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마다 피어나는 꽃들의 특징은 조금씩 다르다.
이른 봄, 잎보다 먼저 피어나는 꽃들은 겨우내 제 몸을 스스로 달궈놓았다가
튀밥처럼 일시에 꽃망울을 터트린다.
그리고 늦은 봄에 피어나는 꽃들은 연초록대지와 구별하기 위하여
주로 흰 꽃들이 피어난다.
아카시, 찔레, 때죽, 이팝, 조팝, 쥐똥, 둥글레며 은방울꽃에 이르기까지.
유월이 지나고 태양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면 정열적인 원색의 꽃들이 피어난다.
태양처럼 강렬한 빛으로 연못에 피어나는 수련과 연, 울타리며 나무를 타고 올라
꽃무리를 이루며 피어나는 능소화, 피고 지고 지고 피는 무궁화,
옛 집과 정자 무덤가에도, 산과 들에 조화를 이루며 피어나는 목백일홍,
해바라기와 함께 길가에 작은 해바라기처럼 피어나는 바다 건너 온 루드베키아,
그리고 엉겅퀴. 달밤에 피어나는 달맞이꽃에 이르기까지,
더하여 내가 좋아하는 원추리와 나리꽃,
원추리는 산정에 피어나 가녀린 꽃대를 바람에 내맡길 때 제 멋이 난다.
또 하나 더하여 도라지꽃, 산중에 홀로 피어 원추리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모시적삼을 입은 대갓집 규수 같은 나름대로 우아한 품격이 있다.
몽당연필 달그닥거리는 책보를 둘러메고 서낭당 고개를 넘어 다니던 그 시절, 청승맞게
산비둘기 울고 풀숲에 먹음직한 산딸기 익어 가면 마치 공작의 화려한 머리 깃처럼 칠월에 그 꽃은 피어났다.
한복으로 멋을 낸 여인네가 든 화려한 양산 같아 보이기도 하고, 가까이 보면
꽃관을 쓴 듯 한 자태, 꽃술 하나하나가 끝은 연분홍 솜털인가 하면
아래는 하얀 새털 모습, 그러나 그저 소나무 사이로 흔하게 보는 나무였다. 누가 언제부터인지 어른들은
그 나무를 소쌀밥나무라고 불렀던 것이고 우리도 당연히 소쌀밥나무라고 따라 불렀다.
소가 그 잎을 아주 맛있게 먹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늘 배 고프게 살아온 이 땅의 민중들 이었기에 별스럽게도 먹는 것과 연관시켰으니
나이도 먹고 욕도 듣는 것이 아니라 먹어야 했다.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까지도
겨울이 되면 산속의 토끼가 무얼 먹고 살 것인지 걱정하는 노래를 불러야 했다.
원래 나무이름은 있었을 텐데도 한 집안 식구나 마찬가지였던 소가 좋아하는
음식같은 것이었으니 특별히 소쌀밥나무라는 이름을 붙여주웠을 것이다.
그 나무의 본디 이름은 ‘자귀나무’였다.
원산지는 아시아이며 콩과의 나무로 가을이면 콩 같은 열매가 달리는 나무이다.
서낭당에 오르는 고갯길에 소나무 사이로 흔하게 서 있던 나무였는데,
마디가 없어 부지깽이용으로 흔하게 쓰이던 것이라 나무하러 가서는 한 다발씩 따로 베어오던 나무였는데,
도심의 공원에 그리고 정원이 있는 가정집 뜰의 한 켠을 자랑스럽게 차지한 모습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와 같이 촌스런 것이 어떻게 그렇게 이 도시에서도 자랑스럽게 서 있는가 하고.
자귀나무는 내가 알고 있던 소쌀밥나무만이 아닌 합환목, 합환수, 야합수, 유정수,
부부금슬나무,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부부의 금슬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나무란다.
‘전설 따라 삼천리’를 가보자.
옛날 한 마을에 부지런하고 착한 총각이 살았다는데,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아름다운 꽃이 만발한 집이 나타났다.
자신도 모르게 그 집안으로 들어갔는데 마침 예쁜 아가씨가 그 집에 살고 있었다는데
단번에 눈이 맞은 그 처녀총각은 혼인을 했다나.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신랑이 동네 주막의 주모에게 반해 집을 비우기 시작했고
신부는 산신령이 알려주는 대로 자귀나무 꽃을 꺾어다 방안에 두고 백일기도를 한 후
남편이 돌아왔고 그 꽃을 보고 옛정을 되찾아다는 이야기가 있었다나 어쩌다나 !
자귀나무 잎은 연꽃처럼 낮에는 활짝 피지만 밤에는 잎을 오므려 꼭 껴안은 듯 한 모양이
되는데 이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잎의 표면적을 되도록 적게 하려는 생리현상의 일종이다.
두 잎이 마주하여 밤을 보낸다는 이유로 위의 여러 이름들이 만들어졌고
예전에는 신혼부부의 방 창가에 심어 금실이 좋기를 빌기도 하였다는 나무이다.
산중의 그저 그런 나무에도 특성과 모습을 보고 전설을 만들고 이름을 지어낸 옛사람들의 풍류와 멋이 그리워지고
언젠가는 내 집 안마당에도 한그루 심고 꽃을 볼 날을 기다려본다.
첫댓글 자귀나무 꽃을 무척 좋아하는데 이야기를 듣고 나니 더 정이 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올해는 긴 가뭄으로 제 빛을 피우지 못하고 꽃이 지기도 해서 안타까웠지요.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고향에서는 '소쌀밥 나무'라고 부르셨다는데 제 고향에서는 '소찰밥 나무'라고 불렀답니다. 저의 집 정원에도 한 그루 있는데 밤에는 잎을 오무려 잡니다.
윤솔님의 고향에서는 더 귀한 이름으로 불러준 것 같습니다. 가까이 있으니 잠자는 모습도 보아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저도 좋아하는 나무인데 이름을 몰라서 궁금했습니다.
이제...소쌀밥나무로 말 할 수 있게 되었네요...고맙습니다^^
아파트 화단에서 자귀나무 명찰을 달고 분홍색 꽃을 피우고 있어 오며가며 자귀나무 꽃을 보았더랍니다. 산중에 나무가 도시에 까지 나와 정원수로 크고 있어 사람 처럼 나던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그런 맘을 생각케 합니다. 좋은 정보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