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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부탄을 방문한 지 2일째 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콜푸 치옥 사람들이 아침 식사를 만들어서 숙소로 찾아왔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식사를 한 후 숙소 주인 부부와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하룻밤 잘 지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아침 7시부터 납지 치옥 답사를 시작했습니다.
숙소를 나와 조금만 걷자, 황금빛 들판이 나타났습니다.
“벼가 엄청나게 키가 크네요. 한국은 벼가 이것보다 절반 높이밖에 안 돼요. 이렇게 키가 크면 폭풍이 불면 다 쓰러질 텐데요. 한국은 종자 개량을 해서 키가 많이 작아졌거든요. 키가 크면 볏짚으로 사용하기에 좋은데, 요즘은 볏짚을 잘 활용하지 않으니까요.”
스님의 말을 듣고 납지 치옥의 촉바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스님께서 수로를 놓아준 덕분에 올해 수확량이 2배가 될 것 같습니다.”
황금 들판을 지나자, 주민들이 농사를 짓지 않는 빈 논이 나타났습니다. 땅의 주인이 나이가 들어서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가 없게 되었다며 스님이 이 땅을 활용하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마을 주민들도 개간을 해보려고 했지만, 돌이 많이 나와서 개간이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행히 관청에서 올해는 포클레인을 지원해 준다고 해서 개간을 해볼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빈 논을 둘러보고 스님이 이야기했습니다.
“이 땅은 과수원으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땅이 길고 기울기가 안 맞아서 논으로 사용하면 물 대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논으로 사용한다면 동강이를 내서 면적을 작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벼농사를 안 짓는 빈 땅이 얼마나 돼요?”
“총 30 에이커 정도 됩니다.”
“거의 3만 6천 평 정도 되네요. 개간하려면 돌을 주워내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에요. 포클레인으로 땅을 파면 돌이 어마어마하게 나올 겁니다. 숫제 밭으로 만들어서 과수 재배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빈 논을 살펴본 후 마을에 도로 공사를 새로 한 곳으로 향했습니다.
시멘트로 좁은 도로가 반듯하게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촉바(마을리더)가 JTS에 시범 사업으로 해보고 싶다고 신청해서 마을 사람들과 공동 울력으로 도로를 만들었습니다.
촉바는 스님에게 도로를 보여주면서 다시 요청했습니다.
“폭이 1미터인데 폭이 좁아서 경운기 뒷바퀴가 못 지나갑니다. 폭을 1.5미터로 더 넓히고 싶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처음에 요청할 때 사람이 다니는 길이라고 해서 폭을 1미터로 하라고 한 거예요. 경운기가 다니는 길이라 얘기해 주었으면 처음부터 폭을 1.5미터로 하라고 했을 텐데요. 제가 기계가 다니는 길이냐고 몇 번을 확인했는데….”
촉바가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스님께 처음부터 1.5미터로 해달라고 요청하면 저희 요구를 안 들어주실까 봐 1미터로 제안했습니다. 저희가 욕심 많은 사람으로 보일까 봐 걱정했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스님이 기계가 다닐 수 있게 해 주려고 길을 만들자고 제안하고 있잖아요. 없는 길도 만들어 주려고 하는데, 왜 있는 길을 포장해 달라는 요청을 안 들어주겠어요?” (웃음)
길의 폭을 1.5미터로 확장하는 공사를 추가로 하기로 하고 납지 치옥의 절로 향했습니다.
절을 참배하고 나와 납지 촉바가 보수를 요청한 절 앞 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절 앞 부지를 전부 시멘트로 포장하고 싶습니다. 순례객들이 많이 방문하는데 주차하는 게 매우 불편합니다. 먼지도 많이 나고요.”
스님이 답변했습니다.
“여기는 절 앞이어서 시멘트로 포장을 하면 미관상 좋지 않습니다. 주차장은 흙과 자갈을 섞어 까는 게 좋아요. 오래된 역사를 간직한 절이기 때문에 자연 상태 그대로 보존하는 게 필요합니다. 흙이나 자갈을 더 깔아서 지대를 높이면 물이 저절로 빠지게 할 수 있어요. 한국에서는 고찰마다 시멘트로 포장한 걸 다시 뜯어내고 있습니다. 자연 상태를 보여주기 위해서요. 우선 절을 어떻게 개발할지 종합 계획을 먼저 세우는 게 필요합니다.”
