜를 받아놓고 보답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아세요.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역대하32장 24-26절 말씀에 보면 히스기야가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응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이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를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려고 했습니다. 곧 진노를 내리려고 하는데 히스기야 왕이 스스로 마음이 교만함을 깨닫고 회개함으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왕의 생전에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 사실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
다행히 히스기야왕이 그것을 깨달아 늦게나마 갚았기 때문에 다행입니다. 만약에 우리도 은혜받아 놓고 은혜를 모르거나 갚을 줄 모르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은혜 받았으면 반드시 보답하시기 바랍니다.
전북 임실군 오수면에 있는 "오수의견 공원"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선조 초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9-10세기경 거령현 임실군 지사면에 김개인(金盖仁)이란 사람이 개 한 마리를 애지중지하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 주인은 술에 만취하여 집으로 돌아오다가 그만 길가에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마침 주변에 산불이 나서 주인이 누운 곳 가까이 번저 오자 개는 냇가에 가서 몸에 물을 적시어 와서 불을 끄기 시작하였습니다. 개는 산불로부터 주인을 구해주고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잠에서 깨어나 이 광경을 본 주인은 그 개의 희생을 슬퍼하며 무덤을 만들어 주고 그 무덤 옆에 자기 지팡이를 꽂아두었는데 이지팡이가 살아서 큰 나무가 되어 지금의 오수(獒樹)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조선조 초기의 사회상을 조명해 주는 이야기입니다. 사랑과 은혜를 저버리고 배은망덕하고 반목질서하는 인간은 짐승만 못하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른다면 배은망덕한다면 짐승만도 못하고 세 상 사람들만도 못한 성도가 됩니다.
넷째, 은혜를 받았으면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은혜를 갚기 전에 나타나야 할 것이 감사입니다. 은혜를 받아놓고는 감사할줄 모르면 결국 은혜를 갚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받은 은혜는 반드시 감사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1:4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린도후서4:15절 말씀,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오늘은 맥수감사절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절기를 지킬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감사는 그 사람의 신앙의 수준을 나타냅니다. 신앙의 성숙도에 따라 감사의 삶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 하감하시면서 돕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살 때에 때를 따라 도우십니다. 이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가 생활화 되어야 합니다. 감사가 생활화 되어질 때 범사에 감사를 하게 됩니다. 범사에 감사가 되려면,
부요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지만, 가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형통함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지만, 불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출입을 때를 따라 도우십니다.
우리의 생업을 때를 따라 도우십니다.
우리의 가정과 직장을 때를 따라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길을 갈 때나 자동차를 운전해갈 때 일촉즉발의 위기에서도 도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지 아니했다면 여러분들의 오늘이 없었을 것입니다.
아니 지난 반년동안도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지 아니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다 도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섯째, 은혜받은 성도는 받은 은혜를 통해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열왕기상8:66절 말씀, “여덟째 날에 솔로몬이 백성을 돌려보내매 백성이 왕을 위하여 축복하고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
사실은 그렇습니다. 은혜 받고 기뻐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기쁨이 없다면 결국 은혜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 됩니다. 은혜를 받았음에도 기쁨이 없다면 받은 은혜를 은혜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과 같은 별 볼일 없는 사람인데, 죄인 중에 괴수로서 마땅히 죽어야 하고 영벌에 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영생을 얻게 하셨으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특히 강조하셨습니다. 빌립보4:4절 말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바울이 구원받은 은혜를 위하여 복음을 전한다고 고백했는데 자기를 통해서 복음이 전해져서 구원받는 성도들이 생기니까 뭐라고 고백했는지 아세요. 빌립보서1:18절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받은 은혜를 생각하며 항상 기뻐하시는 삶이 되십시오. 그것이 곧 행복입니다.
여섯째, 은혜받은 성도는 평안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누가복음1:28절을 보면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라”고 했고, 30절을 보면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마리아를 찾아온 천사 가브리엘이 아들을 낳으리라는 예고를 하시며 주신 말씀입니다. 마리아는 늘 마음이 평안한 여자였습니다. 이유는 주님이 함께 하시고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결과는 평안입니다. 은혜 받으면 마음도 몸도 가정도 평안합니다. 왜냐하면 근심걱정이 사라집니다. 내일 당장에 먹을 것이 없어도 걱정이 안됩니다. 왜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14: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건강의 발목을 잡고 정신과 영혼과 육체를 병들게 하는 원흉은 걱정과 근심과 염려입니다. 한숨 쉬고 탄식하고 걱정할수록 건강나이는 많아지는 것입니다. 고단백 최고급 음식도 평안이 깨지면 독약이 되고 콩나물만 먹어도 평안과 함께 먹으면 보약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평안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입니다. 주여! 이 나라, 이 사회, 내 가정, 내 교회, 내 심령에 평안을 주옵소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생각하며 늘 평안한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일곱째, 은혜받은 자의 삶은 선한 일에 부요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9:8절 말씀,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성경에 보면 8절 말씀 앞의 7절 말씀과 뒤의 9절 말씀을 보면 선한 삶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7절 “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 이 내용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에 관한 내용입니다. 연보를 드린 것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로 뒤에 나오는 9절 말씀은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고 하여 구제하는 것을 선한 일에 부요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은혜를 여러분들에게 넘치게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은혜를 받으셨음을 믿습니까? 확신합니까?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선한 일 중에 가장 우선이 무엇일까요?
예배에 헌신하십시오. 그리고 직분에 충성하십시오. 맡은 사역에 충성하십시오.
아울러 이웃에 대해 충성하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은혜를 은혜로 깨달으면 희생과 충성은 저절로 나옵니다. 봉사하는 생활과 헌금하는 생활 등은 자연스럽게 헌신하게 됩니다. 헌금을 드려도 기쁩니다. 내 몸이 망가지는 것 같아도 헌신합니다. 왜요, 선한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항상 하나님의 은혜충만 받으시기 바랍니다. 충만한 은혜를 고백하며 은혜받은 자로서의 삶을 사십시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큰 은혜 받으셨음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복음을 전하십시오. 은혜받은 날을 기념하십시오. 보답하십시오. 감사해야 합니다. 기뻐해야 합니다. 평안의 삶을 사십시오. 아울러 선한 일에 부요한 삶을 사십시오. 거기에 여러분의 삶의 목표가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진정한 사명자로서의 삶이 있습니다. 바로 그 일을 위하여 우리가 부름을 받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퍼온글---오세원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