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복산 편백숲으로
겨울방학에 든 일월 중순 셋째 월요일이다. 방학 이전은 전날 오후 거제로 건너가 연사 와실에서 맞는 월요일이었을 텐데 이제 그럴 일이 없어 느긋했다. 빠듯한 학사일정에 떠밀리다시피 떠났다는 팔월 말 퇴직 동료들보다 나는 그렇지 않아 다행이다. 지난 연말 방학에 들면서 자연스럽게 정년퇴직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 교직에서 민간인으로 전환되는 연착륙을 시도하는 중이다.
새롭게 한 주가 시작되어도 새벽같이 근무지로 나서지 않아도 되었다. 아침나절은 집안에서 보내다가 이른 점심을 먹고 가벼운 차림을 현관을 나섰다. 며칠 전 교체한 휴대폰에 금융기관 방문을 대신하는 앱 사용에 문제가 있어 농협은행 창구를 찾아갔다. 농협은행 창구 입구 보안업체 직원의 도움으로 즉석에서 해결했다. 은행 창구나 자동화 코너를 가지 않고 송금하는 기능이었다.
휴대전화 앱 기능을 회복시켜 놓고 산책을 겸한 산행을 나섰다. 재개발을 마친 아파트단지에서 반지동을 지나 봉곡동으로 갔다. 창원컨트리클럽 입구 토지주택공사 아파트단지 곁에서 태복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로 올랐다. 지역의 명문가였던 재령 이 씨 무덤을 지나니 옹글어져 자라는 소나무들이 청청한 숲을 이루어 있었다. 산행객이 더러 오르내린 등산로를 따라 정상으로 향했다.
태복산은 내가 사는 생활권과 다소 떨어져 자주 찾아간 산행지는 아니다. 이십여 년 전 밀양에서 창원으로 전입해 명서동 아파트에 살 적 자주 올랐었다. 당시 근무지는 태복산 아래 신설 여학교였다. 그 시절 잠시 살았던 낮고 낡은 아파트는 고층으로 재개발되어 스카이라인 달라졌다. 산비탈을 오르니 숲속 나들이 길 이정표가 나왔는데 시가지를 에워싼 외륜산으로 계속 이어졌다.
비탈을 얼마간 오르니 체육시설이 갖추어진 태복산 정상에 닿았다. 아랫마을에서 올라왔을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전망이 탁 트여 창원 시내 일부분이 시야에 들어왔다. 동쪽 언덕에는 지역 단체에서 해맞이 제단을 설치해 놓았는데 코로나로 이 년 연속 새해 아침 행사를 못했지 싶다. 하산은 서북쪽 편백나무 조림지로 내려섰다. 오래 전 심었던 묘목은 세월이 흘러 숲을 이루었다.
태복산 편백 조림지는 근래 삼림욕장으로 개발되어 평상을 비롯한 편의시설과 실핏줄 같은 산책로가 개설되어 찾는 이가 늘었다. 내가 사는 생활권과는 거리가 떨어졌지만 가끔 찾아가는 숲이다. 산중턱에 약수터가 세 군데 있어 사계절 시원한 샘물을 받아 마실 수 있었다. 태복산 북쪽은 울타리를 경계로 창원컨트리클럽인데, 나와 인연이 닿지 않아 그쪽 잔디밭 사정은 전혀 모른다.
편백나무 삼림욕장을 거닐다가 산기슭으로 내려가니 도계동에서 도심을 우회하는 차도가 나왔다. 예전 근무했던 여학교와 인접한 곳에는 또 다른 고등학교가 들어서 격세지감을 느꼈다. 창원의 도심 북부를 순환하는 도로는 명서 골짜기를 가로지른 높다란 교각을 세워 봉곡동으로 건너왔다. 우회도로 개설할 당시 차도 곁에는 산책로를 겸한 보도가 확보되어 걷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북부 순환도로를 따라가니 창원컨트리클럽 입구였다. 나목이 된 가지를 전정한 은행나무 가로수가 도열한 주택지 이면도로를 지나 창이대로를 건넜다. 창원천 천변으로 내려서니 추워서인지 산책객이 드물었다. 색이 바래진 물억새는 겨울을 나면서 잎줄기가 야위어갔다. 얼음이 얼지 않은 물웅덩이에는 남녘으로 내려가지 않은 쇠백로와 제철을 맞은 오리들이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다.
퇴촌삼거리에서 반송공원 산책객을 위해 마련해 둔 먼지털이를 집어 들었다. 등산화와 바짓단에 묻은 먼지를 털고 외동반림로를 따라 걸었다. 동지 이후 한 뼘씩 길어지는 해는 기울지 않아 오후의 햇살이 조금 남아 있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맞은편 상가에 약속된 자리로 향했다. 예전 근무지서 맺어진 인연으로 오래도록 교류하는 퇴직 동료와 맑은 술을 잔에 채워 안부를 나누었다. 2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