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으로 떠난 아내와 약속 지켜 성가정 모범 보여주고 봉사의 길 선택 폐암 투병에도 기쁘게 봉사... 안구와 전 재산 기증하고 세상 떠나
주위에선 다들 말렸다. 친구들은, 혹자들은 "미쳤다"고도 했다.
그래도 그는 30년간 인천시 구월동에서 운영해오던 약국을 접고 고집을 부려 2000년 초 꽃동네로 들어왔다. 그리고서 13년 가까운 세월을 '버려진' 형제 자매들과 살았다. 날마다 아침 8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출근해 밤 8시까지 약을 조제하고 투약했다.
일 년 열두 달 휴가도 없이 봉사하는 강행군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고생스러웠지만, '하나도 힘겹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거웠다. 사랑이 없었다면 도무지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6일 69살을 일기로 하느님 품에 안긴 '꽃동네 약사' 김종인(이냐시오)씨는 그렇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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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말 폐암으로 투병하던 꽃동네 약사 김종인(왼쪽)씨가 병세를 보러 들른 인곡자애병원 의무원장 신상현 수사와 정겹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
그가 꽃동네로 들어온 건 사회에서 느끼지 못했던 사랑을 꽃동네 가족들에게서 봤기 때문이었다. 꽃동네 가족들과의 정, 그리고 봉사의 보람이 그를 꽃동네에 있게 했다.
그러다 쓰러졌다. 폐암이었다. 아내 이명자(루치아)씨가 5년간 항암치료를 받느라 고생만하다 1991년 세상을 떠난 걸 떠올리며 그는 항암치료를 거부한 채 인곡자애병원 중환자병동에서 홀로 투병하며 여생을 보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몇 주 전까지도 틈틈이 쉬지 않고 조제실에서 일을 했다.
그는 사후 안구도 기증했고, 꽃동네 인근에 있는 시가 8000만 원 상당 금왕읍 무극리 아파트는 꽃동네에 기부했다.
그래서 이날 두 자녀 품에 안겨 그리도 사랑했던 아내 곁으로 떠나는 길도 홀가분했다. 병석에서 의붓엄마 품에서 자라나지 않도록 해달라고 아이들을 부탁하던 아내의 유언을 지켜 재혼하지 않고 아이들을 키워 성가정을 이루는 걸 봤고, 또 그토록 원하던 봉사의 삶도 살았기에 아무런 여한이 없었다.
그를 기려 꽃동네 가족들은 8일 금왕성당에서 장례미사를 봉헌하고, 이에 앞서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 자매회 수도자들도 6일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고려대병원 영안실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고인을 추모했다.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 원장 신상현(야고보) 수사는 "꽃동네 병원에 약사가 없을 때 기도의 응답으로 오신 김종인 약사님을 보면, '약속을 지킨 사람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아내와의 약속을 지켜 성가정의 모범이 됐고, 봉사의 약속을 지켜 꽃동네 가족들의 든든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셨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더불어 "김종인 약사님이 떠난 자리에 새로운 약사님이 다시 와주시길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평화신문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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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울지마 톤즈 신부님 처럼 꽃동네 약사님도 계셨네요.휼륭한 생을 살다 가신 김종인 약사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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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나라에 살아주셔서 감사하고 명복을 빕니다.
나무아미타불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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