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부탄 방문 일정을 마치고 트롱사를 출발하여 하루 종일 한국으로 이동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숙소에서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5시 55분에 트롱사를 출발하여 파로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출발한 지 1시간이 경과한 후 길가 식당에 들러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부탄 중앙 정부 공무원인 이시(Yeshi) 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시 님은 대학을 졸업하고 올해 갓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젊을 때는 무슨 일이든지 가리지 말고 해 봐야 내가 배우는 게 많아집니다. 지금 이시 님은 중앙 정부의 하급 공무원이기 때문에 잡일이 많을 것입니다. 차를 한잔 가져다 달라고 하면 얼른 가져다 주고, 서류를 써오라고 하면 얼른 써서 제출하는 등 일을 가리지 말아야 해요. 지금은 힘들지만 나중에 지나 놓고 돌아보면 지금 하는 경험이 큰 자산이 됩니다. 또 JTS 프로젝트를 하면서 3년 정도만 스님을 따라다녀도 인생의 큰 경험이 될 거예요. 나중에 공무원을 그만두더라도 3년 동안은 천일기도를 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일에 집중해 보세요. 그러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몸이 아프면 물론 쉬어야 해요. 그런데 몸이 안 아프면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건강에 좋아요.
아직 나이가 젊기 때문에 3년이라는 시간은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에요. 중앙 정부에서 일하는 것이 힘들기는 합니다. 대신에 국가를 어떻게 운영하는지 종합적으로 배울 수가 있습니다. 3년이 지나면 부탄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운영이 되는지 감을 잡을 수 있어요. 그러면 설령 나중에 공무원을 그만두고 나와서 개인 사업을 하게 되더라도 어떻게 해야 사업이 잘 되는지 금방 방향을 잡을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국가 정책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남들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금 힘들다고 해서 그만두면 안 돼요. 친구들이 ‘빨리 그만두고 호주로 와’ 하고 말해도 흔들리면 안 됩니다. 그만두더라도 최소한 3년은 하고 그만두어야 해요. 그래야 내가 배우는 게 있습니다. 3년만 잘 견디면 스님이 한국에도 한 번 초대할게요.”
이시 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네. 오늘 스님의 하루를 읽어보았는데요. 어떤 사람이 성격이 외향적이지 않아 직장에서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스님한테 질문하는 것을 읽었어요. 저도 내향적이어서 팀장님한테 제대로 하고 싶은 말을 못 하는 게 고민이었습니다. 스님의 답변을 읽고 나서 제 고민도 해결이 되었습니다.”
“잘했어요. 이시 님도 스님한테 묻고 싶은 게 있으면 물으면 돼요. 한 달에 두 번씩 영어 통역으로 진행하는 온라인 즉문즉설 강연이 있으니까 그 프로그램에 참석해서 질문하면 돼요.”
“예, 알겠습니다.”
식당을 나와 다시 차를 타고 산속으로 난 도로를 달렸습니다.
오전 10시에 푸나카에 도착하여 잠시 차를 한 잔 마시고 다시 가던 길을 갔습니다.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산을 두 개 넘은 다음 낮 12시에 팀푸에 도착했습니다. 팀푸에 도착하자 외교부 직원이 스님의 여권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지워진 비자 내용을 복원하고 유효 기간을 연장해 주었습니다. 부탄 중앙 정부 공무원인 이시 님과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12월 말에 오면 다시 봅시다.”
“이번에도 많이 배웠습니다. 스님, 조심히 가세요.”
팀푸 시내에 위치한 린첸다와(Rinchen Dawa) 님의 집에 잠시 들러 짐을 챙긴 후 팀푸를 출발하여 파로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2시에 파로 공항에 도착해 수하물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했습니다.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지난 4월에 스님이 부탄을 답사했을 때 함께 동행했던 부탄 비구니 재단의 실무자인 체왕(Tshewang) 님과 케장(Kezang) 님을 만났습니다. 11월 1일부터 여성 INEB(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정토회를 방문하기로 했는데, 오늘 한국으로 가기 위해 공항에 왔다고 합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탑승 시간이 되어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3박 4일 동안의 부탄 방문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오후 4시 20분에 파로 공항을 출발했습니다.
