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고유한 ‘그릇’이 있다. 이대호처럼 치는 순간 내야플라이다 싶은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는 타자가 있는가 하면, 이대형처럼 맞는 순간 홈런인가 싶었는데 유격수 키를 간신히 넘기는 선수도 있다. 대신 이대형에겐 이대호에 없는 빠른 발이 있기에, 단타도 2루타로 만들고 필요하면 1루도 훔칠 수 있다. 그게 바로 이대형이 지닌 ‘그릇’이다. 여기, 비록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은 없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그륵만큼 특출한 능력을 발휘하며 프로야구를 빛낸 선수들의 명단이 있다. 명예로운 기록도 있고, 팀에 큰 도움을 준 기록도 있는가 하면 반대로 불명예스럽거나 감추고 싶은 부문도 존재한다. 하지만 공통점은 누구도 이들의 타이틀에 대해서는 상을 주지도,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비록 화려한 시상식이나 투애니원의 축하공연은 없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들만이라도 작고 조용한 마음 속 박수로 축하해 준다면 수상자들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럼 지금부터 2010 프로야구 ‘뜬금’ 타이틀 시상식을 시작해 보자. (이 글은 재미를 위해 다소 과장된 표현과 비약이 섞여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합니다) ☞ 2009 프로야구 '뜬금' 타이틀 시상식 (타자편) 다시보기 ☞ 2009 프로야구 '뜬금' 타이틀 시상식 (투수편) 다시보기 투수 진빼기 부문 - 수상자 박석민(삼성) 투수들 몸에서 육수가 나올 때까지 많은 투구수를 유도하며 진을 뺀 선수에게 주는 상이다. 올해는 삼성 박석민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박석민은 타석당 평균 투구수 4.43개로 2위 최형우(4.27)와 ‘눈야구’의 장인 김태완, 김원섭(4.21), 지난해 수상자 최희섭(4.12) 등을 크게 따돌리고 투수 농축 엑기스 추출의 경지에 올랐다. 특히 박석민은 스트라이크 비율 57%, 볼 비율 43%로 김동주, 김태완(56.9/43.1%)에 이어 두 번째로 뛰어난 볼과 스트라이크 비율을 기록했다. 이는 그가 올 시즌 홈런 15개로 장거리 타자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순전히 ‘선구안’만을 갖고 이뤄낸 기록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초구공략도 타율 .333/장타율 .593을 기록했으니, 투수 입장에선 빠른 승부를 하기도 힘들었다. ‘녹색성장’ 공헌 부문 - 조인성(LG) 정부의 ‘녹색성장’ 방침에 적극 동참해서, 치는 타구마다 족족 높이 띄워 보내면서 내야 잔디 보호를 위해 애쓴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스카우터가 달린 안경을 끼고 잉금님으로 거듭난 조인성이 총 135개의 뜬공을 쳐내며 수상자가 됐다. 뜬공/땅볼 비율도 1.44로 규정타석에 든 모든 선수 중 가장 뛰어났다. 사실 뜬공의 개수만으로 따지면 151개를 하늘 높이 날려 보낸 김주찬(롯데)이 수상자가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김주찬은 땅볼 역시 136개를 기록하며, 정부방침과는 반대로 잔디 훼손에도 일익을 담당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고 준플레이오프 기간 사직구장의 험악한 잔디 상태가 김주찬 책임이라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공정사회’ 공헌 부문 - 김선빈(KIA) 올해 신설된 상. 