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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여포(呂布, ?~198년)
인중여포 마중적토 (人中呂布 馬中赤兎)
정사에서는 전한 시대 비장이라 불린 이광과 비견될 정도로 무명(武名)을 떨친 인물이자《조만전》에 따르면 인중여포 마중적토(人中呂布 馬中赤兔)로 기록되는 등, 당대 이름을 날리던 여러 명장들 중에서도 특히나 명성을 떨치던 맹장이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정사의 행적에 각색이 추가된 묘사로 인해 삼국시대 최강의 무장 중 한 명이자 패륜아로 인식되는 인물이다. 현대 창작물에 들어서는 초선과의 사랑을 강조하며, 전장의 로맨티스트로 그려지기도 한다. 2010년 중국에서 방영된 드라마 《삼국》과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 등을 통해서 연의에서 표현된 여포의 불륜 묘사 및 패륜적인 모습보다 초선과의 로맨스가 강조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여포는 활쏘기와 기마에 능하고 완력이 남보다 뛰어나 비장(飛將)으로 불리며 사납고 용맹하여 병주에서 복무했다. 병주자사 정원이 기도위가 되어 하내에 주둔하니 여포를 주부(主簿)로 삼아 크게 친근하게 대우했다. 영제가 붕어하자 정원은 군을 이끌고 낙양으로 가 하진과 함께 여러 황문들을 주살할 것을 도모하고 집금오에 임명되었다.
189년, 하진이 패망하고 동탁이 수도로 들어왔는데, 장차 난을 일으키기 위해 정원을 죽이고 그 군사들을 아우르려 했다. 동탁은 여포가 정원에게 신임 받는 것을 보고 여포를 꾀어 정원을 죽이게 했다. 여포가 정원의 머리를 베어 동탁에게로 나아가니 동탁은 여포를 기도위로 삼고 매우 아끼고 신임하여 부자(父子) 사이가 되기로 맹세했으며 이후 여포는 점차 승진하여 중랑장에 이르고 도정후에 봉해졌다.
참고로 훗날 언급되는 여포의 딸의 혼사 건(198년)을 감안해볼 때에 이미 이때 아내와 딸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후 후한서 동탁열전에 따르면 낙양 사람 수백만을 장안으로 옮기는데 군대를 동원해서 몰아서 재촉하니 서로 짓밟히고 굶어죽고 시체가 길가에 가득했다. 동탁이 스스로 필규원 안에 주둔하고 궁궐이나 관청이나 민가를 모조리 태워서 2백 리 안에 남겨진 게 없었다. 다시 여포를 시켜서 황제들의 능과 공경 대신의 무덤도 파헤쳐서 진기한 보물을 거두었다.
손견전 주석 영웅기에 따르면 처음 손견이 동탁을 토벌할 때, 양현의 양인에 도착하였다. 동탁 또한 보병과 기병 5천을 보내 맞게 하였는데, 동군태수 호진을 대독호로 삼고, 여포를 기독으로 삼고, 그 나머지 보병과 기병의 장교와 도독인 자가 아주 많았다. 호진이 성격이 급해 미리 선언했다.
지금 이번 출행에서는 응당 한명의 청수(손견)를 참수해야 군대를 정돈해 돌아간다.
여러 장수들이 이를 듣고 그를 미워했다. 군대가 광성에 도착하니, 양인성과 수십 리 거리였다. 날이 저물자 군사와 말의 피로가 극심하여 응당 멈춰서 묵어야 했지만, 또한 본래 동탁에게 받은 명령서에는 광성에서 묵으며 말을 어루만져 먹이고, 밤에 진군하여 새벽을 틈타 성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여러 장수들이 호진을 미워하고 꺼려서, 적들이 일을 망쳐주길 바랐지만, 여포 등이 선언했다.
양인성 성중의 적들이 이미 도주하였으니, 응당 추격하여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놓칠 것이다.
바로 밤에 진군하였지만, 성중의 수비가 이미 갖추어져 있어 엄습할 수 없었다. 이에 관리와 병사들은 주리고 목말라, 사람과 말이 극도로 피곤하였는데, 또 밤이 되니 진영에는 참호와 보루도 없었다. 갑옷을 풀고 휴식을 취하는데, 여포가 또 깜짝 놀라 외쳤다.
성중의 적들이 나왔다.
군사들은 요란하게 달아나 모두 갑옷을 버리고 안장과 말을 잃었다. 10여리를 행군하여 적이 없음을 알자, 날이 밝아올 쯤 다시 되돌아와 병기를 수습하고 진격하여 성을 공격하려 했다. 성의 수비는 이미 견고하고 파놓은 참호도 깊으니, 호진 등은 공격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후한서 동탁 열전에 따르면 동탁이 몸소 출전하여 손견과 제릉묘한에서 싸웠으나 동탁이 패주하고 민지에 다시 주둔한 뒤에 섬(陝) 지방에서 병사를 모았다. 손견이 낙양 선양성문에 진격하여서 다시 여포를 공격하니 여포가 또 격파되어 패주하였다. 손견이 곧 종묘를 깨끗이 하고서 여러 능묘를 정비한 뒤에 군사를 나누어서 함곡관을 나와서 신안, 민지간까지 가서 이(涞) 강을 경계로 동탁과 맞섰다.
