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책망과 위로는 항상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바울은 주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시는 은총이 고린도 교회에 함께하기를 비는 장엄한 축도로 서신을 맺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사도 바울의 축도 가운데 가장 완전한 것으로 오늘날에도 많은 목회자들이 예배를 마치며 이 축도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왜 이와 같은 완전한 축도가 다름아닌 고린도 서신에서 나타나고 있는가를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점을 깨닫는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지도할 때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앙 생활에도 대단히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 서신의 내용과 이를 보내는 사도 바울의 심정을 생각함으로써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었습니다. 그것은 곧 지금까지 사도 바울은 문제가 많았던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강한 어조로 책망하고 경고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럴수록 바울의 마음이 더욱 아프고 안타까웠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책망과 경고의 회초리를 든 후에 더 큰 사랑으로 축복함으로써, 상처 받은 영흔들을 감싸주려 했던 것입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사랑으로 때리되, 이후에 더 아픈 마음으로 상처를 감싸고 위로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러한 사도 바울의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한 가지 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책망과 위로는 항상 조화를 이루며 동반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즉 책망할 때는 엄하게 책망하되, 그 이후에는 더 큰 사랑으로 감싸고 매만지는 위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망만 있고 위로가 없거나, 위로만 있고, 책망이 없으면, 이는 결코 올바른 교육이 될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이 가운데, 어느 한쪽에만 치우침으로써, 올바른 교육과 지도를 그르치는 실수를 저지르곤 합니다.
예컨대, 어느 교회는 엄격함 일색으로만 일관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교회는 설교 때마다 위로는 없고, 죄와 심판만을 강조함으로써 성도들의 마음이 항상 무겁고 냉냉합니다. 반대로 어느 교회는 죄에 대한 책망은 없고, 위로와 축복 일변도로만 일관합니다. 때문에 성도들은 죄와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기도 합니다. 가정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엄격한 가정의 자녀는 항상 부모를 두려워하며 가정에 들어가기를 싫어하고, 반대로 지나치게 자유로운 가정의 자녀는 아무런 책망이 없으므로 기본적인 예의가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책망과 위로의 조화를 이루는 지혜와 중용을 잃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