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의 반란은 강자의 오만이나 빈틈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 하지만 이번 대회에 출전한 축구 강국들은 만만찮은 실력을 갖춘 ‘도전자’들을 상대로 이렇다할 실수 없이 경기를 치렀다. 이제까지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가져 간 7개국 중 지역예선에서 탈락한 우루과이를 뺀 6개 참가국이 모두 8강에 합류한 반면, 아시아-아프리카-오세아니아에서 날아온 이른바 ‘제3의 대륙’ 출신 국가들은 꿈꾸던 이변을 실현하지 못한 채 고국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덕분에 축구팬들은 그 어느때보다 쟁쟁한 8강 라인업을 받아들었다. 강호들이 낙엽처럼 우수수 탈락하는 바람에 한국 이외 축구팬들로부터 아쉬움을 샀던 2002년과는 전혀 딴판인 셈이다.
하지만, 선수들이 그라운드 위에서 최상의 실력을 발휘하는 동안 심판들은 잦은 실수와 오심 논란으로 고초를 겪고 있다. 아마 역대 월드컵 가운데 심판들이 이렇게 자주 뉴스에 등장한 일이 없었을거란 생각이 들 정도다.
따지자면, 심판 수난시대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중계 기술의 급격한 발전이다. 독일 월드컵이 열리는 12개 경기장에 각각 25대씩 설치된 TV 카메라는 경기장 곳곳을 샅샅이 훑은 뒤 위성을 통해 그 화면들을 전세계로 송출한다. 이 과정에서 심판이 ‘인간’의 눈으로 놓친 장면들이 위성을 타고 실시간으로 전세계에 전달되면서 시청자들은 때로 심판보다 더 우월한 위치에서 상황을 판단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심판의 권위는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 심판의 눈을 벗어난 반칙은 이제 상대팀 선수들에게만 해를 끼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놓친 심판들에게도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가 심판들을 긴장시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번 대회에는 세계 최고의 축구 축제에 걸맞지 않는 미숙한 판정이 속출했다. 어이없는 실수, 눈치보기 판정이 이어졌다. 결국 국제축구연맹(FIFA)은 16강전이 끝난 뒤 8강전 심판진 배정을 발표하면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른 심판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냈다.
대표적인 사례는 F조 예선 호주와 크로아티아의 경기를 주관했던 그레이엄 폴 주심이다. 그는 이 경기에서 크로아티아의 수비수 시무니치에게 옐로카드 2장을 내밀고도 퇴장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주심의 지시를 받지 않은 시무니치는 계속 뛰었고 경기 막판 주심에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3번째 옐로카드’를 받은 뒤 퇴장당했다. 폴 주심은 최근 “크로아티아 3번(시무니치)에게 카드를 내밀고는 호주 3번의 이름을 수첩에 적었다”며 실수를 인정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심판이라는 찬사를 받던 폴 주심은 이 밖에도 이날 여러 차례 판정에 혼선을 빚어 자신의 경력에 치명상을 입었다. 이 밖에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의 16강전에서 무려 16장의 옐로카드와 4장의 레드카드를 남발하며 월드컵 신기록을 세운 러시아의 발렌틴 이바노프 주심 역시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한국-스위스전 오프사이드 논란을 통해 한국 축구팬들의 맹비난을 받은 아르헨티나의 엘리손도 주심은 잉글랜드와 포르투갈의 8강전 주심에 배정돼 FIFA의 재신임을 받았다. 이것 역시 '심판의 권위'를 중시하는 FIFA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다. 즉, 기본적인 사항에 착오를 일으켰거나 경기 진행 미숙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대처하지만 심판의 '재량'에 의해 내려진 결정에 대해서는 이것이 설사 '카메라의 눈'에 의해 차후 논란을 빚었다 하더라도 문제삼지 않는 것이다. 즉, 첨단기술보다는 '인간의 눈'을 지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FIFA는 오심 논란을 막기 위해 첨단기술을 도입하자는 의견에 쉽게 조응하지 않았다. 공이 골라인을 완전히 넘어갔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공에 칩을 장착하자는 주장조차 아직 월드컵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태. 