동탁은 스스로 남들을 무례하게 대했기에 그들이 자신을 해칠까 두려워하여 거동할 때 늘 여포로 하여금 자신을 호위하게 했다. 그러나 동탁의 성정은 굳세면서도 편협해 화가 나면 후환을 생각지 않았다.
일찍이 여포가 사소하게 뜻을 거스르자 수극을 뽑아 여포에게 던진 일이 있었다. 여포는 용력하고 민첩하여 이를 피하고 동탁에게 사죄하여 동탁의 화 또한 풀렸으나, 이로 말미암아 은밀히 동탁을 원망하게 되었다. 동탁은 늘 여포에게 중문을 지키게 했는데, 여포는 동탁의 시비와 사통하니 그 일이 발각될까 두려워하며 내심 불안해했다.
그 이전에 사도 왕윤은 여포가 동향 사람으로 기골이 장대하고 튼튼하다하여 그를 두텁게 대우했다. 그 뒤 여포는 왕윤을 방문하여 동탁이 자신을 거의 죽일 뻔한 일을 말했다. 이때 왕윤은 복야 사손서와 함께 동탁 주살을 모의하고 있었는데 이로써 여포에게 내응하도록 청했다.
여포: 부자(父子) 사이인데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왕윤: 그대의 성은 여(呂)이니 본래 혈연도 아닌데 거기다 지금 죽음을 걱정할 겨를도 없는데 무슨 부자지간이라 하시오?
마침내 여포가 이를 허락하고 손수 칼로 동탁을 찔렀다.
후한서 동탁열전에 따르면 당시에 왕윤이 여포와 공모하고 복야 사손서를 포섭하여서 동탁을 처형하려 했다. 어떤 사람이 '여(呂)' 자를 베(布)에 쓰고서 등에 지고서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포입니다."라고 노래하였다. 동탁에게 일러바치는 사람이 있었지만 동탁은 깨닫지 못하였다. 192년 4월에 황제가 병에 걸렸다가 새로 치유되자 백관이 미영전에 모였다. 동탁이 조복을 입고서 수레를 타고 가는데 말이 놀라 뛰더니 진흙탕에 빠져서 다시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었다. 동탁의 첩이 가지 말라고 했지만 동탁이 듣지 않고 곧 떠났다.
병사들이 늘어서서 길가를 가득 채웠다. 자신이 사는 보루를 지나서 궁궐에 다다르는데 좌우로 보병과 기병이 호위하여 사방을 방비하고 여포 등에게 명령하여서 앞뒤를 경호하게 하였다. 왕윤이 사손서에게 몰래 그 일을 알려주고 스스로 조서를 쓰게 한 뒤에 여포에게 주었다. 기도위 이숙과 여포가 한 마음으로 용사 십여 인에게 호위 병사의 옷을 입혀서 북액문 안에서 동탁을 기다리게 하였다.
동탁이 들어가려는데 말이 놀라며 가지 않으려 하니까 괴이하고 놀라워서 돌아가려 하였다. 여포가 계속 갈 것을 권하니 마침내 문에 들어섰다. 이숙이 극으로 찔렀지만, 동탁이 속에 갑옷을 받쳐 입어서 극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고 팔만 다치고서 수레에서 떨어지면서 고개를 돌려 크게 소리쳤다.
동탁: 여포야! 어디 있느냐?!
여포: 조서를 받들어서 역적을 죽이러 왔다!
동탁: (크게 욕하며)이런 개자식(用狗)이? 네가 어찌 이럴 수 있느냐?!!
여포가 기합을 넣어서 창으로 동탁을 찌르고서 병사들을 다그쳐서 어서 베게 하였다. 주부 전의(田儀)와 동탁의 창고지기가 동탁의 시체 앞에서 애도하자 여포가 이들을 죽였다.
마침내 동탁을 죽이고 삼족을 멸했다. 주부 전경(田景)이 동탁의 시신 앞으로 달려가니 여포가 또 그를 죽였다. 모두 세 사람을 죽이니 나머지 사람들은 감히 움직이는 자가 없었다.
이후 이각, 곽사전에 따르면 동탁이 죽자 여포는 이숙을 시켜 섬(陝)으로 가게 하여 황제의 명령으로 우보를 주살하려 했다. 우보 등이 역격해 이숙과 싸워 이숙이 홍농으로 패주하자 여포가 이숙을 주살했다.
왕윤은 여포를 분위장군, 가절로 삼고 의례는 삼공에 비견되도록 하고(의동삼사, 儀同三司) 온후(溫侯)로 올려 봉하여 함께 조정을 장악했다.
후한서 왕윤 열전에 따르면 애초에 왕윤이 동탁의 부곡(部曲) 사면을 의논하고, 여포 역시 수차례 그러도록 권한다. 그 뒤 의심하여 말한다.
이 패거리는 죄가 없고 그 주인을 따랐을 뿐이지만, 지금 흉악한 역적으로 일컫고 특별히 사면해준다면 스스로 의혹을 일으키게 하기에 족하니 편안하게 하는 길이 아니오.
