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산교육감 보궐선거
부산교육감 보궐선거가 4월 2일로 예정되었습니다. 본인은 앞의 두 번에 걸친 글에서 우파후보의 단일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고 그 다음에 그 후보의 당선을 위한 투표참여 촉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2024.12.28. 2025.1.2.).
2. 두 개의 단일화 추진위원회
그러다가 2025.1.2. “미래를 여는 교육감 단일화 추진위원회(미교추)”가 결성되었다는 소식을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는 분으로부터 교육감 후보단일화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니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아 2025.1.6.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바른 부산교육감 후보단일화 추진위원회(바교추)”가 결성되는 데 참여하게 되었고 본인도 그 구성원에 이름이 올려졌습니다.
본인은 위 어느쪽이든지 단일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일단 이름을 빼고 독자적으로 활동하다가 단일화된 이후에 본격적으로 참여해 볼까 하는 생각도 하였지만, 교육감 선거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고 그것을 위하여 이 정도나마 부산의 지식인들과 시민단체 대표들이 모인 것은 대단히 소중한 기회이므로 바교추에 이름은 그대로 두고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3. 현재의 교육감 선거는 혁파되어야
현재의 교육감 선거는 바뀌어야 합니다.
현재의 교육감 선거가 정당의 추천을 거치지 않고 치르는 것은 잘못임이 드러났습니다. 2010년에 전국적으로 교육감 직선제가 실시될 때 내세웠던 명분 중 하나가 정치적 중립이었습니다. 교육은 정치적 이념에 물들지 아니 하고 오로지 국가의 백년대계를 이끌 교육적 가치에만 집중하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일어난 결과는 좌파교육감 다수의 당선으로 교육현장이 좌파를 양성시키는 훈련소로 변질된 것이었습니다.
교육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구호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교육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이어야 합니다. 정치라는 것이 이념지향성을 피할 수 없듯이 교육이야말로 좌우의 이념 중 어느쪽을 선택할 것인지 명확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교육이 백년대계라는 말 그대로 국가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과 같은 교육감 선거는 반드시 혁파되어야 합니다. 교육감을 시장선거와 연동하여 정당공천제로 바꾸든지 아니면 교육감선거 자체를 없애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으로 환원하여야 합니다.
4. “중도보수교육감 후보단일화”라는 표어
현재 교육감 선거에서 좌파는 “민주진보교육감”이라고 하고 우파는 “중도보수교육감”이라고 하는 표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표어는 이미 당연한 것으로 굳어져 있어 올해 바로 바꿀 수는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표어는 문제가 많아서 바로 잡아야 한다는 비판의식은 가져야 할 것이므로 이 글을 쓰는 것입니다.
5. 우파적 가치에 대한 공통학습의 결핍
이 표어에 대한 비판을 하기 전에 먼저 우파진영에 있는 분들이 가장 먼저 하여야 할 것은 “학습”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우파적 가치가 올바르고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행동하여야 한다고 말은 많이 하지만 우파적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이있는 학습을 한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좌파는 그들 나름대로 공통학습을 하였습니다. 좌파적 가치와 역사관을 생명처럼 가지고 있는 다수는 대학생활동안 최소 3,4년의 공통학습을 한 경험들이 있습니다. 그에 반하여 우파적 가치와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좌파와 같이 몇 년동안 공통학습을 한 경험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 결과가 현재 민주당과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보여주고 있는 전투력의 차이인 것입니다.
6. 보수가 무엇이냐?
많은 우파분들이 자신은 “찐보수”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찐보수”라는 분에게 보수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요?
보수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말할 수 있으려면 보수주의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과 러셀 커크의 “보수의 정신”이라는 두 권을 읽어 보아야 합니다. 그 두 권에서 나타난 서구의 보수주의의 뿌리를 이해하여야 비로소 보수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인이 저술한 보수주의에 대한 책들은 여러권이 있지만 모두 그 두 권을 원조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이 쓴 책들 중 괜찮은 것은 전성철이 쓴 “보수의 영혼”과 박형준과 권기돈 공저인 “보수의 재구성” 정도입니다.
