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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2024년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여덟 번째 강연이 강원도 원주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4박 5일간의 부탄 방문 일정을 마치고 현지 시각으로 어제 오후 4시 20분에 파로 공항을 출발하여 방콕 공항을 경유한 후 밤새 비행기 안에서 쪽잠을 잤습니다. 한국 시간으로 오전 6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곧바로 서울 정토회관으로 가서 짐을 풀고 휴식을 취한 후 오후 3시부터는 정토사회문화회관 10층 접견실에서 JTS 박지나 대표님과 회의를 했습니다.
대표님은 10일간의 방글라데시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여 로힝야 난민캠프에 지원할 세숫비누와 빨랫비누 총 636만 개를 구매한 경과에 대해 보고하였습니다. 힘든 과정을 거쳐 품질이 좋으면서도 아주 저렴한 비누를 구매할 수 있었는데요. 스님은 박지나 대표님의 노고를 격려했습니다.
뒤이어 지난 9일 튀르키예-시리아 접경 지역에 지진으로 무너진 학교를 새로 건축하고 준공식을 한 이후 후속 사업에 대한 논의를 했습니다. 1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전쟁으로 성인이 되어서도 글을 모르는 청년들을 위한 문맹 퇴치 운동, 난민이 되어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온라인 교육 프로젝트, 지진 피해로 파손된 학교를 복구하는 사업 등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논의할 안건이 많았지만 시간이 부족하여 주말에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오후 4시에 회의를 마무리했습니다.
곧바로 9층 강당으로 이동하여 ‘2024 여성 INEB 정토회 스터디 투어’에 참가한 활동가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동안은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스님들 위주로 참가자를 받아서 INEB 정토회 스터디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는데요. 이번에는 처음으로 비구니 스님과 여성활동가만 따로 신청을 받아서 INEB 정토회 스터디 투어를 진행해 보기로 했습니다.
인도 라다크에서 3명, 스리랑카에서 2명, 부탄에서 2명, 중국에서 1명, 태국에서 3명, 5개국에서 총 11명의 여성활동가들이 참여했습니다. 참가자들은 한국 불교의 역사와 정토회에 대한 소개를 방금 다 들은 상황이었습니다.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한국 불교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잘 들었어요?”
“Yes!”
“정토회에 대한 설명도 잘 들었고요?”
“Yes!”
“앞으로 일주일 동안 한국에 머무르면서 대화를 많이 나누시기 바랍니다. 3일 후에 제가 살고 있는 두북 수련원에 오시면 그때 저와 대화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스님은 참가자들에게 한국에 머무는 동안 간식이나 음료를 사 먹을 수 있게 용돈을 나눠주었습니다.
“Thank you.”
인사를 나누고 스님은 곧바로 차를 타고 강연을 하기 위해 서울을 출발하여 원주로 향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강원도에서 오프라인 즉문즉설을 하는 날입니다. 단풍이 물드는 시기에 강원도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차가 많이 밀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길이 많이 막히지 않아서 저녁 7시에 무사히 원주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강연장 앞 공원에 차를 세워 놓고 김밥으로 저녁 식사를 한 후 강연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한국광해광업공단 본사 대강당입니다. 많은 시민들이 강연을 듣기 위해 줄을 서서 입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원주 행복센터에서 온 많은 봉사자들이 곳곳에서 강연장을 찾아온 시민들을 정성껏 맞이했습니다.
스님은 저녁 7시 10분부터 강연장 옆 대기실에서 강연장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도움을 준 공단 팀장님과 불자회 회장님 일행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기념사진을 찍은 후 이어서 한국방송통신대학 콘텐츠 제작팀 직원들이 찾아와 스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저희 방송통신대학의 재학생이 8만 명 정도 됩니다. 전체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더니 법륜 스님의 강연을 듣고 싶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그래서 스님께 강연 요청을 드리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저는 대학 문턱에도 안 가봤는데,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해서 대학 졸업장을 하나 딸까요?”
“그렇게 해주시면 저희가 너무 영광이지요.” (웃음)
“지금 시리아에 난민들이 많이 발생해서 60만 명 정도 되는 학령기 아동들이 전혀 학교를 못 다니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시리아 임시 정부 수반에게 온라인 학교를 열어서 문맹을 퇴치해 보면 어떠냐고 제안을 했거든요. 그런데 시리아 사람들은 온라인 학교가 도대체 무엇인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나 봐요. 방송통신대학교도 온라인 학교 시스템을 갖고 있는 것이니까 여러분의 조언이 필요합니다.”