또한 여포도 동탁의 재물에 대한 처분을 두고 왕윤과 서로 의견충돌이 굉장히 심했는데 정작 왕윤은 평소 여포를 가볍게 보고 검객으로 대우해서 이에 여포는 이전부터 그 공로에 기대어 스스로 자주 으스댔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왕윤에 대해 점차 불만이 쌓이고 거리감을 두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동탁 잔당에 대한 처리를 놓고 그렇게 왕윤과 여포와의 사이가 멀어지자 이틈을 노린 가후는 이각 등 동탁의 잔당을 사주하여 난을 일으키자고 제안하자 이들은 마침내 서로 결탁한 뒤 돌아와 장안성을 공격했다.
영웅기에 따르면 곽사는 성 북쪽에 있었다. 여포는 성문을 열고 군을 이끌고 곽사에게로 나아가 말했다.
군사들을 물리고 다만 우리끼리 몸소 싸워 승부를 가름하자.
곽사와 여포는 더불어 싸웠는데 여포가 모로 곽사를 찌르자 뒤에 있던 곽사의 기병이 앞으로 와 곽사를 구했다. 이에 곽사와 여포는 각각 그만두었다.
여포: 공도 함께 가시지요.
왕윤: 국가를 평안케 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바람이니 만약 이를 이루지 못하면 몸을 바쳐 죽을 뿐이오.
동탁이 죽은 후 60일이 지나 왕윤정권이 무너지고 마침내 이각 등은 장안으로 들어왔다. 이때 이각, 곽사전 주석 한기에 따르면 여포는 군이 패하자 청쇄문 바깥에 말을 세워놓고 왕윤을 데려가려 했으나 그가 거절했다. 결국 여포는 기병 수백 기를 이끌고 무관을 나와 원술에게로 가려 했다.
이후 여포는 스스로 동탁을 죽여 원술의 원수를 갚았으므로 그의 덕을 보고자 하자 원술은 옛 일이야 그러니해도 어쨌든 일단 죽은 손견을 대신할 칼잡이의 필요성과 동탁을 몰아내어 온후까지 되었으니 받아들었다. 하지만 그 이후 여포가 원술이 자신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여겨 그의 영역에서 백성들 상대로 노략질을 해대는 바람에 내보냈다고도 한다.
이에 북쪽으로 원소에게로 가니, 원소는 여포와 함께 기주 상산국에서 장연을 공격했다. 장연은 여포와 마찬가지로 비장이란 별명으로 불렸기에 어떤 면에서는 비장끼리의 대결이었다. 장연에게는 정병 1만 남짓에 수천 기병이 존재했고, 여포에게는 적토마라 불리는 좋은 말이 있었다. 그가 친근하게 지내던 성렴, 위월 등과 함께 적의 예봉을 꺾고 적진에 돌진하여 마침내 장연군을 격파했다. 꽤나 싱겁게 여포가 장연을 상대로 압승을 거뒀는데, 장연이 이끄는 흑산적 일파는 장연 개인의 용맹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비정규군인 반면 여포와 그를 따랐을 직속부대는 정규군 출신인만큼 병력의 질로 압도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조만전에 따르면 그 때 사람들이 말했다.
사람 중에 여포가 있고 말 중에 적토가 있다.
그리고 군사들을 구해 더욱 늘리고 장졸들이 노략질을 일삼으니, 원소가 이를 근심하고 꺼렸다. 여포가 그 뜻을 알아채고 원소로부터 떠날 것을 청했다.
영웅기에 따르면 여포는 자신이 원씨에게 공(功)이 있다하여 원소 휘하의 제장들을 업신여기며 오만하게 굴고 그들의 관직이 함부로 서치(署置)한 것이라 하여 족히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여포가 낙양으로 돌아간다고 청하자 원소는 여포를 영 사례교위로 삼았는데, 겉으로는 응당 보내줄 것이라 말했으나 내심으로는 여포를 죽이려 했다.
원소는 그가 돌아와 자신을 해칠까 두려워하여 밤중에 장사를 보내 여포를 습격해 죽이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영웅기에 따르면 다음 날, 여포가 출발하려 할 때 원소는 갑옷을 입은 병사 30인을 보내며 여포를 전송하는 것이라 말했다. 여포는 그들을 장막 옆에 멈추게 하고 거짓으로 사람을 시켜 장막 안에서 쟁을 연주하게 했다. 원소의 군사들이 누워있자 여포는 머지않아 장막을 나와 떠났는데 원소의 군사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밤중에 거사하여 여포의 이불을 베고는 여포를 죽인 것으로 여겼다. 다음 날, 원소가 알고 있는 사실을 캐어물어 여포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게 되자 이에 성문을 닫았다. 여포는 마침내 군을 이끌고 떠났다.
그 일이 드러나자 여포는 하내로 달아나 장양과 합쳤다. 원소는 군사들에게 이를 추격하게 했는데 모두 여포를 두려워하여 감히 가까이 다가가려는 자가 없었다.
여포가 원소를 버리고 장양을 좇으려 할 때 장막에게 들렀는데, 서로 헤어질 때 손을 잡고 맹세하니 원소가 이 일을 듣고 크게 원한을 품었다. 장막은 조조가 끝내 원소를 위해 자신을 해치리라 생각하고 내심 스스로 편안하지 못하였다. 이전에 장막은 원소에게 축출당한 한복을 보호한 이력으로 원소와의 사이가 틀어진 상태였으며, 조조는 이 시절에 원소 연합의 일원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결코 무시하지 못할 걱정이었다.
