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하이먼 민스키 지음 『금융과 자본주의』
이 책은
1986년에 초판이 나왔다. 2008년에 개정판이 나왔고, 김대근박사가 이 책을 번역하였다. 하이먼 민스키(1919~1996)는 케인즈의 모든 학문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특히 자본주의 경제의 순환은 투자에 의해 이루어 진다는 케인즈의 이론을 계승하였다. 그는 금융자본의 경제 원리에 관심을 갖고 분석하였다. 그는 1974년과 1982년의 미국 경제불황을 분석하고 그 핵심 원인은 금융자본의 체제 내부에 숨어져 있다고 주장하였다.
당시로서는 그의 주장이 주목을 받지 못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불황의 원인이 석유파동이나 전쟁, 그리고 행위자의 도덕적 해이라는 외부에서 찾았지, 경제 시스템 내부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경제정책도 관리와 규제, 감독이 많았고,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이 분리되어 있었다. 은행업의 투자 혁신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또한 경제학계도 신경제학종합(통화주의자, 신케인지언)이 주류였다. 그들은 수요, 공급이론과 한계효용의 가치등 전통적인 시장이론을 믿었다. 불황은 시장의 일시적인 오작동으로 보고, 큰정부의 재정적자정책과 최종대부자역할로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민스키는 주장한다. 현대 금융자본주의는 불안전성, 불확실성, 인플레, 실업, 불평등을 유발한다. 신고전파종합의 이론적, 제도, 정책 대안은 한계가 있다. 그 것은 이렇다. 첫째, 미세 조정은 불가능하다. 둘째, 삶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투자 주도의 성장에 의존하는 정책은 파괴적인 불안정성과 인플레를 야기한다. 셋째, 복지는 인플레를 유발하고 실업을 제도화한다. 그렇다면 그의 대안은 무엇인가?
이 책의 목적
은 우리 경제를 위한 개혁 의제를 제안하기 위해서다. 내용은 경제이론과 해석적 경제사로 구성되어 있다. 민스키는 재산권 옹호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적 권리에 가치를 두는 것 같다. 그는 계몽가적 기질과 청교도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 경제의 근본적 불안전성은 확장될 수 밖에 없다. 원인은 외부의 충격이나 정책입안자의 무능, 무지에 있지 않다. 불안정성은 바로 우리 경제 체계 내부 과정에서 기인한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제도와 정책으로 불안전성을 안정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가 ‘stabilizing an unstable economy’이다.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이렇다. 민스키의 주장은 큰 붓이며, 세부 항목은 의회와 정부, 깨어 있는 대중들의 토의로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것이다. 랜달레이가 쓴 서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민스키의 문체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읽고 난 후에는 결실을 얻을 수 있다. 이 새로운 판본은 새로운 세대를 위한 경제와 금융에서의 고전이 될 것이다.’ 책의 구성은 5부 13장으로 되어 있다. 1부의 서론과 2부의 경제 경험, 3부는 경제학 이론, 4부는 제도를 분석하고, 5부는 정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은 결국 예언서가 되었다. 그의 주장 후 20-30년 지나 IMF,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등으로 정확히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시선이 아닌, 당시의 시선으로 돌아가 그가 비주류로서 얼마나 자기 주장을 설득력있게 설명하고 근거를 제시하려 했는지- 그야말로 분투-상상하면서 읽으면 비록 전부는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그 느낌은 조금이라도 다가올 것이라 믿는다.
핵심 내용
그의 주장 중 금융의 세 가지 작동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즉, 헷지, 투기, 폰지금융이다. 우리가 투자를 한다는 것은 빚을 낸다는 말이다. 현재의 화폐와 미래의 화페와 교환하는 것이 투자고, 빚이다. 헷지금융은 투자를 해서 원금과 이자를 충분히 갚는 구조를 갖는다. 투기는 원금을 줄일 수 없지만 이자는 갚아나갈 수 있는 정도다. 그러나 폰지는 불어나는 이자를 갚지 못해 또 빚을 내는 경우다. 카드돌려막기, 결국 파산직전의 금융을 말한다. 문제는 이 것이 개인의 탐욕(케인즈가 말하길 animal spirit)만이 문제가 아니라, 금융자본이 이를 부추킨다는 것이다. 금융계는 실제 자산가치액보다 더큰 파생금융상품등을 만들어 일반 투자자들을 유혹하고, 기업은 부채의 규모을 키워 신용을 부풀린다. 개인은 영끌이를 통해 주식투자하고, 부동산 투자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기대한 자산가치의 규모는 커지지 않고 약속은 먼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 이동한다. 우리는 그 미래의 어느 시점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버틴다. 그러다 버블이 터지고 불황이 온다. 은행이 파산하고, 기업이 도산한다. 개인도 마찬가지.
