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2021. 6. 4. 금요일.
오전 11시까지는 충남 보령시 웅천읍 화망마을에 있었다.
서울 올라오기 직전에 낫을 들고는 텃밭(감나무밭, 아랫밭) 속에서 제멋대로 자라는 머위대를 잘랐다.
신문지로 둘둘 말아서 끈으로 졸라매고는 자동차에 실었다. 3덩어리.
오늘은 6월 5일. 토요일.
어제 서울 올라오면서 내 책상 위에 올려놨던 약 두 종류를 가져오지 못했다.
서을 올라오기 직전에 아내가 내 가방을 챙겼으니... 책상 위에 있는 약통을 보지 못했을 터.
나도 약이 든 통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증거.
별 수 없이 오늘 오전에 잠실에 있는 병원 두 군데에 들러야 했다.
공복혈당을 재려고 아침을 굶고는 송파구 잠실아파트 4단지 상가에 있는 내과에 들러서 당뇨약을 처방받았다.
공복혈당은 112. 지난번보다는 혈당이 많이 내렸다고 여의사가 나보다 더 좋아했다.
잠실새마을시장 뒷편에 있는 비뇨기과 병원에서는 전립선비대증 약을 2주일분를 구입했다.
* 의료보험료는 적용하는 기간이 있다면서.. 평소의 반인 2주일의 분량으로 처방받았다.
아파트로 귀가하다가 잠실새마을 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아내가 방울토마토, 바나나를 구입할 때 나는 농산물 가게 앞에서 기웃거리면서 구경했다.
머위대를 조금씩 묶어서 판매한다. 한 줌에 5,000원 가격표가 붙었다. 두 줌이 살짝 넘는 것은 11,000원.
내가 시골에서 조금만 베어서 가져온 머위대는얼추 계산해도 4만 원이 넘을 것 같다.
올 들어와 머위대를 두 차례나 잘라서 서울로 가져왔고....
6월의 장마비를 맞으면 텃밭 속의 작물들은 더욱 크게 웃자라기에 다음 번에는 더욱 많이 가져올 게다.
어제 저녁무렵에 머위대 한 덩어리를 삶아낸 아내.
나는 과일 깎는 작은 칼을 손에 쥐고는 머위대 겉껍질을 벗겨냈다.
'일하는 게 재미난다'라고 말하는 나.
농사 짓고, 살림살이를 거둘어주는 게 나한테는 신이 난다.
나머지 두 덩어리도 삶아 달라고 했기에, 내일쯤에는 껍질을 벗겨내야 할 터.
어제 아침에 아내는 텃밭에서 식방풍 잎을 뜯었다.
어린 순이 길게 자랐다. 부드럽게.
내가 오래 전에 겹삼입국화를 심어서 증식하고 있다.
새순을 나물로 먹는다고 몇 차례나 알려주었는데도 지금껏 아내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거 왜 먹어요?'
나는 농작물 관련 전문책을 뽑아서 위 겹삼잎국화 사진을 아내한테 보여주었다. 나물로 무쳐 먹는다고 책에 수록되었기에...
아내는 '겹삼입국화' 새순을 처음으로 꺾었다.
아내는 참취와 식방풍의 잎사귀도 뜯고.
웅천장날은 매 2일, 7일장이다. 5일 뒤에는 재래식 장날이다.
6월 2일 읍내에 나가서 시장 안을 둘러보았다.
농작물 장사꾼한테서 멧돌호박, 당귀 모종을 조금 샀다.
멧돌호박은 지난번에도 사서 심었기에 이번에는 조금만 사다가 윗밭에 심었다.
당귀모종... 1개 모종에 1,000원씩. 무척이나 비싸다.
감나무밭 안에도 당귀가 조금 있는데도 추가로 더 심고 싶었기에 몇 포기 샀다. 모종가격이 비싸기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아내는 내가 가게 안에서 기웃거릴 때마다 작물 모종을 사지 말라고 지청구를 자주 퍼부었다.
하기사... 이제는 내가 시골에서만 사는 사람이 아니기에...
시골에 며칠간 머물면서 동네 안을 조금만 걸었다.
내 고향 화망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였기에 산줄기를 따라서 산고라당이 여러 군데나 있다.
구석 구석마다 작은 마을이 숨어 있다.
4개반으로 분산되었으며, 실제는 5개반으로 갈래갈래 갈라진 산줄기 하단에 흩어졌다.
나는 2반 마을안을 거닐다가 외지 사람을 처음으로 보았다. 우리 동네에서 텃밭농사를 짓는다고?
나는 처음으로 그 분을 만났기에 인사를 자청했다.
오래 전에 서울로 떠난 조씨네 ...
텃밭이 몇 해 전에 경매로 처분되었으며, 서울 은평구에 사는 사람이 소유하게 되었고, 농사를 몇 년 째 짓는단다.
밭안에 콘테이너 박스를 들여다놓고.. 이따금 내려와서 텃밭농사를 짓는다 한다. 나로서는 처음으로 만났다.
내가 현지에서 12대째 사는 토박이며, 지금은 서울에서 산다고 하니 그분의 아내는 상추 한 소쿠리 정도를 뜯어서 나한테 내밀었다.
나는 고맙다고 인사를 했고..
귀가하면서 마을 사람(김씨)한테서 또 상추를 얻었다.
오래 전 최씨네에서 산지기했던 분의 아내(84살)이다.
1980년대 606지방도로가 확장되면서 길가에 있던 산지기 집이 헐렸다.
내 소유의 땅에 집을 새로 짓어서 산지기한테 내주었던 집이었다.
산지기네 집 뒤에 붙은 텃밭, 또한 텃밭에 붙은 종산이 있다.