“난민이 그렇게 많으면 위험하지는 않나요?”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대한민국이야말로 제일 위험합니다. 지금 상황은 내일 전쟁이 나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잖아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강연을 시작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녁 7시 30분이 다 되어서 함께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강연장에서는 사전 공연으로 연세대 미래 캠퍼스 노래 동아리에서 신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지난달에 지진 피해와 전쟁으로 많은 고통을 겪은 튀르키예-시리아 접경 지역을 다녀온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본 후 즉문즉설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40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날씨가 쌀쌀해졌죠. 직장 끝나고 집에 가서 휴식하기도 바쁘실 텐데,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이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작년 2월 초에 튀르키예에 지진이 나서 튀르키예와 튀르키예 옆에 있는 시리아 북부 지역에 많은 피해가 발생했고, 몇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3,500명이 다니는 큰 학교가 다 부서져서 학생이 124명, 선생님 9명이 죽었어요.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JTS에서는 주민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될 수 있도록 이 학교를 한번 지어보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이 건물이 일어서듯이 시리아 국민들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위해 시리아 시민 방위대로 구성된 화이트헬멧과 협력해서 1년 만에 4천 명이 다니는 학교를 지었습니다. (모두 박수)
K드라마와 K팝보다 대한민국을 더욱 빛내는 일
이런 곳에 한번 가보면 전쟁의 피해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시리아는 전쟁이 나고 10년 째 휴전 상태로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전쟁이 나고 70년이 넘도록 휴전 상태로 있고, 남북 간에 언제 전쟁이 날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그냥 까짓 거 전쟁하면 되지’ 하면서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건 정말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이기고 지는 게 문제가 아니에요. 한반도는 땅이 좁고, 인구가 많고, 남북한 양쪽 다 대량 살상 무기가 엄청나게 많아요. 특히 폭약 같은 남한의 재래식 무기는 세계 최고의 기술입니다. 지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도 남한과 북한이 화약 지원을 안 하면 전쟁을 지속할 수 없을 정도예요. 엄격하게 말해 우리들도 모두 간접적으로 전쟁 범죄자들에 들어갑니다. 전쟁을 하도록 계속 무기를 공급하는 국민이 되어버렸으니까요. 지금 한국이 탱크를 비롯한 무기를 잘 만들어서 돈을 많이 번다고 아주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긴 역사에서 보면 자랑할 만한 일이 못 됩니다. 사람 죽이는 무기를 팔아서 돈 버는 게 뭐가 자랑스럽다고 얘기하나요?
전쟁이 나면 그 피해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시리아에서는 350만 명의 난민이 아무런 희망도 없이 텐트촌에 살고 있고, 60만 명이나 되는 아이들은 학교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 세월을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이게 남의 일이 아닙니다.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우리들이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우면서 평화를 기원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현재 우리가 얼마나 좋은 환경에 살고 있는지를 자각해야 합니다. 자기만 행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겪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국가 예산의 1%만 국제사회에 지원을 해도 K드라마, K팝보다 대한민국을 더욱 빛내는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세계를 다녀보면 지금 대한민국에 바라는 기대가 굉장합니다. 그러나 정작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은 죽겠다고 아우성이에요. 대한민국의 심리적 행복지수는 세계 하위권에 속합니다. 공항도 잘 만들어 놓았고, 도로도 좋고, 화장실은 더더욱 좋은데, 사람들은 다 죽을 것처럼 인상을 쓰고 살아요. 그래서 행복학교가 생긴 거예요. 물질만으로는 행복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물질도 물론 필요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서 욕심, 조급함, 고집을 내려놓아야 개인도 행복하며 가정도 화목해지고 사회적 갈등도 줄어들어서 나라가 평화롭게 됩니다. 행복학교는 대한민국의 국민 행복도를 높이는 국민운동입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다섯 명이 먼저 스님과 대화를 나눈 후 현장에서 즉석 질문을 받았습니다. 두 시간 동안 8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시부모님에게 물려 받아서 일 년에 지내야 하는 제사가 열 번이라며 더 이상 제사를 지내기가 싫다며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1년에 지내는 제사가 10번, 이제 제사 지내기 싫어요
“저는 결혼 14년 차고요. 2남 1녀 중에 막내며느리입니다. 저희 시부모님은 연세가 좀 많으시고 유교 사상이 강하셔서 50년간 제사를 설과 추석 빼고도 1년에 10번 지내셨습니다. 언젠가 어머님이 좀 다치시고 손이 떨리게 되셔서 10년 전부터 설과 추석 명절 제사는 저희 집에서 지내기로 했습니다. 나머지 제사는 시부모님이 계속 지내셨는데, 3년 전에 시부모님으로부터 집 명의를 넘겨받으면서 모든 제사를 저희가 가져오게 됐습니다. 일 년에 여섯 번만 제사를 지내기로 시부모님과 합의를 봤는데 제가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까 그것도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이 시부모님한테 투쟁을 해서 네 번으로 줄였습니다. 올해는 너무 힘들어서 상반기 한 번, 하반기 한 번, 설, 추석 이렇게 네 번만 제사를 지내기로 시부모님과 합의했습니다.