영웅기에 따르면 장양과 그의 부곡(部曲), 제장들은 이각, 곽사의 현상 수배를 받자 함께 여포를 도모하려 했다. 여포가 이를 듣고 장양에게 말했다.
나는 경의 동향이니 경이 나를 죽이더라도 경에게는 미약할 것이오. 차라리 나를 산 채로 붙잡아 팔아넘기느니만 못하니, 그리 한다면 가히 이각, 곽사에게 지극한 관작과 총애를 얻을 것이오.
이에 장양은 겉으로는 이각, 곽사에 따르는 것처럼 했으나 실제로는 여포를 보호했다. 이각, 곽사는 이를 우려하여 다시 크게 봉하는 조서를 내리고 여포를 영천태수로 삼았다.
194년, 조조가 다시 도겸을 정벌하자 장막의 동생 장초는 조조의 장수 진궁, 종사중랑 허사, 왕해와 함께 조조에게 모반할 것을 공모했다. 진궁이 장막을 설득하며 말했다.
지금 연주는 군사들이 동쪽을 정벌하느라 비어있습니다. 여포는 장사로 싸움을 잘해 앞을 가로막을 자가 없으니 만약 잠시 그를 맞아들여 함께 연주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장막이 이를 따랐다.
당초 조조는 진궁에게 군을 이끌고 동군에 남아 주둔하도록 했는데, 마침내 그 군사들로 동쪽으로 여포를 맞아 연주목으로 삼았다. 군현이 모두 호응했고 다만 견성, 동아, 범현만이 조조 편에 남아 수비했다.
조조가 군을 이끌고 돌아와 복양에서 여포와 싸웠는데 조조 군이 불리하여 백 여 일을 서로 대치했다. 이 해는 날이 가물었고 황충이 일어 곡식이 부족해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을 지경이라 여포는 동쪽으로 가서 산양에 주둔했다.
무제기에 따르면 195년 여름, 여포의 장수 설란, 이봉이 연주 산양군 거야현에 주둔했다. 조조가 이를 공격하자 여포가 설란을 구원했는데, 설란은 패하고 여포는 달아났고 마침내 설란 등을 참수했다. 여포는 다시 산양군 동민현에서부터 진궁과 함께 만여 명을 이끌고 와서 싸웠다. 이때 조조의 군사들이 적었는데 복병을 설치하고 기습부대를 풀어 공격하여 이를 대파하니 여포는 밤중에 달아났다.
2년 사이에 조조는 여러 성들을 모두 되찾았고, 연주 산양군 거야현에서 여포를 격파하니 여포는 동쪽으로 유비에게로 달아났다.
장막은 여포를 뒤따르며 장초를 남겨 가속들을 거느리고 진류군 옹구현에 주둔하도록 했다. 조조가 이를 공격해 몇 달 동안 포위하여 함락하고 장초와 그 가속들을 참수했다. 장막은 원술에게 가서 구원을 청하려다 미처 도착하기 전에 자신의 군사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 무렵 진군전에 따르면 유비는 예주자사로 임명된 후, 진군을 불러서 별가로 삼았다. 이때 도겸이 병사하였으므로, 서주에서는 유비를 환영하였다. 유비는 가려고 했는데, 진군이 충고의 말을 했다.
원술은 아직도 세력이 강대하므로 지금 동쪽으로 간다면 반드시 그와 싸우게 될 것입니다. 여포가 만일 장군의 뒤를 습격한다면, 장군은 설령 서주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일은 반드시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유비는 결국 간언을 무시하고 서주로 갔고, 원술과 충돌했다.
영웅기에 따르면 여포는 유비를 만나보고 그를 매우 공경했다. 유비에게 말했다.
나는 경과 더불어 같은 변경 땅 사람이오. 나는 동탁을 주살하고자 한 것인데, 내가 동탁을 죽이고 동쪽으로 나오니 모두 나를 죽이려고 했소.
유비를 청해 장막 안의 부인의 상(床) 위에 오르게 하고는, 부인에게 절하도록 하고 술을 따르며 먹고 마시고 유비를 동생이라 불렀다. 유비는 여포의 말이 수시로 변함을 보고 겉으로는 태연한척 했으나 내심 언짢게 여겼다.
영웅기에 따르면 여포가 물과 뭍으로 동쪽으로 내려와 하비 서쪽 40리 되는 곳에 도착했다. 유비의 중랑장 단양 사람 허탐은 밤을 틈타 사마 장광(章誑)을 여포에게로 보냈다. 그가 말했다.
장익덕(장비)이 하비상 조표와 서로 다투어 익덕이 조표를 죽이니 성중에 대란이 일어 서로 믿지 못합니다. 단양병 천 명이 서쪽 백문성 안에 주둔하고 있는데 장군께서 동쪽으로 왔다는 말을 듣고 모두 기뻐하고 있습니다. 장군의 군사들이 성 서문으로 향하면 단양군이 즉시 성문을 열어 장군을 안으로 들여보낼 것입니다.
