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겨울 이토 히로부미의 강요로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 이완용 등 5명의 대신이 남몰래 나라를 팔아먹었다.
그 소식이 전해지자 세상이 뒤집혔다. 최익현은 당장 ‘5적’(五賊)의 목을 베라고 요구하였다.
병자호란 때 김상헌은 항복문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는 ‘내 목이 떨어질망정 이 조약은 안 된다’고 부르짖었다.
하지만 고종의 조정에는 강직한 대신이 없었다.
사람이 있다면 이미 퇴직한 관리들뿐이었다.
“그들이 대포를 가지고 쳐들어온다 해도 부자와 군신이 국가를 위해 싸우다 함께 죽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최익현은 일본의 협박에 겁먹고 벌벌 떨기만 한 대신들을 통렬히 꾸짖었다.
“이 역적 놈들은 왜적의 앞잡이로서 매국을 자랑으로 알아 거리낌도 없고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니, 능지처참을 해도 부족합니다.”
일본은 국력을 믿고 조선을 괴롭혔다.
그들은 국제여론도 깡그리 무시한 채 조선을 집어삼키지 못해 날뛰었다. 청일전쟁에 이어 러일전쟁까지 이기자 말로만 조선의 독립을 보장한다고 했지 실제로는 침탈의 강도를 날마다 높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고종은 을사늑약을 인준하지 않았다. 이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저들이 가진 것은 역적들이 억지로 만든 가짜 조약문에 불과합니다”
라며 최익현은 조약의 무효를 선언하였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완용 등의 목을 베고, 엉터리 조약문도 폐기처분할 일이었다.
각국 공사관에도 일본의 죄상을 알렸어야 했다.
“지금 겁을 집어먹고 움츠리면 이런 나라는 망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최익현의 주장이 만번 옳았다. 하지만 일이 글러먹었다. 늑약을 반대한 민영환은 목을 찔러 자결했고, 조병세와 홍만식은 독약을 마셨다.
을사 5적은 일본의 위세를 믿고 까불어댔지만 고종은 손도 못 댔다.
지금까지도 저들은 보상은커녕 과거사를 옳게 사과한 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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