촉바가 절 앞에 시멘트 포장을 너무 하고 싶어 해서 일단 오후에 다시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절 앞에 있는 논에 들어가서 추수를 함께 했습니다.
“벼를 벨 때 밑동을 베어요? 가운데를 베어요?”
“가운데를 베면 됩니다.”
벼의 키가 정말 컸습니다. 스님이 낫으로 벼를 베기 시작하자 마을 주민, 중앙정부 공무원, 겁, 멍미, 촉바, JTS 활동가들도 다 함께 벼를 베었습니다.
스님이 중앙정부 공무원인 이시 님에게 물었습니다.
“이시 님은 벼를 베어 본 적 있어요?”
“낫질을 처음 해봅니다.”
“이렇게 하나씩 배우는 겁니다.”
스님은 벼를 베면서 주민들에게도 여러 가지를 질문했습니다.
“탈곡은 어떻게 해요? 기계를 사용해요?”
“기계는 없고, 벼를 손으로 잡고 돌에 때립니다.”
“한국에서는 콤바인이 개발되기 전에도 페달을 밟아서 낱알을 분리하는 탈곡기가 있었어요. 돌에 때리면 낱알이 잘 안 떨어지거든요. 그리고 줄을 맞추어서 벼를 심으면 수확할 때 한꺼번에 여러 개를 벨 수 있어서 빨리 수확할 수 있어요. 지금처럼 얼기설기 심으면 벼를 베기가 쉽지 않습니다.”
벼의 중간을 베니까 가지런하게 모으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허리를 많이 굽히지 않아도 되어서 수월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쓱싹쓱싹, 낫으로 벼를 베는 소리가 산속에 고요하게 울려 퍼진 지 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벼를 모두 베고 나니 스님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수고했어요!”
논을 나와 수건으로 땀을 닦은 후 다시 답사를 시작했습니다.
도로로 가지 않고 논둑으로 내려가면서 격자식 농로를 놓을 수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전부 다락논이고, 논과 논 사이에 폭이 너무 좁아서 농로를 새로 만들기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답사를 마치고 더 논의해 보기로 했습니다.
“직접 답사를 해보니까 격자식으로 농로를 놓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 같네요. 전체 논을 빙 둘러 가면서 도로를 놓는 방법은 더 답사를 해보고 결정합시다.”
마지막으로 한국식으로 줄을 맞춰서 벼를 심어 놓은 논을 답사했습니다. 차를 타고 갈 수도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이 가는 것처럼 논둑을 따라 직접 내려가 보았습니다.
지난 4월에 한국에서 농업 전문가가 방문하여 줄을 맞춰 심으면 생산량이 늘어날 것이라고 조언을 해주어서 논 한 개만 시범적으로 줄을 맞춰 심어 보았습니다. 스님이 촉바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줄을 맞춰 심으니까, 수확량이 더 늘었어요? 오른쪽과 왼쪽을 한번 비교해 보세요.”
“줄을 맞춰서 심은 곳이 모내기하고 나서 초기에는 벼가 더 잘 자랐는데, 수확 철이 되어서 보니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키가 큰 종자라서 그런지 줄을 맞춰 심으나 그냥 심으나 별 차이가 없어 보였습니다. 비교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둔 후 논의 울타리 바깥쪽으로 나가 보았습니다.
촉바는 논의 울타리 바깥 전체를 빙 돌아가며 도로를 놓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산 위에서 산 아래로 쭉 이어져 있는 논인데, 사람들이 일하러 갈 때도 힘들고, 수확물을 옮길 때도 좁은 논둑으로 옮겨야 하니 무척 힘들다고 했습니다.
“논 주변으로 도로를 놓아서 수확물을 옮기기 쉽게 해 주면 좋겠습니다. 논 안쪽으로는 사람들에게 땅을 달라고 하기 어려우니까 울타리 바깥으로 도로를 놓고 싶습니다.”
논의 울타리 바깥으로 나가보니 매우 경사가 가파른 절벽이었습니다.
