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진: 북한이 지난 1년 반 동안 영국 프리미어 리그, EPL 축구 경기를 100회 넘게 무단으로 방영해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리그 1, 2위를 다투는 팀의 경기는 제외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오늘의 첫 번째 소식입니다.
김금혁: 북한 관영 조선중앙TV는 지난달 13일, 영국 프리미어 리그, EPL 소속 아스널과 본머스의 경기를 녹화 중계했습니다. 이날 오후 3시 30분부터 방영된 중계 화면의 위에 조선중앙TV 로고가, 오른쪽에는 ‘2023-2024 잉글랜드 최상급 축구련맹전 중에서’라는 문구가 달렸습니다. 지난 4일 미국의소리(VOA) 방송 보도에 따르면, 영국 프리미어 리그 관계자는 "프리미어 리그와 북한은 이번 시즌 중계권 계약을 맺고 있지 않다"면서 북한이 무단으로 경기를 중계 방송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VOA에 따르면 북한 관영 조선중앙TV가 2022년 4월부터 올해 10월까지 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방영한 횟수는 모두 129회에 달합니다. 하지만 프리미어 리그에서 활동 중인 토트넘 손흥민, 울버햄프턴 황희찬 등 한국 선수가 등장하는 시합은 방송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예진: 북한이 아시안게임에서 한국과 경기할 때 한국을 ‘괴뢰’로 표기한 전적이 있기 때문에 한국 선수가 등장하는 경기를 내보내지 않았다는 게 크게 놀랍지는 않습니다만, 현재 리그 2위인 토트넘 홋스퍼에서 뛰고 있는 득점 1위를 두고 다투고 있는 손흥민 선수 경기가 빠졌다니 왠지 아쉽네요.
김금혁: 북한에서의 프리미어 리그 중계 시청은 여전히 많은 제약이 따릅니다. 중계를 제외하고 리그 순위표나 관련 뉴스를 북한 방송에서 제공하지 않아 조선중앙TV를 통해 시청자들이 자세한 배경을 알기는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죠. 북한은 상위 1~6위팀 경기를 주로 방영하면서도 토트넘 경기는 제외했습니다. 대부분 경기 전체를 녹화 중계하는 방식이었으며, 2개의 경기를 1개 분량으로 편집해 방영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북한은 해외 프로축구 경기를 방영할 때에는 관중들의 함성 등 현장음을 의도적으로 낮추고 관중들의 자유분방한 모습도 가급적 드러나지 않도록 편집하고 있습니다. 중계자들은 비교적 차분한 목소리로 경기를 설명하고, 일부 유명 선수들의 경우에는 주요 기록과 이전 소속팀 등의 정보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북한은 이전에도 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녹화방송하면서 손흥민이 출전해 활약하는 장면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조선중앙TV에 손흥민이 등장한 건 무려 10여 년 전 독일 분데스리가의 함부르크 SV에서 뛰던 시절 정도인데요. 아무래도 북한 입장에서는 대한민국 선수가 세계 최고 무대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북한 내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부담스러운 면이 있겠죠.
북한 선수들은 꿈조차 꿀 수 없는 무대에서 한국 국적의 선수가 득점왕도 차지하고 팀의 주장으로서 다국적 선수들을 이끌고 있는 모습은 북한 사람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죠. 사실 북한을 제외한 모든 아시아 국가에선 손흥민 선수의 활약을 지켜보며 아시아를 빛내고 있다고 자랑스러워 하고 있지 않습니까? 북한은 그런 영향이 자국에도 미칠까 두려워 손흥민 선수를 감추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한국 축구와 북한 축구의 간극이 너무나 벌어져 있다는 점도 고려를 해야 할 점이겠죠. 주체 축구, 정신력 축구를 강조하지만 국제 무대에서 늘 조기 탈락하는 북한 축구와 달리 한국 축구는 요즘 승승장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선두에 손흥민 선수가 있는 것이고요. 이런 선수를 북한 사람들에게 소개할 리 없겠죠.
이예진: 그런데 또 하나 이해가 안 가는 건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사형을 선고하기도 하는 북한 당국이 외국의 축구 경기를, 그것도 중계권료도 지불하지 않고 무단으로 몇 년째 내보내고 있다는 건데요. 북한 당국이 경기를 무단으로 중계하면 안 된다는 걸 모르고 있었던 걸까요, 아니면 알면서도 그 정도로 축구 경기를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일까요?