큰정부의 재정적자와 최종대부자역활
이 때 정부가 나선다. 도산 위기의 은행의 예금자 보호를 시행하고, 인수합병을 주선하고, 긴급 금융지원을 한다. 실업과 도산으로 위기에 빠진 국민들에게 이전지출을 통해 소득을 보전한다. 소비를 촉진한다. 기업의 이윤은 재고 상품을 빠르게 소진하면서 확보된다. 불황은 깊게 길게 이어지지 않고 회복된다. 그러나 생산없는 소비와 풀린 통화로 인플레이션이 유발된다. 경제순환은 빨라지고 경제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불확실성이 높아진다. 기업은 생산라인과 미래가치에 투자하지 않고 사내유보금 형식으로 돈을 쌓아 놓게 되고, 단기간 영업 성과를 얻는데에만 급급해한다. 일자리는 창출되지 않고 실업은 늘어나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된다. 금융자본은 투자라는 이름으로 기업과 개인을 부추킨다. 잘못되면 정부가 나서서 챙겨주겠지 생각한다. 왜냐면 이전에도 그랬다는 학습효과 때문이다.
민스키의 개혁 의제
사실 이 책의 핵심은 대안에 있다. 우리는 이미 민스키가 우려 했던 그 세상의 중심에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만약 민스키가 2020년에 이 책을 썼다면 또한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면 다 아는 이야기고 당연한 말이기 때문이다. 그는 넓데 4가지 부문으로 개혁의제를 제안하고 있다.
첫째는 큰 정부(규모, 지출, 조세)정책. 큰 정부의 규모는 GNP 대비 25% 밑도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정부적자로 기업의 이윤이 보장되면서 이어지는 깊은 불황을 막을 수 있었다. 정부채관리는 언제든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 줘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균형예산이 중요하다. 조세규모는 경제안정화와 균형재정을 이루는 선에서 책정해야 한다. 조세는 거시경제적 효과뿐 아니라 할당 분배적 효과도 있다. 법인세와 고용주의 사회보장 부담금은 폐지하고, 통합된 개인소득세 + 부가가치세 +소비세로 조세를 구성해야 한다.
둘째, 고용 전략(최종 고용주 프로그램). 정부 주도의 일자리 창출(비용 GDP 대비 1.25%)을 해야 한다. 임금 형평성 증대(고액 노동자 임금 제한, 저소득자의 임금인상, 최저임금제 폐지)를 꾀해야 한다. 아동수당(비용 GDP 대비 1.33%)을 실시해야 한다. 이유는 더 많은 기회와 자존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실업 수당등 대부분 이전지출(고령자, 유족및 장애보험)은 폐지해야한다. 노령인구의 취업제한 낮추고, 여성 저학력층 미성년자 이민자 고용 확대로 퇴직자의 노동 없는 수요에 의한 인플레 유발 요인을 감소시켜야 한다.
셋째, 금융 개혁. 은행업이 돈 많이 버는 분야가 아님을 만들어야한다. 투기, 폰지금융화를 막고 통제해야 하며, 헤지금융에 우호적인 입법과 관리화가 중요하다. 목표를 투자 장려가 아닌, 고용으로 바꿔야한다. 중앙은행의 은행금융 통제 수단(자본금 요건, 지불 준비금 요건 제시)을 강력히 사용해야 한다. 은행업의 자유로운 진입 보장은 은행업이 높은 수익을 보장하지 않게할 것이다.