사실 집을 받았으니 시부모님이랑 제사를 지내기로 한 약속을 지켜야 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기 싫어졌습니다. 제 직업이 조리사입니다. 구내식당에서 한 50명의 밥을 하다 보니 집에 와서는 밥을 하는 게 정말 싫더라고요. 제사 음식은 돈도 많이 들뿐더러 먹지 않아서 다 버리게 돼요. 게다가 지난주 제삿날은 제 생일이었는데 남편이 아버님께 며느리 생일인데 너무한 거 아니냐고 말씀드렸더니 아버님이 분명히 제 생일을 알고 있으면서 못 들은 척해서 많이 서운했습니다. 결국 그날은 제사를 안 지냈습니다. 어제도 어머님이 전화를 하셔서 오늘이 제사인데 어떡할 거냐고 물으셨지만 제가 못 지낸다고 말씀드리고 그냥 여기 스님 강연을 들으러 왔습니다. (모두 웃음)
그런데 부모님과 약속을 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것이 고민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화가 납니다. 그냥 화만 나면 모르겠는데 남편한테 자꾸 패악질을 하게 되고, 남편이 옆에서 힘들어하고 눈치를 보니 저도 죄책감이 듭니다. 그렇다고 제사를 지내기는 싫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재산을 받을 때는 좋았는데, 제사 지내기는 싫은 거네요. 천당에 갈 수 있는 인연을 짓기는 싫고, 천당은 가고 싶고, 그런 마음인 겁니다. 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시부모님이 앞으로 조상 제사를 다 지내주면 집을 물려주겠다고 서로 약속한 것 아니에요?”
“저희 돈도 좀 들었습니다.”
“어쨌든 덕을 봤잖아요.”
“예, 맞습니다.”
“돈을 받을 생각으로 제사를 지내주기로 했는데, 막상 제사를 지내보니 힘들다는 얘기네요. 아이들이 좋은 대학은 가고 싶고, 공부는 하기 싫고, 그래서 입시 철만 되면 부처님한테 좋은 대학에 좀 넣어달라고 기도하는 것과 비슷해요. 방법은 간단합니다. 재산을 부모님한테 돌려드리고, 질문자는 내일부터 교회에 다니면 됩니다. 교회에서는 제사를 못 지내게 하니까 지내고 싶어도 못 지내요. 내가 아무리 제사를 지내고 싶어도 지옥 간다고 야단치니까 안 지내도 됩니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아버님이 뭐라 하시면 저는 교회 다닌다고 하면 돼요.”
“시도를 안 해본 건 아닙니다. 시누이가 독실한 크리스천이라서 같이 교회에 다녀봤는데, 저는 교회에 적응을 못하겠더라고요. 사람들이 통성 기도를 하면서 우는 것도 적응이 안 되고, 목사님이 설교를 너무 많이 하는 것도 참기가 힘듭니다.”
“그렇다면 질문자가 제사를 지내야죠. 시부모님은 제사를 지내면 형님이 있는데도 재산을 나한테 물려주겠다고 한 거잖아요. 제사를 지내는 조건으로 재산을 받았으면, 시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는 잔소리하지 말고 제사를 지내는 게 예의가 아닐까요?”
“그렇죠. 열심히 지내겠습니다.”
