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를 아십니까
왕십리의 옛날 모습
지금은 서울의 어느 지명이 나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지역 아파트 시세를 떠올리는 시대입니다.
예전의 서울은 그냥 사람이 사는 공간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서민들의 애환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었던 곳 왕십리
예전부터 왕십리는 성동구의 심장이었죠.
시인들의 '시'의 소재로 왕십리만큼 많이 쓰인 장소도 없을 겁니다.
김소월의 시가 가장 유명하지만 박목월 시인의 '왕십리'야말로
가장 왕십리다운 시입니다.
"내일 모레가 육십인데
나는 너무 무겁다.
나는 너무 느리다.
나는 外道가 지나쳤다.
가도
가도
바람이 입을 막는 왕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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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제가 유머방에 올린 유머 한판
*왕십리의 유래
옛날 왕이 행차를 나갔다.
그러다 어느 한 고을을 지나가는데
그 고을이 너무 아름답고 사람들도 평온해 보여,
왕이 궁금하여 옆에 있던 신하들에게 물어 보았다.
"여봐라~ 이 마을 이름이 무엇인고?"
그러자 신하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마을이어서 대답없이 그냥 고개만 숙이고 있자,
왕이 조금은 격앙된 목소리로 한번 더 물었습니다.
"여봐라~ 여기 마을이름이 도대체 무엇인고?"
이번에도 신하들이 대답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자,
왕이 화난 목소리로 또 물어보았다.
"여기 이 마을 이름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더냐?"
이번에도 신하들이 대답이 없자,
왕이 한마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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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씹니?"
ᆞ
ᆞ
ᆞ
그 이후 사람들은 그 동네를
"왕십리"라 부르게 되었다나 뭐라나 ~~ 😆😆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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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왕십리 사진
(순서대로)
1975년 개봉작
1967년의 신당동로터리 모습
고가도로가 건설중인데 지금은 철거됐죠.
가운데 보이는 흰 건물은 광희초등학교입니다.
이 사진 오른편에 큰 전화국건물이 있어서 초등학교 시절 에어컨바람 쐬러 들어가곤 했었는데...
왕십리를 상징하는 여러 장소 중 하나였던 광무극장
1971년의 서울운동장(당시엔 이렇게 불렀습니다)
광무극장 옆
제가 아닙니다.
왼편이 흥인초등학교(원래 성동여실이 이곳에 있다가 흥인초등학교와 서로 학교를 맞바꾸었습니다)
이 곳을 넘으면서부터 본격적인 금호동이 시작됩니다.
금호동 주민들이 탔던 155번 버스
금호동 고갯길 넘어 내리막으로 내려오는 길
금호로터리 부근의 1970년대 초반 모습
아마 흥인초등학교에서 금호동으로 올라가는 길일 겁니다.
정면에 보이는 교회 건물은 지금도 기억납니다.
1971년의 한양대학교
길 왼편의 흰 건물은 당시 서울교대였습니다
그 앞은 행당여중
1976년 강변도로에서 찍은 금호동
왕십리역
행당동
성동소방서
당시엔 고층건물이 없어서 각 소방서마다 이런 망루가 있었죠
이 사진도 70년대 초반일 겁니다.
6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다리 가운데가 무너져 있었습니다.
왕십리와 뚝섬을 연결하는 살곶이다리
조선시대 가장 크고 긴 다리였습니다.
첫댓글 어릴 때 왕십리에 사는 친구집에 놀러가곤 하였지요
감사합니다
그렇군요 저는 김흥국의
59년 왕십리가 생각납니다 ㅎ
왕십리, 마장동에서 자취했었지요
그 당시 사진을 보며
저에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가슴이 뛰네요
그 시절 저와 함께 웃고 울던 분들 지금 어디에 계실까~~
그러셨군요 그러시다면 당연히 가슴이 뛰죠 그
젊디젊은 시절의 추억이니까요 감사합니다
네..그당시 박스컵 기억납니다
왕 씹다닛!
듁을라고 환장했구만~ㅋㅋㅋ
하하 웃고갑니다 오늘도 좋은하루 되세요
나 태평성대는 상왕십리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당
그러니 저기 광무극장도 자주 들어갔었구요
금호동 언덕길 , 서울운동장도 몇번 가봤지요
그때의 왕십리는 서울에서도 변두리라서 한옥 외에도 판자집들이 많았었습니다
가라성 친구님의 이글은 나의 젊은시절을 생각나게 하는군요
충성 우하하하하하
왓!
