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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소원의 가격
최태식
소원 판매점에는 기도값이 각각이다
산중턱에 자리한 바람이 줄을 설 때
양초는 제 몸에 쓰인 문구에 집중한다
절박한 크기마다 생각이 많아져서
정갈하게 모셔 놓아 소원이 즐비한 집
기도발 소문에 끌려 사람들 모여든다
몸 낮춘 자리마다 촛불은 뜨거워져
쉽게 살 수 없는 꿈 저마다 간절한데
묵중한 내일 앞에서 오늘은 빈 몸이다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소감] 최태식
아픈 곳 어루만지는 시인 되겠다
간절했지만 잡히지 않는 일이 많아 올해도 내 소원은 가격만 높이고 빈손으로 가는구나 싶었습니다. 짧은 해가 산 그림자를 깊게 드리우고 적막한 시간을 당겨올 무렵이었습니다. 창가에 모르는 새 한 마리 나무에 앉아 말을 걸듯 전화선을 타고 온 낯선 목소리가 내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벅찬 소식은 소원하던 마음과 함께 뒷산 메아리로 울렸습니다.
아픔이 많아 그 시간을 피하기 위해 낯선 곳으로 자꾸 나를 떠미는 날들이었습니다.
캐도와 바라카 원전 건설 현장으로 바쁘게 젊은 몸을 움직이는데 몰두했습니다. 이제는 깊은 산중에 들어 폭설에 고립을 마다하지 않고 칩거 중입니다. 그늘이 많은 나는 한겨울에도 그늘을 견딥니다. 햇살이 넓은 정오에 닿는 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곳에도 빛은 살아 있다는 희망을 믿습니다. 시조가 그러하듯 절제하며 율격에 맞춰가는 정형의 틀 안에서 자유로운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운율을 타고 흐르는 시조의 결을 느끼며 아픈 곳을 어루만지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시조의 첫걸음을 알려주시고 가르쳐주신 조경선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또한 문학에 첫발을 뗄 용기를 주신 창작산맥 김우종 교수님과 이선 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시조 동인, 정읍 문협, 새얼, 양평 문우님, 친구 영락이와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소원값을 많이 치르고도 빈손으로 떠난 아내, 사선을 넘으며 격동의 세월을 살다 가신 아버지, 시의 뿌리가 되어 주신 어머니 그리고 사랑하는 소연, 규연, 준석이와 기쁨을 함께합니다. 부족한 저를 올려주신 심사위원님들과 경남신문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시조 부문 당선자 최태식 씨 △1961년생 △경기도 거주
[2025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심사평] 이달균, 임성구 시조시인
현실 바라보는 시각 신선
올해 신춘문예 시조 부문 응모작은 350여편이고, 수준은 평년과 유사하였다. 심사위원들은 우선 3가지 심사 관점을 정한 후에 심사에 임했다. 첫째는 3장6구의 정형 속에서 주제를 얼마나 자유로이 운용하느냐, 둘째는 현대시조가 지향하는 현대성을 어떻게 접목시키느냐, 마지막 하나는 신인다운 패기와 함께 새로운 영역으로의 확장성을 보여주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런 관점에 부합하는 작품은 4~5편으로 압축되었으나 맨 마지막까지 거론된 작품은 류한월의 〈가면극〉과 최태식의 〈소원의 가격〉 두 편이었다. 촘촘한 거름망을 통과한 두 편은 어느 것이나 당선작으로 밀어도 좋을 만큼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먼저 〈가면극〉은 거울 너머의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바라보려고 하는 화자의 고백이 잘 드러난다. 하루하루 삶에 지친 ‘현재의 나’와 과거 ‘내가 꿈꾼 나’를 비교하면서 어쩌면 지금 거울에 비친 자신은 자아를 잃어버린 시대의 자화상이 아닐까 하는 자기 반성과 연민을 교차시키며 그려낸다. 이는 팍팍한 삶 위에서 이정표를 잃고 표류하는 현대인의 고통과 번민에 대한 속절없는 고백으로 읽힌다. 이를 다른 관점에서 보면 적극적으로 자아를 찾아가는 신념을 갖기보다 종속성 위에서 나이테를 그려가는 수동적 걸음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단점이 되기도 한다.
이에 비해 〈소원의 가격〉은 구와 구, 장과 장을 연결해 가는 시조적 보편성에 방점을 찍는 한편 갈망의 대상마저 세속적으로 재단하는, 현실 비판적 시각도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소원은 값으로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소원함에 담긴 금전적 무게가 비교 대상이 되는 현실은 어쩔 수 없다. ‘소원’이란 고답적 시어를 ‘가격’이란 말과 결부하여 현실을 바라보려는 시각은 신선하다.
