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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이 진정 자랑해야 할 것
정부의 내년 예산이 확정된 요즘 지역 출신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얼마의 예산을 따왔네.’라고 자랑한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 연연해선 안되지만 중앙정부의 예산확보는 중요한 업무의 하나이다. 그래서 지역에 대한 의정보고에서 예산확보를 강조하는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지 모르지만 우리 지역구 의원이 집권당 사무총장이다. 집권당의 살림을 총괄하고 총선을 코앞에 둔 요즘 공천 작업을 총괄하는 집권당 사무총장의 권한은 그야말로 하늘 찌르듯 높다. 이런 시점에 우리 지역구 의원이 집권당 사무총장으로 있는 것, 그 자체가 우리 파주로서는 행운이다.
이에 걸맞게 황진하 의원은 내년 예산과 관련해 많은 보도 자료를 냈다. 심지어 행정자치부에서 몇 억 원의 특별교부세를 받았다는 내용까지 세세하게 발표했다. 야당이지만 윤후덕 의원도 지역의 파출소 건립과 관련해 몇 억 원의 예산을 확보했다고 보도 자료를 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예산 배정 과정에서 국회의원의 역량이 얼마나 작용했는지 정확히 가늠하기도 어렵다. 어차피 중앙정부가 계획된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배정된 것인지, 아니면 경기도 차원의 요구로 배정된 것인지 불분명하다. 따라서 ‘내가 얼마를 따 왔다’고 자랑하는 것도 그리 믿을 것이 못된다. 게다가 몇 억 원 예산 확보는 시의원, 도의원도 할 수 있다.
그래도 집권당 사무총장 정도 되면 해당 부처는 물론 예산을 짜는 기획재정부에 대해 ‘엄청난(?)’ 입김이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에 파주는 집권당 사무총장을 갖고 있는 프리미엄을 충분히 누렸어야 했다. 황 의원이 집권당 사무총장으로 얼마나 힘을 썼는지는 확보한 내년 예산이 예년에 비추어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를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앞서 지적했지만 바로 중앙정부의 의례적인 사업이냐, 아니면 파주시의 숙원 혹은 중요사업이냐의 차이다. 사업 중에는 중앙정부의 계속 사업으로 어차피 예산을 배정해야 하는 사업이 있고, 시 차원에서 역점을 두는 사업이 있다. 중앙정부의 계속 사업은 예산을 확보하기 어렵지 않다. 중요한 것은 시가 역점을 두는 신규 사업이다. 능력 있는 국회의원은 이것을 확보해야 한다.
황 의원이 집권당 사무총장으로 매우 열심히 뛴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사례를 보면 매우 실망스럽다. 바로 얼마 전까지 파주시민이 똘똘 뭉쳐 유치한 사업이 바로 한국폴리텍대학 파주캠퍼스 건립이다. 한국폴리텍대학을 유치하기 위해 파주시민은 유치위원회를 만들어 가두서명을 하는 등 온 힘을 쏟아 유치에 성공했다.
그러나 유치에 성공하면 무엇을 하나. 한국폴리텍대학은 우리 파주시가 소중히 ‘보관’했던 미군반환 공여지인 캠프 에드워드를 파주시민의 세금(일부 경기도비) 167억 원으로 국방부로부터 구입해 고용노동부의 기관 설립에 무상으로 주는 사업이다. 167억 원은 파주시 예산으로 그리 쉽게 감당할 수 있는 돈은 아니다. 그래서 파주시는 분납계획까지 세웠다.
본지는 지난 4월 ‘한국폴리텍대학 유치, 이제 시작이다’라고 지적했다. 칼럼의 요지는 어차피 국가사업을 국가소유의 부지에서 시행한다면, 파주시 부담을 최소화 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력’이라고 요구한 것이다. 마침 지역 국회의원 두 사람 모두 상임위원회가 국방위원회였고 국방위원장과 야당 간사를 맡고 있었다. 부지를 민간에게 넘기는 것이 아닌 이상, 매입비용을 없애거나 최소화 할 수 있는 기회였고, 또 두 국회의원은 자신의 정치력을 발휘할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이 부지를 국방부로부터 무료 혹은 싸게 넘겨받는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게다가 경기도가 고용노동부에 건의한 한국폴리텍대학 건립 내년 예산 211억 원 가운데 실시설계비 12억 원만 확보됐을 뿐이다. 이도 고용노동부가 배정하지 않은 것을 기획재정부에서 집어넣은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폴리텍대학 건립이 1년 연기될 전망이다.
여기서 고용노동부야 그럴 수 있다지만 파주시민이 그렇게 난리를 펴 유치에 성공한 사안임에도 정작 지역 국회의원은 정부부처 예산 확보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게 집권당 사무총장을 배출한 지역의 수준인가, 야당 간사가 있는 지역의 능력인가. 너무 초라한 성과다,
우리는 지역 국회의원이 도로건설 사업에 얼마의 중앙정부 예산을 유치했고, 심지어 파출소 건립 예산 얼마를 확보했다는 ‘자랑’을 듣는다. 하지만 그것은 자랑이 아니다. 정치인의 자랑은 진짜 지역의 시민이 필요한 예산, 불가능 사업을 가능하게 만드는 예산이다. 그것이 정치력이고 그것을 자랑해야 한다.
경향신문 부장(본지 객월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