“울타리 안에도 길을 내기 좋은 땅이 있는데 왜 이렇게 험준한 울타리 밖에 길을 내어달라는 거예요? 울타리밖에는 평지가 없어요. 축대를 엄청나게 쌓아야 합니다. 여기에 길을 내는 건 돈이 많이 드는 공사예요.”
논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 바깥을 다 돌아보았습니다. 울타리 바깥에는 도로를 내기가 아예 어려워 보였고, 울타리 안에도 경사가 져서 도로를 내기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이 절벽에 도로를 만드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하는 프로젝트예요. JTS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네요. 이래서 직접 와봐야 해요.” (웃음)
2시간 넘게 가파른 길을 답사하고 나니 온몸에 땀이 흠뻑 젖었습니다. 스님은 무릎이 아픈데도 개의치 않고 답사를 마쳤습니다.
11시 45분에 콜푸 게옥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답사하느라 땀을 많이 흘려서 잠시 정비 시간을 가진 후 12시 30분에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점심 식사는 콜푸 게옥에서 준비해 주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오후 1시부터 콜푸 게옥 사무실에서 겁, 멍미, 촉바가 모두 자리한 가운데 오전에 답사한 내용을 토대로 회의를 했습니다. 먼저 농로를 만드는 문제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노트북으로 구글 지도를 펼쳐놓고 스님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답사를 해보니까 울타리 밖에 빙 둘러서 도로를 내는 것은 몇 개월이 걸리는 큰 규모의 프로젝트입니다. 이건 주민들이 협력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전문가에게 맡겨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세로 방향으로 일직선으로 내려가면서 농로를 내는 겁니다. 기존의 수로를 따라서 농로를 내면 논을 그렇게 많이 침범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려면 기존의 수로를 허물고 새로 농로와 수로를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주민들이 자신의 논을 일부 내어놓아야 하는데, 보상을 해주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땅 주인이 동의해서 농로를 내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게 어려우면 둘째, 절반은 땅 주인이 내고, 절반은 동네 사람들이 조금씩 돈을 내어서 보상해 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셋째, 땅을 소유한 모든 사람이 전부 똑같이 돈을 내어 보상을 해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물론 가로 방향으로도 농로를 여러 개 만들어야 하는데, 그건 주민들이 자기 논을 많이 내어놓아야 하니까 현재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크게 세 가지가 쟁점입니다. 첫째, 주민들이 땅을 내놓는 것에 동의할 것인가입니다. 둘째,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셋째, 예산이 얼마나 들 것인지입니다. 이런 점이 점검되어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제안을 제가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더 좋은 방안을 찾아보려고 하는 겁니다.”
스님은 종이에 지도를 그려가며 어떻게 농로를 만들면 좋을지 공무원들이 알아듣기 쉽게 다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주민들과 충분히 의논해서 결정해야 하니까 12월 말에 제가 다시 방문할 테니까 그때 주민들을 전부 모아놓고 이야기를 해봅시다.”
촉바는 절 앞에 주차장과 도로를 만드는 걸 당장 추진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절 주변을 개발하는 것은 종합적인 계획과 주민들의 동의가 필요해서 다음 방문 때 의논하기로 했습니다.
주민들이 전부 추수하느라 바빠서 전체가 모일 수도 없었습니다. 촉바가 아쉬워했지만, 수원지를 보수하는 것, 농수로를 아직 다 연결하지 못한 부분을 연결하는 것, 마을에 도로를 좁게 만들었는데 차가 다닐 수 있게 더 넓히는 것에 대해서는 당장 추진하기로 최종 결정을 하고, 나머지는 다음 방문 때 의논해 보기로 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스님은 촉바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촉바가 스님이 한국에서 가져온 왜낫이 가볍고 좋다고 해서 하나를 선물하고, 마을 사람 중 귀가 안 들리는 사람에게 시범용으로 사용해 보라고 보청기 하나를 전달했습니다.
사무실 밖으로 나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다음 방문을 기약하며 인사를 나누고 2시 40분에 차를 타고 판칼(Phangkhar) 게옥으로 향했습니다.
