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그랬다 “일반여행은 점 여행이고 걷기 여행은 선 여행이다”고.
달림이 생활 14년이 시들해질 무렵 나 자신을 다잡기 위한 방법으로 지도 위에다 칼라
펜으로 그어 본 선들.
그래서 시작된 걷기는 이 길을 이어 저 길로 가고 또 오르고 오늘 못가면 다음으로 이어서
간다.
출발점은 창선-사천/삼천포대교였지만 길은 듬성듬성 이어지고 있다.
남해에서 해남을 돌아 서해안 갯마을 소소한 일상과 풍경을 따르다 내륙의 김제에서
멈추었다가는 옥천으로 건너갔다.
금강과 둔주봉, 대청호 오백리길에서 만난 부소담악, 그리고 향수(정지용) 백리길.
동으로는 영덕-안동-영주 무섬마을을 거쳐 봉화 청량산 아래에서 쉬고 있다.
꾸역꾸역 밀려오는 그리움에 열차에 몸을 실어 일주일의 간격을 두고 주말에 달려갔던
가을의 무섬마을과 청량산. 새벽 4시에 내린 봉화역에서 보았던 새벽 비에 젖어드는
봉화읍내의 풍경은 지금도 가슴에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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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박종주로 마음의 여유도 없이 만났던 덕유산과 발에 잡힌 물집으로 긴 산행을 끝내고
벽소령에서 함양 마천면으로의 하산 길로 들었던 지리산 종주의 아쉬움, 맑은 머리위에 푸른
하늘을 이고 튼튼한 두 다리로 우리의 산하(山河)를 열정과 희망으로 디디고 선 젊은
이삼십대의 꿈과 함께한 1박2일의 영암-나주 길,
사람이 드물어 고요히 엎드려 맞이해주었던 질마재 100리길.....
남도에 봄 풀들이 싹을 돋우기 시작하니 나는 어느덧 도시를 벗어나고 있다. 도시는
산 밑으로 자꾸 파고들고 산은 쫓겨나는 듯하다. 인산(人山)이 싫어 새벽에 오르던 집
근처의 오산(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사패산, 북한산)은 이제는 그것도 게을러지고
또 봄에서 여름으로 갔다.
자주 찾던 인왕산-삼청동-인사동-청계천-황학동(숭인동)은 이제는 길이고 거리이기를
포기한 듯 채우지 않을 것으로 채워가고 있다.
여전히 우리의 일상과 닿아있어 좋은 산이고 길이고 거리지만 봄은 이 도시(서울)를 떠나
산으로 갈지, 갯벌로 갈지, 들판으로 갈지 아니면 또 달려야 할지를 망설이게 한다.
또 이래서 좋아진다.
법성포에서 백수해안도로로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전경. 멀리 법성포 앞바다가 보인다.
간다라 풍으로 지어진 정문을 지나 왼쪽으로 돌면 간다라 기념관(사진의 맨오른쪽)이 있다.
백제 불교 도래의 역사와 인도에서 들여온 유물들을 전시해 놓은 곳으로 잠시 들러 본다
영광굴비의 고향인 법성포는 조선시대 조창이 있던 곳으로 영광에서도 가장 번화했던
곳이라고 한다.
가게마다 굴비가 곶감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진풍경을 연출하는 것과 다르게 그들은
온갖 먼지와 도로의 매연을 덮어쓰고 있다.
길가에 늘어 선 조기들은 대부분 중국산 '부세'로
비늘 크기가 상대적으로 좀 작고 대가리에 다이아몬드 모양이 없고, 배때기는 약간
노랗지만 지느러미는 별로 노랗지 않으며, 대체적으로 몸집이 커보이고, 살이 물렁물렁
(말리면 푸석푸석)한 느낌을 준다고 하나 실제로 전문가가 아니면 구분하기가
힘들다고 하니....
법성포를 지나 백수해안도로로 가는 길의 대덕산 산마루에서 본 법성포
바다가 내륙 깊숙히 들어와 S자 모양의 물돌이를 이루는 풍경.
대덕산을 지나 산길을 돌면 바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백수해안도로로 이어진다. 시간에 따라 옷을 벗으면서 바다가 보여주는 갯벌이
있어 간다.
여름에는 분홍색 해당화가 선명한 17㎞ 길이의 백수해안도로는 칠산 앞바다 노을이
아름다워 노을길로 불린다고 한다.
드라이브가 아니고 걸어서는 불교최초도래지에서 백수해안도로의 끝에서 만나는 마파도
촬영지까지는 넉넉하게 이틀의 일정이 필요하다.
전망대 칠산정에서 영광노을전시관까지 2.3㎞ 구간 목책산책로
오랜 세월을 파도와 부대끼며 살아 온 몽돌의 웃음소리를 들을려면 자연에 더 다가가려는
노력이 필요할듯.. 밟기가 조심스럽다.
노을 전시관.
영화 ‘마파도’ 촬영지. 영화 내용을 모르니 쉽게 연결이 안되나 좁은 내리막길을 걸어
다소곳이 앉은 마을에 들어서면 백수해안도로에서 보던 바다와는 전혀 다른 이색적 풍경이
들어온다.
어촌은 이렇게 무너지고 비워지는데 우리의 도시는 높아지고 덩치는 자꾸만 커져간다는
아니 할 걱정도 한다.