이렇게 두 작품을 놓고 우열을 가린 끝에 〈소원의 가격〉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신춘문예가 갖는 참신성과 새로운 상상력 면에서는 심사위원을 만족시킬 만큼 형상화에 성공한 작품이라 보기엔 부족하지만, 구와 구, 장과 장의 긴장감이 살아 있고, 수와 수가 갖는 독립된 구성이 〈가면극〉에 비해 안정감이 있다는 믿음에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의 당선에 만족하지 말고 더욱 정진하여 한국 시조단에 뚜렷이 이름 석 자를 남기는 시인으로 성장하길 기원한다.
심사위원 : 이달균, 임성구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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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인사이더 식사법
오향숙
푸성귀같은 날들 집으로 가져와서
큰 그릇에 버무리면 사람이 모여든다
내 편과 네 편의 입맛 한때는 겉돌아도
속속들이 배어든 유연한 참기름 말
제 각각 살아있는 뿌리의 속마음은
밖으로 내뱉지 않아 싸울수록 순해진다
싱거운 나의 하루 쓴맛이 녹아들어
혀가 만든 비법 하나 스며든 인사이더
싱싱한 유일한 재료 입 닫고 귀를 연다
[2025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소감] 오향숙
주변 세심히 살피며 좋은 시조 쓰기 위해 노력
어떤 자리에도 금방 섞여 한 팀처럼 어울리는 친구가 무척 부러운 적이 있습니다. 한쪽으로 밀려나 머뭇거리는 나를 발견할 때는 적당하게 간이 밴 시간을 퍼먹으며 그 안에 섞이려 노력했습니다. 그때마다 손을 뻗어 옆자리로 당겨주는 주변의 관심은 속마음을 털어놓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로 인해 그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한 무리 속에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평소에 비빔밥을 좋아하는 이유가 내면의 낯가림을 채우기 위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음보가 모여 구가 되고 또 장으로 이어지는 3장 6구 시조의 맛이 그렇습니다.
오랫동안 신춘문예에 도전하며 시조라는 장르를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매년 당선 연락을 절박하게 기다리는 일은 습관이 되어 버렸지만, 그 연락을 받고 보니 날아갈 것 같았던 기분이 이내 무거운 책임감으로 밀려와 정신이 바짝 듭니다. 가까운 주변을 세심하게 살피며 좋은 시조를 쓰기 위해 늘 노력하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홀로 독보적인 맛을 내지는 못할지라도 시조의 길에 스며들어 어울리는 시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신 조경선 선생님께 끝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시란 동인들과 응원해 준 가족과 이 기쁨을 함께 하겠습니다.
[약력]
-전남 해남 출생
-2023년 1월 중앙시조 백일장 장원
-시란 동인
[2025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조 심사평] 김영재 시조시인
통섭의 사회 지향하는 울림, 오랜 여운 남겨
시조는 정형시다. 3장6구 정형 형식에 맞게 흠 없는 완결성을 요구한다. 형식상 흠잡을 수 없다 해도 내용이 빈약하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단 한 명의 당선작을 뽑는 신춘문예 규정에 따라 미세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된다. 심사위원도 아쉬울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마지막까지 심사위원 앞에 남은 작품은 ‘인사이더 식사법’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배려, 통섭의 사회를 지향하는 울림이 시조가 지닌 미덕으로 가시지 않은 여운을 오래 머물게 했다. ‘푸성귀 같은 날들 집으로 가져와서/ 큰 그릇에 버무리면 사람이 모여든다’ 우리의 삶이 ‘푸성귀 같은 날들’이라니, 어찌 아니겠는가.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서로를 작살내는 작금의 현실을 보라. 이 시조에서는 ‘입맛 한때는 겉돌아도’서로를 껴안는다 라고 했다. ‘시란 무엇입니까? 메타포다’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싸울수록 순해진다’ ‘입 닫고 귀를 연다’ 이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당선의 문을 넘지 못했지만 ‘움직이는 냉장고’외 2편, ‘선지국밥집’외 2편, ‘어느 엄마의 실버들 넋두리’ 외 2편의 응모작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당선 시인에게 축하를 드리며 시조의 건강한 발화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 김영재
-1974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유목의 식사> <목련꽃 벙그는 밤> 등
-한국작가상, 이호우시조문학상 등 수상
-현 계간 <좋은시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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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뜨개질하는 여자
박숙경
맞은편 유리창 속 나 같은 여자 하나
구겨진 종이 가방 무릎 사이 세워놓고
안뜨기 바깥뜨기로
남은 오후 짜 늘이네
실마리 움켜잡고 내달리는 두 개의 손
바늘 끝 시선까지 한 코씩 엮어내면
상상을 더하지 않아도
이미 따뜻한 겨울
살다 보면 가끔씩 그럴 때 있기도 해
덜컹 덜컥 흔들리다 저절로 아귀 맞는
까무룩 졸다 깨보니
한 뼘이나 자란 오후
[2025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소감] 박숙경
겨울 숲길에서 마주한 고마운 소식
혹시라도 당선 소식이 오면 울어야지 먼저 김칫국을 마시며 세웠던 소심한 계획도 건망증 때문에 잊어버렸지만 작아서 더 여린 사물들의 말을 받아쓸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맙다.