이에 여포는 밤중에 진격하여 새벽에 성 아래에 도착했다. 날이 밝자 단양병이 성문을 열어 여포의 군사들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여포는 성문 위에 앉아 보병과 기병으로 불을 놓아 익덕의 군을 대파하고, 유비의 처자식과 군자금, 부곡(部曲), 제장들의 가족을 노획했다.
유비가 동쪽으로 가서 원술을 공격하자 여포는 하비를 습격해 차지하고, 유비가 되돌아가 여포에 귀의했다.
선주전 주석 위서에 따르면 제장들이 여포에게 말했다.
유비는 여러 차례 언행을 이리저리 바꾸었으니 믿고 기르기 어렵습니다. 의당 조기에 도모해야 합니다.
여포가 들어주지 않고 이 일을 유비에게 말했다. 유비는 내심 불안하여 스스로 의탁할 것을 청하고, 사람을 시켜 여포를 설득해 소패에 주둔하기를 원했다. 이에 여포가 유비를 소패로 보냈다.
여포는 유비를 소패에 주둔하게 하고, 서주자사를 자칭했다.
영웅기에 따르면 여포가 처음 서주에 들어왔을 때 원술에게 서신을 보냈다. 원술이 답서를 보내 말했다.
지난 날, 동탁이 난을 일으켜 나의 문호(門戶)에까지 해를 입혔는데, 장군이 동탁을 주살하고 그 수급을 보내니 그 공이 첫째요.
지난 날, 장수 김원휴(김상)가 연주에 이르렀을 때 조조에게 격파되어 거의 멸망할 지경에 이르렀소. 장군이 연주를 격파해 다시 내 면목을 세워주니 그 공이 두 번째요.
유비가 거병해 나와 싸웠소. 내가 장군의 명령을 어김에 힘입어 유비를 격파했으니 그 공이 세 번째요.
장군은 내게 이 세 가지 큰 공을 세워주었으니 받들겠소. 장군은 여러 해 동안 싸우느라 군량이 부족하여 쌀 20만 곡을 보내니 맞이해 주시오.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응당 다시 끊이지 않게 보낼 것이오. 만약 병기와 싸움 도구에 부족한 점이 있으면 크건 작건 오직 명하기 바라오.
여포가 이 서신을 읽고 크게 기뻐하며 마침내 하비로 갔다.
장광전 주석 오서에 따르면 여포가 서주를 습격해서 서주목이 되고 장굉이 손책과 같이 일하지 못하도록 하고자했다. 그래서 여포는 장굉을 무재로 추천하며 편지를 써서 장굉을 보내도록 했다. 장굉은 여포를 싫어했고 또한 그에게 굴복하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손책 역시 장굉을 중히 여기고 있었고 자신을 위해 일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에 여포에게 편지를 써 보내면서 장굉을 보내지 않았다.
원술이 장수 기령 등과 보병과 기병 3만을 보내 유비를 공격하니 광릉에서 대패한 유비는 여포에게 항복하며 구원을 청했다. 여포의 제장들이 여포에게 말했다.
장군은 늘 유비를 죽이고자 했으니 이제 가히 원술의 손을 빌릴 만합니다.
여포가 말했다.
그렇지 않소. 원술이 만약 유비를 격파하면 북쪽으로 태산같은 제장들과 연결될 것이니 나는 원술에게 포위당하게 되오. 구원하지 않을 수 없소.
곧 보병 1천, 기병 2백을 엄비해 급히 유비에게로 나아갔다. 기령 등은 여포가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모두 군을 거두고 감히 다시 공격하지 못했다. 여포는 패(沛) 남서쪽 1리 되는 곳에 둔치고 시종 군사를 보내 기령 등을 청하니 기령 등이 또한 여포를 청해 함께 먹고 마셨다. 여포가 기령 등에게 말했다.
현덕(유비)은 내 동생이오. 동생이 제군에게 곤란을 겪으니 이 때문에 구원하러 왔소이다. 내 성정이 어울려 싸우는 것은 좋아하지 않으나 다만 싸움을 화해시키는 것은 좋아하오.
여포는 문지기 관원에 명해 영문에 극 하나를 세우게 했다. 여포가 말했다.
제군은 내가 극의 가지창 부분을 쏘는 것을 보시오. 적중하면 제군은 응당 화해한 후 떠나고 적중하지 않으면 남아서 결투하시오.
여포가 활을 들어 극을 쏘았는데 극의 가지창 부분을 정확히 맞혔다. 제장들이 모두 놀라 말했다.
장군은 제왕의 위엄을 갖추고 있다.
다음 날, 다시 연회를 베푼 뒤 각자 군을 물렸다.
여포가 비록 사납고 용맹했으나 꾀가 없고 의심하고 꺼림이 많아 그 무리들을 능히 제어하지 못하고 다만 제장들을 믿고 의지했는데, 제장들은 각각 뜻이 달라 스스로 의심하니 이 때문에 매번 싸울 때마다 패전이 많았다.