정부의 ‘공정한 사회’ 구호에 맞춰, 최고 투수와 최악의 투수를 가리지 않고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준 타자에게 수여한다. 올 시즌 평균자책점 기준 최고의 투수는 한화 류현진, 최악의 투수는 같은 팀 유원상이었다. 두 투수 모두에게 ‘공정’하게 좋은 타격 성적을 낸 선수는 KIA 내야수 김선빈이었다. 김선빈은 올해 류현진 상대로 타율 .571를 쳐내며 극강의 모습을 보였다. 또한 유원상을 맞아서도 .385의 타율에 홈런 1개(어머나!)와 4타점을 기록하며 공정의 표준을 제시했다. 실은 대부분 선수보다 훨씬 왜소한 체격조건을 가진 그가 프로에서 주전급으로 당당하게 활약하고 있는 것부터가, ‘슈퍼스타 K2'의 허각 1위에 버금가는 공정사회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롯데 손아섭도 시즌 내내 공정했다. 그는 류현진 상대로는 타율 .333를, 유원상에게는 .500의 타율에 2루타 2개를 쳐냈다. 하지만 약자에게 조금 더 가혹했다는 점에서 감점 요인이 있었다. 펑고 무료 자원봉사 부문 - 이대형(LG) 무수히 많은 땅볼을 굴려 보내며 상대 야수들에게 무료 펑고 체험의 기회를 제공한 선수에게 주는 상이다. 이대형이 3년 연속 수상자로 선정됐다. 올해도 마땅한 경쟁자가 없었다. 정근우(182개)가 있긴 했지만 이대형에 비하면 ‘그냥 커피’에 불과했다. 올 시즌 그가 쳐낸 땅볼 개수는 199개로, 이치로가 한 시즌 동안 쳐내는 안타 수에 맞먹는 숫자다. 상대팀 수비코치가 할 일을 대신해 주는 이대형의 활약에, LG를 상대하는 팀들은 그날 펑고 연습을 훈련 메뉴에서 제외한다는 소문도 들린다. 이대형이 타석에 들어서면 외야수들은 그 시간 동안 외야석 관중을 대상으로 팬사인회를 한다는 루머도 있다. 다만 올해는 타격 폼의 수정과 컨택 능력의 향상으로 작년(229개)보다 페이스가 다소 주춤했던 것이 아쉽다. 인간 선풍기 부문 - 카림 가르시아(롯데) 타석에서 가장 많은 헛스윙을 기록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멕시코 수입 선풍기 가르시아의 3년 연속 수상. 가르시아는 올 시즌 투구수 대비 30.4%의 압도적인 비율로 헛스윙을 하며, 더위에 지친 상대 포수와 심판에게 시원한 자연바람을 제공했다. 경쟁자로는 오지환(25%)과 이성열(24.6%)이 분전했지만, 바람의 강도와 꾸준함에 있어 가르시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다만 가르시아가 국내 무대를 떠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내년 시즌에는 오지환과 이성열의 선풍기 날에서 땀나는 2파전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된다. 선풍기 좀 돌리면 어떤가. 대신에 홈런도 많이 쳐내면 되지. 야구공 탐구 부문 - 김원섭(KIA), 김민우(넥센) 공동수상 공이 스트라이크로 들어오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고대 유물 구경하듯 진지하게 탐구하는 자세로 야구공을 감상한 선수에게 수여되는 상. 연말 연예대상에서나 나온다는 ‘공동수상’이 부득이하게 주어지게 됐다. KIA 김원섭은 3년 연속 수상의 영예를 안았고, 김민우는 첫 수상으로 이 부문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두 선수의 스트라이크 대비 루킹 스트라이크 비율은 40.1%로 동일했다. 다만 질적인 면에서는 김민우가 조금 더 우세했다. 루킹삼진 비율이 김원섭은 48.1%로 지난해까지 기록과 비교할 때 폭등한 반면, 김민우는 35.3%로 무난한 수준. 여러 지표를 볼 때 김원섭의 컨택 능력이 올해 들어 크게 떨어진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한 가지 기억할 점은, 이 부문 상위권 선수들이 하나같이 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에 속한다는 것이다. 최준석, 김태완, 박석민, 박한이, 이종욱, 유한준, 박경완, 강정호... 