우체국과 미인개엘 들렀다가 마트에서 저녁 찬거리를 사고 나니 그제야 조기(弔旗)와 근조화환 값을 송금해야 된다는 생각이 났다. 집으로 와서 장 본걸 정리해놓고 다시 ATM기가 있는 곳으로 가서 송금을 한 후 나온 김에 숲길을 걷는 중이었다. 동지를 지나 제법 겨울다운 날씨였으므로 중무장을 한 상태였고 어수선한 시절이라 모르는 번호로 뜨는 전화는 잘 받지를 않는데 '064-' 생소한 번호였지만 왠지 받아보고 싶었다. 한라일보라는 말이 눌러쓴 모자를 뚫고 귓불에 닿는 순간 잠시 멍했다.
십여 년의 습작 후 2015년에 자유시 등단이 있었고 2019년부터 갑자기 시조 생각이 났다.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읽은 시조가 전부여서 막막했지만 정완영 시조작법을 읽으면서 율을 익혔고 율격에 맞춰 한 수 두 수 써보는 일이 꽤나 재미가 있었다.
안팎으로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친 한 해의 끝자락, 조여만 드는 숨통을 트이게 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과 한라일보에 감사드리며 기뻐해준 가족들과 저와 제 시를 사랑해 주시는 분들께 깊숙이 숨겨놓은 사랑의 마음을 꺼내 전하며 자주 잊어버려 고생이 많은 나의 손과 발을 토닥여 본다. 가끔이라는 말 보다 자주라는 말이 자주 좋아지는 성탄절 이틀 전날의 일이다.
▷1962년 대구 군위 출생
[2025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조 심사평] 고성기, 김희운, 홍경희 시조시인
평이한 소재에 담긴 따스하고 깊은 울림
이번에 응모된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감정이나 사유가 결여되어 있거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가 부족하여 메시지가 다소 평면적으로 느껴졌다.
그럼에도, 최종적으로 논의된 '뜨개질하는 여자', '호랑거미 건축법으로', '수세미 꽃밭' 세 작품은 각기 다른 주제와 표현 방식으로 현대 시조의 매력을 잘 드러내었으며, 각 작품이 가진 독창성과 시적 상상력이 주목됐다. 하지만 어머니의 손길을 통해 삶의 아름다움과 고단함을 표현하면서도 어머니의 마음을 전달하고 있는 '수세미 꽃밭'과 독특한 제목으로 삶의 방식을 연결지은 '호랑거미 건축법으로'는 독창적이었으나 표현이 다소 평이한 점, 일부 추상적인 표현과 메시지의 전달 방식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반면 뜨개질이라는 평이한 소재를 통해 깊이 있는 감정을 전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뜨개질하는 여자'는 뜨개질 과정에서 따뜻함과 삶의 소소한 순간을 포착해내었다. 또한 복잡한 언어나 화려한 수사 대신, 섬세한 감수성과 간결한 표현을 통해 구체적이고 상징적인 이미지를 돋보이도록 했으며, 리듬감 있는 구성으로 공감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판단되어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앞으로도 실과 바늘을 사용해 여러 가지 형태를 만들어내는 뜨개질처럼 간결하면서도 독창적인 시조 작품들이 다양하게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심사위원 : 고성기, 김희운, 홍경희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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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매일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작]
자화상의 오후
김정애
빈칸 생의 여백이 귓불을 뜯게 했나
느닷없는 살 조각을 붕대로 친친 매고
회색빛 푸른 눈동자 거울 앞에 앉았다
아직 남은 소음에 대해 눈빛이 묻고 있다
오후 내 낯선 색채를 캔버스에 게워내며
진녹색 코트 여미고 파이프를 문 사내
색을 고르는 일은 칼날을 세우는 일
울분 한 붓 슬픔 한 붓 거칠게 찍어 눌러
죽어도 들키기 싫은 고독을 덧칠한다
[2025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소감] 김정애
가을해는 노루꼬리보다 짧다고 부지깽이 손이라도 빌릴 만큼 분주하게 가을걷이하시던 부모님을 기다리며 따뜻한 볕이 머무는 밭담 벼락에 기댄 예닐곱 살의 내가 있습니다.
