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슈퍼 발롱도르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1989년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역사적인 해였지만 프랑스 풋볼은 미디어 보도 측면에서도 놀라운 변화를 경험했다. 프랑스 최고의 시청률 채널인 TF1에서 발롱도르 시상식이 생중계되었다.
기억해야 할 이벤트다. 바로 1989년 수상자와 동시에 '발롱도르 중의 발롱도르'를 선정한 것이다. 슈퍼 발롱도르 수상자는 소수의 복수 수상자 (크루이프, 플라티니 이상 3회 수상, 디 스테파노, 베켄바워, 키건, 루메니게 이상 2회 수상) 중에서 선택해야 했다.
발롱도르를 투표하는 전통적인 기자 패널, 역대 수상자 패널, 프랑스 풋볼 독자 및 TF1 시청자 패널 등 세 개의 투표자 패널이 구성되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패널에서는 디 스테파노가 1위를 차지했고 세 번째 패널에서는 플라티니가 54.12%의 득표율로 우승했다.
"이 상은 정말 대단한 상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잊히지 않았습니다!"
1995년 명예 발롱도르 디에고 마라도나
1995년 발롱도르는 큰 변화를 겪게 된다. 프랑스 풋볼 경영진은 국적과 관계없이 유럽에서 뛰는 모든 선수에게 투표를 부여하기로 결정했다. 라이베리아의 조지 웨아는 이 기회를 즉시 활용하여 발롱도르를 차지했다.
예를 들어, 이러한 변화는 디에고 마라도나가 나폴리에서 활약할 때나 1986년 월드컵에서 우승할 때 출전할 수 없었던 규칙의 '불공정함'을 종식했다. 프랑스 풋볼은 규정 변경을 인정하여 1995년 1월 파리에서 마라도나에게 명예 발롱도르를 수여했다.
마라도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빛의 도시에서 4일 동안 최고의 레스토랑을 방문하고 프랑스 풋볼 편집팀과 식사하고 디즈니랜드와 파르크 데 프랭스를 방문하고 뱅 두쉐와 퀸에서 디스코를 즐기며 열광적인 밤을 보내는 기회를 누렸다. 심지어 에릭 칸토나를 만나 선수 노조 설립에 대해 논의할 시간도 가졌다!
2014년 명예 발롱도르 펠레
발롱도르는 3년 동안 큰 변화를 겪었다. 2007년에는 월드컵에 한 번이라도 참가한 모든 국가를 대표하는 심사위원단에 발롱도르를 개방했다.
2010년에는 프랑스 풋볼의 발롱도르와 피파의 월드 플레이어가 통합되는 코페르니쿠스 혁명이 일어난다. 이로써 피파 발롱도르는 23명의 선수 명단에서 기자단, 대표팀 주장, 감독 등 3개 부문의 투표로 수상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탄생하게 된다.
이 트로피는 피파에 가입한 모든 국가가 포함된다. 1956년 발롱도르가 16명의 배심원단과 유럽인으로 투표권을 제한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다!
게다가 1995년 디에고 마라도나와 마찬가지로 2014년 1월에는 레퀴프와 프랑스 풋볼의 주도로 또 다른 불공정을 바로잡기 위해 펠레에게 명예 발롱도르를 수상하기로 결정했다.
"선수 생활이 끝난 지 35년이 지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저를 기억합니다. 감동적입니다!" 펠레는 눈물을 닦은 후 똑같이 감격에 겨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2013년 발롱도르를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