196년 6월, 밤중에 하내 출신인 여포의 장수 학맹이 반란을 일으켜 군사들을 이끌고 여포의 치소인 하비부로 쳐들어왔다. 청사의 합문 밖에 이르러 함께 함성을 지르며 합문을 공격했는데, 문이 견고해 들어가지 못했다. 여포는 반란을 일으킨 자가 누군지 몰랐기에 곧바로 부인을 이끌고 관을 쓰지 않은 맨머리에 옷을 갖춰 입지 못하고 측간으로 들어가 벽을 밀어내고 빠져나갔고, 도독 고순의 군영으로 가 고순의 군영 문을 곧바로 밀어젖히고 들어갔다.
고순: 장군께서 말하지 않은 것이 있지 않으십니까?
여포: 하내 놈들의 말소리였소.
고순: 이는 학맹이로군요.
고순은 즉시 엄병(嚴兵)하여 하비부로 들어가 학맹의 군사들에게 일제히 궁노를 쏘았다. 학맹의 군사들은 어지러워져 패주했는데 날이 밝자 그들의 군영으로 되돌아갔다. 학맹의 장수 조성이 학맹에게 반기를 드니, 학맹은 조성을 찌르고 조성은 학맹의 한쪽 어깨를 찍었다. 고순이 학맹을 참수하고는 조성을 수레에 태워 여포에게로 보냈다. 여포가 묻자 조성이 대답했다.
학맹은 원술의 모책을 받들었습니다.
함께 모의한 자가 모두 누구인지 묻자 조성이 말했다.
진궁이 공모했습니다.
이때 진궁이 그 자리에 있었는데 얼굴이 붉어져 곁에 있던 사람들이 알아차릴 정도였다. 여포는 진궁이 대장이므로 이를 불문에 부쳤다.
조성: 학맹이 늘 이에 관해 물었으나 저 조성은 여장군은 대장으로 비범하니 공격할 수 없다고 했으나 뜻밖에 학맹이 미쳐서 혹되어 그치지 못했습니다.
여포: 경이 건아(健兒)요!
조성을 잘 치료하고 보살폈고 상처가 다 낫자 학맹의 옛 군영을 사정을 살펴서 어루만져 위로하고 그 군사들을 거느리게 했다.
원술은 여포와 결탁해 원군으로 삼고자 하여, 이에 자신의 아들(원요)을 위해 여포의 딸(여씨)을 청하니 여포가 이를 허락했다. 원술은 사자 한윤을 보내 제호를 참칭한 일에 관해 여포에게 고하고 아울러 며느리를 맞이하고자 했다.
패상 진규는 원술과 여포가 혼인으로 맺어지면 서주와 양주가 굳게 맹세하여 서로 응하는 것이니 장차 나라 전체의 어려움이 되리라 여겼다. 이에 여포에게로 가서 설득했다.
조조가 천자를 봉영해 국정을 보좌하니, 장군께서는 의당 그와 함께 힘을 모아야 합니다. 지금 원술과 혼인을 맺으면 천하에 불의의 이름을 덮어쓰게 되니 필시 누란지위가 있을 것입니다.
여포는 또한 원술이 당초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은 일에 원망을 품고 있었으므로, 딸이 이미 길을 떠났으나 이를 뒤쫓아 되돌아오게 하여 혼인을 끊고, 한윤을 형구에 묶어 보내니 허도의 저자거리에 참수되어 목이 내걸리게 되었다.
영웅기에 따르면 당초 천자(헌제)가 하동에 있을 때 손수 붓으로 판서를 써서 여포에게 와서 영접하도록 했다. 여포의 군에는 비축된 양식이 없어 능히 응하지 못하니 사자를 보내 글을 올렸다. 조정에서는 여포를 평동장군으로 삼고 평도후에 봉했는데, 사자가 산양의 경계에서 문서를 잃어버렸다. 또한 조조가 손수 서신을 보내 여포를 후하게 위로하고 몸을 일으켜 천자를 영접하여 응당 천하를 평정할 뜻을 품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조서를 내려 공손찬, 원술, 한섬, 양봉 등을 상을 걸고 체포했다.
진규는 아들인 진등을 조조에게 사자로 보내고자 했으나 여포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때마침 사자가 당도해 여포를 좌장군에 임명하자, 여포는 크게 기뻐하며 즉시 진등이 가는 것을 들어주고, 아울러 장(章)을 받들고 가서 은혜에 감사하게 했다.
진등이 조조를 접견하며 진술했다.
여포는 용맹하나 꾀가 없고 행동거지가 가벼우니 의당 조기에 도모해야 합니다.
조조가 말했다.
여포는 이리 새끼와 같은 야심을 가진 자로 실로 오래도록 기르기 어려우니, 경이 아니면 누가 능히 그 실체를 통찰할 수 있겠소.
이에 진규의 관질을 중(中) 2천석으로 올리고 진등을 광릉태수로 삼았다. 헤어질 때 조조는 진등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동쪽의 일은 경에게 부탁하오.
그리고 진등에게 명해 은밀히 부하의 무리를 모아 내응하도록 했다.
당초 여포는 진등이 서주목을 받아오기를 원했었는데, 진등이 돌아오자 분노하여 극을 뽑아 탁자를 찍으며 말했다.
경의 부친이 내게 조조과 협력하길 권하여 공로(원술)와의 혼사도 끊었소. 내가 구하던 것은 지금 하나라도 얻은 것이 없는데, 경의 부자는 나란히 지위가 오르고 권세가 중해졌으니 경이 나를 팔아먹은 것이오!