지난 상반기에는 JTS 활동가가 랑덜비 치옥에서 빈집을 얻어 생활했는데 너무 산속 오지 마을이라 교통이 매우 불편했습니다. 하반기에는 큰 도로변에 있는 판칼 게옥 사무실 옆에 집을 하나 얻어 임시 사무실을 차렸습니다.
차로 산길을 3시간 20분 동안 달려 저녁 6시에 판칼 게옥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이동하는 동안 해가 저물었습니다.
스님이 차에서 내리자, 젬강 주지사님이 반갑게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납지 치옥에서 주민들이 농로를 만들어달라고 해서 답사를 하고 오느라 좀 늦었습니다. 주민들은 며칠만 공사하면 된다고 해서 직접 가봤는데 답사를 해보니까 몇 개월 동안 공사해야 하는 아주 큰 규모였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저녁 6시부터 젬강 주지사님과 부탄 정부 관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판칼 게옥 사무실에서 회의를 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납지 치옥을 답사하고 온 내용을 공유해 준 후 다음 12월 방문 일정에 대해 젬강 주지사님과 의논을 했습니다. 젬강 공무원이 12월 25일부터 1월 7일까지 젬강의 모든 치옥을 스님이 다 방문해 볼 수 있도록 스케줄을 짜서 보고를 해주었습니다.
보고를 듣고 나서 스님이 이야기했습니다.
“숙소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침낭을 갖고 다니기 때문에 방문하는 동네에서 그냥 자겠습니다.”
이어서 내년부터 시작하는 안과, 치과, 이비인후과 진료 활동 그리고 한국 봉사자 파견 계획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튀르키예-시리아 접경 지역에서 지진 피해로 무너진 학교를 새로 준공하고 온 소식을 공유했습니다.
“저는 지난주에 튀르키예-시리아 접경 지역을 다녀왔습니다. 작년에 지진이 나서 건물이 다 무너지고, 10년 동안 전쟁을 겪고 난민이 많이 발생한 곳입니다. 그래서 4천 명이 다니는 학교를 새로 지어서 무너진 건물이 다시 지어지듯이 새로운 희망을 갖자는 이야기를 하고 왔습니다.
지금 한국은 전 세계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발전한 나라이지만, 사실은 내일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긴장이 고조되어 있습니다. 한국 밖에서는 ‘곧 전쟁이 나지 않나요?’ 하고 걱정하는데, 정작 한국 사람들은 지난 75년 동안 전쟁을 일시 멈춘 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위험에 대해 무감각해져 있습니다. 그에 비해서 부탄은 정말 좋은 환경을 가진 나라입니다. 여러분들이 좋은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웃음)
“맞습니다.”
대화를 마치며 스님이 젬강 주지사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내일 준공식에 참석해 주신다고 하셔서 감사합니다”
젬강 주지사님도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스님께서 먼 곳에서 오셔서 고생하시는데 저도 기꺼이 함께해야죠. 저도 정말 바쁘긴 하지만 내일은 스님이 주민들과 함께 젬강에서 진행한 첫 번째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날이라 저도 기쁜 마음으로 함께 하려고 합니다.”
“젬강에서 진행한 첫 번째 프로젝트인데 주지사님께서 주민들에게 좋은 말씀을 해주시면 주민들이 힘을 더 낼 것입니다.”
젬강 주지사님이 스님에게 판탕 에코로지(Pangtang Eco- lodge) 호텔을 숙소로 제공하겠다고 했는데, 스님은 JTS 활동가들이 생활하고 있는 숙소에 직접 자봐야 한다며 정중하게 사양했습니다. 젬강 주지사님이 저녁 식사도 접대하겠다고 했는데도 사양하고 스님은 JTS 활동가들이 머무는 임시 숙소로 가서 활동가들이 준비한 식사를 함께했습니다.
식사를 마치자, 집주인이 꽃과 과일을 들고 찾아와서 환영 인사를 했습니다. 집주인은 한국말로 부탄을 방문해주어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국말을 할 줄 아네요.”
“조금 압니다. 한국 드라마 보고 배웠어요” (웃음)
스님도 한국에서 가져온 양말과 치약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집주인과 둘러앉아 과일을 먹으며 인사를 나누고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답사하느라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25일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에서 질문자와 스님이 대화 나눈 내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며칠 여행을 다녀와도 카톡 하나 보내주는 친구가 없습니다.
