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선수는 운동장에 있을 때 비로소 그 가치가 빛난다. 그렇기에 운동장은 선수들에게 천국과도 같다. 그러나 운동장 밖에서는 다르다. 제아무리 스타플레이어라고 해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선수들에게는 지옥이나 다름없다. 이동현은 이 지옥을 경험했다. 그것도 4년 7개월씩이나 말이다. 하지만 그는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밤 천국을 꿈꿨고,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 땀을 흘렸다. 그랬더니, 기적같이 천국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렇게 이동현은 지옥에서 돌아왔다.
부상 후 재활이라는 깊은 수렁 끝에서 마침내 돌아온 LG 투수 이동현. (사진=연합)
한 낚시꾼은 말없이 찌를 던졌다. 강물은 고요했다. 주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스산했다. 그렇지만 이 낚시꾼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게 더 좋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기를 잡는 것은 애당초 이 낚시꾼의 목표가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고기를 잘 잡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 대신 야구 생각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예전처럼 야구를 할 수 있을까?”, “과연 사람들은 날 알아볼까?”, “마운드에 올랐는데 감독님이 뭐라고 하면 어쩌지….” 온갖 잡다한 공상들이 신체의 모든 신경을 긁으면서 낚시꾼을 괴롭혔다. 낚시꾼은 반쯤 미쳐가고 있었다.
이 허름한 차림의 낚시꾼에게도 한 때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잠실의 드넓은 그라운드에서 팬들의 환호를 독차지하던 선수였다. 불같은 강속구와 패기 넘치는 투구는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하지만 부상은 이 낚시꾼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다. 공을 던질 수도 없었고, 예전의 패기는 고통스런 현실 앞에서 점점 사그라졌다.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이 낚시꾼은 타자를 삼진을 돌려세운 뒤 주먹을 불끈 쥐는 그 쾌감을 잊을 수 없었다. 다시 느끼고 싶었다. 이내 낚시 도구를 정리해 다시 일어섰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나지막한 혼잣말로 자신을 재촉했다. “가자, 재활하러”
그러려니 했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2001년 프로에 입단한 이동현은 단번에 팀의 주축 선수로 발돋움했다. 2002년에는 한국시리즈 진출의 일등공신 중 하나로 활약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거침이 없었다.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로 타자들을 윽박질렀다. “칠 테면 쳐봐라”라는 식으로 겁 없이 달려드는 패기는 팬들에게 묘한 대리만족을 선사했다. 아직까지 LG팬들이 이동현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다면, 이러한 강한 인상이 뇌리 속에 남아있어서 일 것이다.
이동현의 질주는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 같았다. 2004년에는 그토록 바라던 LG의 마무리투수 역할까지 올라섰다. 12번이나 세이브를 올리는 등 활약도 준수했다. 그러나 이동현이라는 꽃은 활짝 피지 못했다. 팔꿈치 부상은 이동현과 LG팬들의 모든 희망을 앗아갔다. 2004년 막판 팔꿈치 부상을 당한 이동현은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이동현은 아직도 그 당시의 정황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공을 던졌다. 폭투였다. 그런데 느낌이 평상시와는 달랐다. 귀에서는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팔이 끊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심지어 팔꿈치 아래로는 아무런 감각이 없었고, 손가락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사력을 다해 홈으로 베이스커버를 들어갔지만, 거기까지였다. 홈에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처음에는 수술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한 번 정도는 받을 수 있다”라고 애써 위안했다. 아직 야구를 할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고, 이겨낼 자신감도 있었다. 물론 재활 과정은 힘들었다. 또 지루했다. 그래도 야구장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의지로 이겨냈다. 이동현은 “이 시기에는 야구장에도 잘 가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재활 자체에만 몰두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신은 이동현에게 유난히 짓궂었다. 막 재활을 마친 이동현에게는 두 번째 수술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2004년과 2007년, 2008년 무려 세 차례나 오른쪽 팔꿈치 수술 끝에 지난해 부활한 LG 이동현 (사진=연합)
죽고 싶었다
“형, 나 어떡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이동현은 울고 있었다. 그는 방금 두 번째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통보를 들었던 터였다. 첫 번째 재활 당시 동고동락했던 공병곤 트레이너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하소연이나 원망을 할 힘조차 없었다. 전화기를 든 상태로 하염없이 울었다. 전화기 너머의 공병곤 트레이너는 이동현을 위로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약속했다. “동현아, 형 믿고 다시 한 번만 해보자. 내가 다시 공을 던질 수 있도록 해줄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네가 다시 마운드에 설 수 있도록 해줄게”라고.
