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참 청명한 가을...
언제 그랬냐 싶게 줄기차게 오던 비가 그치니 이제야 우리나라 날씨 같습니다.
약간 쌀쌀하고 햇빛 맑고 바람 산산히 불어주는 이런 날씨,
산 타는 사람도 좋아하지만
바이크(오토바이가 익숙하지만 그렇게 부르면 수준이 거시기 해진답니다.)타는 사람들도 좋아하는 날씨지요.
바이크가 집이고 발인 남편 덕에 뒤에 많이 타는 여자 중의 하나인 저지만
늘 아침에 가서 저녁에 오던 투어가 아닌 1박2일 투어는 처음으로 따라나섰습니다.
BMW15대
서울에서 대전에서 전주에서 모여든 사람들...
저마다 삐까뻔쩍하게 광을 내고 도시의 갑갑한 삶을 털어내듯 질주하며 달려온 사람들을 맞이하러
화엄사 입구에서 기다리기를 한시간 남짓,
불빛 휘영차게 오는 그들을 맞아서 동영상도 찍고 사진도 찍고 반가운 허그도 나누고
그리고 섬진강변을 달렸습니다.
하늘빛이 고와서 강물도 푸르고 바람도 적당하고
바이크는 날쌘 말처럼 달리고
남해의 얕은 바닷가를 지나칠 때는 신이나서 시속 100키로의 바이크 뒤에서 동영상도 찍고
완전 생쑈를 하면서 즐거워 했어요.
올 일년 시큰둥 남편 애먹이다가 바이크 뒤에서 애교도 떨고 장난도 치며 간 가을 여행,
처녀총각 또 열받을 소리 해대 미안하지만
매일매일이 천국은 아니나 같이 살면 더러더러 사는 맛이 나는 시간이 있는게
부부라는 울타리 안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거제까지 달렸습니다.
중간에 연육교 달리는데 바닷빛이 새파래서 비명이 질러지더군요.
일사분란 눈부신 빛을 앞세우고 들어간 거제도,
동부면에 있는 '시인의마음'에는 노을이 져서 사위가 어둑신해져있었습니다.
거제의 북부는 주로 조선소와 공장지대가 있고 남부는 해금강이라 불리며
동부는 간간히 양식장이 눈에 띄고 고즈넉한 편입니다.
그 고즈넉한 바닷가 끝쪽에 여장을 풀고 앉아서 저녁을 먹으려는데
밥보다는 술이 먼저 돌고 이야기가 한이 없고 건배 소리가 줄을 잇습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더 이으려고
바닷가를 뒷배경으로 만들어진 야외무대로 나오니
암환우들을 위한 음악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암환우, 말그대로 암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
그곳에서 이시인은
밤새 너무 많이 울어서
두눈이 먼 사람이 있다,
라는 그의 가장 짧은 시'부엉이'를 낭송하고
(유일하게 외워서 낭송하는 시)
천년의 약속이라는 수필을 한편 읽으며 그들을 위로했습니다.
서로 처음 보지만 한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한 시간들,
대장암으로 3개월을 산다는 선고를 받았지만 11년째 살고 있다는 딸의 이야기를 하는 노모.
5년전 위암으로 6개월밖에 못산다고 했지만 이제는 완치판정을 받았다는 중년의 맑은 아저씨.
서로의 이름도 모르고 사는 곳도 모르고
그냥 아프다는 것만 짐작하고
마주보는 시선이지만 서로 오래 보아준 사람들처럼 행복한 시간이 이어져 갔습니다.
그들 속에 실은 이방인처럼 끼어든 사람들인 바이크족들,
두다리 멀쩡하고 사지육신 튼튼해서 서울, 대전,전주에서 바이크를 몰고 온 사람들,
우리나라에서 BMW라는 바이크를 탄다는 건
이시인을 빼면 상징적으로 여유라는 단어가 떠올려지는 사람들,
그 여유란 돈이고 그 돈을 벌기위해서 정신없이 내달리는 그들에게
다소 생경하고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자리가
죽음을 앞두고 이겨낸 사람들의 내공 탓이었을까요?
서로 잘 엮여지는 겁니다.
서로 손을 잡고 '만남'을 부르고 '사랑으로'를 부르고
섹소폰 연주에 춤을 추고
기다란 폭죽에 불을 붙여 흔들고
누군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마 이들중에는 내년에 이 가을을 볼 수 없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코끝이 시큰거리게 아픈 이야기,
그래서 누군가는 한쪽 귀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눈물을 훔치고
몸안에 그득 암세포를 안고 있지만 두 팔을 벌려 춤을 추기도 하고
병이 아픔이나 슬픔, 분노이기보다는 감사와 최선으로 다가오는 시간.
