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남자들,
특히 30-40대까지의 남자들은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선친이 잠들어계신곳을 이발하러 간다.
이발카니깐 쫌 의아해 하는 분들이 있겠는데......ㅋ~~
내가 오늘 막 지은 용어이다.
벌초라고 표현해야겠지.
우리집안의 산소군은
경남 창녕군, 밀양시, 경북 청도군, 이렇게 3개소에 분포되어 있다.
그중에서 우리가족이 관리하는 산소군은 창녕에 6개소가 있는데,
어제 이발을 해드리고 왔다. 우리가족이래봐야 나하고 사촌동생인
70년 개띠녀석 한놈, 이렇게 둘뿐이다. 아버지3형제분이 각각 아들 한명씩만 두고
그중 제일 윗 사촌형님은 4년전 교통사고후유증으로 이세상을 뜨시었다.
어제는 그래서 나와 그동생 둘이서 벌초를 해야했다.
그 선산은 4기가 한곳에 모여 약 150평의 구역이다.
그동생은 인천에서 직장생활하는데, 안부를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아버지(내겐 큰아버지)산소가 있기에 전화를 해서 동참을 하게 된것!
아침10시에 내가 먼저 도착하여 바리깡을 꺼내서 작업전 점검을 하고 있는데
동생이 늦지않게 도착했다. 인천에서 그시간에 온것이 상당히 힘들것이라.....
마음이 측은했다. 작업을 빨리 해치우고(2시간만에) 간단히 술과 과자를 올려놓고
산소에 누워계신 선친들께 절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 이 산소의 주인장들께서는 제일 윗봉분이 할아버지, 할머니 그아래에 5년전 돌아가신
동생의 아버님이신 큰아버지, 그리고 그 아래에 위에서 말한 사촌큰형님........
작업과 추모를 다 마치고 동생과 마을아래에 있는 우시장안에 들러 선지국밥을 나누고
또다시 먼길을 가야하는 동생을 아쉽게 보냈다. 세월이 점점 더 흘러 방계가족이 늘어나고,
생활무대가 더 멀어지면 사촌간이라도 점점 만나는 기회가 줄어들것이다.
그러나, 현시대는
제사, 벌초, 명절차례같은 행사가 흩어진 가족을 규합시켜주는 유일한 행사일것이다.
예전에 나도 어렸을때는 이런 행사들의 의미를 몰라 참석하는게 짜증이 났었는데,
지금 나도 가족을 만들었고, 사회가족의 개념을 알고나니 그런 행사들의 중요성을 알게되었다.
좌우간
올해부턴 우리집안도 제사를 안지내니 앞으로 만날기회가 더 줄어들었다.
(제사를 맡으신 큰집에서 자손이 끊어져 모든제사를 절에 올림)
헤어지기전 산에서 동생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었다.
그중에서
"윗큰아버지는 돌아가신후 영천의 국군묘지로 보내달라 하셨고,
우리아버지께서는 진해의 납골당에 모셔달라 사전유언하셨다...."
"앞으로 큰아버지 살아계실 때까진 이 산소를 내가 관리할것이지만,
그 이후엔 나도 잘 모를것 같다...." 라고
가족이라........
돌아오는 차안에서 나로부터 시작된 나의 가족들인
11살, 9살인 아들과 딸이 많이 보고싶어졌다.
그러나 현재는 보고싶어도 쉽게 볼수 없는곳에 있으니
그리움뿐!
- 그녀석들은 조기유학으로 미국에 있다.
지난휴가때 산소답사하면서 들린 화왕산정상
첫댓글 애쓰네.사진보니 니는 군사 생활도 잘 해냇을거같네.
상병때 부사관말뚝박으라는 회유를 무수히 받았던적이 있었지~~~~그랬더라면 고양, 파주등지에 아마도 살고 있었을거야.
너 혹시 너무 표나는 비밀요원 아니니? 공무원으로 위장하여 있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