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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Ⅳ부 예수의 처형과 소생
제13장 이해 받지 못한 사랑의 전교자 예수
제14장 종교범으로 잡혀 정치범으로 처형된 예수
제15장 예수는 부활한 것이 아니라 소생한 것이다
제16장 예수의 복음서 구술 작업
" 진실의 최대의 적은 대개 거짓말이 아니라 신화이다. 실체는 없으면서도 집요하고 설득력 있는 신화는 고의적으로 계획적으로 꾸며낸 속임수의 거짓말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존 F. 케네디
제13장 이해 받지 못한 사랑의 전교자 예수
서기 29년을 전후해서 예수에게 중요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일련의 일들은 결국 세기 33년 봄 유월절의 십자가형 사건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일들은 어찌 보면 별 볼일 없는 한적한 갈릴리 Galilee 호반에서 시작된다. 갈릴리 호반의 촌락에서 모여든,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하는 어부들과 농부,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얼마 되지 않는 예수의 신도였다. 그는 이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따라서 그의 설교는 그들의 삶과 환경에 그 소재가 있었기에 알기 쉽고 실감나는 이야기들이었다. 설교라기보다는 연민과 동정과 위로의 말이었다. 사랑의 말이었다. 갈릴리 호반의 자연과 환경은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로웠지만,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궁핍하였다. 가난하였다. 대부분이 하루하루의 끼니를 걱정하는 힘들고 고달픈 삶을 이어갔다.
사실, 호반에서 서쪽으로 30키로 정도 떨어진 나사렛에 살던 요셉과 마리아와 예수의 형제자매들, 이 가족의 삶도 이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게다가 갈릴리 호반의 촌락 어디에나 갖가지 병을 앓는 환자들이 많았다. 이 지역은 일교차가 커서 낮에는 몹시 뜨겁고 밤에는 극심하게 추워, 동풍(凍風: 얼음처럼 차가운 바람)의 계절에는 폐렴으로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 갈릴리호 남쪽으로 이 호수와 사해를 연결하는 요르단 강 근방에는 이질도 많이 발생하고 말라리아가 유행했다. 신약에 나오는 악령에 씌운 사람들이나 고열병 환자들은 사실은 모두 토종 말라리아에 걸린 사람들이었다. 가난과 궁핍에 따른 영양결손으로 병에 대한 저항력이 약하여 보통 한 두가지씩 병을 앓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예수께서 이적을 행하신 갈릴리 호수 주변(좌) / 현재 모습의 「가버나움」 (Capernaum(우))
특히 나병, 혈우병, 결핵, 중풍, 백혈병을 앓는 사람들, 소경, 앉은뱅이등 신체 부자유자들, 귀신들렸다고 치부된 정신환자들도 많았다. 위생상태가 엉망인 데다가 민간처방약도 변변치 못한 상황이어서 나이 40전에 죽는 것이 보통이었다. 사회적 병폐도 많았다. 당시 팔레스티나 어디에나 마찬가지였다. 창부도 있었다. 세리 稅吏들은 가난한 자들에게서 악착같이 세금을 뜯어다 로마집정관에게 바치고 일부를 착복하였다. 이들은 모두 부정 不淨탄 사람 또는 하나님의 벌을 받은 자로 치부되었고, 경멸하고 멀리 해야 할 사람들이었다. 유대의 율법이 그랬다. 이 때 예수가 세리로 일하고 있는 레위를 제자로 삼았는데,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열고 예수일행을 청한다. 제자들은 예수에게 가지 말라고 만류한다.
"선생님, 그런 부정한 자들과 자리를 함께 하시면 율법교사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가 잠시 머리 숙여 생각한다. 이윽고 예수가 일찍이 동방에서 유학할 때 그의 스승 마니트라께서 들려주신 감동적 이야기를 모두에게 들려준다.
"옛날 요사팟 Josaphat이라는 성인께서도 사람들이 부정하다 천시하는 계층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먹고 마신 일이 있었다. 인간 모두가 평등한 존재임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그 때문에 비난도 받으셨지." "보라! 지금 내게 같은 상황이 일어나고 있구나. 진리의 길을 걷는 자는 용기도 필요하다 하셨다."
