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시술이 죄라는 것을 알았지만 끊지 못했습니다. 밤에는 괴로워 새벽 3시까지 잠 못이루면서도 낮에는 또 그 일을 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경우 낙태가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위선입니다. 생명에 손 댈 자격은 누구한테도 없습니다."
낙태반대운동연합(대표 김일수 고려대 교수)이 5월31일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홀에서 마련한 '낙태와 병원경영'을 주제로 한 세미나장.
태아 생명을 존중하는 산부인과 의사 8명이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하자 청중들은 기립박수로 감사와 격려를 표했다. 낙태시술을 하는 의사가 더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순 된 현실에서 낙태시술을 하지 않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목소리가 이렇게 한꺼번에 터져 나온 일은 처음이다.
5년 전 낙태시술 기구를 모두 치워버렸다는 최아란 산부인과 최아란 원장은 "처음엔 임신 12주 이하, 그 다음엔 8주 이하로 낙태시술을 제한하면서 밤에 잠 못자고 고민해도 완전히 끊질 못했다"며 "두 손목이 잘려나가도 낙태를 계속할 것 같아 죽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고 고백했다.
한일병원 산부인과 박성철 과장은 “돈 벌려고 개업해 낙태를 전문으로, 분만을 서비스 정도로 했던 지난 4년을 내 인생에서 지우고 싶다”며 “‘내가 수술하는 것은 생명체가 아니며 내가 시술을 하지 않으면 결국 다른 곳에서 낙태 할 것이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낙태가 더 낫다’고 나 자신을 합리화했다”고 밝혔다.
94년 환자가 사망하는 의료사고 후 '내 생명이 가치 있는 만큼 모든 생명이 가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낙태가 잘못됐음을 깨달았음에도 당장 중단하지 못했었다는 박 과장은 낙태하지 않으면 수입 감소를 각오해야 하고, 다른 기술을 더 획득해야 하는 현실적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낙태시술을 그만두면서 병원 운영의 어려움이 뒤따라 또 다시 밤을 지세기도 했지만, 돈 계산마저 포기하니 진정 마음이 편해졌다는 의사들의 이날 고백은 인간 생명은 결코 돈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진실을 일깨워 주었다.
**낙태와 경영 세미나 관련
낙태반대운동연합이 5월31일 주최한 '낙태와 병원 경영' 세미나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위축되지 않고 이 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도우면서 생명 존중 문화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자리였다.
이날 세미나에 초청된 개인 산부인과 의원, 산부인과 전문병원, 300-400병상의 중소형 종합병원의 산부인과 의사들은 낙태시술로 인한 죄책감을 털어놓고 낙태시술을 안하면서 병원을 운영하는 사례를 발표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낙태하지 않는 산부인과 의사로 알려진 미래축복산부인과 차희제 원장은 낙태시술을 하지 않음에 따라 병원 적자가 계속되면서 밤에 잠 못자고 고민하던 중, 부인으로부터 "당신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는 말을 들은 후 돈 문제를 포기할 수 있었고 그 뒤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차 원장은 자신의 병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생명운동에 대해 소개하면서 "낙태하러 온 임산부에게 낙태하지 않도록 권유해도 듣지 않을 경우 병원 내 상담실과 기도실, 낙태관련 비디오 시청 등을 통해 권유하지만 그래도 낙태해야겠다는 이들이 나온다"고 말했다.
차 원장은 기혼자의 낙태건수는 감소하나 10대 낙태건수가 증가하는 현실에서 "낙태하러 온 이들에 대한 설득에서부터 미혼모 출산 후 재정 도움 등 사후관리까지 모두 할 수 있는 생명병원을 종파를 초월해 설립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하는 주된 이유가 재정적 문제 때문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15분 정도 걸리는 낙태시술 2건 비용이 2박3일 분만 비용과 비슷한 상황이어서 분만 수가의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함께, 낙태하지 않는 병원의 명단을 알려 이들 병원에서 분만하도록 권장하는 일도 해나가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낙태시술을 하지 않으면서도 병원 운영의 어려움을 극복한 사례도 발표됐다. 낙태· 불임시술을 일찍 포기한 은혜산부인과 장부용 원장은 개인적 일은 뒤로 미룬 채 환자에게 맞춰 자연스럽게 분만하도록 돕고 있다면서 모유 수유 등 일찍부터 산모 중심의 일들을 해온 것이 매스컴에도 알려지면서 분만 환자들이 꾸준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