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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민수_놀이터_혼합재료_155×180cm_2008
우리가 배우고 꿈꾸고 익히고 믿고 탐구할 수 있는 능력은 유년기에 결정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라는 말도 있듯이 성인이 되기까지 누구나 거치는 유년기에서 앞으로 살아갈 한 사람의 습관과 정서가 결정이 된다. 백지와도 같은 상태의 한 어린 아이는 낯선 세상과의 세심한 접촉을 통하여 정서를 발전시킨다. 소통의 복잡함을 익히고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극심한 불안과 성장통을 겪으며 평생 유년의 상처를 치유하며 서서히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배우고 꿈꾸고 익히고 믿고 탐구할 수 있는 능력은 이 시기에 결정된다. 가족이나 학교, 친구들, 뿌듯한 경험이나 부끄러운 경험에서 얻은 교훈들, 사회와 문화로부터 반복적으로 주입 받은 이야기와 기억을 통해 우리의 의식이 형성되고, 이 유년의 의식이 청소년기와 성년기에 이르기까지 뿌리 깊이 남아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여기 3인의 작가들은 아직 성징이 뚜렷하게 나타나기 전인 조그만 신체에 갇혀있는 복잡하고 예민한 자아가 싹이 트고 시기, 시간의 흐름이 극히 미묘하게 느리게 흐르고 서서히 변화해가는 심층으로부터 유년기의 기억을 수면 위로 뽑아 올리고 있다. 예민한 상처, 아직 미숙한 육체와 성장하는 어린 영혼이 겪는 혹독한 폭력과 고통, 그리고 그 모든 모순 사이에서 겪는 자신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슬픔을 어린아이의 눈과 표정으로부터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 싹을 틔우고 있는 따뜻한 우정과 '사랑'이라는 설렘의 경험이 자리잡고 있다. 이 온갖 경험과 기억은 결국 타자와의 관계 맺기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고스란히 시간을 빠르게 타고 넘어와 어느덧 어른이 된 우리들의 기억에 이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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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민수_인형의 천국_혼합재료_170×180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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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민수_잃어버린 아이들_혼합재료_70×100cm_2008
독일 뮌스터에서 장기간의 활동을 뒤로 하고 귀국한 강민수는 본래 입체에서 회화 작업으로 전환한 작가이다. 배경이 거칠게 붓질한 그의 캔버스는 현실을 모방하거나 특정한 공간을 재현하기 위한 빈 화면이 아니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 고요하고 초 차원적인 가상의 공간을 창조하고,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는 인물, 사물, 사건들을 그곳으로 초대한다. 특히 그가 독일에 체류하면서 겪은, 심각하게 사회 문제화 된 어린이 납치 범죄인 키드냅 사건들과 성범죄에 희생당하는 어린이들에 대한 잊지 못할 기억을 다소 슬픈정서에 담는다. 그 역시 어버이로서 최근 심각한 화제로 떠올랐던 노두순 사건처럼 소중함을 빼앗기고 잃어버린 아이들을 기억을 위한 공간으로 초대하는 것은 사라진 자들에 대한 애도의 기념이자 그들의 죽음이 아닌 생을 잊지 말자는 기록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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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창용_dream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1×117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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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창용_bruc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1×117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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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창용_bruc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1×117cm_2008
반면 화면 가득 재기 발랄함이 넘치는 신창용의 회화는 키덜트 문화와 네오팝의 경계에 걸쳐져 있는 비디오 세대로부터 갓 도착한 기억이다. 그의 기억은 컬러텔레비전의 강렬한 빛의 빔의 무더기로부터 출발한다. 순수한 믿음이 살아있는 어린이의 세계에서는 생생한 현실인, 슈퍼맨이나 산타클로스와 같은 초월적 존재들의 활약과 승리에 대한 강한 충격은 그가 캔버스로 소환한 과거 압도적인 파워의 슈퍼 영웅으로 대변되었다. 화면 속 이소룡의 얼굴에 배어있는 엷은 미소에서 치열한 격투 뒤의 승리감을 공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은 아마도 유년기의 세계는 사라져버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이루지 못한 자기만의 꿈에 대한 향수일 수도 있고, 실제로 온통 싸움판인 진짜 세계에서 무거운 사회적 권위에 저항하는 작은 일탈을 대신해 주는 심리적인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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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선_兒孩(천사)-날으는 들꽃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62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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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선_兒孩-날으는 들꽃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3×91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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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선_兒孩-날으는 들꽃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5×50cm_2009
이상선은 그저 아이가 아닌, 식민지 지식인 내면의 고독과 소외를 그려낸 시인 이상의 가장 유명하지만 난해한 작품인 '오감도'에 등장하는 '兒孩'의 모습을 그리고자 한다. 아이들의 시선의 끝을 쫓다 보면 유리는 어느덧 유년기로 돌아가 있다. 아이가 바라보는 누군가의 모습이 우리 자신의 유년기의 모습이다. 그는 인쇄 매체의 사진 속에서, 또는 익명의 사진 속에서 찾아낸 소외되거나 불완전한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표정을 섬세하게 포착해 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회화 작업에 이 이미지를 능숙한 드로잉 으로 옮긴다. 그러나 단순히 비슷하게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인물 사진에는 없었던 나르는 꽃잎이나 굵은 윤곽선과 같은 양념들이 더해지고, 복잡한 배경은 과감히 단순화시키며 담백하고 온화한 색감의 물감이 더해진다. 이와 같은 회화적인 요소들의 조절은 아이러니 하게도 등장한 아이들의 복잡 미묘한 내면의 충돌을 더욱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이다. 다시 보면 아이가 그저 아이로 보이지 않고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고독하고 상실감에 쌓여있는,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의 내면을 담고 있는 그릇으로 여겨진다. ● 이 전시에서 유년기는 아이라는 대상으로 형상화 되고 있지만, 우리들은 치열한 현실에서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는, 고독하고 공허한 스스로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유년기를 통해 현실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이 전시는 우리가 잠시 스위치를 꺼두었던 유년기라는 잃어버린 시간으로 여행하기 위한 기회이다. 결국 우리의 기억을 거슬러 오르는 여행이며 그 흐름의 방향은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다. ■ 최흥철
Vol.20100210a | 유년기로부터-강민수_신창용_이상선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