이름만 들어도 투수에게는 간이 탈장되고 오금이 저리는 타자들 아닌가. 이들에게 순순히 스트라이크를 던져주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 권성욱 캐스터 샤우팅 유발 부문 - 이대호(롯데) 대부분의 캐스터는 ‘스위치 캐스터’지만, KBS 권성욱 아나운서는 예외다. 그는 ‘좌측담장’을 외칠 때와 ‘우측담장’을 외칠 때 목소리의 데시벨과 박력, 배음이 확연이 다르다. '좌측담장, 좌측담장'을 외치는 그의 목소리는 메탈리카 보컬처럼 힘이 넘치지만, 타구가 조금이라도 우측으로 가면 목소리가 데시벨 단위로 줄어든다. 이 상은 올 시즌 그의 샤우팅을 가장 자주 유발한 선수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7관왕으로도 모자라서 이대호가 여기까지 모습을 보였다. 올 시즌 좌측 홈런 19개, 좌중간 홈런 7개로 압도적인 1위. 이는 지난해 김상현(KIA)의 기록(19+7)과 동일한 수치다. 다만 전체 타구 중 좌측 비율 46.6%로 ‘낚시’에는 큰 소질이 없는 모습. 무조건 당겨치는 타입이 아니라, 반대쪽 필드도 적절히 활용하는 타격을 했다는 증거다. 한편 조인성은 좌측 홈런 18개, 좌중간 3개를 쳐내며 차점자로 등록됐다. 임용수 캐스터 샤우팅 유발 부문 - 이용규(KIA) ‘2루’보다 ‘3루’를 외칠 때 놀라운 박력과 성량을 보여주는 SBS 임용수 캐스터의 샤우팅을 가장 자주 유발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1루 주자로 나가서 단타 때 3루로 가장 자주 진루한 선수를 선정했다. 이번 수상자는 KIA 이용규로, 무려 16차례나 1루에서 3루로 내달리는데 성공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플라이볼 때 2루에서 3루로 진루한 횟수도 5차례로 1위. SK 정근우가 15차례 1루-3루 진루로 2위에 올랐다. 김태우 캐스터 샤우팅 유발 부문 - 최준석(두산) 올해 신설된 부문. 비거리 측정 전문 김태우 캐스터의 샤우팅을 가장 돋보이게 만든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두산 최준석이 평균 121.4m의 비거리를 기록하며 1위에 올랐다. KIA 최희섭은 120.7m로 2위, 이대호는 120.6m로 3위에 오르며 ‘양보의 미덕’을 보였다. 다만 저 숫자들을 몸무게로 잘못 읽으면 곤란하다. 무관심 도루왕 부문 - 오선진(한화) 조만간 폐지가 유력한 부문이다. 한화 오선진이 세 차례 무관심 도루에 성공하며 수상자로 선정됐다. 시즌 도루 7개인 그는 무관심 도루까지 합치면 두자리수 도루에 성공한 셈이 되지만, 그런 건 어디가서 자랑하지 말고 혼자서만 생각해야 한다. 한편 오선진은 도루실패 2번, 견제아웃 3번으로 주자로서의 생산성은 다소 아쉬운 모습. 예년과 마찬가지로 도루 부문 상위권의 선수들은 무관심 도루에는 대체로 무관심한 모습을 보였다. 7위 이영욱과 김상수(이상 삼성)이 각각 한 차례, 10위 김민우가 한 차례씩 기록한 게 전부다. 기록으로 쳐주지도 않는데 괜히 힘 빼는 선수가 없단 의미. 리그 전체 무관심도루 수도 매년 줄어들어 2008년 59개, 2009년 35개, 올해 25개로 감소폭이 뚜렷하다. 이대로라면 무관심 도루는 조만간 시티폰 같은 존재가 되어 잊혀질 가능성이 높다. (투수 편으로 이어집니다) 기록제공 - 스탯티즈(www.statiz.co.kr) www.yagoora.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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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인간 선풍기 ㅋㅋㅋ 너무 가혹한거 아니에요?ㅋㅋㅋ
야구공 탐구부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뜬금 타이틀시상식 ㅎ ㅎ ㅎ 넘 잼나네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