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콜로 3,12-17 형제 여러분, 12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13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 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이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17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복음 루카 6,27-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29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30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31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32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33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34 너희가 도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서로 꾸어 준다. 35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어느 카페에 갔는데 그곳에 흔들의자가 야외에 설치되어 있더군요. 이 의자에 앉아 보았습니다. 생각보다 편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에 너무 편안하고 약간씩 흔들리는 움직임에 저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제 일행이 깨우지 않았으면 아마 한참을 이 의자에 앉아 잠을 자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이 카페에서의 모임을 마친 뒤에 지인의 차를 타고서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길이 너무 막히는 것입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조금씩밖에 앞으로 전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 차 안에서 또 졸았습니다.
이 지인께서는 “신부님, 정말로 피곤하신가봐요. 카페의 흔들의자에서도 주무시고, 이 차 안에서도 꾸벅꾸벅 조시는 것을 보니 말이에요.”라고 말씀하십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또한 운전하시는 분에게 죄송스런 마음도 생겼지요.
사실 저는 평소에 낮잠을 잘 자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잠이 왔던 것은 무엇일까요? 앞으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이지요. 제자리에서 흔들거리는 흔들의자, 조금씩만 앞으로 가는 차. 모두가 진행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기 때문에 몸의 긴장이 풀어지고 졸음이 온 것입니다.
목표의식 없이 살아가는 것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지금의 자리에만 머물려는 나태한 마음, 편한 것만 찾으려는 안일한 마음. 결국 어떤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없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삶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사랑의 실천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주님께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라고 말씀하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원수도 사랑하면서 남이 우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주라고 하십니다. 더군다나 남을 심판하지도, 단죄하지도 말라고 하시면서 하느님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될 것을 명령하십니다. 얼마나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입니까? 불가능하게만 보이는 모습, 이렇게 살아서는 험난한 이 세상을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 사람들에게 받을 것을 생각하지 말고, 하느님 아버지께 받을 것을 생각한다면 그러한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이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이러한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보다는 지금의 자리에 머물려는 나태하고 안일한 마음으로 자기 사랑만을 고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하느님 나라라는 특별한 목표 의식 없이 주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은 전 세계에 생명의 소중함과 국가적ㆍ사회적으로 증가되고 있는 자살문제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고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해 제정한 세계자살예방의 날입니다. 특별히 우리나라는 이 자살 문제가 아주 심각하지요. 그만큼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을 쏟아 부어 줄 나의 이웃을 찾아보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기 안위만을 추구하고 폐쇄적이며 병든 교회보다는 거리고 나가 다치고 상처받고 더럽혀진 교회를 나는 더 좋아합니다. 나는 중심이 되려고 노심초사하다가 집착과 절차의 거미줄에 옥죄이고 마는 교회를 원하지 않습니다(교황 프란치스코). 오늘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입니다. 통장 몇 달 전에 통장 두 개를 개설했습니다. 요즘에는 대포 통장이 많아서 통장 개설하는 것이 좀 까다롭더군요. 그런데 은행 직원이 제게 이 통장의 이름을 적어달라고 합니다. 어떤 용도로 사용할 것인지 적으면 된다고 하네요. 그래서 제가 원래 의도했던 대로 하나는 ‘기쁨 통장’, 다른 하나는 ‘절망 통장’이라는 이름을 적었습니다.
사실 교구에서 받는 활동비 외에도 저에게는 약간의 수입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강의료, 방송출연료, 원고료 등등이 그것이지요. 그런데 저를 위해서 이 수입들을 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 덕에 강의도 하고 방송 출연도 하는 것인데, 마치 제 능력이 뛰어나서 얻는 수입으로 생각한다면 커다란 착각인 것 같더군요. 그래서 이러한 수입들을 입금하는 통장은 ‘기쁨 통장’입니다. 이 통장은 내가 아닌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합니다. 이런 나눔을 통해서 기쁨을 얻게 되니 ‘기쁨 통장’인 것입니다.
또 다른 통장은 ‘절망 통장’입니다. 이 통장은 교구로부터 받은 활동비 중에서 남은 액수를 입금하는 것입니다. 절약이 많이 필요하지요. 적자가 될 때도 참 많거든요. 아무튼 이 절망 통장은 제 스스로가 정말로 어렵고 힘들 때, 즉 절망에 빠졌을 때 이 통장을 가지고 어디든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일명 여행 통장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요즘에 이 통장 채우는 재미로 삽니다. 굳이 어디를 가지 않아도 그냥 집에 하루 종일 있어도 남들에게 사랑을 전달 할 수 있음에, 또한 내가 어렵고 힘들면 어디든 튈 수 있는 통장이 있음에 희망을 갖고 살고 있지요.
통장, 잘 만든 것 같지요? 여러분도 한번 만들어보세요. 사는 재미가 솔솔하네요. ㅋㅋㅋ 저의 기쁨 통장과 절망 통장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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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의 이웃을 찾아보는 하루되겠습니다....*^^*
나도 기쁨통장과 절망통장을 만들어야겠습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