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님제공]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아나운서 임택근
방송을 위해서 태어난 사나이,
아나운서 임택근은 타고난 중저음 이 아름다워 많은 사랑을 받았다
. 또한 그에게는 젊은 패기와 열정에 따른 노력이 있었다.
중요한 시합은 역시 그가 중계를 해야 제 맛이 난다.
한일 프로 레스링 전에서 김일 선수의 박치기나 권투 중계는 압권이었다.
‘나는 가수다‘에서 사랑보다 깊은 상처로 스타 뮤지션이 된 임재범이
그의 아버지이고. 탤런트와 가수에서 벤처사업가로 변신한 손지창의 아버지가 임택근이다.
조강지처 사이에서 임재범을 낳았다.
그리고 다른 여자(미스 충북 김후자) 사이에서 손지창을 얻었다.
손지창이 부친의 성을 따르지 않은 것은 항상 어머니 곁에 있어준
이모부가 고마워서 이모부의 성을 가져다 붙인 것이다.
임택근이 아나운서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6·25전쟁 당시 임시수도 부산에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는데,
곧바로 5개월 뒤에 아나운서를 모집한다는 방송을 들었다.
4년제 대학 졸업자에게만 응시자격이 있다고 하니 난감했다.
고민 끝에 일면식도 없었던, 당시 KBS 국장 노창성씨를 찾아갔다.
노국장은 한국 최초로 패션쇼를 연 패션디자이너 ‘노라노 여사’의 아버지이다.
“평생 꿈이 아나운서입니다.
제 꿈을 무참하게 짓밟지 말아 주십시오.
낭독엔 자신 있으니 한번 제 목소리를 들어 보세요.” 하고 간청을 했다.
아침 출근길마다 가로막고 졸라대는 집념과 끈기에 질려버린 국장은,
결국 임택근의 응시를 허락하고 말았다.
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그는 방송사상 첫 대학 1학년 아나운서가 되었다.
대중 앞에 서서 말과 행동으로 감동을 시키려면 말 재주 만으로 그들을 끌어드릴 수는 없다.
아나운서는 인격이 뒷받침하여야 한다.
민초들과 같이 울고 웃고, 무엇보다 많은 인생 경험이 요구된다.
요즘은 임택근 아나운서의 뒤를 이어 기라성 같은 사회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조선중앙방송 메인앵커 자리를 할머니가 되어서도 굳게 지키고 있는 낮 읽은 음성 리춘희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동건 송해 윤인구 이금희 이지연 그리고 내 친구 이방이를 들 수 있다.
아나운서는 아니지만 앵커인 쟈니 윤은 얼마 전까지도 미국의 한 요양원에서 치매로 의식이 가물가물하다는 소식이 들렸다.
지금은 행적이 묘연하다. 그도 한 시대를 풍미한 선배였다.
낫선 땅에서 어디로 가라고
영어 쫌 한다는 강남 아줌마 6명이 미국 관광 갔다가,
맥도날드에서 카운터 에 있는 메뉴를 한참 쳐다보다가,
6명 모두 셋트 메뉴를 시키기로 했단다.
그중에 영어를 제일 잘 한다는 아줌마가,
"Set #2 Six!!"라고 폼 나게 본토 발음으로 말하자,
주문을 받은 미국 이모가 "For here or to go?"
이 아줌마가 친구들에게 하는 말,
"4명은 남고 2명은 나가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