기내식으로 늦은 점심 식사를 하고 원고 교정을 보는 사이 비행기는 2시간 30분을 이동하여 현지 시각으로 저녁 8시에 방콕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수하물을 찾아 공항을 나온 후 부탄 비구니 재단 실무자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밤 9시가 넘어 다시 수하물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한 후 탑승구로 향했습니다. 탑승 시간이 되기 전까지 다시 원고 교정을 하다가 밤 11시 15분에 방콕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밤새 인천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19일 청년 경주 역사 기행에서 청년들과 대화 나눈 내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토록 싫어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가는 게 싫어요
“저는 요즘 제가 그토록 싫어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점점 닮아가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자기의 뜻을 거스르거나 다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폭언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제가 몸서리치게 싫어했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그런 아버지를 대하는 것이 힘들어 최근 몇 년 동안 아예 연락도 하지 않은 채 지내기도 했는데요, 그런데 지금 제가 아버지를 그대로 닮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 마음의 상처를 더 많이 주고 있습니다. 이런 제 자신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고 있습니다. 어떤 삶의 태도와 자세로 살아가야 아버지를 닮아가지 않을 수 있을까요?”
“자기를 바꾸려면 일단 아버지와 화해를 해야 합니다. 아버지하고 같이 좀 살아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렇게 같이 살아보면서 아버지가 어떻게 하든 내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보는 연습을 해보는 겁니다. 질문자가 ‘아버지의 성질은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아버지는 저런 성질을 갖고도 우리들을 낳고 키워 주셨다’ 이렇게 마음을 돌이켜서 그런 아버지를 수용할 수 있으면 내 삶도 달라지게 됩니다. 앞으로 남자를 만나 결혼하거나 아이들을 낳아서 키워도 아버지처럼 상처 주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그걸 극복하지 못하면 질문자는 가까운 사람들한테 아버지의 모습과 똑같이 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럴 확률이 높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모진 시어머니 밑에서 모진 며느리가 나온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군대에서 상사한테 아주 심하게 괴롭힘을 당한 사람이 상사가 되면, 본인은 부하에게 잘 대해주게 될까요? 본인도 똑같이 부하를 괴롭히게 될까요? 본인도 똑같이 부하를 괴롭힐 확률이 높습니다. 오히려 ‘내가 당했던 일에 비하면 네가 겪고 있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이러면서 자기가 얼마나 더 세게 괴롭힘을 당했는지 자랑합니다. 인간의 심리가 그렇습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아버지와 화해를 해야 합니다. 아버지와 같이 사는 것이 지금 당장은 어렵다면, 집에서 혼자라도 절을 하면서 이렇게 기도를 하면 좋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짜증 내고 고함을 지른 것이 어린 저에게는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어른이 되어서 생각해 보니 그건 아버지의 성질이었을 뿐 나에게 상처를 주려고 그랬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뇌며 아버지와 마음속으로 화해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겁니다. 아버지는 자기 성질대로 그렇게 살았던 것입니다. 질문자도 지금 자기 성질대로 그렇게 하는 것이지 꼭 작정하고 일부러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히려고 그러는 건 아니잖아요. 자기도 모르게 그런 성질이 나오는 겁니다. 그것처럼 아버지도 나를 괴롭히려고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자기 성질을 못 이겨서 고함을 치고, 자기 뜻대로 안 되니까 물건을 집어던졌을 뿐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어린 내가 상처를 받은 겁니다. 상처를 준 사람은 없는데, 상처를 입은 사람은 생기게 된 겁니다.
내가 어른이 되어 돌아보니까 아버지의 행동은 특별히 나쁜 행동이 아니고 그냥 자기 성질대로 살아온 것일 뿐인 겁니다. 내가 성질을 내듯이 아버지도 그렇게 성질을 낸 겁니다. 그런 아버지를 지금 내가 이해해야 합니다.
‘아, 아버지도 그때 힘드셨구나. 그래서 그 야단을 피우셨구나. 그것도 모르고 제가 아버지를 미워해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참회 기도를 하다 보면 마음속에서 조금씩 아버지와 화해가 되어 갑니다. 물론 어떨 때는 확 마음이 일어나서 ‘아버지가 오히려 나에게 사과를 해야지 내가 왜 아버지한테 참회를 해야 해?’ 이러면서 염주를 집어던지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이런 고비를 넘기면서 꾸준히 기도를 해야 합니다.