(아래 자료로 유추하면 위에서 말하는 "옛날 요사팟 Josaphat"은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임)
⊙ 참고: 聖 요사팟에 대한 자료
5세기경 독일에서 제작된 '성 요사팟과 바를라암' 판본. 삽화는 부왕을 교화하기 위해 왕궁으로 돌아오는 성 요사팟과 제자들. /출처=스크롤 인디아 [출처] 가톨릭 성인 ‘요사팟’은 석가모니 부처님?|작성자 북내비게이터 |
석가모니 부처님이 성인으로 등장하는 『성(聖) 요사팟과 바를라암(발라암:Barlaam)』 이야기는 중세유럽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이야기 책 중 하나이다. 제이나 연구원은 “지금까지 발견된 판본으로만 최소 14개 언어로 번역됐다”고 밝혔다. 가장 오래된 판본은 10세기경 그리스어로 번역된 것이다. 그리스어판 『성 요사팟과 바를라암』이야기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성 요사팟이라는 성인으로 각색되어 등장한다. 요사팟(Josaphat)이라는 이름도 원래는 부처를 이루기 전의 싯다르타 태자를 이르는 보살(bodhisattva)이 페르시아어로 ‘보디사프(bodhisaf)’로 바뀌고, 다시 음가(音價)가 ‘유자사프(yuzasaf)’로 변하면서 이것이 그리스어와 라틴어화 되면서 '요사팟(Josaphat)'이 됐다. 기독교화 된 이야기 속에서 성 요사팟은 인도의 왕자로 태어났고, 한 점성가는 왕자가 왕궁을 떠나 위대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왕은 왕자를 즐거움이 가득한 궁전에 가두어 두었지만, 궁전 밖으로 나들이를 나갔다가 병자와 노인, 시신을 보고선 번민하다가 은둔 수행자 바를라암을 만나 혹독한 고행 끝에 성인이 됐다고 전한다. 성 요사팟은 가톨릭교회에서 매년 11월27일을 축일로 기념하고 있다. 제이나 연구원은 “성 요사팟 이야기에서 명확하게 아시타 선인의 예언, 사문유관, 마라와 세 딸, 데바닷따의 해침, 쌍림열반 등의 사건을 찾아볼 수 있다”고 밝혔다. [출처] 가톨릭 성인 ‘요사팟’은 석가모니 부처님?|작성자 북내비게이터 |
예수 일행은 세리 레위의 집으로 간다. 거기서 예수 일행은 세리와 다른 부정한 사람들과 함께 앉아 먹고 마신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비난하며 한 마디씩 던진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옛날 설교하는 성인 「요사팟」 (Josaphat)
갈리리 호반을 돌아다니며 예수는 말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아 모두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예수는 생각한다. 그는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고, 그가 역설한 개인의 도덕개혁이나 임박한 종말과 그에 대한 준비에 대해서 공감하였다. 부친 요셉이 속해있던 에세네파의 금욕적 율법주의에도 공명하였다. 열심당의 무력불사의 민족주의도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들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이들 민중을 구제할 수 있는 길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문제를 더 근원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더 크게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예수는 갈릴리 호반을 순회하며 설교를 계속한다. 하루는 가버나움에 도달한다. 갈릴리 호반에서 북쪽을 쳐다보면 꽤 높은 언덕이 있다. 그 언덕에 올라가서 호수를 내려다보자면 시퍼런 물이 보이고 멀리 건너편 호반이 보이며 아름다운 경관이 전개된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가버나움까지 많은 군중이 따라왔다. 그 중에는 여자들도 섞여 있고, '그물을 버린' 어부출신의 제자 다섯 명도 끼어 있다. 또 그 자리에서 예수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도 있었다. 예수는 이 언덕에 걸터앉아 군중을 내려다보면서 말한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오. 지금 굶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오.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이 말은 세상을 거꾸로 뒤집어 엎는 폭탄선언이다.
가난한 사람이 모든 것을 얻고, 굶주린 사람은 먹을 것을 얻으며, 애통하는 사람은 웃는다. 그들이 가난하고 그들이 굶주리고 그들이 애통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되던 지금 그들이 결핍하고 있는 것들을 모두 얻을 것이다. 그는 그가 즐겨 쓰는 대구법 對句法(어구가 비숫한 비슷한 문구를 나란히 두어 문장의 변화와 안정감을 주는 표현법이다)으로 발언을 한 것이다. 그러나 군중은 참으로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결핍하고 있는 것들을 그가 어떻게 얻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군중은 생각해 본다. 그들은 한편 알고 있다. 그동안 예수는 갈랄리 호반을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의 정신이나 육체의 질환을 치유하였다. 신체 부자유한 사람들도 도와주었다. 초자연적 이적(異蹟: 기이한 행적)도 여럿 행하였다.