나는 쌀쌀해지는 갈바람에 자꾸만 몸을 움츠리며 아직 일을 마치지 못한 휘청이는 두 개의 등허리를 보며 들판에 너울대는 억새꽃과도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짧아져 가는 그림자를 흙 묻은 손으로 따라 그리며 온기가 베인 담장에 등을 댄 내가 맨 처음 배운 감정은 '기다림'으로 기억됩니다.
쌓이는 원고만큼이나 짓눌리던 빈칸의 무게와 하얗게 바랜 여백으로 맞던 새해. 그렇게 열병을 앓을 만큼 앓아야 12월과 겨울을 다 보낼 수 있었습니다.
움츠러든 거울 속 자화상 앞에 다시, 펜을 들 수 있는 용기를 주었던 글. '밤은 검지만 검은색이 아니야.'
밤하늘은 파란색에 노란빛이 섞이고 검은색을 혼합했지. 빨강, 노랑, 파랑 기본색에 흰색과 검은색을 조금씩 섞어야만 조화로운 색채가 뿜어져 나오듯 시어를 고르는 일 또한 이와 다르지 않았음을 알 것 같습니다.
'제주시조시인협회' 선생님들은 저의 스승이자 내 시조의 산실입니다. 김정숙 회장님과 더불어 모든 회원과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이런 날도 이서사 살주' 따뜻한 포옹으로 안아주신 어머니 고맙습니다. 표현이 서툰 무뚝뚝한 남편과 아이들에게, 오랜 벗들과 지인들께도 당선 소감으로 고마움과 안부를 전합니다.
오늘도 스스로에 거는 주문으로 응원합니다. '그래그래 괜찮아! 잘하고 있어.'
기다림을 담보한 따뜻한 감성으로 위로가 되는 글 오래 쓰겠습니다. '신춘문예 당선'의 꿈을 이루게 해 주신 매일신문사와 심사위원 시인 강현덕 선생님께 감사의 절 올립니다.
약력
-1968년 제주 생.
- 2017 제주시조지상백일장 입선.
- 2019년 8월, 2021년 8월, 2022년 4월 중앙시조백일장 장원.
- 제주시조시인협회 회원.
- 사 ) 제주어보전회 제주어 강사.
[2025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 심사평] 강현덕 시조시인
시조로 해설하는 그림
신춘문예만큼 문학도들의 심장을 쫄깃하게 하는 게 또 있을까. '신춘문예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니. 최고의 작가 등용문인데도 연령 등 그 어떤 것과도 관계없는 응모 자격이 이 제도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다. 이번에 응모한 투고자들만 봐도 주소는 전국적이었고 연령은 20대에서 80대에 걸쳐져 있었다. 별처럼 아득하지만 누군가는 '당선'이라는 그 별 같은 것을 손에 쥐게 된다. 그래서 해마다 수많은 문학도들은 기꺼이 이 병에 드는 것이다.
올해는 김정애의 '자화상의 오후'가 그 별을 안게 되었다. 그가 보내온 작품들은 모두 완성도가 높아 믿음이 갔다. 그중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을 제재로 한 이 당선작은 시조의 정형 미학을 제대로 보여주는 치밀한 구성이 돋보였다. 자칫 실수하기 쉬운 음보와 음보, 구와 구의 운용이 매우 자연스럽고 안정감 있어 신뢰를 높였다. 색채 이미지가 강하게 드러난 첫 수와 둘째 수는 그림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다. 미술관 도슨트처럼 고흐의 일생뿐 아니라 그의 정신세계와 작품 세계를 압축하고 정제해 한 편의 시조로 해설하였다. 시조를 많이 공부한 사람 같아 이후가 기대된다.