‘아버지도 정말 힘드셨구나! 세상이 자기 뜻대로 안 되어서 안 그래도 힘든데, 마침 옆에서 나도 말을 안 들으니까 나한테 화를 내신 거구나.’
이렇게 아버지가 깊이 이해가 되면 자기 속에 있는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씻겨져 나가게 됩니다. 그러면 아버지를 다시 만나도 과거의 기억은 남아 있지만 트라우마가 작용하지는 않게 됩니다. 그러면 질문자도 남편이나 자식들한테 상처를 주지 않게 되죠.”
“아버지와 화해를 한 것은 아닌데, 아버지의 행동을 어느 정도는 수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못 참았다면 지금은 좀 참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막상 아버지하고 같이 살아보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집을 뛰쳐나올 거예요. 그러니 우선 혼자서 방금 말한 것처럼 기도문을 갖고 백일기도를 해 보세요. 백일 후에 다시 아버지한테 가서 얘기해 보니 또 마음이 불편하다면 다시 백일기도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아버지한테 가서 점검을 해봐야 합니다. 내 업장이 소멸했는지는 아버지로부터 자극을 받았을 때 트라우마가 얼마나 작동하는지 점검해 보면 알 수 있어요. 아버지가 화를 낼 때 오히려 불쌍한 마음이 든다든지, 아버지의 심정이 이해되는 마음이 들면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상처가 딱 건드려지면 ‘또 저런다! 아직도 성질을 못 버렸다’ 이렇게 반항심이 팍 튀어나오게 됩니다. 그러면 아직 상처가 치유된 게 아니라고 볼 수 있어요. 스님이 말을 쉽게 해서 그렇지 실제로 정말 행하기 어려운 거예요. 이것을 업장 소멸이라고 합니다. 아버지로부터 자식으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운명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아버지와 화해는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데, 제가 싫어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싫습니다.”
“아버지하고 형식적인 화해를 하라는 게 아니라 아버지를 온전하게 이해하는 마음을 내라는 겁니다. 내 마음속에 상처가 치유되면 내가 하는 행위도 바뀌게 된다는 거예요. 과거의 상처가 지금의 행위를 유발하는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알겠습니다.”
“대답은 알겠다고 해도 쉽지는 않아요. 이것이 바로 운명을 바꾸는 길입니다. 집안에 대물림해서 내려오는 운명을 끊어내고, 내 자식부터는 그 운명이 안 내려가게 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도 그런 아버지에게 상처를 입었지만 나도 자식한테 똑같이 상처를 주고, 아이도 자라서 또 자기 자식들한테 상처를 주어서 대물림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이 윤회를 끊어줘야 합니다. 그러려면 아버지하고 진심으로 화해를 해야 합니다. 아버지의 행위를 봐도 내 속에는 상처가 없어야 해요. 상처가 없어졌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어떤 자극을 받았을 때 감정이 안 일어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누구한테 성추행을 당한 것이 상처로 남아 있으면, 이것이 앞으로의 연애나 성생활에 왜곡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반면에 상처가 치유가 되면 그때 당한 걸 기억해도 분노라든지 슬픔이라든지 저항이라든지 이런 감정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냥 하나의 기억만 있을 뿐입니다. 생각만 해도 감정이 막 일어나면 아직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거예요. 내가 어깨를 다쳐서 응급 치료만 대충 해둔 상태라면, 누가 어깨를 툭 치면 ‘아야! 어깨를 왜 쳐!’ 이렇게 성질이 팍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안 다친 상태에서는 누가 어깨를 툭 쳐도 그냥 접촉으로 끝납니다. 그것처럼 누가 자극을 줘도 내가 아무렇지 않으면 상처가 치유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껍데기만 나았다고 나은 게 아니에요. 몸의 상처도 다 나았다 싶어도 날이 궂으면 시큰시큰 아픕니다. 수술하고 나서 겉으로는 실밥을 다 뽑아도 얼마 동안은 불편한 것과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은 밤새 비행기 안에서 좌석에 앉은 채로 쪽잠을 잔 후 오전 6시에 인천 공항에 도착하여 곧바로 서울 정토회관으로 이동하여 짐을 풀고 로힝야 난민 지원 문제로 JTS 대표와 회의를 합니다. 저녁에는 원주에서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