“약속한 것에 대해 자꾸 이의를 제기하면 안 돼요. 10번을 지내기로 했으면 10번을 지내야지요. 아버님이 ‘힘드니까 6번만 지내라’ 하고 말해도 ‘아닙니다. 아버님. 제가 약속을 했으니 10번 다 지내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해야 관계가 좋아집니다. 그런데 음식은 조금 부족하게 차려도 괜찮아요. 어른들도 제사 음식을 먹을 사람이 없다는 걸 다 아십니다. 음식을 조금 부족하게 차린 걸 섭섭해하시면 ‘죄송합니다. 아버님. 직장 갔다 와서 음식 준비하는 게 힘들어서 조상님들도 이해해 주실 거예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됩니다. ‘바쁘고 힘든데 먹지도 않는 음식을 어떻게 꼬박꼬박 다 차려요?’ 하고 화를 내는 것은 내 복을 내가 까먹는 행위예요. ‘아버님, 죄송합니다. 보기 좋게 차려야 되는데 제가 요새 몸이 안 좋아서 몇 가지밖에 못 차렸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슬쩍 넘어가면 됩니다. 아버님이 ‘네가 너무 힘드니까 명절 빼고는 부모님 직계 제사만 지내고, 나머지는 합해서 지내자’라고 하시면, 한 2년 정도는 ‘아닙니다. 제사는 꼭 지내야 합니다’라고 하다가 나중에 못 이기는 척하면서 ‘아버님이 그렇게 원하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복을 받는 행위가 됩니다.
어차피 우리가 살면서 파티를 해도 음식을 다 만들어야 하잖아요. 그날을 자꾸 제사라고 생각하니까 부담이 되는 것인데, 전통 음식을 만들어 먹는 가족 파티라고 생각해 보세요. 음식을 만들어서 상에 올려놨다 내려 먹는 것 빼고는 파티하는 것과 차이가 없습니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꾸어 보세요. 제사를 지내면 복을 받는다는 생각까지 굳이 하지 않더라도, 마음을 이렇게 긍정적으로 바꾸기만 해도 내 기분이 좋아지고, 주위 사람들이 볼 때도 내가 사랑스러워 보여요. 그러면 시부모님이 밖에 다니면서 늘 며느리 자랑을 할 겁니다. 다른 일을 조금 못해도 봐줍니다.
생각을 좀 바꿔야 해요. 질문자가 밥 하는 것이 질려서 그런 것 같은데, 하루에 매일 50명의 밥을 하는 사람이 고작 귀신 몇 명 분의 밥 하는 게 뭐가 어려워요? 누군가가 ‘제사를 그렇게 많이 지내면 얼마나 힘들어요?’ 하고 물으면 ‘괜찮아요. 저는 매일 50명의 밥을 하기 때문에 귀신 두 명 먹는 밥을 하는 정도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습니다’ 이렇게 가볍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을 긍정적으로 해야 복을 받게 됩니다. 재산은 다 받아놓고 제사는 안 지내겠다고 하면 안 되죠. 제사를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한 달에 한 번씩 가족 파티한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형님 내외분은 제사에 안 오십니다.”
“제사 때 먹을 입이 줄어드니까 얼마나 좋아요? 형님이 제사에 안 온다고 미워하지 말고, 입이 줄어서 좋다고 생각하세요. 그런데 음식의 양은 줄이겠다고 부모님께 얘기하세요. 혼자 결정하지 말고요. ‘아버님, 음식을 먹을 사람이 없어서 자꾸 버리게 되니까 아깝잖아요. 음식 종류를 줄이고 양을 그대로 할까요? 아니면 종류는 다 하고 양을 조금씩 줄일까요?’ 이렇게 여쭤봤는데, 아버님이 ‘종류도 다 하고 양도 다 해라’ 하면 ‘알았습니다’ 하면 돼요. 그렇게 한두 번 하면 아버님이 종류를 줄이라든지 양을 줄이라든지 얘기할 겁니다. 그렇게 지혜롭게 대처를 해보세요. 질문자가 돈을 하나도 안 받았더라도 해야 되는 일인데, 재산까지 받아놓고 안 하려고 하니 심보가 더럽네요.” (웃음)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 하면 안 돼요. 일은 대강대강 해도 됩니다. 대신 시부모님과는 항상 의논을 해야 관계가 좋아집니다. 한다고 해놓고 꼭 안 해도 돼요. 여러분들은 내가 못 할 것 같으면 거절을 먼저 하잖아요. 어른들이 요청하면 일단 ‘알겠습니다’ 하고, 나중에 못하게 되었을 때 ‘죄송합니다. 제가 몸이 아파서 못 했습니다’ 이렇게 사과만 할 수 있으면 관계가 나빠지지 않습니다. 미리 안 된다고 말하지 말고, 항상 수용을 먼저 해놓고 나중에 죄송하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버려도 됩니다.”
“예, 감사합니다.”
