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깔이와 빨간 운동화」는 아들이 군 제대를 하면서 가져온 제대기념선물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이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화자의 심리변화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 심리의 변화에 중점을 둔 스토리를 구사하는 능력을 획득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군대가 모병제가 아니라 개병제여서 병사 월급이라는 것이 쥐꼬리보다 적
다. 그런데 군대 간 자녀를 둔 사람들에게서 이상한 소식들을 들은 것이다. 군대 간 아들이 누구는 이등병 첫 월급으로 내복을 사서 보냈다느니, 누구는 자기 생일에 군대 매점에서 종합비타민을 사서 보냈다느니, 택배로 꽃다발을 보냈다느니, 휴가 나가는 친구 편에 부탁해 카디건을 사서 보냈다느니 ……. 말을 들을수록 부러움과 함께 나만 아들한테 대접 받지 못하는 것 아닌가하는 마음도 커져갔다. 그러다가 드디어는 꿈을 꾸게 되는 것이다. 제대 선물! 그런데 염려스러운 건 아들이 중학교 이후 어버이날 카네이션 사오는 것도 이미 생략하고 사는 무뚝뚝한 사내라는 것. 제대해서 돌아온 아들 손에는 작은 가방 하나. 며칠을 지낸 후 더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얘, 너 엄마한테 뭐 제대 선물 같은 거 없니?"
"제대 선물? 어……. 저기 식탁의자에 걸어놨잖아요. 깔깔이."
아들이 살짝 뜸을 들인 다음 가리킨 것은 제대한 날부터 며칠째 계속 식탁 의자에 걸쳐 져 있던 누리끼리한 색의 점퍼 비슷한 옷이었다. 며칠 동안 걸려 있어도 신경도 쓰지 않 던 옷이다.
"저거? 깔깔이? 저게 엄마선물이야?"
"그거 엄마 주려고 가져 온 건데……. 안 그러면 내가 뭐 하러 힘들게 가져와요. 그냥 버리고 오면 되지."
그렇다. 나는 버리지 않고 아들이 작은 가방에 힘껏 쑤셔 넣어온 일명 깔깔이를 선물로 받은 것이다. 그것도 집에 오자마자 ‘엄마 선물이에요’하고 내놓은 것도 아니고, 며칠이 지나서 얼떨결에 받은 옷이다.
이 작품이 뛰어난 것은 그 다음 화자의 반응이다. 어떻게든 만족해 보려는 노력이 가상하다. 화자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남편도 그 선물에 은근히 욕심을 내 보려다 배가 나와 영 폼이 나지 않아 포기하고 만다. "어쨌든 아들의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선물 운운에 깔깔이는 내 것으로 낙찰되었다. 아들이 선물이라 했으니 아쉽지만 깔깔이나마 제대 선물을 받은 걸로 치자고 스스로 위로도 해 보고 의미도 부여해 보았지만 왠지 아쉬움은 가시지 않았다."
작가는 시치미 뚝 떼고 있다가 돌연히 상황을 반전시킨다. 아들이 일명 이효리 운동화를 선물로 사준 것이다. 경쾌한 걸음걸이로 작품을 끝낸다. 신인답지 않는 노련함이다.
나도 이제 아들한테 평생에 딱 한 번뿐인 제대 선물을 받았다는 자랑거리가 생겼다. 그 것도 굳이 꺼내 보일 필요도 없는 것으로 아주 확실하게 말이다. 이제 깔깔이쯤은 남편이 입든 아들이 도로 가져가든 상관할바가 아니다. 나는 아들이 사준 빨간 운동화를 신고 나 가는 날이면 빨간 카네이션을 단 듯 다리를 쭉쭉 펴면서 자랑스럽게 걸어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