넷째, 시장 지배력 규제. 자본집약적 생산기술 우위 기업과 유휴노동력 잠재적 생산 노동력을 투입하는 기업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 제도화된 기업과 기업가적 기업을 규별해야 한다. 경쟁력있는 산업의 육성이 필요하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해소
1차 세계대전이 나기 전 전 세계 제국주의 경제는 활황이었다. 파리의 문화, 경제적 풍요는 극을 달했다. 그만큼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그들은 전쟁을 예고하지 못했다. 지금은 세계를 보면 어느 곳 불평등이 개선되는 곳이 없다. 또한 종교, 이념, 영토분쟁으로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파국의 징조가 보인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해결책은 있다. 바로 한 경제 사회공통체만이라도 불평등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모범을 보이면 그 영향은 전세계로 퍼져 나가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자. 그러나 전자는 제도와 정책으로 통제되어야 유지되는 분야다. 후자는 그야말로 우리의 마음과 도덕에 있다. 얍실이와 협동이가 사는 세상에 협동이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면 된다. 민스키의 정책 대안에는 이런 정신이 숨어 있다고 생각된다. 현재의 우리가 숙고하고 숙고할 일이다.
더그러스 다우니가 지은 지음 『학교의 재발견』에서 학교의 불평등이 사회경제적불평등을 조장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그 격차가 유치원 부터 시작되는 건 사실이라 했다. 어쩨됐든 학교 교육이 불평등을 조장하지는 않는다. 해결책은 유치원 교육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다. 그 것은 가난한 가족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고용 안정성이 확보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민스키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경쟁력있는 산업의 육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젊은이들이 미래의 성장산업에 진입할 수 있도록 정첵적 배려를 하는 것이다. 어찌됐든 미래의 먹거리 문제는 지금 준비해야 한다. 그 것은 무엇일까? 로봇과 AI가 결합된 산업계다. 과학도 중요하지만 이 과학을 현실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드는 기술, 공학이 필요하다. 당뇨환자에게 쓰는 인슐린이 있다. 80년대 인슐린은 소돼지 인슐린이었다. 그런데 유전자 재조합이라는 기술을 통해 대장균에 인슐린 만드는 유전자를 삽입해 인간이 갖는 인슐린과 똑 같은 인슐린을 대량생산하게 되었다. 당뇨 치료에서 인슐린의 이러한 혁신은 많은 일자리와 돈벌이로 자리잡게 되었다.
곰곰 생각하면 어느 문명이든 풍요로웠던 것은 노예가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의 노예가 그 대표적이다. 로마가 멸망한 이유는 일하지 않고 놀고 즐기는 로마시민들의 권태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미국도 이렇게 어려워지는 것은 자신들의 풍요를 뒷받침한 노예를 스스로 걷어차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들은 중국과 인도의 저가 상품을 배제하고 무역장벽을 친다거나, 멕시코의 저가 노동력을 이민장벽을 통해 배제하고 있다. 그 상품과 노동력이 여태까지 미국의 노예들 아니었을까?
나는 이 노예들을 긍정적으로 치환하여 생각하고 싶다. 인공지능이 장착된 로봇들이 로마의 노예를 대체되면 어떨까? 그렇다면 지금처럼 인구감소, 지방소멸, 출산율저하같은 문제를 그리 심각하게 생각안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문제는 이 노예들의 사적 이윤의 대상으로 자본주의 맡기지 말고, 공적 영역에서 통제권을 갖는 것이다. 또한 이 분야 산업에서 혁신을 이뤄낼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고 인재들을 양성하는 것일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왜 읽는가?
세상 사람들이 달콤한 꿀맛에 취했을 때, 누군가 거기에서 비릿한 맛이 난다고 이야기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리고 그 언어를 낸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또한 그가 민주주의적 가치를 존중하고, 계몽가적 기질과 청교도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삶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불평등의 해소가 사회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사람의 주장이 결국 맞았다고 인정이 되었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뭔가를 배우고 싶다. 천재가 노력을 했다. 그러나 그는 비주류다. 아우사이더다. 당대에 잘 먹고 잘 살지 못했다. 그렇다면 더욱 더 나는 그를 읽어야 한다는 당위를 가졌다. 고통스럽지만 의미있는 책읽기였고 나름 짧지만 긴 사색의 시간을 보냈다.
책익는 마을 원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