끝까지 함께 겨룬 작품은 오시내의 '억새는 억세다'와 심순정의 '플라스틱 말'이었다. '억새는 억세다'는 언어유희를 잘 살린 점과 주제를 향해 밀고 가는 힘은 좋았으나 함께 보내온 다른 작품과 편차가 있어 내려놓았으며, '플라스틱 말'은 참신한 상상력이 돋보였으나 몇몇 시어의 선택에서 아쉽게 밀렸음을 밝힌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와 함께 시조단의 중심이 되어 활동해 주기를 바라며, 낙선자에게는 큰 응원을 보낸다.
심사위원 : 강현덕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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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어떤 광합성
김영곤
병실에 누워있다, 깡마른 나무 한 그루
한뉘 내내 둥근 세상 사각 틀로 깎아내다
제 몸을 보굿*에 끼워
몸틀처럼 앙버티는,
무엇을 기다릴까, 천 개의 귀를 열고
한 번도 부화하지 않은 톱밥의 언어들이
끝내는 해독 못한 채
침묵 속에 갇히고,
저 왔어요 한 줌의 말 광합성이 되는 걸까
핏기 잃은 가지에서 붉은피톨 감돌 때
고집 센 심장박동기
뿌리째 팽팽해지는,
무척산에 옮겨 심은 우듬지 저류에서
썩지 않는 후회가 시간의 뺨 데우며
절단된 둘째손가락
단풍 빛깔로 손 흔드는,
*보굿:나무껍질의 순우리말.
[2025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소감] 김영곤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니체의 말 되새길 터
올해는 작품을 퇴고하면서 시조의 그 깊고 오묘한 품 안에 포개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마 이제야 진심으로 올바른 자세로 작품에 임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때마침 저의 깨진 틈새 사이로 한 줄기 당선 소식을 듣는 순간, 오직 ‘감사’라는 시간의 뺨만이 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현실 맞는가요! 지난날의 실존적 고투, 아름다웠군요.
농민신문사와 심사위원께 감사드립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배재대학교 대학원에서 늦깎이로 문학석사과정을 밟는 동안 사물을 낯설게 바라보라고 가르침 주신 최문자 시인님, 발견적 시선을 가지라고 질책해주신 강희안 시인님이 생각납니다. 시의 기본을 다독여주신 이승하 시인님, 경기 안성 자택에서 시를 맛있게 격려해주시던 고(故) 정진규 시인님, 가능성을 믿어주신 정종명 소설가님, 조경선 시인님도 생생히 떠오릅니다. 유튜브채널 권갑하감성TV, 백윤석 시인님의 단풍 같은 응원,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김나비 시인의 추임새가, 포기할 뻔했던 작품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잠들지 않는 어머니의 기도, 문득 그리워질 아버지, 충남 천안 신방도서관으로 사라지는 나를 묵묵히 지원해준 가족들, 나무껍질보다 더 단단해지도록 나를 담금질해준 고난과 시련, 절망에도 감사를 전합니다.
니체의 말을 되새깁니다. “일체의 글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1967년 경북 청도 출생
[2025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심사평] 서숙희, 강현덕 시조시인
시적대상·화자 관계 오롯이…문학의 사회적 기능 보여줘
올해는 좋은 응모작들이 많아 반가웠다. 반면에 정형만 지나치게 의식해 시적 상상력이 기반이 되지 못한 작품들도 더러 보여 아쉽기도 했다. 시조는 형식이 있는 시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되겠다.
선자들이 최종적으로 거론한 작품은 ‘아지오 구둣방’ ‘마침내 슈퍼문’ 그리고 ‘어떤 광합성’이었고, 그 결과 김영곤의 ‘어떤 광합성’이 당선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
‘아지오 구둣방’은 인간에 대한 따듯한 응시가 돋보이는 수작이었으나 상품화된 브랜드를 제목과 제재로 사용하면서 보편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마침내 슈퍼문’은 신선한 발상이 눈에 띄었고 마지막 수 종장이 매우 감각적이었지만 밀도가 다소 약해 내려놓았다. 두 투고자에게 힘찬 응원을 보낸다.
당선작 ‘어떤 광합성’은 “깡마른 나무 한 그루”로 지칭되는 시적 대상과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화자의 관계를 오롯하게 잘 드러냈는데 서사 속에서 느껴지는 깊이 있는 서정이 돋보였다. 나무를 다루는 일을 한 것으로 짐작되는 시적 대상이 나무처럼 쓰러져 병실에 누운 것은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화자는 그런 그를 찾으면서 그것만으로도 광합성이 되듯 다시 “붉은 피톨 감”돌게 한다고 했다. 이는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자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자는 따스한 메시지로 읽힌다. 나무의 속성을 이용해 문학의 사회적 기능을 제대로 보여준 당선자에게 축하의 꽃다발을 보낸다.
