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죽음을 앞둔 남편(박흥주 대령)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입니다>
여보,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또 100년이
지나도 언제나 김묘춘은 박흥주의 아내예요"
법정에서 의연한 모습을 떠올리면 울 수가 없어요.
명예롭게 떠나는 당신의 아내가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 될법한 소리인가요.
여보, 그렇지 않은가요. 울지 않겠어요.
아이들과 저는 당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있어요.
슬픔이 아닌 자랑스러움으로 당신을 기억하겠어요.
세상은 당신을 잊지 않을거예요.
먼훗날 역사는 당신의 그 자랑스러운 행동을
후손에게 알릴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여보, 당신을 만나 지금껏 살아온 것이
자랑스럽고 행복해요.
여보, 이제는 서로 웃으며 헤어질 때가
온것 같아요.당신이 나를 믿고 떠날 수 있듯이
저도 당신을 믿고 살아갈 수 있답니다.
당신의 향기를 영원히 간직한 채 살고싶어요.
우리의 헤어짐이 헤어짐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이 더 잘 알고계실거예요.
어디가서든 저를 잊지 말고 아내로 맞아주세요.
당신의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을거에요.
끝으로 보고싶은 당신에게
제 아낌없는 사랑을 전합니다.
사랑하는 당신
어색하기는 하지만 당신의 이름 흥주씨를 부르며
펜을 놓을까 합니다.
흥주씨!
-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는 아내가.
부인 김묘춘
첫댓글 죽음을 앞 둔 남편에게 보내느 아내의 순애보가 애절합니다.
박흥주대령과
그분의 아내 김묘춘씨가 지인이신지요?
근현대사를 알아보던 중 10ㆍ26 사태를
다각도로 해석해보았는데 이는 김재규의
계획된 것이 아닌 우발적 사태였음을
인지하고 그 희생양중 정말 의연한 박흥주
대령과 그 아내 김묘춘의 주고받았던
편지를 올려보았지요.
당시 중정 계장(부산고ㆍ해사출신)이
제 선배 친형님으로 나름 그 사태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고계신 분이 있었기에 그 참담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답니다.
10.26 사태라는 전대미문의 격랑속에
사형언도를 받은 중앙정보부 소속 현직군인
신분의 박흥주 대령의 부인 김묘춘 여사님이
사랑하는 부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많은 사람중에 박흥주 대령만이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는 그만큼 출중한 인물이었었고 매사에
부끄럼없는 행동으로 모범이 되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군과 가정밖에 몰랐었고 반듯한 생활로
행당동 산비탈 12평 두칸 판잣집에 살면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분이시지요.
오죽하면 신군부들 마저 읍참마속의 심정이었다
회고합니다.
이 글을 올리며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되겠다는 생각과 아울러
참 군인의 길을 간 박흥주 대령과 그 가족분들
모두에게 평온함이 깃들기를 기원드립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는 티브이시청을 안하기에 그건 모르겠고
넷을 찾아보시면 박흥주 대령 육사졸업 사진이
나옵니다.사람에게는 그 틀이 있습니다.
정말 의연하고 이 나라의 동량감으로 부족함이
없는 분이지요.길지 않은 인생길에서
그래도 부부간에 이토록 서로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음은 나름 다행이지 싶습니다.
정말 아까운 분이십니다.
@지우 그렇군요...
제가 외부와 담쌓고 살아가고있기에
많은 점에서 부족함이 많습니다.
답글을 올림에 다소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널리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객관적인 시각이라함은 양쪽 다 그 의견들을
종합해볼 때 그나마 좀 나은 판결을 내릴 수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당시 그 사건수사를 맡았던 분이 보안사
백동림씨였는데 우발적 사태로 보고하자
전두환 사령관은 이를 묵살하고 이학봉에게
재수사하라 지시하여 우발적 사태 아닌
계획된 모반으로 둔갑시켰습니다.
이 두 차이는 하늘과 땅차이입니다.
이로 인해 일파만파 12ㆍ12 사태며
5ㆍ18로 까지 확대되는 결과를 초래하지요 ㅠ
아이구...
제가 자다가 남의 장단지 긁었습니다.
제가 이리 꺼벙하고 맹합니다.
@지우 전 그런 인물인 줄도 모르고
방흥주 대령이란 분이
프리아모스님 지인인 줄 알고...
찾아보니 "그때 그사람들" 영화에서 "민대령"이 박흥주 당시 중정부장 비서실장인데 "김응수"가 연기 했다고 나오는군요.
한석규는 주과장으로 나오는데
중전 의전과장 박 선호 역을 ..
박흥주 라는 인물을 새삼 알게
되어 감사 합니다.
@지우 저는 가수들이 기타 치면서
노래 부르고 뭐 하다가
김재규가 총을 쏘고 ..등
장면만 기억나는데 다시
한번더 정신 차리고 시간될때
봐아겠습니다ㅜ
일설에 의하자면 박흥주 대령은 기독교신자였던
것 같습니다.여튼 그 부인 김묘춘 여사는 남편의
구명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는데 마지막으로
찾은 분이 김수환 추기경이었다는군요.
가까스로 만나뵌 추기경님께선 남편을 편하게
해드리라는 말을 하시곤 뒤돌아 뒷짐진채
창밖을 응시하셨다 합니다.크게 낙담한 여사께서
'아 이젠 끝이구나' 하고 돌아섰다 합니다.
만약에 만약에...
백담사로 찾아가 삼천배 절한 후 성철스님을
친견했었더라면 하고 생각을 해봅니다.
적어도 마음의 평온함을 유지하셨었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그보다 더한 역경속에서 수많은 분들이
스님을 친견하고 눈녹듯 평온함을
찾았으니까요.
불교신자도 아닌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림은
스님에 관한 기록문건들을 접해보았기에
그 가능성을 유추해보는 겁니다.
프리아모스님 본글도 감사하지만
지금 쓴 댓글도 감사 하네요
좋은 따뜻한 글입니다
네.따뜻한글입니다
서로믿고 의지하는
한 부부를 본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