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를 읽으며
대학에서 한문을 전공한 지 40년이 넘어갑니다. 띄어쓰기가 되어있지 않고 구두점이 없으며 토씨 하나 붙어있지 않고 오로지 한자가 빼곡히 적혀있는 원서를 접하면 일단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자는 표의문자이지만 한 글자가 여러 가지 뜻을 담고 있어 문맥상 해석해야 하는 경우도 많고 옛 지명이나 인명을 한자 풀이로 진행하려는 경향도 있으며 띄어 읽기에 따라 정반대의 의미가 되기도 하니 여러 가지 이설이 존재하고 필사본으로 전해지다 보니 잘못 베껴 쓰거나 분서갱유 이후에 기억에 의존하여 문장으로 되살아난 판본으로 인해 잘못 진술된 부분도 많으니, 원서를 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글이 쓰인 시기로부터 2,000년이란 세월을 격하고 있으니 그 시대의 사회상과 제도와 문물, 그들의 문화를 알기 어렵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글이 갖고 있는 심오함을 지나치는 경우도 많을 겁니다.
옛 처녀들은 사랑방에서 총각의 글 읽는 소리에 마음을 빼앗긴 경우가 많았습니다. 공부라는 것이 특권층에만 허락된 일이고 보면 글을 읽는다는 것은 신분이 비교적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천천히 노래하듯이 읽는 소리에서 음률이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한문을 읽다 보면 ‘문리가 트였다.’라는 표현을 합니다. 한문은 영어식 표현과 비슷하여 서술어 뒤에 목적어나 나오는 경우가 많으니 한문을 읽고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을 "문리가 트였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글을 천천히 읽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문을 읽어가면서 머릿속에서 재조립과 재해석의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사마천이 지은 사기의 130편 중 그나마 읽기 쉽고 재미있는 부분은 열전 70편입니다. 토씨 하나 없는 순 한문책을 읽다 보면 그들의 표현 방식의 멋스러움이 보입니다. 해석된 한글판에서는 느낄 수 없는 표현의 아름다움이 원서 안에 존재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원서는 절대로 빨리 읽어지지 않습니다. 천천히 음미해 가면서 한 글자 한 글자의 깊은맛을 느끼며 읽어야 제맛이니까요. 뭐든지 빠름을 추구하는 세상입니다. 옛날엔 존재하는지 알지도 못했던 지구 반대편의 이야깃거리가 빛의 속도로 도달하니 시간의 갭을 느낄 수 없습니다.
탁구 경기를 보았습니다. 온갖 기교가 들어있는 서브와 빠름을 구가하는 스매싱에 오로지 이기기 위한 목적만 드러납니다. 그렇게 치는 탁구는 별로 재미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남을 이기고자 하는 욕망을 접으면 참 재미있는 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멈춰 서서 주변을 봐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정운복> 님의 글입니다.
" 띄어쓰기가 되어있지 않고 구두점이 없으며 토씨 하나 붙어있지 않고..."
이런 글을 白文이라 하죠. 이루고픈 소원중 하나가 白文을 읽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삼국지를 원문이 있는 것을 구해 영한 대역 읽듯이 읽어 보기도 했습니다만, 한 장을 넘기기도 힘들더군요. 대학시절, 수학 원서를 어떻게 보았나 새삼 감탄하기도 합니다만, 수학은 프랑스 문제를 갖다 들이대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긴 합니다.
영화에 영어자막을 붙들고 있는 지도 꽤 오래 되었죠. 덕분에 영어가 조금, 아주 조금은 늘었나 봅니다만, 한자는 알아도 한문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