김금혁: 일단 축구라는 종목은 전 세계 어딜 가든 최상위 인기 종목 아닙니까?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체육 종목 중 1위는 아마도 축구일 것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 축구를 정말 많이 했거든요. 축구를 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보는 것 역시 좋아합니다. 다만 북한의 경우 내부에 프로팀이 있다 해도 해외 다른 프리미어 리그처럼 축구가 활성화 되어 있는 편은 아니라서 한국처럼 주말마다 경기장에 가서 치킨에 맥주를 먹으며 축구를 관람할 수 있는 문화 같은 것이 전혀 없다고 봐야죠. 결국 TV로 시청하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김정은 시대 들어서 북한도 EPL이나 분데스리가는 물론 유럽의 프로축구 리그와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월드컵 등 각종 해외 축구 경기를 거의 매일 방송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김정은의 축구 사랑 역시 이러한 변화에 한 축이 되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했던 김정은은 유럽 축구팬으로 알려져 있죠. 2017년 이탈리아 안토니오 라치 상원의원은 한 언론 매체와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자신에게 “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매우 좋아한다”고 했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웨인 루니 선수를 좋아한다고 하죠. 이런 김정은 위원장의 축구 사랑이 북한 주민들의 축구 시청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일각에선 혼자 봐도 되는데 왜 굳이 전 주민에게 다 보여주느냐에 대한 의문도 있죠. 그것은 아마도 김정은 역시 북한 축구의 발전을 원하고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 리그의 경기도 보고 배울 점은 따라 배워야 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봅니다. 김정은 시대 들어 특히 축구에 대한 투자가 이어지며 각종 축구국제학교가 만들어지기도 했고, 한광성 같은 유망주들이 해외 리그로 진출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맥락에서 봐야 합니다. 세계 선진 축구에 대해 조금은 개방하여 주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결국 축구의 전반적인 수준을 높인다고 판단한 것이겠죠.
이예진: 세계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영국 프리미어 리그를 북한 사람들도 시청하고 있다는 것에 한국의 인터넷 이용자들도 많이 놀라워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견들이 있었는지 들어볼까요?
김금혁: “도둑질 한 거네?” “아시안 컵 같은 조 되었으면 좋겠다” “북한이 중계 계약 맺고 방송하면 그게 오히려 뉴스감일 거 같다” “북한이 유럽축구를 중계하는 걸 보니 북한도 조금씩 변화를 모색하고, 인민들에게 조금씩 자본주의 문화를 심어주는 군요” 등의 댓글이 있었습니다. 도둑질 한 게 맞죠, 사실. 정확히 보고 있는 것입니다. 주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잘하고 있다지만 제대로 된 사용료를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게 정상 국가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역으로 따져 보면 정상 사용료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북한이 가난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가난하다고 생각들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또 아까 어떤 댓글을 보면, 북한이 중계 계약을 맺고 방송하는 게 오히려 뉴스감이라는, 즉 북한의 불법적인 행위가 어디 하루이틀이냐 같은 냉소도 많이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게 뉴스감이라는 것 자체가 여전히 북한은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예진: 이미 지난 9월에도 북한이 국제축구연맹(FIFA)의 허가 없이 무단으로 여자월드컵 경기를 중계해 FIFA가 조사에 착수할 방침을 시사한 바 있고요. 올해 2월에도 북한의 영국 프리미어 리그 무단 중계에 대해 리그 사무국이 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조치가 취해졌다는 결과는 들리지 않고 있는데요. 이번엔 어떨까요?
김금혁: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 리그 사무국이 북한이 중계권을 갖고 있지 않음에도 무단으로 경기를 녹화 중계한 것에 대해 조사에 나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월, 자유아시아방송에 따르면 사무국 관계자는 “북한이 경기 중계권 없이 방송을 했다”며 현재 북한에 EPL 중계권을 보유한 파트너는 없다고 공식 밝혔죠. 북한이 경기 중계 신호를 해킹했을 가능성이 존재하는 대목입니다. 미국의 민간연구 단체 스팀슨 센터의 마틴 윌리엄스 연구원은 “조선중앙TV에서 방송되는 EPL 영상은 해설이 없는 깨끗한 녹화본”이라며 ”북한이 중계 신호를 해킹했거나 어떤 접근권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때문에 만약 북한이 무단으로 중계한 사실이 밝혀질 경우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상당합니다.
EPL 경기를 무단 중계한 웹사이트 운영자 스티븐 킹 등이 영국 법원으로부터 7년 이상의 징역형과 100만 파운드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례 등을 볼 때 사태의 심각성이 만만치 않죠. 다만, 북한이 국제 사회의 사법 절차에 협조하지 않는 만큼 전문가들은 실제 법적 조치를 통해 북한 측 인사를 처벌하거나 배상을 받아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https://www.rfa.org/korean/weekly_program/d654c81cc131-ac11/issueone-11082023084418.html
첫댓글 북한에서 사는 일반 서민들만 불쌍하죠
중계권은 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