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일자, 2021, 6, 9,
"위봉폭포"<威鳳瀑捕>는 "위봉산"<524m>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60m 높이의 협곡으로 떨어지는 2 단폭포로 ~
2 단으로 쏟아지는 폭포수가 마치 명주실을 풀어 놓은것과 같은 풍경을 자아내며 ~
폭포 주변으로는 서어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등의 식생군락<植生群落>들이 ~
폭포와 어우러져 멋진 "경관"<景觀>을 연출 한다고 합니다 !!
"위봉폭포" 는 예로부터 "비경"<秘境>으로,, 명성이 높아 "완산 8 경" 의 하나로 불렸고 ~
조선후기 여덞분의 판소리 명창중 한분인 "권삼득"<權三得>명창이 득음을 했던곳으로 유명하구요 ~
고갯마루 오르다 폭포를 조망하기 좋은 위치에 "행서체"<行書體>로 쓴 "위봉폭포"<威鳳瀑布>표지석입니다 ~
"위봉폭포 정"<威鳳瀑布 亭>은 탐방객의 쉼터겸 폭포 감상의 포인트라 할수있구요 ~
간이 주차장 위 "위봉폭포" 안내도 참조후,, 멀 ~ 리 시선을 주면,, 시원한 물줄기가 가슴을 뚫어 ~ 뻥..?
"위봉" 이란 이름은,, 소양면 대흥리 "위봉마을" 이 "봉황"<鳳凰>이 둥지를 튼 형국이어서 생겨난 명칭으로 ~
"봉황" 이 새끼를 낳고,, 어미 두마리와 새끼 두마리가 날아와 앉았다고 하여 "위봉" 이라 했다는 안내도 설명입니다..?
위봉폭포 위쪽,, 위봉마을의 고도는 330 m 로 고원의 풍경이며,, 3 면의 산지에서 유유히 흐르던 물이 ~
해발 290 m 위봉폭포 상단에서 수직 절벽으로 급격히 떨어지며 폭포의 위용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
"위봉산성" 에서 이곳 "위봉폭포" 로 이어지는 "고종시 마실길" 은 산행의 묘미와 청량감이 만점이라 하구요 !!
위봉폭포 위 "추줄산 위봉사"<崷崒山 威鳳寺> 일주문<一柱門>입니다 ~
"위봉사" 는 604 년 "서암대사"<瑞巖大師>가 창건한 "고찰"<古刹>로,, 고려말 "나옹선사"<懶翁禪師>가 중건했구요 ~
전북 일원의 50 여 말사<末寺>를 관할한 "비구니선원"<比丘尼禪院>이었다고 하며,, "위봉사" 명칭은..?
신라말 "최용각"<崔龍角>이란 사람이 이곳에 왔는데,, 세마리 봉황새가 절터를 에워싸고 싸움을하자 명명하게 됐구요 ~
현재는 "보광명전" "극락전" "관음전" 등의 요사체와 50, 60 명의 대중이 상주하는 "대가람"<大伽籃>의 면모를 갖췄다고 합니다 ~
"위봉산성"<威鳳山城>은 험준한 지형을 이용해 조선 숙종<1675년>때 쌓은 "포곡식"<包谷式>산성으로 둘레가 약 16 km 에 이르는 대단한 규모고 ~
유사시 전주 꼉기전<慶基殿>과 조경묘<肇慶墓>에 있던 이성계의 초상화와 그의 조상을 상징하는 나무패를 피난시키기 위해 이 성<城>을 쌓았고 ~
실제 동학농민 봉기로 전주가 함락 되었을때,, 초상화와 나무패를 이곳으로 가져와 보관하려고,,?
산성에 작은 궁전을 지었으나.. 오래전에 없어졌고 "성" 의 동<東> 서<西> 북<北>쪽에 문을냈지만 ~
지금은 전주로 통하는 서쪽의 반월형<半月形> 문인 "홍예문"<虹霓門>만 남아있다고 합니다 ~
그러나? 고려 후기의 문인 "임춘"<林瑃>은 춘추관에 있을때 "남백 남구만"<南伯 南九萬>으로 부터 ~
"위봉산" 등,, 세개처에 성을 쌓는다는 보고를 받은 사실을,, 자신의 문집인 "서하집"<西河集>에 기록해 두었다 하구요 ~
또한 "승정원 일기" 에는 "순검사"<巡檢使> "박황"<朴潢>이 구미의 "금오외성"<金烏外城>을 증축하는곳에 내려 가려고하니 ~
완주 위봉산성의 형편도 직접 살피도록 하는것이 좋겠다는 말이 기록되어 있다는군요..?
이러한 기록으로 볼때 위봉산성은 1675 년에 축성한 것이 아니라 13 세기 전반에 축성 되었음을 확인할수 있다는 겁니다 ~
따라서 위봉산성은 고려 후기에 "입보용"<立保用>산성으로 축조된 것이 정설이 된다는 말씀..?
현재 산성은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성벽"<城壁>과 "여장"<女牆> "총안"<銃眼>등이 잘 보존되어 있구요 ~
시간을 거슬러 그 시대에 잠시 머문 생각은? 석축의 바탕이 되는 바위 덩어리를 운반하며,, 기진 맥진했을..?
군졸과 민초<民草>들의 삶은 어떠했을지.. 무장인 이성계, 박통, 전통, 등은, 권세를 누리려 백성을 도구로 이용했을뿐..?
"동학농민군" 의 "이상향"<理想鄕>인 인간다움과 평등할 권리는 이시대에도 숙제로 남아 있음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