이동현을 당시를 회고하며 “병곤이형이 정말 약속을 지켰다”라며 껄껄 웃는다. “그 분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야구를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이며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당시는 절망적이었다. 상황은 특이했다. 뼛조각이 인대를 물고 늘어진 상태였다. 인대에 손을 대는 것은 기본이었고, 뼛조각까지 깎아내야 했다. 두 번째 수술이 불가피했다. 그것이 2006년 2월경이다. 이미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이제 야구는 끝이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머릿속을 맴돌았다. 더 이상 희망은 보이지 않는 듯 했다.
방황했다. 차라리 통증은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이미 한 번 거친 과정, 또 한 번 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정신적으로 공황상태였다. 통증보다는, 다시 야구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미래가 이동현을 괴롭혔다. 의욕도 떨어졌고, 사람도 피해 다녔다. 재활과 공익근무를 병행하며 한적한 낚시터를 찾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동현은 “두 번째 수술 이후 낚시를 자주 다녔다. 긍정적으로 미래를 그리다가도, 어느새 부정적인 생각에 침울해 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라고 당시를 회상한다. 첫 번째 수술 때는 쳐다보지 않던 야구장에도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두 번째 수술 이후에는 야구장에 많이 갔다. 야구를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 부상을 극복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야구장에 가지 않으면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경기장에 가면 사람들이 알아보고 하니깐 몰래 외야에서 혼자 야구를 보곤 했다. 동료 선수들은 점점 업그레이드되는 것 같은데, 나만 홀로 정체되는 것 같아 불안했다.”
보통 이 정도 힘든 시기를 거치면 한 번쯤 밝은 태양이 고개를 들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이동현의 시련은 끝날 줄 몰랐다. 공익근무를 마치고 복귀를 앞두고 있을 때쯤, 이동현에게는 세 번째 팔꿈치 수술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기다리고 있었다. 운명의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혹했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
물러설 곳이 없었다
“어머니, 저 이제 수술실에 들어갑니다”
“어이구 내 아들, 불쌍해서 어떡해”
어머니는 울고 있었다. 이동현의 눈가에도 눈물이 고였다. 이동현의 상황은 누가 봐도 최악이었다. 본인 역시 선수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그래도 집에는 “괜찮다. 운동하면 다시 나아질 수 있다”라고 둘러댔다. 부모님이 상심하는 모습을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님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 두 번째 수술 때까지는 아들의 거짓말을 믿어줬지만, 세 번째에 이르자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이처럼 세 차례의 수술은 이동현 본인에게나, 그를 사랑하는 주변 사람에게나 참기 힘든 나날이었다.
이동현은 2007년 11월 다시 팔꿈치에 통증을 느꼈다. 즉시 팀 동료인 박명환과 함께 미국으로 날아갔다. 두 선수 모두 MRI를 찍고 귀국했지만, 돌아온 결과는 정 반대였다. 박명환은 보강운동을 통해 회복할 수 있다는 소견을 받았다. 반면 이동현은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이가 없었다. 같은 부위에 세 번 칼을 댄 사례는 들어본 적조차 없었다. 야구를 못할 것이라는 예감이 이동현을 강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이 방면에서 최고의 권위자 중 하나인 앤드류스 박사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똑같은 부위에 세 번 수술을 받고 회복한 경우는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도박이었다. 그렇지만 앤드류스 박사의 말이 상심에 빠져 있던 이동현을 다시 한 번 일으켜 세웠다. 그는 이동현에게 “아직 젊으니 복귀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최선을 다해 집도하겠다. 세계에서 처음 있는 일인 만큼 나도 자부심을 가지고 수술에 임하겠다”라는 각오를 밝혔다. 이동현도 이판사판이었다. 물러설 곳이 없었다.
세 번째 수술을 받자 이제는 “부딪힐 수 있는 데까지 부딪혀보자”라는 오기가 생겼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었다. 그것이 오히려 약이 됐다. 모든 선수들은 재활과정에서 심리적인 문제를 겪으며 위축된다. 재활에 실패하거나, 아예 복귀에 실패하는 선수들은 백이면 백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동현은 이미 그 경지를 초월한 상황이었다. 남들은 다리가 후들거린다는 하드피칭도 문제없이 소화해 냈다. “될 대로 되어봐라”라는 오기가 원동력이었다. 그렇게 이동현은 4년 7개월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왔다.