어쨌든 사람들은 그렇게 믿었다. 세례요한에게 흐르는 물에서 세례를 받았고 요한은 "그가 바로 그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본인은 시인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기대가 컸다. 꿈이 컸다. 그들은 예수가 자신들의 비참한 삶의 원인인 로마를 무찌르고 이스라엘을 구할 용기있고 강력한 지도자, 군사적 영웅으로 보았다. 다윗으로 보았다.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 즉 메시아로 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신의 아들이라고까지 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그는 다윗이 아니었다. 민중은 예수에 대한 열광에서 깨어났다. 꿈이 깨어진 것이다.
허망한 꿈에서 깨어난 그들의 참담한 심정은 냉소로 변하였다. 예수는 또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善待: 친절하게 잘 대접함)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군중은 투덜댄다.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니!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인가?"
갈릴리 호수근처에 있던 어린예수가 다니던 시나고그(유대교 예배당)위치(좌) / 예수의 마을 「가버나움」 (Capharnaum)(우)
군중에게는 너무나 의외였다. 이제 예수는 그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그들을 실망시켰다. 그들은 환멸을 느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반反로마투쟁이고 민족주의 투쟁이다. 그것이 그들의 살길이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들이 가난에서, 질병에서, 핍박에서, 수탈에서, 그리고 모욕과 불명예에서 헤어나는 길이다. 군중은 하나씩 둘씩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그의 제자들도 따라 동요한다.
팔레스티나의 기원전 1세기를 조망해 보면, 선지자, 마술사 그리고 메시아가 많이 있었다. 이것은 1,500년 유대민족의 전통이기도 하다. 이들은 부패했던 유대교의 정통적 종교조직을 배격하고, 개별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하나님과의 직접적 통신로 通信路를 갖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종말론자이었고, 닥쳐 올 재앙을 예언하고, 각종 이적들을 행하였다. 사방을 두루 돌아다니며 설교하고 많은 군중을 몰고 다녔다. 그들은 예언자였고 메시아였다.
사람들은 그들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람들로 믿었다. 자신이 선지자 또는 메시아임을 입증하는데 실패한 자칭 또는 타칭 선지자나 메시아는 어떠한 형태로든 죽음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원 후 1세기에 들어와서는 시몬 마기도 그 중 하나이고, 세례요한도 그 중 하나였다. 그들은 모두 실패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망 待望의 다윗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수도 지금 이 검증 단계에 걸려있는 것이다. 아마도 곧 실패 사례의 서열에 끼게 될지도 모른다. 군중은 예수를 등지고 언덕을 내려가면서 생각한다.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라?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그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이 사랑이다. 예수는 큰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의 혁명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세상 최대최고의 가치가 사랑인 것이다. 유대교의 율법주의 속에는 사랑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세 5서에도 사랑은 없다. 창세기에서 부터 말라기서에 이르기까지 39책을 다 뒤져도 사랑은 없다. 레위서와 아가서에 사랑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은 예수의 사랑은 아니다. 이들 유대교의 성서속에는 신이 있고, 율법이 있고, 전쟁이 있고, 예언이 있다. 출현과 꿈과 해몽이 있다. 간음과 불륜이 있고, 중오와 복수가 있다. 죄와 벌이 있고 수 없이 많은 끔찍한 살생이 있다. 심지어 음식물에 대한 규정과 할례가 있다. 그러나 사랑은 없다. 신과 인간사이의 관계는 외경 (畏敬: 공경하면서 두려워 함)과 순종이다. 그리고 죄와 벌이다.
예수는 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자기만족, 자기도취와 자애 自愛 그리고 질투와 진노의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그는 인간이 하나님의 이 무한한 사랑을 사랑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여기에서 이웃에의 사랑, 원수에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 위 또는 아래로의 사랑, 이 모든 사랑이 유래된다는 것을 그는 믿는다.
그러나 '저들에게는 너무나 오랫동안 사랑이 없었기에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자위한다.
예수는 고독하다. 그는 어둠이 짙어가는 갈릴리 호반을 터벅터벅 걸으며 독백한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갈릴리 호수가에서 고민하는 「예수」(좌) / 인도에서 참선수행중인 「예수」 (Jesus) (16년 동방유학)(우)
예수는 자신을 칭할 때 '나'라는 말 대신 '인자 Son of Man'라는 말을 자주 썼다. 이 독특한 표현은 공관복음에는 65번, 요한복음에서 11번, 사도행전에는 1번, 요한계시록에는 2번 나타난다. 예수의 신성 神性만을 부각시킴으로써 초기 기독교의 세력확장을 꾀하였던 바울은 이 표현이 예수의 인성 人性을 드러낸다하여 단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 한편 '신자 Son of God'라는 호칭은 예수의 인간적인 특질을 떠나서 신적(神的) 특질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이 호칭은 원시교회에서 가장 빈번히 쓰였다.