그럼
배명?!
아님 성동!?
저도 광무극장 많이 갔었구요
근처
홍익도서실에서~~...
공부한답시고요
헤
헤~~
왕십리
행당동에서 ~~...
아~ 태평성대 친구의 모교가 그동네에 있었군
하하 왕십리가 변두리였긴
했었지 그래도 지금은 많이
변했고 특히 김흥국의 59년 왕십리로 더 알려졌고 ㅋ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소 리 그러셨군요 이 게시글과 인연이 있어
다행입니다 ㅎ
왕십리에서 5년 근무하고 부근에서 운동도 최근 까지 했어요..
진짜 상전벽해가 되었네요
젊은시절 그러셨다면 지금은 당연히 상전벽해죠
많이 변했을겁니다 허긴
이땅에 변하지 않은곳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재미있는글 당시가 회상됩니다
저는 숭인동에서 태어낳다 하는데 동네기억은없고 외갓집이 숭인동에있어서 자주갔던기억이 근데 지금도 이해가 안가는말
왜 왕십리 똥파리 라 했는지 ㅋㅋ
하하 저도 그 부분은 잘모르겠네요 다만 워낙
그당시는 후진곳(?)이어서
그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ㅋ
왕십리 똥파리의 유래 입니다
그쪽에 장의사 집들, 자개장. 공방들이 많았지요~
그랬군요 점집도 혹시 많았지 않았습니끼?
저는 왕십리에서
여중,고를 다녀서
그쪽은 훤합니다..
물론 광무극장도 가보았지요..
성동 소방서 망루는 지금도
제 기억속에 있어요..
옛날에 전차가 있었는데
왕십리에서 마포를 갔던걸로
기억이 됩니다..
그 옛날에 전차 금액은
2원50전인가 했던거 같아요..
맨 아래 사진은 살곶이 다리 인가 봐요..
아~ 그러시군요 왕십리의
역사이시네요 부연설명을
해주셔서 고마워요
비가 오는 궂은날씨지만 즐거운 하루 되세요
2원 50 전짜리 전차 나도 타고 통학했었습니당 우하하하하하
@태평성대
@태평성대 저랑 같은 세대이시라 아시군요..
@스위트리
그럼
당시 5대 공립이던 무학여고 인가요??
@솔마루 무학여고... 명문이죠
아주 옛날에는 왕십리에 미나리 논으로 도 유명하지요
우리 큰 이모댁이 건대 앞이라 왕십리를 67년도부터 자주 다녀서 익숙한 곳이기도 하네요
그 시절이 아련합니다
그렇군요 67년도라면 제가
고딩 입학하던해이군요 하하 감사합니다 좋은시간되세요
그렇군요
왕십리 밤 거리에 오늘처럼 비가 내리면
술붕어는 당연 막걸리 생각 간절하지요
ㅋㅋ 동감입니다
와~
한장 한장 모두
추억의 사진들 이네요
당시 의정부에서 왕십리역 까지,경원선,교외선을 이용해 기차 통학 했습니다
왕십리역에서 신당동 광희중 까지는 5개 전차역으로 다시 갈아 타고 다녔지요
이른 새벽밥 먹고 열심히 학교를 다녔지만,공부는 그닥 이었습니다^^
당시 보이 스카우트 로서,신당파출서에 가방을 맡겨두고 신당동 로타리에서 교통정리도 ,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 방한때 보이 스카웃 으로 인파들 경계하던 기억도 있었지요
(당시 뜨거운 여름이라 곤색양복을 입은 얼굴이 빨갛게 탄 아이크 대통령을 바로1미터에서 경호를 한,,자랑이지요
끝나고 고무신들이 어마어마 하게 뒤에 남았지요)
역앞 찐빵집에서(왕십리역 좌측50미터에) 전차표회수권 과 만두를 바꿔먹던일,대신 걸었지만
가는길에 성동서,광무극장,중앙시장등 볼꺼리가 많았지요
서울운동장에서 시합이 있으면 학교옥상에서 우르르 구경 하기도,,
별명이 여드름 박사였는데,,,
감개 무량한 밤입니다ㅋㅋ
아~ 정말 대단하셨네요
그리고 기억력도 엄청납니다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좋은밤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