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하는 일은 취재해서 보도하는 것이다. 취재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취재원에게 묻는 것이다. 그리고 질문에 대한 취재원의 대답이나 반응을 글이나 말로 정리해 독자나 시청자에게 전하는 게 보도다.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나듯, 좋은 질문 없이 좋은 기사는 나올 수 없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질문하는 기자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취재원의 말을 한 자라도 놓칠세라 휴대전화에 장착된 녹음기를 들이대거나 개인용 컴퓨터 자판 두드리기에 몰두하는 것이 취재의 대세가 된 듯하다. 취재원의 발화를 그대로 옮기는 게 기자의 주된 일이라면 기자를 뽑을 것이 아니라 아예 속기사를 뽑는 게 낫겠다는 비아냥도 귀에 설지 않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소통을 강조하며 출입기자들과 '출근길 간이 문답'을 시작했을 때, 질문하는 기자들의 본업을 되찾게 해 줄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윤 대통령이 취임 이후 6개월 동안 한 일 중에서 출근길 간이 문답이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인사와 정책, 내정과 외교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다는 평판이 대세고 '지지율 30%의 깊은 수렁'에서 허우적대고 있지만 그래도 이것만큼은 응원하고 싶었다.
느닷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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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영제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0월 6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MBC의 '윤석열 대통령 비속어 논란' 보도 관련 질의를 하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실이 21일 느닷없이 출근길 간이 문답을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최근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태와 관련해 근본적인 재발 방지 방안 마련 없이는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게 그 이유다. '불미스러운 사태'란 지난 18일 열린 문답 때 윤 대통령이 "(한미) 동맹 관계를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는 악의적인 행태를 보였기 때문에 대통령의 헌법 수호 책임의 일환"으로 MBC의 전용기 탑승을 배제했다고 말한 데 대해 MBC 출입기자가 "무엇이 악의적이었느냐"고 따져 물으면서 대통령실 비서관과 설전을 벌인 일을 가리키는 듯하다.
대통령실 설명만으로는 불미스러운 사태의 내용이 기자가 대통령에게 "무엇이 악의적인 보도냐"고 따져 물은 건지, 그 직후 기자와 비서관이 설전을 벌인 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기자의 관점에서 볼 때 둘 다 불미스러운 사태가 될 수 없다. 비서관과 기자의 설전은 각자 다른 위치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 언제 어디서든 흔히 발생할 수 있다. 대통령실이 말하는 불미스러운 사태가 전자를 말한다면, 이것은 정말 매우 심각한 일이다. 대통령이 하는 말에 기자, 즉 언론이 순순히 듣기만 하고 토를 달아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신호라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야말로 소통이 아니라 불통이고, 그토록 윤 대통령이 안팎에서 강조하고 있는 '자유'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9월 뉴욕 유엔총회 방문 때 한 '비속어 발언'에 관한 MBC의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규정했다. MBC를 비롯한 많은 미디어가 비하의 대상을 '바이든'이라고 보도했고, 대통령실은 한참 뒤늦게 '날리면'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정작 발언 당사자인 윤 대통령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아직도 입을 닫고 있다. 가짜뉴스라면 진짜 뉴스가 무엇인지 먼저 밝히는 게 마땅한데 그런 절차 없이 '한미동맹 이간질' '악의적' '헌법 수호 차원'이라는 섬뜩한 용어를 쓰며 계급장으로 윽박지르려고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일방적인 매도에 당사자인 MBC 출입기자가 그 근거를 묻는 것은 당연한 취재 행위다. 아니, MBC 기자가 아니고 다른 언론사 기자들이 먼저 물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사안이다. '뉴욕 발언'의 실체가 무엇인지가 지금 시민들이 가장 알고 싶은 궁금증 중의 하나기 때문이다.
용산의 의도에 휘말려선 안 된다
▲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과 김동훈 한국기자협회 회장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실이 MBC 취재진을 순방 전용기 동행 취재에 배제한 것에 대해 “언론인의 취재할 권리를 일방적으로 박탈했다”며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과 김은혜 홍보수석비서관을 직권남용죄로 고발장을 접수했다.
나는 기자가 시민을 대신해 물을 때만 '공적 지위'를 갖는 '한시적인 공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이 바로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이 언론 자유를 걸고 개인 회사의 종업원이 아니라 공인의 자세로 취재에 나설 때다.
지금 대통령실과 여권 인사들은 질문을 하려는 기자에게 '슬리퍼' '넥타이' '예의범절' 운운하며 질문하는 기자의 본업을 방해하려고 하고 있다. 마치 어떤 사안을 두고 싸울 때 불리한 사람이 '너 나이 몇 살이냐?'고 생년월일로 쟁점을 바꾸려는 행위와 비슷하다. 싸움의 본질이 나이로 가려질 수 없는 시대가 됐듯이, 권위주의적인 위계나 도덕관으로 언론자유를 봉쇄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MBC 한 곳만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방식으로 언론계를 이간질함으로써 언론 전체를 '말 잘 듣는 녹음기'로 만들려는 권력의 불순한 의도가 '출근길 간이 문답' 폐지로 드러난 이상, 대통령실 출입기자나 언론계가 할 일은 그런 의도에 말려들지 말고 힘을 합쳐 언론 자유를 지키는 일이다. 그 첫걸음은 권력자에게 곤란한 질문을 마다하지 않는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