이처럼 FIFA가 첨단기술 도입을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앞서 밝힌대로 심판의 권위 추락으로 인한 파장을 우려해서다. 기계에 판정을 의존하게 되면 심판이 경기를 통제할 수 없게 되고 제대로 경기 진행이 어려울 수 있다고 걱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판의 권위는 앞서 말한 중계기술의 발달로 인해 이미 FIFA가 보호할 수 없는 영역으로 넘어가 버렸다. 수십개의 카메라가 인간의 눈을 앞설 수 없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수억명의 시청자들에게 ‘사실’과 ‘판정’이 다른 것을 받아들이라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마디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인데 이러한 경향이 계속된다면 FIFA의 의도가 심판 권위의 보호가 아닌 FIFA의 통제권을 보호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더욱 짙어질 수 밖에 없다. 현재 FIFA는 (스스로는 부인하겠지만) 심판들을 통해 경기의 흐름이나 승패를 좌우할 능력을 갖고 있다. 모든 심판들은 FIFA에 의해 고용된 사람들이니만큼 결국 FIFA의 의중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첨단기술 도입으로 인해 자신들이 고용한 심판의 재량권이 줄어들면 경기에 대한 통제권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물론 음모론적인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아예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FIFA는 여전히 심판의 권위를 떨어뜨릴만한 사안에는 게으르게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8강전 주심 배정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폴이나 이바노프 주심은 돌려보내고 한국-스위스전으로 물의를 빚은 엘리손도 주심은 8강전에 재배정했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현대의 축구는 경기장을 찾은 수 만명이 아닌 TV, DMB, 인터넷을 통해 경기를 지켜본 수억명을 대상으로 벌어진다. 그런데 심판 재량으로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 경기가 전세계에 방영되고 그로 인해 엄청난 논란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쪽 귀를 막고 '인간의 눈'에만 천착하는 것은 FIFA가 경기장이나 마케팅 권한은 물론이고 경기 내부에서 벌어지는 상황들까지도 지배하려는 한다는 '음모론' - 이를테면 회장님 눈치보기 따위를 통해 - 에 힘이 실리는 조치다.
당연히 나 역시 축구가 첨단기술에서 최대한 배제된, 근대축구의 정신이 살아숨쉬는 스포츠로 남아있기를 꿈꾸는 사람 중의 하나다. 하지만 TV중계를 통해 엄청난 액수의 수익을 벌어들이는 FIFA가 그로 인해 빚어지는 엄청난 논란에 귀를 막는 것은 아귀가 맞지 않는 일이라고 본다. 이제 시청자들은 심판보다 더 많은 것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카메라의 눈은 이제 관객의 눈과 같다. 그런 상황에서 수억 관객들이 '인간이기에' 실수할 수 있는 심판의 눈에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곤란한 일 아닐까. 경기가 끝날때마다 온갖 비난과 협박에 상처입는 심판들을 위해서라도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 '정확'과 '공정'을 판단하는건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이다. 이제 조금씩, 어느 정도는 과학에게 그 자리를 넘겨줘도 좋지 않을까. |
첫댓글 토 나 오 는 ㅅ ㄲ 들
나쁜피파 던에 눈이멀었어....
앨리손도 이번에는 누구편들어줄라나..
윗글대로 심판이 경기를 통제하죠...피파는 심판을 통제하고...췟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FIFA에도 광풍이 불어닥칠것 같다...
엘리손도..ㅡ.,ㅡ;; 이런 ㅅㅂㄻ..
피파역시 권위주의의 상징
개인적으로 엘리손도 이번에 포르투갈에 편파판정 내려서 잉글랜드 훌리건들한테 비난폭탄 받았으면 좋겠음..
역시.... 이러니 심판매수 이야기가 안나오냐고?? 너네는 할말없게 되었다...ㅡㅡ
아르헨티나랑 잉글랜드 사이 안좋으니 정말 이 심판 포르투칼에 편파판정 내리는거 아냐?ㅋㅋㅋㅋ
ㅡㅡ 경기 잼있겠군....... 왠지 진짜 포르투갈 더 유리하게 불어줄거 같은.......
반드시 편파판정 해라. 더도덜도 말고 딱 우리가 당한 만큼만..그렇게 훌리건들 자극해다오. 경기 이후는 책임 못진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