진등이 태연하게 천천히 여포를 깨우치듯 말했다.
제가 조조를 만나 장군을 대우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호랑이를 기르는 것과 같아 고기를 배불리 먹여야 하니, 배부르지 않으면 장차 사람을 해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조조가 비유하자면 매를 기르는 것과 같아서 배가 고프면 부릴 수 있으나 배가 부르면 날아가 버릴 것이라 했습니다.
이에 여포가 노기를 풀었다.
여포가 크게 기뻐하며 다시 사자를 보내 천자에게 글을 올렸다.
신이 예전에 조조와 더불어 싸웠기에, 이제 조조가 폐하를 보위하고 보좌하니 스스로 뒤따르려 했으나 의심과 원한이 남아있을까 두려워 서주에 있으며 스스로 안녕하지 못합니다.
조조에게 답서를 보냈다.
내가 남에게 죄를 지었으나 손수 노고를 위로받고 후하게 칭찬과 장려를 받았소. 거듭 원술 등을 상을 내걸고 범인을 잡으라는 조서를 받았으니 나는 목숨을 다해 힘쓰겠소.
조조는 다시 봉거도위 왕칙을 사자로 보내 조서와 평동장군의 인수를 가지고 가서 여포를 임명하게 했다. 또한 조조가 손수 써서 여포에게 보낸 서신에서 말했다.
원술이 천자를 칭하니 장군이 이를 제지하고 원술의 장(章)이 통하지 못하게 했소. 조정에서는 장군을 믿고 있고 거듭 중임했으니 서로 충성을 밝히도록 합시다.
이에 여포가 진등을 보내 장(章)을 받들고 가서 은혜에 감사하게 하고, 아울러 좋은 인끈 하나를 보내 조조에게 답례했다.
원술이 분노하여 한섬, 양봉 등과 세력을 연결하고 대장 장훈을 보내 여포를 공격했다.
여포: 지금 원술 군이 쳐들어온 것은 경 때문이오. 이 일을 어찌해야 되겠소?
진규: 한섬, 양봉과 원술은 졸지에 합해진 군사일 뿐입니다. 책략이 평소에 정해져 있던 것도 아니니 능히 서로 유지할 수 없습니다. 제 아들인 진등이 이미 이를 헤아렸으니, 가히 뿔뿔이 흩어질 것입니다.
여포가 진규의 계책을 채용해 사람을 보내 한섬, 양봉을 설득하길, 자신과 힘을 합해 원술 군을 공격하고 빼앗은 군자금은 모두 한섬, 양봉에게 준다고 했다.
구주춘추에 따르면 여포가 한섬, 양봉에게 서신을 보냈다.
지금 원술이 반역하니 함께 토벌해야 하는데, 어찌 힘을 합해 도리어 이 여포를 공격하시오? 나는 동탁을 죽인 공이 있어 두 장군과 더불어 공신이오. 함께 원술을 공격해 공을 세울 만하니, 이때를 놓쳐서는 안 되오.
한섬, 양봉이 이 서신을 받고 계획을 바꿔 여포를 따랐다. 여포가 진군하여 장훈 등의 둔영과 백보 떨어진 곳에 이르렀을 때, 한섬과 양봉의 군사들이 동시에 공격해 열 명의 장수를 참수하고, 살상되고 물에 떨어져 죽은 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원환전에 따르면 여포가 부릉(阜陵)에서 원술을 공격하자, 원환은 먼저 원술을 따라가려고 했으나, 여포에게 억류되었다.
영웅기에 따르면 그 뒤 여포는 또 한섬, 양봉의 2군과 함께 양주 구강군 수춘현으로 향하니, 물과 뭍으로 아울러 진격하며 지나는 곳마다 노략했다. 양주 구강군 종리현에 이르러 크게 노획하고 되돌아갔다. 회수를 건너 그 북쪽에 도달한 뒤 원술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귀하는 군이 강성한 것을 믿고 늘 호언하기를, 맹장, 무사들을 억제한다고 하셨소. 내가 회수 남쪽에서 한 때의 시간동안 거닐으나 귀하는 수춘에 쥐새끼처럼 숨어 있고 고개를 내미는 자 조차 없으니 맹장, 무사들은 모두 어디에 있단 말이오? 귀하는 큰소리 쳐서 천하를 속이는 것을 좋아하지만 어찌 천하인들을 모두 속일 수 있겠소?
여포 군이 모두 건넌 뒤에 원술이 친히 보병과 기병 5천을 일으켜 이를 이끌고 회수 가에 이르자, 여포의 기병들이 모두 회수 북쪽에서 크게 비웃은 뒤 되돌아갔다.
선주전에 따르면 양봉, 한섬은 서주, 양주 사이에서 도적질했는데, 유비가 이를 격퇴하고 모두 참수했다. 유비는 여포에게 화친을 구하고 여포는 유비의 처자를 되돌려 보냈다.
이때 동해 사람 소건이 낭야상이 되어, 서주 낭야국 거현를 치소로 삼고 성을 보전해 스스로 지키며, 여포와 서로 통하지 않았다. 여포가 소건에게 서신을 보냈다.
