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이치는 폭설 / 윤창도
산 정상에 올랐을 때부터 쏟아붓는
충만한 진눈깨비
벌려 놓은 계절의 끝을 여며 닫으려는지
산골짜기 깊게 팬 주름을 덧칠하며 덮고 있다
휘몰아치며 자지러지는, 겹겹이 치는 하늘 장막
떠나온 산길
되돌아가자니 너무 멀리 와 버려서 걱정 태산길
하염없이, 하염없이 덤벼드는 무심의 눈발
도깨비바늘처럼 착착 몸에 달라붙는다
고함 내질러도 켜켜로 쳐 놓은 빗장 열지 못할 공포
시야를 점점 좁혀 오고 있다
빽빽이 우거진 눈보라
산길 끊어지기 전에 하산해야 한다
속눈썹 젖어 오는데, 아이젠도 없이
급작스레 하늘 그물에 걸려든 망막한 마음
준비 덜 된 노후와 닮은 첩첩의 두려움
서늘한 무늬가 쳐져 있다
진눈깨비는 어둠을 몰고 저녁을 훔치러 오고 있다
-『물의 얼룩이 올챙이라니』, 시산맥, 2025.
감상 – 갑작스런 폭우로 자동차 와이퍼를 최대 속도로 했음에도 빗방울과 안개로 앞이 보이지 않아서 긴장했던 기억이 있다. 차선도 불분명하고 앞의 차도 뒤의 차도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공포로 다가오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시인이 마주했을 공포는 어떠한 것이었을까. 평소 산행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혼자 산을 찾았다가 갑작스런 일기 변화로 낭패스런 상황에 놓였을 수도 있겠고, 반쯤 산악인이라 하더라도 준비 없이 나섰다가 예상치 못한 폭설에 체력 소모와 하산의 어려움을 계산하고 걱정하는 모습일 수도 있겠다.
이처럼 있을 법한 상황을 표현하되, 그때의 상황이 한 편의 그림처럼 연상되게끔 하는 건 시인의 능력이다. “휘몰아치며 자지러지는, 겹겹이 치는 하늘 장막”에서 이리저리 치는 바람 속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진눈깨비에 이어 눈보라가 천지를 덮는 광경이 그려진다. 이때의 등산객 마음을 읽듯 “걱정 태산길”이라고 하니 단어 뉘앙스에 조금 웃게도 되고 상황에 딱 맞는 절묘한 표현이란 생각도 든다.
여기까지는 상황의 절실함과는 별개로 낭만적 느낌도 있으나 산행에서 겪는 불안과 두려움을 “준비 덜 된 노후”에 견주는 데서 애써 현실을 환기하는 시인의 태도가 드러난다. 시인의 말마따나 진눈깨비는 사람의 저녁을 노리고 있는 건가 싶다. 때로 진눈깨비로 예고하고, 폭설로 덮치는 무뢰배가 되어 올 수도 있겠다. 그 이후의 상황엔 대해서 시인은 말을 아꼈다.
그것이 산행이든 노후든 간에 준비가 되면 된 대로, 덜 되면 덜 된 대로 사는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누가 얘기할 것 같으면 무책임하다는 말을 듣기 딱 좋겠다. 그럼에도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폭우도 폭설도 대비해야겠지만 노후를 위해서 당장 하고 싶은 일을 마냥 망설이고 주저하다가 그만두는 것도 딱한 일이지 않는가 하는.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