심사위원 : 서숙희, 강현덕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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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오륙도n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비대칭 모임
한 정
하현달 기울다가 벽에서 일그러질라
급하게 서두르면 평면 사이 어려운
길 하나 사이에 두고 금 쩍 가면 난감하지
파도가 밤새도록 벼린 날 집어삼켜
현 위치 가늠 못 해 어느 때 낮이 올지
끝과 끝 서로 맞닿아 부메랑이 되어올까
바다는 마음 없이 가만히 두고 볼 일
야위다 풍성하다 저 혼자 여유롭게
선대칭 데칼코마니 회전축에 포갠다
[2025 오륙도n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소감] 한 정
냉한 마음이 따뜻해져
나의 시조가 누구에게나 따뜻하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당선 전화를 받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했습니다.
오랫동안 시의 낱말들이 내 안에 다가와 반짝거리다 안갯속으로 사라져 주저앉기도 하였습니다. 멀고 먼 길을 돌고 돌아온 시조.
이제 나의 언 손을 꼭 잡아주어 든든한 위로가 됩니다. 시조라는 언어를 떠 올리면 냉한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멀리 돌아온 길이지만 이제는 주저하지 않고 누군가의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 줄 그런 시조를 쓸 수 있도록 더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작은 시 모임에서 토론하며 함께 온 5년을 돌아보면 아름다운 날들이었습니다. 이부열 회장님 그리고 뒤에서 든든하게 지켜봐 주시는 박수열 외솔회 회장님, 알토란같은 우리 동인회원님들은 언제나 부족한 저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만약에 시조의 징검다리가 없었다면 어찌 올 수 있었겠습니까. 시조의 길을 열어준 시모임 여러 선생님 덕분입니다. 그리고 한마음으로 응원을 아끼지 않는 남편, 그리고 두 딸과 사위, 이 기쁨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신춘문예 터를 마련해주신 오륙도 신문사에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저의 글을 첫 앞자리에 놓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머리 숙여 큰절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2025 오륙도n신문 신춘문예 시조 심사평] 정유지 시조시인
“정형시의 새로운 좌표를 선보여”
올해 시조 부문은 400여 편의 응모되어 우수한 작품군을 형성하고 있었다. 오륙도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분은 해를 거듭할수록 정형시의 국가대표, 시조의 가치가 더욱 빛나는 작품들로 반짝거렸다.
특이하게 눈길을 끄는 것은 제목과 첫수의 초장이었다. 사실 시조 작품을 오래 대하다 보니, 제목과 첫수 초장의 미학이 매우 중요함을 느꼈다. 첫 문장은 하늘이 내려준 거라 하지 않던가. 시조의 장인을 꿈꾸면서 빚어낸 응모작품이라, 좋은 제목은 건실한 내용의 열매를 담보하고 있었다.
현대시조가 현대시와 견주어도 빛나는 이유는 압축미와 정제미, 운율미를 바탕으로 한 가운데,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사유와 철학적 성찰로 이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응모작들 역시 각각 고유의 빛깔의 언어로 육화시켜 정형시의 새로운 좌표를 선보일 수 있는 주제를 통해 한국 현대시조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었다.
용호상박의 치열한 펜의 전쟁 끝에 마지막까지 선자의 손에 쥐어진 작품은 한정의 「비대칭 모임」, 류한월의 「세일하는 가족」 두 편 작품이 남겨졌다.
한정의 「비대칭 모임」은 바다 위 뜬 달의 다양한 변화를 감지하며, 결국 선대칭 데칼코마니로 안정감을 되찾는 시조의 보법에 충실한 작품을 생성하고 있었다. 활달한 시상의 전개와 선명한 이미지의 형상화가 잘 연동되어 단연 눈에 띄었다. 함께 투고된 작품 역시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류한월의 「세일하는 가족」은 시조의 색다른 빛깔을 가진 작품이었다. 물질만능주의 시장에 길들여진 세상과 조우하면서, 툭툭 내뱉는 시적 언어가 투박하면서도 장중한 무게감마저 전해졌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결국 이번 신춘문예 당선작은 시조 미학을 구현하면서 시조의 보법에 충실한 한정의 「비대칭 모임」으로 선정하였다.
신춘문예 당선작은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 탄생하는 아름다운 향연에 비유할 수 있다.
한국현대시조단의 빛나는 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심사위원 : 정유지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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