실은 우리 모두가 다 마지막일지 모르는 오늘 하루를 살아내고 혹은 살아가고 있는 것을,
바이크를 타고 자유를 만끽하며 달리는 이 순간에도
마지막일지 모르는 시간들이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하루에 암세포가 900여개쯤 생겼다가 사라진다고 하는데
그게 설레일 때 나오는 엔돌핀 덕이라는데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 순간에는 우리 몸안에 꽃을 피울지도 모르는 것을,
건강에 자신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자기 인생의 시간에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그냥 바이크 타고 헤헤 거리며 다녀와도 충분히 즐거웠을 시간 사이에
삶을 돌아보게 해 준 시간과 사람들을 생각하며
저는 '가을 타서 우울하다'고 입버릇처럼 징징 대던 말을 감추기로 했습니다.
이 가을, 이 청명한 가을...
계절 탓에, 사람 탓에, 우울하고 슬픈 누군가가 있다면
가장 기쁜 순간에 가장 아픈 생각을 하고
가장 아픈 순간에 가장 기쁜 생각을 해보는 거에요.
가딱하면 조울증 환자가 될지도 모르지만
가을 엎드려 있지말고
기지개 켜고
생애 마지막일지도 모를 오늘 하루
잘 살아내 봅시다.
돈없는 남자랑 사는 이야기 열여섯번째 끝.
참참참!!!
이번 가을, 광주에 사시는 분들, 혹 산 안타고 광주 근처에서 계신다면 무등산 증심사에 오르세요.
풍경소리 음악회가 열리는데요.
거기서 이원규 시인이 손님으로 나와 뭔 이야기를 한답니다.
아쉽게도 저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충주에 평화대회 실무보러 못갑니다.
ㅠ.ㅠ
이번 평화대회는 그래서 정말 가기 싫네요.
원래 바이크 뒤에 타고 폼 잡고 가기로 했는데...
(앗! 또 처녀총각 돌 던지는 소리...)
첫댓글 글을 읽으면서 글에 설레고 또 사람에 설레고 사람뒤 산에 설레서 암세포 3박 4일분이 다 죽어붑니다*^^* 가을 산내 천왕봉은 어떤지요?
천왕봉은 저도 멀리서... 봉우리서부터 울긋불긋해집니다. 여기저기... 그저 설레게 저위에서말이지요...^^
세상사는 맛이 솔솔합니다....언제 모임에 다시 초대를 하던지 아님 구례로 담가둔 술이 있어 갈렵니다...순천책모임..ㅎㅎ
솔솔한 맛 잘 느끼시기를... 그 담가둔 술 좀 나눠먹지요...
휘익 [대만에서 지리산으로 돌날아가는 소리] . 누나 나도 여기서 바이크 렌트하기로 했어요 . .
너 언제갔냐? 형이 너 거시기만나러갔다던데... 맞아? 얘가얘가얘가~~~
오랫만에 오다보니 원규님과 결혼한 분이 은어님였네요.뒤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카페를 알기전에 좋아했던 시인였는데 산장에서 2년가까이 있었는데,모임도 많이 갔었는데 한번도 뵙지를 못했네요. 두분 앞으로도 행복과 사랑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뭐, 결혼이라기보다 그저 친구로 말벗하며 삽니다. ㅋㅋ 혼인은 하기 했습니다.
남 속도 모르고 형수님 너무혀유~~~
속 모르기는 뭐, 여자도 좋지만 살아있어야 장가도 가니 매일매일이 그저 고마운 거지, 뭐...
누나...이 가을에....ㅠ.ㅠ 제가 뭐 잘못한게 있어요??? ㅠ.ㅠ 이 청명한 가을에 한여름도 아닌데 내 속은 타들어가고...ㅠ.ㅠ
응, 너 잘못한 거 있다. 누나 보러 안오고 자꾸 서울이나 가서 번개하고... 그러나 내 용서하마, 대신 참한 여자 하나 데불고 와라.
은어님 잘지내시죠 ? 은어님 말씀대로 생애 마지막일지도 모를 오늘 하루 잘 살아내 보겠습니다 . ^^
형수!! 지금 한참 바쁘시겠네...!! 내일이 생명평화대회니... 글고 형님도 바쁘시것네... 내일 무등산에서 행사가 있으니... 저도 바뻐유~~ 알죠??..^^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해요...^^
잘지내고 계시죠?? 전번에 시인님과도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서울의 친구와 같이했던 남자 입니다, 이번주는 저도 바이크로 어디던 떠나 볼려고 하는참인데,,,좋은 모습 오래 간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