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년생이고 43년생이니
5살 차이입니다만
8.90년대 우리문단을 대표하다
시피 활약하며 한시대를 풍미한
작가들 인데
두사람 모두 중고교와 대학까지
모두 중퇴했다는 공통점이 있을 만큼
제도권 학업에는 관심들이 없는 스타일이나
정치적 이념적 스텐스는 완전히 반대편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보수논객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그래서 좌파로 부터
책장례에 처해지는 수모를 당한
이문열과
광주민주화운동의 처참한 실상을
소상하게 그려낸 "죽음을 넘어..."
를 쓰고 수차례 무단방북까지
감행한 진보의 아이콘 황석영
사이의 이념적 거리는 까마득해
보입니다.
그런데 두사람의 개인적인
친분은 아주 돈독하다합니다.
황석영이 방북사건의 처벌을 피해
해외를 떠돌때 미국에 들렀던
이문열과 뉴욕에서 단둘이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그때 이문열이 6.25때 월북한
아버지 소식을 알아달라
부탁하였습니다.
김일성에게서 영웅소리까지 들은
황의 요청에 주미 북한대사관이
며칠만에 문열의 아버지 이원철의
현직장, 북애서 재혼한 아내와
5명의 자녀 등 상세한 내용을
보내 주었습니다.
술자리에서 쪽지를 받아든
이문열은 그 자리에서 무너지듯
쓰러져 한참을 오열하였습니다.
"처자식 다버라고 혼자 갔으면
거기서라도 잘살 것이지."
남로당 숙청에는 살아 남았으나
서울농대 교수를 지낸 경력에 맞지않게
오지를 전전하며 어렵게 지냈나 봅니다.
이문열의 90년대 이후의 작품은
전성기의 것보다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는데
아무래도 정치적 편향성 영향인가
싶기도 합니다.
이문열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출신이라는 어느 분의
댓글에서 문득 우리시대의 대단한 작가이자
요즈음은 소식이 뜸해진 그가 생각났습니다.
매일신문 기자를 잠시하다 이듬해인 1979년
"사람의 아들"이 대박을 터뜨리는 바람에
스타 작가로 혜성처럼 떠올랐지요.
영양의 일월산 정상에
이문열의 시가 커다란 비석에
새겨져 있습니다.
조지훈과 함께 영양이 낳은
큰 인물이니까요.
첫댓글 대단한 작가들이지요. 황구라...
개인적으론 두 사람 다 정치적으로 각자 너무 한 쪽으로 편향된 것으로 보입디다
그저 장길산 이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글쟁이로만 남았으면 좋았을 사람들로 말입니다
80년대초 TV 드라마로 나온 “영웅시대”가 이문열의 아버지 이야기이지요~ 작품이 유교적 가부장적 향수를 자극하는 정서(집안이 영남
남인)에다가 현학적이고 허무주의를 조장하는 측면도 있다죠~ 필론의 돼지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귀두산에는 낙타가 산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etc~~ 한땐 탐독했는데
황은 글 쓰기를 노후대책으로 삼는다는 소리에 다시 봤지요
한반도의 비극이자 남남갈등의 원조격이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