거는 하비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의당 서로 통해야 하오. 그리하지 않는 그대는 마치 스스로 황제 노릇하고 왕 노릇하는 것과 같소이다. 내 서신을 받거든 지혜로운 자들과 잘 의논해보도록 하시오.
소건이 서신을 받자 주부(主簿)를 보내 서신을 지니고 가게하고 좋은 말 다섯 필을 바쳤다. 그 뒤 장패가 소건을 습격하여 격파하고 소건의 군수물자를 빼앗았다. 여포가 이 일을 듣고 친히 보병과 기병을 이끌고 거현으로 향했다. 고순이 간언했다.
장군께서 몸소 동탁을 주살하여 위세를 떨쳤으니 자연 두려워서 복종할 것입니다. 가벼이 친히 출군해서는 안 됩니다. 혹 이기지 못한다면 명성을 손실함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여포는 이에 따르지 않았다. 장패는 여포의 노략질을 두려워하여 과연 성 위로 올라가 맞서니 여포는 이를 함락하지 못하고 군을 이끌고 하비로 되돌아왔다. 그 뒤 장패는 여포와 다시 화해했다.
원환전에 따르면 여포는 처음에는 유비와 친하게 지냈으나, 나중에 틈이 벌어졌다. 여포가 원환에게 유비를 꾸짖고 모욕하는 편지를 쓰게 하고자 했으나, 원환은 응하지 않았다. 여포가 두세 차례 그에게 강요했으나, 원환이 허락하지 않자 매우 화가 나서 무기로 위협하며 말했다.
이 일을 하면 살려주고, 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
원환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웃으면서 그에게 말했다.
유비가 정말로 군자라면, 장군의 말에 치욕을 느끼지 않을 것이며, 유비가 교활한 소인이라면 장차 장군의 생각에 대해 보복할 것이니, 치욕은 이쪽에 있는 것이지, 그 쪽에 있는 것이 아니오. 하물며 나 원환이 다른 날 유장군(유비)을 섬겼던 것은 마치 오늘 장군을 섬기는 것과 같은 이치요. 만일 내가 하루 아침에 이곳을 떠나 장군을 욕하면 괜찮겠소?
여포는 이 말을 듣고 부끄러워 그만두었다.
이후 선주전 주석 영웅기에 따르면 198년 봄, 여포는 사람을 시켜 금을 지니고 사례 하내군으로 가서 말을 사오게 했는데, 유비의 군사들에게 약탈당했다. 이로 말미암아 여포는 중랑장 고순, 북지태수 장료 등을 보내 유비를 공격했다.
198년, 여포가 다시 모반하여 원술 편에 서고, 고순을 보내 패(沛)에서 유비를 공격해 격파했다. 조조는 하후돈을 보내 유비를 구원했으나 고순에게 패했다.
선현행장에 따르면 조조가 하비에 도착하자 진등은 광릉군의 군사들을 이끌고 군의 선두에 섰다. 이때 진등의 동생들이 하비성 안에 있었는데 여포는 진등의 세 동생을 볼모로 잡고 화친하기를 청했다. 진등은 뜻을 굳게 지키며 흔들리지 않으니, 진격하여 포위함이 날이 갈수록 급박해졌다. 여포의 자간(刺姦) 장홍(張弘)은 뒤에 처벌받을까 두려워하여 밤중에 진등의 세 동생을 이끌고 달아나 진등에게로 나아갔다.
조조가 친히 여포를 정벌해 그 성 아래에 도착하고 여포에게 서신을 보내 재앙과 복에 관해 진술했다. 여포는 항복하고자 했으나 진궁 등이 스스로 죄가 깊었으므로 그 계책을 저지했다.
헌제춘추에 따르면 조조군이 팽성에 이르자
진궁: 역격하여 편안히 쉰 군으로 지쳐있는 군을 들이친다면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여포: 저들이 와서 공격할 때를 기다려 사수 속으로 몰아넣는 게 더 낫소.
조조군의 공격이 급박해지자 여포는 백문루 위에서 군사들에게 말했다.
여포: 경들은 서로 공격하지 마시오. 나는 응당 명공에게 자수할 것이오.
진궁: 역적 조조가 어찌 명공과 같습니까! 오늘 항복하는 것은 계란을 바위에 던지는 것과 같으니 어찌 몸을 보전할 수 있겠습니까!
영웅기에 따르면 여포가 허사, 왕해를 보내 원술에게 위급함을 고했다.
원술: 여포가 내게 딸을 보내지 않았으니 이치상 패하게 되어 있소. 어찌 다시 와서 알리는 것이오?
허사와 왕해: 명상(明上)께서 지금 여포를 구원하지 않으면 실패를 자초하게 됩니다! 여포가 무너지면 명상 또한 무너질 것입니다.
이때 원술이 제호를 참칭했으니 이 때문에 그를 명상(明上)이라 부른 것이다. 이에 원술은 엄병(嚴兵)하여 여포를 성원했다. 여포는 자신이 딸을 보내지 않은 일로 원술이 구원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비단으로 딸의 몸을 얽어 말 위에 묶은 뒤 밤중에 친히 딸을 데리고 나가 원술에게 보내려 했는데, 조조의 군사들과 조우해 그들이 활을 쏘며 가로막아 통과할 수 없자 다시 성으로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