7. 영국과 미국의 보수주의
보수주의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은 1789년 일어난 프랑스혁명의 불길이 영국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아내고자 1790년 에드먼드 버크가 저술한 책입니다. 버크는 앙시앙 레짐이라는 구체제의 모든 것을 파괴하면서 전개된 프랑스혁명이 영국의 전통적 가치를 붕괴시키는 것을 막아내고자 하였고, 그런 버크의 노력이 성과를 거두어 영국은 혁명보다는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전통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이 서구의 보수주의의 뿌리가 된 것입니다.
영국의 전통을 이어받은 미국은 인권과 자유의 쟁취라는 독립정신을 전통적 가치로 삼아 그것을 지키고자 한 것을 보수라 불렀으며 그것이 미국의 보수주의의 핵심가치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영국과 미국에서 보수주의는 우파적 가치의 근거가 되었고 그 용어가 한국에도 그대로 도입되어 우파를 보수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8. 한국의 우파를 보수라 부르는 것은 문제
그런데 한국에서 우파를 계속 보수라 부르는 것은 문제가 많습니다.
첫째, 우파를 보수라 부르고 좌파를 진보라 부르는 구분은 좌파의 용어전술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프레임인데 우파를 계속 보수라 부르는 것은 이념전쟁에서 지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용어 그 자체로만 보면 보수는 “지키는 것”이고 진보는 “나아가는 것”이므로 젊은 층에게 어느 쪽이 나아 보이는지는 자명합니다. 보수는 기득권을 지키는 보수꼴통이라는 이미지를 내포하는 단어이고, 진보는 잘못된 현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좋은 이미지를 내포하는 단어입니다. 대중은 용어에 대한 깊이있는 학습은 하지 않으므로 이미지만 내세우는 상징조작측면에서 이미 보수는 진보에 비하여 뒤지고 있는 것입니다. 언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9. 좌파가 스스로를 진보라 부르는 원천
좌파가 스스로를 진보라 부르는 것의 뿌리는 마르크스가 1840년에 발표한 “공산당선언”입니다. 마르크스는 거기에서 역사발전5단계설을 주장하였습니다. 역사는 원시공산사회, 고대노예사회, 중세봉건사회, 근대자본주의사회를 거쳐 공산사회로 발전한다고 하였고 그것이 역사발전법칙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자본주의사회는 스스로의 모순의 양적발전과 질적변화에 의하여 반드시 공산사회로 진화할 수밖에 없으며 그런 역사발전단계의 가장 앞에서 진보를 이끄는 것이 공산주의자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좌파가 스스로를 진보라 부르는 원천입니다. 우파가 좌파를 진보라 불러주면 마르크스의 역사발전5단계설을 무의식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됩니다. 더 이상 좌파는 진보가 아닙니다. 그들이야말로 케케묵은 이념에 사로잡힌 수구꼴통들입니다.
10. 서구의 보수주의의 뿌리는 인권과 자유
둘째, 한국에서 보수가 지키고자 하는 전통적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이있는 논의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영국에서 버크가 지키고자 하였던 것은 교회와 왕정의 두가지였고, 미국의 보수주의가 지키고자 하였던 것은 인권과 자유라는 독립정신이었습니다. 영국의 가치는 오늘날 퇴색되었으므로 현재 보수주의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인권과 자유라는 미국의 독립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미국이 패권국가이면서도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인권과 자유라는 미국의 보수주의적 가치가 한국의 우파가 지켜야 할 전통적 가치라 할 수 있을 것일까요? 한국인에게 인권과 자유는 전통적 가치라 할 수 없습니다. 인권과 자유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의하여 영향받은 서구적 가치이지 한국인의 심성에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 전통적 가치가 아닌 것입니다.