그분은 최씨네 종종의 논도 짓고는 산지기네 집 뒤에 붙은 최씨네 종산의 무덤에서 벌초를 했고., 늦가을 음10월 상달 시향 때 제사 음식물을 준비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하지만 오래 전에 산지기 지위를 그만 두었기에 지금은 산지기가 아니다. 그런데도 내 소유의 밭에서 작물을 재배했다. 나는 임대료를 일체 받지 않았다. 산지기 영감이 너무나도 늙었고, 아팠기에.. 대신 그의 아내가 농사를 지었으니 그게 오죽이나 할까?
2021년 올봄에 산지기네가 살았던 집과 집터가 606지방도로 확장공사로 땅이 또 수용되었다.
내 사촌동생이 옛 산지기 아주머니한테 보상비 일부를 나눠주었더니만 그 아주머니는 그게 고맙다고 종가 종손인 나한테 거듭 치하했다.
내가 옛 산지기 부인(할머니)한테서 상추를 조금 얻게 된 이유였다.
이번 5월 30일에 시골 내려간 이유는 있었다.
다음날에는 산지기네 담장 곁에 붙은 먼 일가의 무덤 7기를 이장해야 했다.
작업이 끝난 뒤 포클레인은 내 산에 올라서 입향시조 묘터 상단 곁에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 여러 그루 베어냈다.
아쉽게도 오후 3시반 쯤에 기계톱이 고장나는 바람에 작업은 일찍 끝냈다.
육중한 포클레인이 큰 나무를 밀어내고... 벌목꾼은 아름드리 나무를 기곝톱으로 베어서 넘어뜨리고...
※ 육중한 나무가 자칫하면 엉뚱한 곳으로 쓰러지기에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
포클레인 장비가 소나무를 베어내면서 내 아버지 산소 옆 빈터에서 자생하는 둥굴레 자생지를 으깨여졌다.
다음날 나는 산에 다시 올라가서 소나무 잔가지를 긁어냈고, 으깨어진 둥굴레 뿌리를 조금 추스려서 씻은 뒤에 서울로 가져왔다.
어제 아침나절에 나는 사다리를 들고는 마을안길 곁에 있는 내 텃밭(아랫밭)에 들어섰다. 자생하는 산뽕나무에 걸친 뒤에 굵은 줄기를 톱으로 마구 잘라났다. 산뽕나무의 열매인 오디를 따려고..
아쉽게도 자잘한 오디가 설익었다.
톱으로 잘라낸 나뭇사지를 바깥마당으로 끌고와 아내한테 내주니 아내가 오디를 조금씩 땄다. 아직은 제대로 크지도 못한 오디...
산뽕나무가 마구 자생한다. 키가 하늘을 찌를 듯이 곤장으로 섰기에 그거 딸 재간은 없다. 그저 톱으로 굵은 줄기를 잘라내야 할 터...
아쉽게도 올해에도 산뽕나무의 오디는.. 모두 다 땅에 떨어지겠지. 주인인 내가 서울에 머물기에...
오늘 오후에 서울 송파구 잠실에 있는 석촌호수에 나가 한 바퀴를 돈 뒤에 귀가하면서 일부러 삼전동 꽃가게에 들렀다.
거의 다 외국식물이다.
나한테는 외국식믈은 별로이다. 실용성이 적고, 또 잘도 죽기에.... 토종작물, 토종화초. 토종나무등이 훨씬 낫다. 쉽게 구할 수 있고, 묘목 모종이 튼튼하며, 추위와 더위에 견디고, 잘 증식되고, 또 실용성이 있기에...
오늘도 그랬다.
잠실새마을시장 안에서 농산물가에서 다발로 묶어서 판매하는 '부추'를 보았다. 무척이나 크고 굵고 길다.
하지만 내 텃밭에서는 부추의 한 종류인 '영양부추'가 있다. 줄기가 아주 가느다랗고, 길이도 짧다.
내 텃밭 안에는 '두메부추'가 있는데도 아내는 두메부추에는 고개를 흔든다.
잎사귀가 크고 굵고 길기에... 이런 것들은 아내한테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5월 하순에 익는 물앵두 열댓 그루...
일전 시골집에 내려갔더니만 물앵두가 모조리 땅에 떨어져서... 썩었다. 목질의 씨앗에는 곰팡이만 잔뜩 끼고.
농산물을 채취할 시기는 잠깐이다.
아쉽게도 나는 서울에서 살기에... 내 텃밭 속의 작물은.... 그냥 방치된 채...
어제 산골마을에서 서울로 올라왔기에 불과 하루가 지난 오늘인데도 내 마음은 시골로 또 내려가 있다.
일하고 싶으니까....
나중에 보완 예정.
2021. 6. 5. 토요일.
첫댓글 산지기란 단어가 참 정겹게 들립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제가 사는 산골마을...
최씨네는 고작 세 집이 살았지요. 그런데도 최씨네와 연관된 산지기네는 세 군데.
이들은 여러 군데의 산소에 있는 산소를 가꾸며, 늦가을철에는 시향제물은 지게로 져서 산으로 운반하대요.
이들한테는 논, 밭, 산과 때로는 집까지도 배려했기에(집을 새로 건축해서 내주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는 산지기 제도는 모두 사라졌지요.
그런데도 그분들은 다 돌아가시고, 그분들의 아내, 자손들이 저를 보면 반가워하시대요. 하나의 인간관계가 성립되었느니까요.
그 어려운 시절.. 과거에는... 정말로 어렵고 힘든 세상이었기에... '산지기'네의 살림은 정말로 힘이 들었겠지요.
농사 지을 땅도 부족하고... 땔감을 마련하려면 먼산 나무를 해야 하는데도.. 최씨네 산은 여러 군데에 있었기에...
산지기라는 낱말에 저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낱말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