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원전 바닷가
겨울다운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임인년 일월 중순이다. 일 년 중 연평균 기온이 가장 낮은 때가 소한이다. 그래서 ‘대한이 소한 집에 가 얼어 죽는다’는 날씨 관련 속담마저 전한다. 올해는 춥지 않은 소한을 넘겼는데 일주일 뒤 다가올 대한을 앞두었다. 어제는 날씨가 춥다기에 하루 종일 집안에만 머물렀더니 바깥이 궁금해 자꾸 베란다 밖을 내다봤다. 미세먼지가 없어 쾌청했다.
엊그제 미세먼지를 뚫고도 함안 대산으로 나가 남강 벼랑 악양루에 올랐더랬다. 코로나 영향인지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지 않았는데 그날은 예외였다. 이른 아침부터 강변 트레킹을 마치고 귀가할 때까지도 대기는 안개처럼 희뿌옇더랬다. 우리나라에서 전형적인 겨울 기압배치인 서고동저로, 시베리아 한랭기단이 팽창하면서 차가운 바람까지 불어 미세먼지를 날려 보내 고마웠다.
일월 셋째 목요일 이른 아침을 먹고 101번 시내버스를 타고 마산역 광장으로 나갔다. 며칠 전 진전 율티에서 고현 갯가로 산책을 다녀왔는데 이번에는 구산면 갯가로 나갈 참이다. 구산면 갯가로는 저도 비치로드 근처 구복과 낚시터로 알려진 원전이 떠올랐다. 수정에도 해안선을 돌아가는 옥계와 난포도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자동차가 붐비는 저도 근처 구복은 선택지에서 뺐다.
마산역 광장 농어촌버스 출발지에서 원전으로 가는 62번 버스를 탔다. 가끔 낚시꾼들이 타기도 했는데 한 명도 보이질 않았다. 마산 시내를 관통한 버스는 댓거리를 지나 밤밭고개를 넘어 현동으로 갔다. 현동은 근래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옮겨오거나 새로 지어졌다. 덕동 공용버스 차고지에서 수정을 거쳐 백령고개를 넘으니 국도 5호선 접속 나들목이 나왔다
국도 5호선은 마산 기점으로 창녕 남지를 거쳐 중부 내륙으로 올라간다. 몇 해 전 기점이 거제까지 연장되어 내가 살다온 연초로 바뀌었다. 4호선 국도는 로봇랜드가 개장하면서 구산 심리까지 신설 개통했다. 심리 바깥 바닷가가 원전인데, 그곳에서 해상은 미개통 구간으로 남겨 놓았다. 장목 황포까지는 거가대교처럼 해상 구간을 구상하는 중이라 언제 완공이 될지 가늠할 수 없다.
로봇랜드 입구 원형교차로에서 난포를 거쳐 용호를 둘러 나오니 심리였다. 차창 밖으로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엔 하얀 양식장 부표가 줄지어 떠 있었다. 수정부터 합포만 바깥 바다는 온통 홍합 양식장으로 바다 목장과 같았다. 버스가 원전 종점에 닿아 시내에서 시장을 봐 가는 한 할머니의 짐을 들어주며 내렸다. 여러 척 낚싯배가 묶여진 원전 포구는 낚시꾼이 즐겨 찾는 데였다.
바다낚시는 민물낚시와 달리 물때에 맞춰 낚시꾼이 몰려왔다. 내가 찾아간 이날은 용왕이 만조백관을 불러 모아 어전회의 열었는지 물고기가 연안으로 나오지 않는 듯했다. 여러 척 낚싯배는 계류장에 묶여 있고 방파제에도 낚시꾼은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서쪽 방파제로 가니 바다 건너 내가 살다온 거제 섬의 산세가 드러났다. 칠천도와 황덕도는 내가 트레킹을 자주 갔던 곳이다.
방파제에서 나오니 수산회사에서 홍합을 세척하는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데 두 동남아인은 선별에 열중했다. 인력난에 귀한 대접을 받을 청년들이었다. 마을 회관 볕바른 자리에는 할머니 세 분이 노점을 펼치고 있었다. 잠수부가 앞바다에서 건져 올렸다는 키조개와 대합과 해삼 등이었다. 어시장 어패류보다 선도가 더 좋아보였다만 내가 사줄 처지가 못 되어 할머니에게 미안했다.
부두를 따라 가니 상자에 생대구가 담겨 있고 내장을 꺼내 말리는 대구는 빨래처럼 걸려 있었다. 포구에는 갈매기가 퍼드덕거리고 바로 앞 작은 섬 실리도는 손에 닿을 듯 지척이었다. 아까 버스가 지나왔던 연안을 돌아가니 멀리 거가대교 연륙구간이 보였고 고개를 돌리니 장복산이 에워싼 진해 시가지도 멀지 않았다. 평소 잔잔한 바다였는데 바람이 세게 불어 파도가 거칠게 일었다. 22.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