11. 한국인의 정신적 뿌리는 효와 충
한국인의 정신적 뿌리에는 인권과 자유보다는 가문과 국가에 대한 효와 충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세계와 마주선 고독한 단독자로서의 “나” 보다는 가문과 국가라는 “우리”가 보다 앞서 있는 것이 한국인의 기본적인 정신세계입니다. 내 집, 내 남편, 내 마누라는 없고 오로지 우리 집, 우리 남편, 우리 마누라밖에 없습니다. 남편과 마누라마저 언어상으로는 우리끼리 공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강조하는 서구의 보수주의는 한국인의 심성에 맞지 않습니다. 보수주의는 한국인의 몸에 맞지 않는 외피로서 더 이상 한국의 우파진영에서 사용되어서는 안되는 용어입니다.
한국인의 심성에 뿌리잡고 있는 효와 충이라는 집단주의적 가치는 개인의 인권의 존중과 자아의 실현이라는 개인주의적 가치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서구의 보수주의의 진정한 한국적 체화라 할 수 있습니다.
12. 우파를 무어라 불러야 할까요?
한국의 우파를 보수우파라 부르지 않으면 무어라 불러야 할까요? 자유우파라 불러야 합니다. 보수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가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보수의 품격이 개혁과 자유에 있다고 말하지 말고, 자유주의 그 자체가 우파의 핵심 가치라 말하여야 합니다. 우파적 가치를 지향하는 대부분의 한국의 지성들은 자유와 보수를 혼용하고 있습니다. 우파 유튜브 중에도 대다수가 그렇습니다. 고성국tv 정도만 자유우파라 하고 나머지 대부분 유튜브는 보수우파라 하고 있습니다. 보수와 자유를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는 유튜브도 다수 보입니다.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학습이 제대로 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유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하여서는 다음에 따로 논하겠습니다.
13. 중도란 무엇인가?
다음으로 중도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중도보수후보 단일화라 하여 중도를 앞세운 것도 한심한 표현입니다. 좌와 우는 비등하므로 중도표를 받아야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선거전략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이념사에서 중도라 불릴만한 것이 있었습니다. 좌파에서는 레닌과 룩셈부르크에 의하여 수정주의라 매도당한 베른슈타인의 “사회주의의 전제와 사민당의 과제”가 있었고, 우파에서는 자유방임주의를 비난하고 정부의 개입을 정당화한 수정자본주의라 불린 케인스의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이 있었습니다. 수정주의라 매도당한 베른슈타인의 사회민주주의는 오늘날 유럽좌파의 핵심가치가 되어 있고, 케인스혁명이라 칭송받던 케인스의 방침은 국가권력의 비대화를 불러온 원인이 되어 오늘날 세계의 모든 우파진영에서 되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결과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우파진영에서는 그 비대해진 국가개입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가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논란거리가 되어 있습니다.
중도라 자칭하고 있는 한국인 중 베른슈타인과 케인스를 읽은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요? 동양의 고전이라 하는 중용을 들고 나오는 사람도 있겠지요.
14. 한국인이 말하는 중도의 실체
한국인 중 스스로 중도라 자칭하는 자들이 다수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중도가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입니다. 좌와 우는 그나마 확실한 정체성이 있지만 중도라 하는 자들은 정체성이 없는 자들입니다. 시류에 편승하여 수시로 변하는 자들입니다. 중도는 무지와 기회주의의 혼합물입니다. 몰라서 중도이고 세가 강한 쪽으로 치우쳐서 중도입니다.
그러므로 중도를 좇아서는 안됩니다. 좇아가면 더 멀리 가버리는 것이 중도입니다. 중도는 가르쳐야 하고 이쪽 세를 키워야 따라옵니다. 그런데도 중도를 보수보다 앞세우는 중도보수라니요. 헛웃음이 나오는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15. 결어
이상의 논의에서 중도보수후보라는 표현은 더 이상 사용하지 말 것을 거론하였습니다. 이번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다음부터는 제발 그런 표어는 사용하지 맙시다. 중도는 거론하지도 말고 자유우파라고 합시다. “자유우파 후보단일화”라는 표현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2025. 1. 14.
글쓴이 : 자유시민연합 대표 최태열. 010-3219-8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