이 길 위에서 승용차와 승합차가 서로 길을 양보하지못한다고 싸우고 있었다
승합차에 탄 젊은이는 방금 뒤로해서 길을 양보하고 다시 올라 온 길이라면서 아예
의자에 몸을 기대고 누웠다.
결국은 옆 풀숲으로 양보했지만 승용차가 내려 온 길은 외길이 길어 뒤로 다시 나가려면
어려워 길가던 나도 승용차의 편을 들 수밖에 없었지만 잿빛 바닷물처럼 쓸쓸하다.
백수해안도로에서 벗어나 77번 국도를 따라 한참을 걷다 지나가는 버스를 탄다.
영광읍내와는 반대 방향이다.영광군 백수면 하사리의 광백사 염전
사진의 염전 내 가건물 같은 것은 해주(함수창고:증발지 및 결정지 내의 농축된
함수를 공급하기 위해 함수를 저장하는 곳으로 강우 및 월동에 대비하는 곳이기도 하다)
로 마치 옛 사진에서나 보는 피나민의 막사처럼 왜 허름하고 낡았는가 했더니 염분이
모든 것을 부식시키므로 굳이 좋게 지을 필요가 없어 얼기설기 짜 맞추어 짓는다고 한다.
바람과 햇볕의 향기로 태어난다는 소금.
소금에 바람과 햇볕이 스며든다는 염전에 서면 마음이 부드럽고 넉넉할 것 같았지만
고단한 염부의 땀방울에 애잔함이 묻어날 것 같다. 왠지 편치가 않아 애꿏은 길만
제촉한다.
염전은 평평한 평지 갖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저수지 쪽이 높고 결정지 쪽이 가장 낮은
구조로 되어 자연 낙차를 이용하여 농도가 높아질수록 낮은 방향인 결정지 쪽으로
모여들게 되고.
저수지에서 올라온 해수는 1,2차 증발지를 통하여 마지막으로 고무장판이 깔린
결정지(대파질(소금물을 미는 고무래)을 통해 소금을 채집하는 곳)에서 눈부시도록
새하얀 소금 결정을 빚어낸다고.
소금을 쌓아놓고 간수가 빠지기를 기다리는 곳이 나무로 지은 소금창고다.
서해의 해넘이가 역광으로 검게 보이는 소나무와 어우러져 더욱 서정적이다.
낙화하듯 수평선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 해에게 하루의 모든 것을 담아 보낸다.
첫댓글 인생을 음미하는 것...
그것은 혼자 걷는 것...
파도소리는 음악이 되고
산들바람은 친구가 되는 것
그리하여 귓속의 귀로
내밀한 이야기들을 들어 주는 것
....
화윤선생은 어여쁜 인생을 사는 구나^^
60을 바라보는 내 인생에서
혼자 여행한 적이 언제 있었던가?
그것도 도보여행을...
이제서야 철이 들어
주말이면 가까운 산에 오르고
알프스트레킹도 간다고 들떠 있지만
애초부터 혼자만의 여행은 아니었다.
나를 찾기 위해 떠나는 혼자만의 걷기 여행..
먼 옛날의 고향 모습을 떠올리고
아련한 추억들을 되살리며
정겨운 시골길의 자연도 만끽하면서
세상을 잠시 잊은 채 끝없이 걸어보고 싶다.
화윤 친구의 글을 읽고서
불현듯 밀려오는 회한에 잠시 젖어 본다..ㅠㅠ
ㅎㅎ
규서바...
알프스 가면 독방 줄께...
혼자만의 내밀한 여행이 되시기를 ㅋㅋ
법성포애서 굴비 한점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백수해안도를
따라 인산이 싫어 자연 속으로
점에서 점을 연결하면 하나의
선을 맹그러가고,그것도
굵고,강하게,비록 짧을 지언정,,,,
우리네 인간은 자꾸 약해져만 가고
광화문 그대는 길고 강하게만
보여지네,,,,
부디 좋은 추억만들어
스쳐지나가는 점,점,
백팔염주에 끼어
삼천리 방방곡곡,형형색색,
방랑시인 되고
아름답고,흐뭇한
참살이나 전해주시게나
광화문!
삿갓 선생의 시한편
천리길을 지팡이 하나에 맡겼으니
남은 엽전 일곱푼도 오히려 많더라
주머니 속 깊이 있으라고 다짐했건만
석양 주막주막에서 술을 보았으니 어찌하랴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의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책 시작머리에 이런 대화가 있다. 책 제목을 본 아내 왈 “당신, 진짜로 나와 결혼한 걸 후회해?”약간 주저하는 남편“응, 가끔...”
잠시 뜸을 둔 아내 “난, 만족하는데...” 이 소리들은 남편 기분이 상당히 좋아지려는데 깔끔하고도 깊숙한 아내의 이어진 대답 “아주 가끔..”
한두 번쯤은 홀로 여행을 해 보는 것도 좋을듯하나 자주면 “아주, 가끔..”이라는 대답도 못 들을 수도 있으니 유의 바람. 근무처가 지방현장이다 보니 귀경을 못하는 주말은 남는 게 시간이라 자신과의 소통이 안 되는 때는 산행이든 걷기든 달리기든 운동이 최고라. 토요일에도 좀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