“저는 친구가 없어서 외롭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스쳐만 지나가고 제 옆에 남지 않는 것 같아요. 어린 시절 폭력 아버지 밑에서 사느라 힘들었고, 결혼 후 남편도 결손가정에서 자라 사랑을 전혀 줄 줄 모르고 가정적이지도 않았습니다. 지적 장애인 아들을 키우면서 너무 힘들고 치열하게 살아와서 그런지 친구 만들기가 어려워요. 진정한 친구 두세 명만 있었으면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친구가 없는 게 좋습니다. 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자꾸 집착하니까 친구가 없는 게 문제가 되는 겁니다. 반대로 친구가 없어야 한다고 집착하면 친구가 있는 게 문제가 되는 겁니다. 인생은 원래 혼자 와서 혼자 가는 것이라고 하잖아요. 친구란 그냥 알고 지내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친구를 내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깊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고 너무 이상적으로 그리고 있어서 내 주위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보면 나를 낳아준 부모와도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다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이 자기를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와도 모든 얘기를 다 할 수가 없고, 결혼한 남편과 아내도 서로 모든 얘기를 다 할 수가 없어요. 내 남편하고만 모든 얘기를 다 못하는 게 아니에요. 세상의 모든 부부가 다 자기 마음을 남편 또는 아내가 몰라준다고 서운해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내 마음의 깊은 얘기를 다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쉽게 생길 수가 있겠습니까.
질문자가 친구에 대한 기대를 너무 높게 가지고 있어서 늘 친구가 없다는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인생은 원래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것입니다. 또한 그 누구와도 내 속내를 다 얘기할 수는 없는 겁니다. 물론 내 속내를 다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죠. 그런데 사실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가 없어서 내가 말을 다 못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나를 움켜쥐고 있어서 내가 다 말을 못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움켜쥐지 않으면 아무한테나 모든 얘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질문자는 자꾸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찾는데, 내가 남을 알아주면 되지 왜 남이 나를 알아주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까? 어릴 때 사랑을 못 받아서 애정 결핍증을 앓고 있어서 그런 마음이 자꾸 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부모로부터 충분히 사랑을 못 받았다.’,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못 받았다.’ 자꾸 이런 갈증이 생기는 이유는 질문자가 일종의 마음 병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눈 뜨고 살아있는 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죽지 않은 것만 해도 참 감사합니다. 굶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것만 해도 정말 감사합니다. 대문을 열고 나가면 사람들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가끔이라도 전화로 연락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 세상은 살만한 세상이에요. 깊은 산 속에 혼자서 새를 벗으로 삼고 자연을 벗으로 삼아서 살아가는 수행자들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혼자서 살아도 친구가 없다는 얘기를 하지 않아요. 내가 마음의 문을 열면 주위에 사람이 없어도 자연을 벗 삼아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내가 마음의 문을 닫으면 부부가 등을 맞대고 자도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 옆에 있어야 외로움이 없어진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내가 마음의 문을 닫고 살기 때문에 외로운 거예요. 마음의 문을 닫아놓은 채 사람만 찾지 말고, 책을 보든, 사람들을 만나든, 산책을 하든, 언제나 마음의 문을 열고 살아보세요.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자꾸 내면 이런 병은 사라질 겁니다.”
