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고 / 김영랑
검은 벽에 기대선 채로
해가 스무 번 바뀌였는데
내 기린(麒麟)은 영영 울지를 못한다
그 가슴을 퉁 흔들고 간 노인의 손
지금 어느 끝없는 향연(饗宴)에 높이 앉았으려니
땅 위의 의론 기린이야 하마 잊어졌을나
바깥은 거친 들 이리떼만 몰려다니고
사람인 양 꾸민 잔나비떼들 쏘다니여
내 기린은 맘 둘 곳 몸 둘 곳 없어지다
문 아주 굳이 닫고 벽에 기대선 채
해가 또 한 번 바뀌거늘
이 밤도 내 기린은 울들 못한다
감상 – 김영랑(1903-1950)의 고향은 강진이다. 바닷물이 들어오는 강진만 위쪽에 영랑 생가가 있고 더 위쪽엔 백운동 원림과 차밭이 있다. 영랑 생가 아래쪽인 강진만 왼편에 정약용 유배지인 다산 초당이 있고, 건너편 고려청자 굽던 가마터엔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이처럼 문화가 깃든 고장에서 김영랑은 지주의 아들로 유복하게 태어나서 성장한다.
김영랑은 3.1 만세운동 시 고향에서 독립을 모의한 일로 인해 몇 달 간 대구형무소 수감 생활까지 경험한다. 훗날 이육사가 264 수인번호를 받게 되는 그 형무소다. 만세운동의 여파로 김영랑은 휘문학교를 중퇴하고 일본 유학에 오른다. 김영랑은 성악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집안의 반대로 아오야마 학원에서 영문학 공부를 하다가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귀국한다. 이 무렵 무용수 최승희와 사귀지만 양쪽 집안의 반대로 결혼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음악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졌던 김영랑인 만큼 그의 강진 생가는 국악 공연장을 방불케 했다. 김영랑의 셋째 아들 김현철이 쓴 『아버지 그립고야』(2024) 내용에 따르면, 임방울, 박초월, 이화중선, 이중선, 임유앵, 임춘앵, 김소희, 박귀희 등 당대의 명창들이 영랑의 초청으로 강진 생가를 다녀갔다. 그 명창들의 고수 역할을 김영랑 본인이 할 만큼 북장단도 잘 맞추었고, 거문고와 가야금 연주 실력도 상당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다만, 시 낭송은 이런 음악적 재능과 무관한지 행사장에서 자작시를 더듬거리며 읽은 일로 이야깃거리가 되자 겸연쩍어하던 김영랑이 무(無)멋이 멋이라고 겨우 변명하더란 얘기도 책에 실려 있다.
「거문고」는 『영랑시집』(1935) 이후, 1939년 벽두, 조선일보출판사의 신춘시단에 「가야금」과 함께 실린 작품이다. 매 연마다 ‘기린(麒麟)’으로 시상이 집중되는 것을 보고, 제목을 다시 보면 거문고가 곧 기린인 줄 알게 된다. 소리 내지 못하는 거문고가 곧 울지 못하는 기린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기린인가?
후한 시대의 자전인 『설문해자』에 기린은 인자한 동물(仁獸)로 사슴의 몸과 소의 꼬리에 하나의 뿔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 반면에, 신비한 동물의 산실인 『산해경』엔 기린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사슴 모습을 하고 외뿔을 단 형태의 신이(神異)한 짐승들을 후대에 기린(麒麟)으로 통칭했다는 설이 그럴듯하다.
예태일, 전발평이 엮은 『산해경』엔 봉황의 뒷모습이 기린처럼 보인다는 한 구절이 있긴 하다. 저자가 인용한 내용 중에, 주나라 성왕 땐 봉황이 조정에 내려와 춤을 추자, 성왕이 기뻐서 거문고를 연주했다는 기록도 있다. 봉황이나 기린이나 둘 다 상상의 동물로 길조(吉兆)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는 걸 감안하면 봉황 이미지가 얼마간 기린에게 씌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를테면 봉황이 사람 사는 곳에 나타나면 천하가 태평해진다는 전설에서 봉황 대신 기린이 그러하다고 전하기도 하는 것이다.
다시 「거문고」를 보자. 좋은 시절이 오거나, 좋은 시절을 불러올 의인(義人)이나 지사(志士)가 나타날 것 같으면 기린도 덩달아 나타나서 속 시원히 울기도 할 텐데, 무려 20년 세월 그런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단다. 기린이 울지 않으니 동일체인 거문고도 잠잠하다. 거문고를 “퉁” 튕기며, 만인의 가슴에 “퉁”하고 반향을 일으켰던 ‘노인’을 시인은 잊지 않고 있다.
김영랑 시인이 기다리는 노인은 거문고 명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노인은 단순한 나이도 아니고 과거에 갇혀 있는 인물도 아니다. 대구형무소 후배 격인 이육사가 그렇게 기다리던 초인이나 청포 손님 같은 존재라고 해도 좋겠다. 이 땅에 의로운 기운이 가득할 때 거문고 술대나 북채를 잡고 신명을 낼 노인은 시인이 꿈꾸는 자신의 미래는 아니었을까.
이육사가 북경 감옥에서 눈을 감고서야 김영랑은 고대하던 독립을 맞이한다. 목 놓아 기린이 울고 거문고가 제소리를 한껏 내는 날도 잠깐에 불과했다, 전쟁과 폭격 속에 김영랑은 거문고 타는 노인으로 갈 기회를 아주 빼앗기고 만다. “몸 둘 곳 맘 둘 곳”을 세상이 다시 앗아간 꼴이다. 민간의 꿈을 뭉개고 민족의 염원까지 저버리는 야만과 폭력이건만 그래도 다음을 꿈꾸는 게 시인의 책무인 건가 싶다.
‘기린의 울음’이라는 미래의 약속보다 ‘기린의 발’이란 현실적 쓸모가 더 긴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풀이 아플까 봐 함부로 밟지 않는다는 기린의 발이 모두의 마음이 되는 게 진짜 혁명인지도 모른다.
『영랑시집』을 따라 읽다가 ‘마음의 포렴한 길’이란 구절에 멈춘다. 그 어디선가 “퉁-” 거문고 소리를 듣는다. ‘포렴하다’는 단어의 의미를 따져봐야겠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은 것은 소리의 여운이 아스라이 사라질 듯도 해서...
떠내려가는 마음의 포렴한 길을
꿈이런가 눈 감고 헤아리려니
가슴에 선뜻 빛깔이 돌아
생각을 끊으며 눈물 고이며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