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3, 9 1여전도회 헌신예배 헌신, 호크마
행9:36-40 다비다의 헌신 203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고 했습니다.
이름을 남기는 것도 좋은 이름이냐? 나쁜 이름이냐? 가 중요합니다. 지금은 몰라도 후세에 다 나타납니다.
사람이 한평생 살다가 가면서 좋은 일하고 좋은 소리 듣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지 못하고 부끄러운 인생 살다간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다비다, 라는 여인은 넉넉한 사람이 아닙니다. 가난한 처지에 혼자 살면서도 그래도 어떻게 하든지 남을 돕고 싶어 하는 정(情)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절대 넘기지 못하고 내일처럼 생각하고 그를 도와주고 싶어서 안달이 되고, 가슴아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넉넉지 못한 형편에서도 구제를 많이 했습니다. 착한일도 많이 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어려운 사람을 보면 김치도 담아다 주고, 죽도 써다주고 정말 본이 되는 교인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병들어 죽었다는 소문이 이웃에 퍼지자 이웃 사람들이 다 울면서 다비다가 베푼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여기서 저기서 속옷과 겉옷을 내 보이면서 이것도 그사람이 해 준 것이라는 것입니다.
요새 사람들은 보면 내 것 갖고 인심 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것 같고 인심 쓰려고 합니다. 내 것에는 인색합니다. 그러나 교회 것이라면 팍팍 쓰려고 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 노인들이 김치 말하면 교회에서 안하면 내가 개인이라도 해주면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그것 갖고 왈가 왈가 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참다운 헌신은 내 것에 인색함이 없어야 합니다. 내 기술, 내 시간, 내 정성
다비다가 한 일이 돈으로 따지자면 별것 아닙니다. 하찮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작은 것에 정이 듭니다. 오늘날은 뭐든지 큰 것에만 연연하고 있습니다. 작은 것은 아예 눈에 차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이 큰 일에도 충성한다고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우리 사회에 작은 자가 누구입니까? 고아, 과부, 병든자, 없는자가 아닐까요?
왜 이런 사람한테 하는 것은 억울하고 손해 보는 것 같고, 있는 사람, 잘난 사람한테 하는 것만 보람 있는 것일까요?
다비다는 번역하면 도르가, 라고 하는데, 이 말의 뜻은 ‘제자’ 란 뜻입니다. 제자는 선생을 닮아야 참 제자인 것입니다. 다비다는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예수님 사랑을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을 때 행복합니다.
저도 역시 설교를 잘한다, 목회를 잘한다고 인정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나 인정받지 못할 때는 정말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가장도 가장으로서 인정을 받아야 행복합니다. 엄마도 엄마로서 인정을 받아야 살맛납니다.
인정받지 못하면 불쌍한 인생이 됩니다.
인정받고 살수 있는 방법은
긍정적인 면을 바라봐야 합니다. 좋은 것, 잘한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누가 약점이 없습니까?
다 약점이 있습니다. 그것만 바라보는 사람은 자기만 불행합니다.
인정받으려면 좋은 말만 해야 합니다. 신앙에 도움이 되는 말만 해야 합니다.
칭찬을 해야 합니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 고 했습니다.
저도 안 좋은 말을 들으면 바로 안 좋은 말을 보냅니다.
어떤 사람이 사업에 실패하여 목사님께 상담하며 정말 죽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종이와 연필을 주면서 지금 있는 것을 적으라고 했답니다. 아내, 아이들 집, 친척, 친구들도 있고, 차도 있습니다. 단지 사업에 실패하여 널널하게 살다가 집을 처분할 정도인데, 그것이 자살의 이유가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답니다.
옛날 정승집 강아지가 죽으면 문상객이 줄을 서는데, 정승이 죽으니까 강아지 한 마리 얼쒼거리지 않더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벼슬이 두려워서 문상가는 것입니다.
인정받아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인정받지 못한 정승입니다.
오늘 본문에 다비다는 죽자 곁에 있던 사람들은 잘 죽었다, 그러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살려보려고 사람들을 보내 베드로를 청하게 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아프고 죽게 되면 우리는 누구 부릅니까? 의사부르고 의사한테 가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베드로를 청했습니다.
베드로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갔습니다. 아마 다비다가 믿음이 없고, 쓸모없는 사람이었다면 핑계라도 됐겠지요.
그러나 다비다는 선행과 구제를 많이 한 사람으로 꼭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급히 가서 무릎꿇고 기도했더니 다비다가 살아 났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고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는 좋은 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 교통사고로도 믿음이 자라게 하시고, 슬픈 일로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게 합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라, 고 한 것입니다.
다비다는 정말 귀중한 유산을 남긴 사람인데, 바로 신앙의 유산을 남겼습니다.
다비다는 살아 있는 동안 지극히 작은 것으로 하늘나라에 보물을 차곡차곡 쌓아 갔습니다.
이 보물은 썩지 않는 영원한 보물로 우리도 추구해야 할 하늘나라 상급입니다.
다비다는 무슨 일을 해도 항상 주님을 생각하고 했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교회중심으로 했습니다. 직장문제도, 이사문제도, 교회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어디가도 교회는 있지만 내 눈물과 내 땀이 들어간 교회가 필요합니다.
다비다의 선행이 우리에게 큰 귀감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