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원 20-2
(박정희는 세계적 영웅
(제3절 ) 창원단지의 웅도를 그리다
<공업단지에 배후도시 건설>
창원단지는 정확히 토지 이용계획에서 총면적 1,470만평을 지정을 받아 796만평을 공업단지로 지정하고 배후도시로 674만평을 할당받았다.
단지 전지역 중앙을 통과하는 직선 일방 5차선(양쪽 50m폭) 기지 대로를 건설하여 남북으로 분리하고 남쪽지역은 공업단지, 북쪽은 배후도시로 지정하였다.
중앙도로 양측에 인도와 자전거로를 건설하고 가로수로 완충지를 만들어 공장과 주거지역을 완전히 분리시켰다.
기지대로의 길이는 작선으로13.8 km가 되어 제트기의 이착륙이 가능하도록 하여 긴급시 방산물자 수송을 할수있도록 계획하였다.
<공단에 주거도시 건설을 현실화 하는 거대 작품)
중화학 공장건설에 있어서 기계와 전자는 장치산업임과 동시에 많은인력을 필요로 하는 공업으로서
전자의 경우는 내륙공업으로서 도시가 형성된 지역에 넓은 대지를 찾은 곳을 찾아 구미 전자단지를 만들었다.
기계공업의 경우 일본( IHI)의 예를 들면 고용 인력 8만~10만에 4인가족의 경우 40만 인구 인원을 수용하는 배후 주거지를 필요로 한다고 했다.
여기에 공장과 주거 단지에는 정부지원시설로서 철도 도로 항만 용수 전기 통신시설을 모두를 구비하는 완벽한 공단과 주거지를 포함한 공업기지( Industrial Base) 건설 계획으로 출발하였다.
기계단지에 민간공장을 유치해서 기계공단을 유치하는 것이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30~40만의 인구를 유치하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 것이었다.
한때 경남 도청 이전지가 울산이냐! 진주냐!로 심각한 논쟁의 대상이었다. 창원이 후보지로 거론 된 역사가 없었다.
그런데도 창원기지 계획때부터 배후도시 중심부에 시청을 두고 뒤쪽 좀 높은 곳에 도청유치 유보지로 계획하여 만들어 둔것 것이다.
이것으로 경남도청이 자연 발생적으로 이전하고 창원단지가 기계공단과 배후도시가 있는 계획도시로 태어 났다.
도청 이전은 지방자치단체 문제이지 대통령의 지시사항이 아니다. 대통령께 도청 이전 소재지로 유보하여 뒀다고 보고 드렸다.
중화학의 기계공단 건설이 백지상에 세계일류( First Class )화를 그리면서 출발한 이상 주거 도시도 동반하여 세계일류를 목표로 계획하여 추진된 것이다.
이러한 공단과 주거도시 건설계획을 포함한 창원기계공단 웅도 실현 추진계획은 한국 뿐만 아니고 세계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다
<기계공장 건설방침>
기계 단지는 기계공업상의
기능별로 ; 요소, 부품 (예 자동차 용 포함)
형태별로 ; 대단위, 중소기업,
업종별로 ; 방위산업, 자동차, 공작 기계, 박용기계, 농기계, 건설장비, 정밀기계,
기간산업 ; 발전설비등 모든 기계
업종을 입주시켜 기계공업의 체계적인 육성을 기한다.
공단 건설 초기에 기계공장 건설 로 할애된 8백만평이란 대규모의 단지에 기계공장을 건설하기란 불가능한 일에 가까윘다.
기계공업 자체도 유치했고 기계공업을 필요로 하는 산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박정희 대통령이 기계공업육성을 위한 여타 중화학업종에는 한바 없는 지시각서를 수차례 발송하기도하고 대통령 하계 휴가시 창원공단에 들러셔서 건의사항을 듣고 해결하여 주셨다.
한가지 중요한 것은 창원단지는 박정희 대통령이 손수 돌본다는 방침아래 모든 권한을 오원철 수석한테 위임하여 추진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한국의 중화학은 민영으로 하는 이상 10대 재벌이 솔선 수범해서 중화학이나 방위선업 공장을 지어 줄 것을 호소한 것이다.
공단건설 초기에 남쪽 8백만평이나 되는 지역을 평평하게 정지해 눟고 보니까 공단끝 지평선이 보일 정도의 광활한 지역이었다.
공단 전부의 지역을 기계공장으로 언재 채울수 있을가 꿈만 같았다.
자주국방을 위하여 이미 착수한 방산공장과 전국에 산재되어 있는 기계공장 예를 들면 광주의 화천 선반과 진주의 대동 농기계는 무조건 창원으로 이설토록 권유했다.
예를 들면 삼성에는 삼성정밀기계를 만들도록 했지만 정밀기계 수요가 없어 대신 시계와 카메라를 만들도록했다.
공단초기 건설시 부터 삼성정밀이 F16 엔진을 생산하고 삼성중공업은 K155 무반동포를 만들기로 하였다.
현대차량은 K2 전차를 만들고 현대양행은 윈전설비 산업의 기초를 만들기로 지정된 것이다. (삼성의 방산 시설은 추후 한화에 매각
하였다)
그밖에 대우, 금성사 ,효성, 대림, 한국특수강, 한일단조, 부산포금,
통일산업, 동국중공업,기아기공 등 크고 작은 업체가 입주하였다.
이러한 박정희 대통령과 청와대의 T/F 팀의 설득노력이 효과를 거두어 본격적인 기게공단 건설이 추진된 것이다.
방산공장 운영을 도우기 위하여 창원단지 공사현장에 청와대 비서관과 상공부 담당국장을 주재시킨것은 역사에 기록될 일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신 연도인 1979년 연두기자 회견에서 박정희는 창원기계 기지는 건설에 착수한지 5년만에 만들고 싶으면 못만드는 것이 없는 기계공업의 총본산지가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1979년 현재 가동 기업체 수는 74개사, 건설중인 업체가 32개사, 계110개사가 되었다.(계속)
2024. 3. 1 김광모
(참고) 박정희 대통령 치사 77년 하계 휴가중 창원공단 방문시)
기계공업의 불모지에 오늘의 훌륭한 기계공업기지를 건설하여온 업주업체 여러분의 노곤를 치하 하는 바입니다.
선진공업 한국을 건설함에 있어서 기계공업의 발전없이는 이룩될수 없습니다.
정부에서는 기계공업을 80년대 우리 산업의 주도업종으로 만들기 위하여 여러가지 지원책을 강구하여 나가 겠습니다.
업계에서도 현재까지 구축한 기반을 토대로 하여 더욱 노력하여 국제 일류수준의 제품을 생산하여 국내외 시장에 진출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창원기지에 건설한 공장들은 자격있는 기술자가 훌륭한 설비와 공정으로 운전하고 있으므로 국제경쟁에서 충분히 이겨 나갈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오늘 어렵다고 좌절하지 말고 소임을 가지고 업무에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사항이 있으시면 면담시나 공단 관리사무소에 연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대통령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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