예수는 답답하였다. 사람들이 "사랑하라"는 말을 이해 못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당시 이 지역은 문맹률이 극히 높아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은 대게 한둘에 지나지 않았다. 무지한 어부와 농부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그들에게는 사리를 판단할 지혜는 있을 터인데 "사랑하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다니. 더구나 그는 그의 제자들의 부정적 반응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실 이 시점에서 제자들의 생각은 군중의 생각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은 그 중에서 "누가 더 크냐를 쟁론"하고 있었으니까. 다시 말해서 예수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거나, 어쨌든 큰 세속적 권세를 얻게 되면, 그때 자기의 위치는 어디일 것인가를 따져보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는 인내하고 기다린다. 그는 계속해서 사랑의 복음을 설교하고 다닌다.
그는 다시 사랑에 대한 비유를 내놓는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롐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 데나리온(로마의 은전)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의견에는 이 세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선행을 행하는 「착한 사마리아인」
사마리아는 먼 과거에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였지만, 예수 시대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순수한 유대인이 아니었다. 아시리아 정복 때 그 곳으로 끌려가 아시리아인과 피가 섞여서 다시 돌아온 사람들이다. 실은 그들의 후손이다.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특별한 이유 없이, 이것을 '종교적 이유'라고 말하지만, 북쪽 사마리아인과 남쪽 유대인은 서로 미워했고, 서로 살육한 일도 있었다. 특히 사마리아인은 유대인이 건설한 예루살렘 신전의 신성성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대인의 증오는 오래 계속 되었다. 그러니까 사마리아인은 이교도였다. 그들은 서로 아무 왕래없이 긴 세월을 살았다. 그들은 서로가 멸시의 대상이었고 인연이 깊은 적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예수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더욱 극화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이웃사랑과 적에 대한 사랑의 좋은 본보기가 된다. 예수는 이 비유를 통해서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이 비유가 끝나자 예수는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라고 말한다. 이것은 무리한 요구다. 과격한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의 무상 無償, 무조건, 광대무변 廣大無邊의 큰 사랑이다. 그리고 이것은 후일 완성될 그리스도교의 핵심이 된다.
마태나 누가복음의 천국이나 신국은 어느 특정한 시공 時空에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장소가 아니라 비유와 관념의 세계이다. 우리 인간이 무조건의, 무상의, 광대무변의 사랑을 나누게 되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요, 신국이요, 낙원이 되는 것이다. 예수의 이러한 비유와 관념은 분명 그의 16년에 결친 동방유학의 결실이다.
누에가 뽕을 녹여 입에서 아름다운 비단실을 토해내듯, 예수는 사상적으로 거친 환경의 유대로 돌아와 동방에서 배운 진수를 아낌없이 전교하고 있는 것이다.
"천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네 마음속에 있다. 또한 네 마음이 곧 보배이다." 부드히프라프티 수트라(Budhiprapti Sutra)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6:31
예수는 무조건적 사랑으로 이 땅을 신국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신의 별병이 사랑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 요한1서 4:7-11
십자가 형장에서, 함께 매달린 처형자 중 하나가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누가복음23:42~4
여기 낙원의 의미도 천국이나 신국과 맥을 같이 하며 종말론적 기대감이 있다. 원시 기독교인들은 예수 당대에 낙원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이 낙원은 창세기의 고통이 부재한 에덴의 동산과도 관념이 합치된다. 부유한 기득권층인 사두개파 Sadducees, 진보 독립적 중산계급으로 유대교의 주류인 바리새파 Pharisees나 헤로데파에 속한 사람은 유대사회의 소수였지만, 그들은 유대교 사회의 중추를 이루었고,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또한 그들은 모두 율법을 존중하고 계율을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어쨌든 외견상, 명목상은 그러하였다.
그들은 예수가 여기저기에서 설교한 사랑의 개념 따위는 일소에 붙였고, 오히려 그간의 그의 언행을 신성모독으로 몰아 부쳤다. 사실 그들로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였다. 문제는 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하위계층 서민들이 예수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가 그만 크게 실망하고 결국 등을 돌리게 된 점이다. 예수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은 후에도 큰 변화는 없었다. 사실 팔레스티나 땅은 물론 로마나 기타 지중해 연안 지역의 사람들이, 예수가 설파한 사랑, 그의 큰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게 된 것 - 이해하기 시작하게 된 것 - 은, 예수의 십자가형 훨씬 후, 예수의 제자들과 그의 추종자들의 적극적인 포교, 수만 수십만 키로의 전도여행, 수도 없는 십자가형과 순교 그리고 여타의 희생이 있은 후인 서기 60년대가 되어서이다.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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