올해 부활한 이동현. 내년에는 LG 마무리로 뛰고 싶다는 자신감을 표출했다. (사진=연합)
세 번의 수술, 한 번의 복귀
“동현아, 준비해라”
김재박 감독의 지시가 불펜에 전달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불펜의 문을 열고 마운드를 향하자 말은 달라졌다. 온몸에는 닭살이 돋았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뜨거운 무언가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동현은 “마음속으로는 울고 싶은데, 그러질 못했다. 마운드로 걸어가는 동안에 4년 7개월 동안 있었던 일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더라”라고 복귀전을 회상한다. 지옥에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팔꿈치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지난해 복귀해 적응 기간을 거친 이동현은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다. 박종훈 감독이 주저 없이 ‘불펜 에이스’로 지목할 정도다. 구위도 살아났고, 눈빛도 살아났다. 이동현은 “몇 년 동안 경기에 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한해에 폭발시킨다는 생각으로 던지고 있다”라고 말한다. 마운드에서의 절박함이 엿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일단 아프지 않다는 게 가장 큰 수확이다. 그는 “가장 큰 걱정은 역시 ‘부상이 재발하면 어쩌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작년에 절반, 올해 풀타임을 소화하면서도 통증은 없다”라며 생긋 웃는다.
올해 활약으로 인해 이동현은 벌써 다음 시즌 유력한 마무리 후보감으로 손꼽히고 있다. 직구 구속은 다소 떨어졌지만, 완급조절능력과 변화구 구사능력은 예전보다 더 나아졌다는 평가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붙박이 마무리가 되기 위해서 전제조건이 있다고 말한다. 기자가 “팔꿈치요?”라고 묻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더 이상 예전의 아픔은 생각하지 않겠단다. 그럴 시간도 없다. 과거를 돌아보기에는 4년 7개월의 시간이 너무나도 길었다. 이제 이동현은 오직 앞만 보고 달린다는 각오다.
“LG의 마무리투수는 내 오랜 꿈이다. 마지막 목표이기도 하다. 물론 감독님이 결정하실 부분이다. 욕심이긴 한데, 그 꿈은 버리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제 아픈 것에 대해서는 걱정 안 한다. 그만큼 훈련을 열심히 했고, 준비도 착실히 했다. 불안감은 없다. 다만, 다른 측면에서 불안감이 있다. 내가 신인급 선수일 때 선배들을 밀어내겠다는 오기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밑에 후배들도 나를 그렇게 바라볼 것이다. 후배들에게 뒤지지 않으려면 더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러면서 이동현은 대뜸 “(오)승환이와 경쟁 구도를 만들어보고 싶다”라고 웃었다. 오승환과 이동현은 경기고 동기동창이다. 팔꿈치에 칼을 댄 이력까지 비슷하다. 사실 시작은 이동현이 한참 앞섰다. 그러나 이동현이 부상에 빠져 있는 동안, 오승환은 리그 최고의 마무리가 됐다. 이제는 추격자의 입장이다. 이동현은 “물론 승환이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투수 맞다. 그만큼 열심히 해보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몸 상태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지난해까지만 해도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만큼 이동현은 지금이 즐겁다. 마운드에 오르는 것도, 심지어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것 자체에도 감사하며 매 경기에 임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훈련장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워보였던 것도 그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이런 여운이 사라질 때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지옥에서 돌아온 이동현의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그날의 하늘은 눈이 부셨다. 정말 미치도록 눈이 부셨다.
첫댓글 감동적이네요..앞으로 LG의 뒷문을 잘 지켜주세요!
이동현 선수만 생각하면 눈물남.. 근데 박종훈 감독님이 버릴 경기까지 투입할땐 정말 화딱지나서리..
진짜 눈물이 나네요.. 동현선수.. 내년에는 엘지의 마무리로 최고의 선수가 되어주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당신이 마운드에 있어서 정말 든든합니다..
로...로켓 ㅜㅠ
오승환선수를 뛰어넘는 최고 마무리로 남아주세요..
롸켓! 이제 다치지 말길! 제발!! 우리의 수호신..롸켔!
다시 돌아온 이동현 선수에게 더 이상 아프지 말고 엘지의 마무리로 꼭 남아주시길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올시즌 너무 무리했어 ㅠㅠ
아프지만 말아주세요~ 위력적이든 아니든 항상 응원합니다~ 그리고 믿어요~
구속 회복 힘들겠죠? ㅠ 포크볼 ㄷㄷㄷ인데...
든든한 로켓~ 아프지 마셔요-
화링
이형종 선수가 이동현선수에게 많이 배우길....참고인내하고 옛말에 고진감래라 하지 않았던가!
으어엉 동현이형 ㅠㅠ 엘지투수들 보고배워라 진짜
노장선수는 아니지만 엘지팬들에게 이미 많은 애정을 받고있는 선수이자 이미 프렌차이즈인선수, 이상훈 선배를 존경하던 선수이고 그를 따라 엘지에 마무리가 되고싶은 선수..
이상훈선수와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투수지요 ㅎㅎㅎㅎ
공병곤 트레이너가 아니라.... 김병곤 트레이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