“제가 아는 지인은 어디 여행을 다녀와서 휴대폰을 열면 카톡이 50개가 와 있다고 해요. 그 정도로 사람들이 주위에 많은데, 저는 일주일간 해외여행을 갔다 와도 카톡 하나 오는 데가 없습니다. 예전에 제가 너무너무 사랑을 많이 준 지인이 있었는데, 몇십 년이 지난 후 그 사람이 제가 가까이 다가가는 걸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관계가 끊겼습니다. 해외여행을 갔다 오거나, 어디 몸이 아플 때, 아무 데서도 연락이 오는 곳이 없으니까 ‘왜 사람들이 나한테는 안 붙을까?’ 이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질문자도 ‘누구든지 돈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항상 빌려준다.’, ‘누구든지 전화 연락이 오면 밥을 사준다.’ 이렇게 원칙을 정해놓고 한 번 살아봐요. 해외에 일주일 동안 여행을 갔다 오면 돈을 빌려달라고 아마 100통도 더 전화가 와있을 겁니다. 또 밥을 사달라는 전화가 아마 100통도 더 와있을 거예요. 우리가 남에게 연락할 때는 대부분 자기가 필요한 게 있어서 연락합니다. 필요한 게 없는데 연락하는 사람은 없어요. 사람들이 나한테 연락을 많이 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사람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나한테 연락이 별로 안 온다는 것은 내가 사람들에게 별로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왜 연락할까요? 사람들이 왜 법륜 스님을 많이 찾을까요? 자기가 필요하니까 자꾸 법륜 스님을 찾는 겁니다. 오늘도 학교 후배한테 연락을 받았어요. 저를 찾는 이유가 자기가 책을 새로 내는데, 추천사를 써 달래요. 이런 필요가 있어서 전부 연락을 하는 겁니다. 질문자한테는 연락이 안 오는 이유가 아직 사람들의 필요에 쓰이는 일이 많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연락이 자주 온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에요. 사람들은 ‘왜 평상시에 연락 안 하고 꼭 자기가 필요할 때만 연락하나?’ 이렇게 생각하는데 연락이라는 것 자체가 필요할 때 하는 것입니다. 필요가 없는데 왜 연락을 하겠어요? 그러니 나한테 연락을 안 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나한테 연락을 너무 많이 한다면 그것도 귀찮은 일이 아니겠어요? 그러니 연락이 오면 연락이 와서 감사하고, 연락이 안 오면 안 와서 좋은 겁니다. 연락이 안 오는 게 왜 섭섭합니까? 연락이 안 오면 귀찮을 게 없어서 좋은 겁니다. 연락이 오면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어서 좋은 겁니다. 이렇게 관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은 연락이 많이 오는데 왜 나는 연락이 안 오는지 궁금하다면, 그 사람을 한 번 가만히 관찰해 보세요. 그 사람은 사람들에게 상담을 많이 해주든지, 사람들에게 돈을 자주 빌려주든지, 어려울 때 자주 도와주든지, 봉사를 자주 한다든지,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겁니다. 질문자도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일에 기여를 많이 하다 보면 나이가 들어도 연락이 많이 오게 될 겁니다. 반대로 사람들한테 그다지 쓰임새가 없었다면 사람들의 연락이 점점 적어질 거예요. 그래서 ‘연락이 없는 건 오히려 좋은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좋습니다. 만약에 사람들이 나한테 좀 연락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일이 보이면 뭐든지 도움을 주는 일을 자꾸 해보세요. 봉사를 하든, 보시를 하든, 그런 역할을 자꾸 늘리면 사람들한테서 연락이 많이 올 것입니다.”
“네, 잘 알았습니다.”
“사람들의 연락을 너무 갈구하지 말고, 연락이 안 와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인생은 어차피 혼자입니다. 죽을 때 부부도 같이 못 가고, 자녀도 같이 못 가고, 부모도 같이 못 가는 게 우리들의 인생입니다. 인생은 홀로서기를 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으려면 명상을 하는 게 큰 도움이 됩니다. 명상은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서 졸지도 않고 생각도 안 하고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만 알아차리는 겁니다. 맑은 정신을 유지하면서 이 세상 누구하고도 관계를 맺지 않고 혼자서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는 거예요. 편안하게 한 그루 나무가 서 있듯이 고요히 있을 수가 있는데, 카톡 안 오고 전화 안 오는 게 무슨 문제가 되겠어요? 그래서 질문자는 정토회에서 진행하는 주말 명상 프로그램에 신청해서 명상을 한 번 꾸준히 해보세요. 여름에는 4박 5일간 조용히 명상을 하면서 갈구하는 마음을 좀 가라앉혀 보세요. 일주일간 명상을 하고 나면 갈구하는 마음이 사라질 겁니다.”
“감사합니다.”
내일은 오전에 고싱 게옥으로 이동하여 리마퐁 마을과 레바티 마을에서 식수 프로젝트 준공식을 한 후, 오후 내내 트롱사로 이동하여 밤에는 트롱사 주지사님과 미팅을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