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기운 것을 보고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뵈지 아니하더라 4 이를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 한 사도와 모든 다른 이에게 고하니 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저희와 함께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고하니라) 11 사도들은 저희 말이 허탄한 듯이 뵈어 믿지 아니하나 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푸려 들여다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요19:26-27)”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막15:34)” “내가 목마르다(요19:28)” “다 이루었다(요19:30)”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예수님께서 십자가위에서 하신 일곱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완전히 운명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에 하늘이 세 시간이나 어두워지고 지진도 일어나고 무덤에서 몇 사람들이 살아나고 성전의 휘장이 찢어지고 했지만 그러나 그런 사건들은 이내 사라지고 눈앞에 분명하게 닥친 현실은 예수님이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시체를 무덤에 장자지낸 것입니다.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 사랑받던 제자들조차 다 도망 가버렸습니다. 단지 몇몇 여인들은 예수님이 무덤을 유심히 보아두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바르지 못하였기에 안식일이 지난 후에 바르기 위해서 안식일 전에 준비 해 두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입니다. 그러므로 금요일 오후 세시에 예수님이 운명하셨습니다. 이 날은 안식일 예비일이기에 해가 지면 안식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지기 전에 시체를 처리하려고 빌라도에게 요셉이 요청하여 자신의 준비해둔 새 무덤에 세마포로 시신을 사서 장사지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난다는 말을 들었기에 혹시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가서 다시 살아났다고 할까봐서 빌라도에게 청하여 무덤을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군인들이 무덤에 인봉하고 지켰습니다.
1-3절입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여자들이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갔습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여인들이 가면서 돌을 어떻게 굴려낼 것인지를 염려하면서 갑니다. 그런데 무덤에 가보니 돌이 옮겨져 있는 것입니다. 무덤에 들어 가보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라 다녔던 제자들이나 또 이 여자들이나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근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9:22절입니다.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누가복음 18:31-34절입니다. “31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32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기워 희롱을 받고 능욕을 받고 침 뱉음을 받겠으며 33 저희는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추였으므로 저희가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이런 말씀을 하나도 깨닫지 못함이 오늘 말씀에 나옵니다.
4-7절입니다.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보고서 근심하고 있을 때에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서서 말합니다. 그러다 여인들이 두려워 엎드립니다. 이 두 사람은 천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산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고 하면서 그는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산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으려고 합니다. 어떤 모습이 그런 모습입니까?
무언가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직접 보여주지 못하면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이라도 보여 달라고 합니다. 보여 주면 믿겠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요구를 오늘날 교회들이 어떻게 충족시켜 주려고 합니까? 보암직한 것들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대단한 업적이나 웅장한 건물이나 죽을병에서 살아나거나 큰 성공을 했다거나 하는 것을 가지고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런 것들을 모아서 하나님의 일이라고 떠벌리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그런 욕망과 욕망을 채워주려는 모습이 바로 선악과를 따먹고 난 이후의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았을 때에 선악과가 어떻게 보였습니까?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보였습니다. 이런 유혹은 모든 인간에게 계속하여 유혹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의 모든 유혹의 근원도 다 여기에 들어있습니다. 세상이 보암직한 것으로 달려갑니다. 세상이 보암직한 것을 제공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 가니 교회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온갖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사람들의 요구를 채워주어 성공하였다는 미국의 교회들을 본받는 세미나가 인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란 아무른 볼 것이 없습니다. 십자가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처럼 고개를 돌이질 하면서 떠나가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지극히 현명한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아니 예수님의 십자가만 이야기 하지 말고 부활도 이야기 해야지 부활의 영광을 왜 소홀히 취급하느냐고 십자가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는 통과의례로 치부하여 버리고 부활의 영광을 이야기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활의 영광이란 것이 세상의 보암직한 것들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영광이란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여전히 감추어져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몇 번 보이셨고 또 바울이나 요한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에 죽은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도 부활하신 주님께서 척 나타나시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다 믿지 않을 것인가 하는 생각을 사람들이 많이 합니다. 여전히 보암직한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을 처음 듣는 분도 계시기에 조금 상세하게 말씀드립니다. 부자는 날마다 호의호식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집 앞에 거지 나사로가 살았습니다. 부자 집의 음식 찌꺼기나 먹고살았는데 몸에는 종기가 나서 개들이 핥아대는 비참한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둘 다 죽었습니다. 나사로는 낙원에 부자는 음부에 들어갔습니다. 음부에는 물이 없습니다. 그 고통 중에 눈을 들어보니 자기 집 앞에 얻어먹던 거지가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것입니다. 그 손에 물 한 방울 찍어서 자기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이곳과 그곳은 건널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 부자가 그러면 나사로를 다시 세상에 보내어 자기 형제들이 다섯이나 있으니 그들에게 증거 하여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합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이 저희에게 있으니 그들에게 들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부자가 아닙니다. 죽은 자가 저희에게 가면 회개할 것이라고 합니다. 아마 이 부자도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믿지 못하였겠지요! 성경의 말씀만으로 믿지 못하니 죽은 자가 가면 믿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 지라도 권함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부자와 같은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죽은 자가 살아난다고 해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죽어서 살아난 자가 증거 하여도 믿지 않는 자는 믿지 않습니다. 그래야 지옥에 갈 자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집사님이 신학에 대한 질문과 응답을 보시고서는 하나님께서 지옥을 만드신 것은 반드시 지옥 갈 자를 지옥에 가게 하신다는 말씀이 영 마음에 걸린 모양입니다. 그러나 지옥이 위협용이 아닙니다. 천국에 갈 자와 지옥에 갈 자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가 살아나서 전해도 믿지 않는 다는 사실 앞에서 믿고 아니 믿고는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8-11절입니다. 천사의 말을 듣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그 말씀이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무덤에서 돌아가서 11사도와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와 또 저희와 함께 한 여자들입니다. 부활의 최초 목격자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이것은 유대사회에서 여자의 증거는 법정에서 채택하지 아니하는 때에 정말 혁명적인 이야기입니다. 법정에서 증인도 되지 못하는 여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최초로 목격하게 하신 것도 역시 믿을 사람만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사도들은 저희 말이 허탄한 듯이 보여서 믿지를 않습니다. 이때 성질 급한 베드로가 무덤에 달려 가보니 세마포만 보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빈 무덤을 보고서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 된 일을 인하여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하게 되는 것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몇 번 나타나셔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에게도 그렇게 보여 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보고 믿는 자 보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는 것입니까?
5-7절을 다시 봅니다. 어찌하여 산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고 하면서 그가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그제야 여자들은 그 말씀을 기억합니다. 그러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 모습을 척 보여주면 다 믿을 텐데 왜 보여주시지 않으시고 자꾸만 말씀을 기억하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물론 이 말은 천사를 통하여 하셨지만 예수님의 심부름꾼이기에 천사의 전한 말이 예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세상은 보암직한 것을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보암직한 것을 제공하여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자들만 오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53장에서는 그는 마른 땅에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은즉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합니다.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십자가를 바라보면 도망갈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영광을 보여주셨기 때문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16-20절입니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25-26절도 봅니다. “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성령이 임하시면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또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내가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는 말씀대로 살아나셨고 또한 다시 오시리라는 말씀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만사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되어 진다는 것을 믿는 것이 성령이 임한 자의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