“제사 지내는 문화는 우리 세대가 죽으면 아마 없어지게 될 겁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10년 더 제사를 지낼지에 대한 얘기는 지금 할 필요가 없어요. 제사는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만 지내면 됩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내 마음대로 해도 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식이 있어요. 설과 추석에만 제사를 지내고 기제사는 안 지낸다거나, 기제사를 다 합해서 지낸다거나, 아니면 어차피 가족 파티를 해야 하는데 맛있는 거 먹자는 핑계로 제사를 다 분리해서 지내도 됩니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보세요.”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스님이 수많은 질문들에 대해 답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비결이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어떻게 수많은 질문에 바로 답변을 할 수 있나요?
“즉문즉설을 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스님은 어떻게 해서 누가 무슨 질문을 해도 바로 대답을 해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학습을 해야 수많은 지식들을 통합적으로 생각해서 답변을 할 수 있나요? 저는 스님의 그런 능력이 정리를 잘하는 능력에서 오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수많은 정보를 어떻게 정리정돈을 하시나요?”
“정리정돈을 안 하면 됩니다. 질문자는 정리정돈을 자꾸 하려니까 머리가 복잡해지는데, 저는 정리정돈을 안 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기 거울이 있습니다. 거울 앞에 컵이 놓이면 거울에 무엇이 비칩니까?”
“컵이 비칩니다.”
“거울 앞에 뚜껑이 오면 뚜껑이 비칩니다. 거울 앞에 시계가 오면 시계가 비칩니다. 그러면 이 거울은 몇 개의 물건을 비출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 이 거울은 몇 개의 그림을 그린다고 말할 수 있어요?”
“한없이 그림을 그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없이 그림을 그린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 거울은 한 그림도 그린 바가 없습니다. 이 거울은 한없이 많은 그림을 그린다고 말할 수도 있고, 이 거울은 한 그림도 그린 바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즉, 거울은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다만 비추어 줄 뿐이에요. 컵이 오면 컵을 비추고, 사과가 오면 사과를 비춘다.
인천 사람이 부처님께 서울 가는 길을 물으면 ‘동쪽으로 가라’ 하고 말씀하시겠죠. 강릉 사람이 물으면 ‘서쪽으로 가라’ 하고 말씀하실 것이고, 수원 사람이 물으면 ‘북쪽으로 가라’ 하고 말씀하실 겁니다. 그러면 부처님은 서울 가는 방향을 어디라고 정해놓고 있는 겁니까? 부처님은 서울 가는 방향을 하나도 정해놓지 않습니다. 이것을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고 합니다. 정해진 법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는 ‘공(空)’이라고 표현합니다. 다만 인연을 따라 한없는 방법이 그때그때 나오는 겁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는 ‘색(色)’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한 개의 그림도 그리지 않기 때문에 한없는 그림을 그릴 수 있고, 한없는 그림을 그리지만 한 개의 그림도 그리지 않습니다. 굳이 즉문즉설의 원리를 말하자면 이런 원리입니다. 정말로 법륜스님이 그런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을까요? 그런 정도의 경지까지는 아직 못 이르렀어요. 그러나 그 경지에 비슷해져가고 있다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지식을 쌓았기 때문에 온갖 질문에도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저는 아무런 정리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즉문즉설을 할 때는 오직 그 사람의 괴로움만 봅니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어떤 여성이 자기 남편과 아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몰래 남자친구를 사귀느라 괴로워 죽겠다고 하면, 여러분은 ‘가정이 있는 여자가 어떻게 바람을 피울 수가 있느냐’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저는 남편과 남자친구 사이에 저 여성이 괴로워하고 있다는 그 사실만 봅니다. 저 여성이 윤리적인지 도덕적인지 이런 것은 전혀 따지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괴로움은 우리들의 마음이 만듭니다. 행복도 내 마음이 만드는 것이고, 불행도 내 마음이 만드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즉석 질문까지 받아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2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곧바로 무대 위에서 책 사인회를 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서 스님과 인사를 나누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스님 덕분에 정말 많이 행복해졌습니다. 원주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책 사인회를 마치고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행복 시민, 원주!”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습니다.
“다들 수고했어요. 저는 오늘 밤에 울산까지 가야 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스님, 조심히 가세요.”
강연장을 나와 밤 10시에 원주를 출발하여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차로 3시간을 달려 새벽 1시에 두북 수련원에 도착한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정토경전대학 학생들과 그동안 수업을 들으며 느꼈던 궁금한 점에 대해 대화하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